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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한하다고 여겼던 곳이 그토록 좁은 담장 안에 있었다는 데 놀라고, 이제 다시는
그 무한 속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돌아가야 할 곳은
그 정원이 아니라 그 놀이 안에 있으니까.(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126p)" 담양투어 6일을
하면서 유년시절 추억의 습격을 받고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공간들을 가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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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며 릴렉스 하게 고증 찾기를 하였는데 술래잡기, 통이야, 다방구, 비석치기, 딱지, 구슬
치기, 연 날리기, 재기 차기, 오자미놀이, 갱 깡, 오징어 놀이, 축구, 멱 감기, 찰밥 돌라
먹기, 깡통 돌리기, 뽑기 등등 물장구 치고 다람쥐 쳤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되살아나더이다.
만약 타이머신을 타고 가면 지금 다시 재현될까요? 모르긴 해도 어림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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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이제는 당시의 동심으로 돌아가려해도 돌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놀이터, 그 장소에 가더라도 오브제도 게스트도 다 다르니까요. 돌릴 수 없는 것이
시간이고, 오늘의 나는 딱 한 번의 시간을 살뿐입니다. 시간의 특성상 인생은 되돌리기
불가입니다. 유년기에서 소년기로 넘어가면, 유년기의 나는 죽고 소년기의 새로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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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턴을 받는 것이지요. 그렇게 긴 역사를 이어 지천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클 때는
몰랐던 소쇄원을 입장료2,000원 내고 갔어요. 1530년에 양삼보라는 양반이 만들었다니
500살 정도 되었네요. 담양의 문화재가 대부분 500-700년 나이를 먹은 걸로 압니다.
원림은 정원인데 자연 경관을 최대한 살린 저택의 조경 쯤 될 것입니다. 그래서 소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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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이름은 ‘별서원림’이라고 합디다. 입구부터 시작된 실개천이 어찌나 맑던지 가재를
잡아도 될 것 같네요. 저는 어려서부터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뭐
지금도 매일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역마살이 꼈을 수도 있습니다. 콩엿 한 봉지에 3000
원입니다. 만약 갠 엿처럼 이빨에 붙으면 남 줄 생각을 하고 샀는데 그 많은 엿을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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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어치웠어요. 부스에 앉아 일하는 아줌마 진짜 편해보였어요. 톨게이트 문을 활짝
열어놔서 아줌마 살림살이를 다 봤어요. 멋쩍어서 무슨 놈의 거위가 살이 퉁 퉁 쪘냐고
물었더니 청둥오리라네요. 입구부터 양쪽에 초병을 서고 있는 대나무들은 담양에서는
흔히 보는 풍경일 것입니다. 쭉쭉 진도를 빼다가 누각이 있어 앉았어요. ‘대봉 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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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을(소중한 손님)기다리는 차실이 아닐까요? 차실에서 본당을 내려가지는 않고
쳐다만 봤어요. 족히 80m는 돼 보입니다. 사람들이 정자에 앉아 놀고 있는 것이 시골
추석날 풍경 같습니다. 걷기 편한 쪽으로 우해해서 안채 뒤 길로 걸어 들어가 봤더니
개인 사택이 꽤나 넓었어요. 고풍스런 담장 옆에 백일홍 열매가 달려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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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서 밥을 먹으러 투어를 끝내고 ‘대가‘라는 식당에 들어갔어요. 이런 데는 혼 밥
시키기가 미안해요. 다리까지 문신을 한 녀석이 짜증안내고 주문을 받아준 걸 보면
주인이 교육을 제대로 시킨 모양입니다. 12,000원짜리 대통 밥이 얼마나 맛있겠어요?
먹었으니 다음코스로 고고싱! 광주 땜 기준 무등산 역방향으로 길거리에 겔러리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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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카페들이 보였는데 차는 막히지 않았어요. 가사문학관도2,000원 내고 들어갔어요.
입구에 건립 기념탑에 부위원장 고 이 해섭 씨가 아는 이름이에요. 친구 이 재홍 이네
부친입니다. 저널이스트로 한평생 이름 석 자 남기고 돌아가셨네요. 인생무상입니다.
다음코스는 ‘명옥헌’입니다. 이곳도 처음 옵니다. 고서 면은 담양에서 갈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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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도 멀고 차도 없으니 한 번도 못 가본 게지요. 고불고불 들어가서 보니 백일홍
숲과 배롱 꽃이 볼만했어요. 연못 때문인지 중국느낌이 들더라고요. 1k정도 되는 골목길에
감나무가 유난히 많았는데 홍시가 땅에 재다 떨어졌어요. 주인이 감을 딸 시간이 없어서
그럴까요? 이곳은 진달래 필 때 와야 좋을 것 같네요. 명옥헌 뒤편에는 ‘도 장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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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면 스님들 유해가 있고, 도 닦는 선비들은 ‘도 장사‘에서 추모를 하는 모양입니다.
물소리가 구슬이 부딪혀 나는 소리 같아서 ‘명옥 헌‘으로 이름을 지었다 네 요. 우리
누나는 밝을 명에 구슬옥인데. 명옥 누이는 명옥 헌을 알까요?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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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지방 기념물 제45호 ‘후산 리 은행나무’가 있어서 올라갔어요. 제가 광주로
통학 할 때 보았던 나무지만 가까이 와서 직접 보기는 처음입니다. 인조가 전국 순회 길에
오희도 님을 찾아 이곳에 왔을 때 타고 온 말을 매어두었다고 하니 이 나무도 얼추 500
년쯤 된 나무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하얏트 근처 그 저택같은 집들이 몇 개쯤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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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이 살던 곳이라 자기들도 선비행세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대궐하나가 눈에 들어
와서 사진을 찍었는데 기와장이 컬러로 되어있었어요. 때마침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샹송이
흘러나오는 건 행운입니다. 커피 생각이 나긴 했지만 돈 아까워서 그냥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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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 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젋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나를 두고 간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둘곳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 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2019.10.9.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