연리지(連理枝)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으로 효성이 지극함을 나타냈으나 현재는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진한 것을 비유하는 연리지는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시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次恨線線無絶期(차한선선무절기) 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위 시의 비익조는 날개가 한 쪽 뿐이어서 암컷과 수컷의 날개가 결합되어야만 날 수 있다는 새로서 연리지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736년, 현종은 사랑하던 ‘무혜비(武惠妃)’를 잃고, 후궁에 아리따운 미녀가 3천명이나 있었으나 누구 하나 현종의 마음을 끄는 여인이 없어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에 수왕비(壽王妃)가 보기 드문 절세의 미녀라는 소문이 귀를 솔깃하게 하여 즉각 술자리에 불러오도록 하였다.
그녀는 화원에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는데 무의식중에 함수화(含羞花)를 건드렸더니 함수화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하여 당명황(唐明皇)이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 이라고 찬탄하고는 그녀를 ‘절대가인(絶對佳人)’이라고 칭했다 하니 오죽 했겠는가.
그는 이렇듯 빼어난 미모 뿐 아니라 매우 이지적인 여성으로 음악 ․ 무용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어 술자리에서 현종이 작곡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악보를 보고는 즉석에서 이 곡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그녀의 자태는 마치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춤을 추는 듯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양귀비’는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서 태어난 18번째 아들인 수왕 ‘이모’의 처이니 바로 현종의 며느리인 셈이며, 56세의 시아버지인 현종이 22세의 며느리와 사랑을 불태운 로맨스는 이 만남을 계기로 그 막이 오르게 되었다.
현종은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선 양귀비 자신의 뜻이라 빙자하여 그녀를 여도사(女道士)로 삼아 우선 남궁에서 살게 하고 ‘태진(太眞)’이라는 호를 내려 남궁을 ‘태진궁(太眞宮)’이라 개칭하였다.
태진궁에 들어 온 후 이 두람의 열애는 깊은 밤도 오히려 짧은 듯 해가 높이 떠올라도 잠자리에서 떨어질 줄을 모를 정도로 사랑의 늪에 빠졌으며, 6년 후 그녀는 황후 다음 지위인 ‘귀비’로 책봉 되어 사실상의 황후의 행세를 하였다.
751년 7월 ‘칠석날’에 현종은 화청궁에 거동하여 장생전에서 노니는데 은하수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양귀비는 갑자기 흐느껴 울고 있는 게 아닌가. 현종은 왜 우느냐고 달래듯 물으니 ‘양귀비’는 눈물을 닦으면서 띄엄띄엄 그의 심정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하늘에 반짝이는 견우성과 직녀성,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입니까. 저 부부의 지극한 사랑, 영원한 애정이 부럽습니다. 저 부부와 같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나이가 들면 가을 부채처럼 버림을 받는 여자의 허무함,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서글퍼 견딜 수가 없사옵니다.”
양귀비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현종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을 손을 서로 붙잡고 그들의 영원한 애정을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에게 맹세하는 것이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될 것이다.”
‘비익조’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새로, 암수가 한 몸이 되어 난다는 데서 사이가 좋은 부부를 상징하고, ‘연리지’ 또한 중국 전설에 나오는 나무로, 뿌리는 둘이지만 가지는 합쳐져 하나가 된다는 데서 부부의 깊은 애정을 상징한다. 현종과 양귀비는 이 ‘비익조’와 ‘연리지’처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한 것이다.
고아 출신 ‘양귀비’는 양씨 가문의 양녀로 입적되었는데, 현종은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양가 친척들을 차례차례 등용하였고, 그의 6촌 양오라비인 ‘양소’는 학문은 없었으나 계수에 밝아 재정적 수완을 발휘하여 점차 현종의 신임을 받아 국충(國忠)이라는 이름까지 받고 이림보가 실각하자 재상까지 올랐다.
재상 자리에 오른 양국충은 뇌물로 인사를 문란 시키고, 중앙정계는 그의 일파로 독점하여 제멋대로 정사를 농락하고, 현종은 양귀비에 정신을 빼앗겨 정사를 돌보지 않으니 당왕조는 이때부터 쇠퇴의 길로 치닫게 되었다
755년 11月,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범양절도사와 하동절도사를 겸직하여 국경방비군의 3분지 1 정도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안록산’은 현종과 이간을 획책한 양국충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15만 대군으로 범양에서 중원으로 쳐들어가는 이른바 ‘안사의 난’을 일으켰고, 현종과 그의 애첩 ‘양귀비’는 난을 피해 지금의 사천(四川)지방으로 도망갔으나, 수행했던 근위병들이 모반을 일으켜 ‘양국충’을 죽이고, ‘양귀비’를 죽이라고 현종을 위협하자, 결국 현종은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하였고, ‘양귀비’는 흥평시의 한 길가 불당에서 목을 매어 38세의 나이로 화려하면서 기구한 삶은 마감하고 말았다.
비익조 (比翼鳥) :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아니하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
연리지 (連理枝) :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
비목어(比目魚) : 반드시 두 마리가 나란히 짝을 이루어야 헤엄쳐 나갈 수 있는 물고기.
[이아]의 ‘석지’에 보면 “동쪽 지역에 비목어가 있다. 짝을 이루지 않으면 다니지 않는다. 그것의 이름은 접이라고 불린다.”고 하였으며, [옥대신영]의 서간의 [실사]에는 “옛날에는 비목어 같았는데 지금은 떨어져 삼수와 진수 같도다.”라고 하였으며, 노조린의 [장안고의]에는 “비목어를 얻었는데 어찌하여 죽고자 하는가. 원컨데 원앙이 되어 신선을 흠모하지 않는도다.”라고 하였다.
비목어는 둘이 합해 하나가 되고 짝을 이루어 다닌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부가 함께 의지하고 어울리며 몸과 그림자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비목어로 상징하였고, 또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단성식의 [유양잡조] 권 16 [광동식지일]에는 “덕이 깊은 곳까지 미치니 곧 비목어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얘기로 후한 말의 문인인 채옹(蔡邕)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년 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간호해드렸다. 마지막에 병세가 악화되자 백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피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살이를 했다. 그 후 채옹의 방 앞에 두 그루의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성장하더니 결(理)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한그루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