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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과 함께 하는 유마경 공부(2020.10.14.PM7시)
유마경 보살품
미륵 보살과 수기(授記)와 보리
지금은 유마경 공부하는 시간이다. 낮에는 화엄경 공부하고 저녁에는 7시부터 유마경 공부하고 공부가 넘쳐난다. 제가 제대로 설명해 드리면 더욱더 근사한 법회가 될 것 같은데, 최선을 다해서 공부한다고 하고, 자나깨나 저는 불법의 도리를 이해하려고, 잘 이해해서 잘 설명해 드리려고 하는 오직 그 마음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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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초청장이 하나 왔는데 소개해 드리겠다.
<나옹화상 탄신 700주년 기념행사>라고 되어 있다.
‘영덕군수 이희진, 나옹왕사 기념 사업회장 불국사 주지 종우합장’ 이렇게 해서 저에게 왔다.
특별히 나옹화상 탄생 700주년 기념행사에서 저를 초청하셨는데, 나옹화상이 영덕군 소재에서 출생하셨고, 거기에 장육사라고 하는 사찰로 출가를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탄신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인연으로 700년 전에는 그런 훌륭한 왕사(王師) 고려 왕사가 영덕에서 출현하셨는데, 지금은 또 어떤 스님들이 있는가? 그것을 이런 행사를 주관하는 영덕군에서 이런저런 조사를 해 보니까 제가 영덕군 사람이고, 청우스님이라고 등명낙가사 주지스님인데 청우스님이 영덕군 사람이고, 혜성스님이라고 요 밑에 금강사 혜성스님이 있다.그 스님은 어려서 출가했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도 받고, 미국에 백림사라고 하는 사찰을 건립해서 포교를 아주 잘 하고 여기 부산하고 왔다갔다 하면서 포교를 아주 잘 하는 훌륭한 스님이다. 이 스님이 영덕군 출신이다. 또 용덕스님이라고 그 스님도 영덕군 출신이고 제가 알기로는 그런 등등 스님들이 영덕군 출신이다.
그런데 그날이 10월 29일 목요일이다. 제가 갈지 안 갈지 장담은 못하겠지만 가겠다고 약속은 했다.
만약에 가게 되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되기 때문에 그날은 또 부득이 우리 염화실 TV에서 하는 공부는 있을 수 없게 되겠다. 그쪽 지역에 계시는 분들 시간이 되시면 그 행사에 참석하시면 그런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이런 소식이 저에게 접해지면 초대장 같은 것을 소개하는 것도 상당히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소개해 드린다.
초대장에 <찾아오시는 길>도 잘 소개를 했다.
나옹스님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많다.
우리에게 지금도 알려져 있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그 유명한 노래가 나옹스님이 지은 시다. 그것을 번역을 누가 잘하고, 곡을 잘 붙여서 한 두어 가지 노래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아주 감동적인 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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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마경 제4보살품, 어제까지 제자품이 끝나고 보살품을 할 차례다.
四. 보살품(菩薩品)
이 스토리는 역시 유마거사께서 병을 앓으시고 부처님이 제자들을 보내서 문병하게 했는데. 유명한 십대제자가 모두 문병을 못간다고 하였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그런 저런 이유로 발뺌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한 차원 높은 보살, 십대제자는 그래봐야 성문들이었고, 성문보다는 깨달음이 훨씬 높은 보살들 한 분 한 분에게 문병을 가라고 부처님이 지시를 한다.
맨 먼저 지시를 받은 사람이 미륵보살이다.
미륵보살은 수기의 문제와 보리의 문제, 보리는 깨달음이다. 수기의 문제와 깨달음의 문제 이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부처님이 미륵보살에게 ‘유마거사에게 가서 문병을 하라’고 하니까, 미륵보살은 전에 유마거사하고 만나서 수기문제를 들은 바가 있고 또 보리, 깨달음의 문제도 들은 바가 있다고 하는 내용을 소개한다.
오늘은 그 앞부분 수기의 문제를 가지고 살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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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授記)는 보증하는 것이다. 보통 수기의 정상적인 뜻은 그렇다. 법화경에 많이 나온다. 어떤 제자에게 예를 들어서 사리불부터 먼저 수기를 주고 또 여러 사람에게 수기를 주고 나중에는 5백 명, 2천 명 이름도 부르지 않고 모두 같이 함께 수기를 한꺼번에 줘버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내용이다. 그때 그 수기의 형식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리불 그대는 앞으로 얼마동안 세월을 거치면서 수행을 하고 그 수행이 끝난 뒤에는 어느 나라에서 어떤 이름으로 성불할 것이고, 그때 성불할 때 그대의 국토는 어떤 모습일 것이고, 이름은 어떤 것이고, 어떤 제자를 두게 될 것이고, 어떤 제자들이 등장해서 그들이 또 수기를 받게 되는 사연들을 쭉 이야기 한다.
그것이 수기의 교과서적인 표현인데, 사실은 성불한다 하는 보증을 부처님이 서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 수기라는 말이 있는데 대승불교적인 안목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고 불성을 가진 사람은 전부 부처가 된다. 나중에 부처가 되는 것은 그만두더라도 현재 이미 부처의 종자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그대로 부처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이렇게까지 부처님이 보증을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참 중요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부처라고 하는 것, 불성종자(佛性種子)가 있기 때문에, 진여불성(眞如佛性), 대승불교에서 가장 힘차게 강조하는 것이 바로 진여불성 불성종자 참마음, 참사람, 차별없는 참사람, 한마음 그런 내용이다.
누구나 다 그것을 평등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지어서 누구만이 가능하다 그런 것은 사실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법화경에서 수기를 주는 내용들을 보면 거기에 먼저 받는 사람, 뒤에 받는 사람 등등 상당히 차별된 표현이 있기는 있다. 여기는 미륵보살과 유마거사와의 수기관계를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다.
1. 미륵보살과 수기와 보리
어시(於是)에 불고미륵보살(佛告彌勒菩薩)하사대 여행예유마힐문질(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미륵(彌勒)이 백불언(白佛言)하사대 세존(世尊)하 아불감임예피문질(我不堪任詣彼問疾)이니다 소이자하(所以者何)오 억념(憶念)하니 아석(我昔)에 위도솔천왕(爲兜率天王)과 급기권속(及其眷屬)하여 설불퇴전지지행(說不退轉地之行)이러니라
이에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였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여라.”
미륵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억해보니 저도 옛적에 도솔천왕과 그의 권속들을 위하여 퇴전하지 않는 지위에 대한 수행을 설하였습니다.”
미륵보살이 불퇴전에 대한 수행을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시(時)에 유마힐(維摩詰)이 내위아언(來謂我言)하되 미륵(彌勒)이여 세존(世尊)이 수인자기(授仁者記)하사대 일생(一生)에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시니 위용하생(爲用何生)하야 득수기호(得受記乎)아
“그때에 유마힐이 저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미륵이여, 세존께서 당신에게 수기하시기를 <일생에 마땅히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리라>하셨으니 어느 생으로 수기를 얻었습니까?’ ”
이렇게 따지고 묻는다.
미륵보살은 ‘일생보처(一生補處)미륵보살’ 이라고 표현한다. 한생만 부처님의 좌보처, 우보처는 그 다음이고 좌가 먼저다. 우(右)는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 이렇게 되어있다.
미륵보살이 수기를 받아서 한 생만 부처님의 보처(補處) 도와주는 비서, 제1비서 역할을 하고 나면 그다음 생에 성불(成佛)한다 하는 것으로 되어있지 않은가?
그래서 미륵불이 탄생한다. 미륵불만 믿는 사람들도 있다. 미륵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때 바로 부처님 밑에서 수행을 하리라 이렇게 원력을 세우고 미륵보살을 신봉하는 이들이 있다. 미륵종도 있다. 불교계에 미륵종파도 있다.
미륵보살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일생(一生)에 마땅히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리라’ 한 생만 지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마힐이
어느생으로 수기를 얻었습니까?
과거야(過去耶)아 미래야(未來耶)아 현재야(現在耶)아 약과거생(若過去生)인댄 과거생(過去生)은 이멸(已滅)하고 약미래생(若未來生)인댄 미래생(未來生)은 미지(未至)하고 약현재생(若現在生)인댄 현재생(現在生)은 무주(無住)라 여불소설(如佛所說)하야 비구(比丘)야 여금즉시(汝今卽時)에 역생무노역멸(亦生亦老亦滅)이라하시니라
“‘과거입니까? 미래입니까? 현재입니까? 만약 과거생이라면 과거생은 이미 소멸하였고, 만약 미래생이라면 미래생은 아직 오지 않았고, 만약 현재생이라면 현재생은 머물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비구여, 그대는 지금 이 순간 또한 생기며 또한 늙으며 또한 소멸한다>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설법하신 내용 중에도 끊임없이 우리는 생노병사하고, 생기고 늙고 소멸하는 과정속에 있는데 어느생을 가지고 콕 집어서 수기를 주느니 마느니, 한 생을 좌보처로 있으면 그 다음에 성불한다느니 하는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것 그것은 고정시켜 놓고 이야기할 성질의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 도대체 어느 시점에다 맞춰서 그렇게 일생에 마땅히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다, 한생에 좌보처로서 보살행을 하면 그다음에는 미륵불로서 탄생한다 그런 것이 맞지 않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본래 부처’라는 뜻이다.
본래부터 부처인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역할이 거사의 역할이 있고, 부처의 역할이 있고, 보살의 역할이 있고, 선지식의 역할이 있고 보통 범부의 역할이 있고, 그것은 늘 변하는 것이다. 범부가 수행을 잘하면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을 얻으면 선지식도 되고 보살도 되고 조사도 되고 부처도 되고 이런 변화무쌍한 것이 우리 수행의 세계인데 그렇게 시간으로 콕 찝어서 이야기할 것이 뭐가 있느냐? 그렇게 따진 것이다.
약이무생(若以無生)으로 득수기자(得受記者)인댄 무생(無生)은 즉시정위(卽是正位)라 어정위중(於正位中)에는 역무수기(亦無受記)며 역무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亦無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어늘 운하미륵(云何彌勒)이 수일생기호(受一生記乎)아
“‘만약 무생으로서 수기를 얻는 것이라면 무생은 곧 정위(正位)라서 정위 중에는 또한 수기가 없습니다. 또한 최상의 깨달음을 얻음도 없습니다. 어떻게 미륵이 일생의 수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무생은 생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정위는 정해진 지위인데 이미 우리는 본래로 부처다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래로 우리가 부처인데 무엇을 거기다가 이런저런 내용을 더하고 말 것이 있느냐?
무생(無生)이란 정위(定位)라고 하였는데 생멸이 없는 경지는 곧 깨달음의 경지다. 정위 역시 깨달음의 경지다. 깨달음의 경지에는, 달리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미륵보살이 일생의 수기를 얻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제가 부연설명을 해 놓았다.
위종여생(爲從如生)하야 득수기야(得受記耶)아
“‘여(如)로부터 생겨서 수기를 얻은 것입니까?’”
대승불교에서 진여를 아주 중요시 여긴다. 진여는 불성이다 법성이다 자성이다 본래불이다 그런 의미 중의 하나로서 진여다. 그냥 여(如)라고도 한다.
‘진여로부터 생겨서 수기를 얻은 것입니까?’ 그것은 따질만하다. 진여를 들이대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경지가 바로 진여의 경지다.
위종여멸(爲從如滅)하야 득수기야(得受記耶)아
“‘여(如)로부터 소멸해서 수기를 얻은 것입니까?’”
생겨서 얻었으냐, 소멸해서 얻었으냐?
약이여생(若以如生)으로 득수기자(得受記者)인댄 여무유생(如無有生)이요 약이여멸(若以如滅)로 득수기자(得受記者)인댄 여무유멸(如無有滅)이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개여야(皆如也)며
“‘만약 여(如)로부터 생겨서 수기를 얻은 것이라면 여는 생김이 없으며, 만약 여로부터 소멸함으로 수기를 얻은 것이라면 여는 소멸이 없으니 일체중생이 다 여입니다.’”
더 말할 나위 없는 완벽한 법문이다. 진여는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고 본래부터 함께 하는 것이다. 중생이고 범부고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다 가지고 있는 본래 마음, 본래 불성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다.
일체법(一切法)이 역여야(亦如也)며 중성현(衆聖賢)이 역여야(亦如也)며 지어미륵(至於彌勒)도 역여야(亦如也)라 약미륵(若彌勒)이 득수기자(得受記者)인댄 일체중생(一切衆生)도 역응수기(亦應受記)니
“‘일체법도 또한 다 여(如)입니다. 모든 성현도 역시 여입니다. 미륵이라 하더라도 또한 여입니다. 만약 미륵이 수기를 받은 것이라면 일체중생도 또한 응당히 수기를 받을 것입니다.’”
법화경도 처음에는 이런저런 형식을 갖추어서 수기 주는 이야기를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5백 명, 천 명, 2천 명을 이름도 없이 함께 수기를 줘버린다. 그것이 정답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성불한다면, 지금도 부처의 종자를 가지고 있으니 부처라 해도 무방하다. 이런 뜻이다. 그것을 보증하는 것이 진정한 수기다.
소이자하(所以者何)오 부여자(夫如者)는 불이불이(不二不異)니라
“‘왜냐하면 대체로 진여란 두 가지가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여는 둘이 아니다. 다른 것도 아니다 그냥 여여한 자리, 진여의 자리. 참되고 여여한 자리, 어디에서나 다 참되고 언제나 여여하다. 그것이 우리 참마음 도리다.
그것은 부처나 중생이나 똑같다.
흔히 화엄경에서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고 말하는 도리 그대로다.
이것을 우리가 수없이 읊조리고, 수없이 강조를 하고, 수없이 이야기 한다. 그런데 천 번 만 번 이야기 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도리다. 이것을 확실하게 우리는 믿고 이해하고 궁극에 가서는 깨달아야 하고 이 경계속에서 살아야 한다.
삶을 이 경계로써 영위해 가야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를 믿는 보람이 있다. 물론 그것이 손에 잘 잡히지는 않는다. 쉽게 잘 잡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꾸 듣다 보면 언젠가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자리고 불성자리고 진여자리구나 그렇게 이해가 될 것이다.
약미륵(若彌勒)이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인댄 일체중생(一切衆生)도 개역응득(皆亦應得)이니
“‘만약 미륵이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을진댄 일체중생도 모두 응당히 얻을 것입니다.’”
미륵보살이 깨달음을 얻어서 일생동안 부처님 비서노릇을 하고 그다음에 부처가 된다 하면, 일체중생도 똑같다는 것이다.
미륵도 불성 가지고 하는 일이고, 일체중생도 다 진여불성 가지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소이자하(所以者何)오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즉보리상(卽菩提相)이니라
“‘왜냐하면 일체중생이 곧 보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깨달음이다. 여기서 후편에 나올 불성(佛性), 깨달음, 보리에 대한 것도 설법이 화려하고 장황하다. 그것을 끝에서 이야기할 것인데 내일 공부하게 될 것이다.
일체 중생이 곧 보리의 모습, 깨달음의 모습, 본래 마음을 가졌다고 하다가 그것이 발전해서 깨달음의 모습, 보리의 모습이다 라고 하였다. 보리의 모습, 깨달음의 모습이다 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한마음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마음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에 이렇게 급진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다.
대승불교에는 인간보리, 중생보리, 인즉시불(人卽是佛), 인불사상(人佛思想), 인자시불(人者是佛,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말이 있다. 유마거사의 말씀과 같이 만약 미륵보살이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일체중생도 모두 다 얻었다. 왜냐하면 중생 그대로가 최상의 깨달음[아뇩보리]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통쾌한 천고의 절언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다. 정말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이렇게 명확하다. 그러한 것을 알았다면, 본래 우리가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보살행으로서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일러주도록 하고, 내가 그 깨달음이니 한마음이니 불성이니 진여니 하는 데 대한 이해를 더욱더 깊게 하고 더욱더 확실하게 하고 더욱더 명확하게 하면서 또 한편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이치를 알려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참모습,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더욱더 많이 알리는데 노력을 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제일가는 보살행이다. 많은 보살행이 있는데 그 가운데 제일가는 보살행은 그러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보살행이다.
옛날 부처님도 그랬고, 많은 보살님들도 그랬고, 큰 선지식들도 전부 그것 하나 깨우쳐 주려고, 그것 하나 제대로 보시하려고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중생들에게 다른 의식주 문제를 도와주는 데는 상당히 등한시 하고 소홀히 여기는 상황들이 없지 않았다. 그런 것은 그런 것대로 또 보살행이고 훌륭한 보살행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보살행은 이 불성인간(佛性人間)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제대로 깨닫고, 철저히 믿고, 철저히 믿는 만치,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좀 깨닫게 해주고, 어떤 사물을 손에다 딱 얹어주고 이것이다 라고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까지 되어야 한다.
제가 그것의 실체로서 가끔 말씀드리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참마음의 실체를 부처라 하고 불성이라고 하고 진여라고 하는데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뭐냐? 평소에 우리가 숱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전부 그것의 작용이다. 또 깊이 잠들었을 때 꿈이라는 것이 있어서 또 다른 내가, 이 육신의 나는 침대에 조용히 누워서 자지만, 진정한 나는 잠도 자지 않고 일어나서 사람도 만나고 법문도 하고 온갖 활동을 다하는 또 하나의 내가 있지 않느냐?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또 하나의 나, 우리가 잠자지 않을 때 생시에도 늘 있고 그것이 근본이고 내 주인공이고 그것이 하자는 대로 내가 생시에는 활동을 하고, 작용을 하고, 식사도 하고, 어디 가고 싶으면 가고,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전부 그것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불생불멸의 존재다. 잠들었다고 잠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꿈에서도 활동을 한다. 그런 식으로 제가 누차 증명해 보인다.
제가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것은 그 방법밖에 없다. 그것은 제가 경험한 바다. 그것 빼놓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저로서는 없다.
그러니까 이 대승경전을 좋다고 하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대승경전 대승경전,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하는데, 자나깨나 그저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그렇게 하는데 그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우리 인간존재의 본모습을 우리가 철두철미하게 잘 알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최고의 보살행이다. 그다음에 차선책으로써의 보살행도 우리가 얼마든지 할 것이 많다. 재난이 있을 때 그 재난을 구호하는 구호활동도 열심히 펴고 그것이 또한 보살행으로써의 좋은 표현이다.
좀 거칠게 정리를 했지만 불교는 그것이 전부다. 우리는 불성인간이라고 하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서 보살행으로 발전해서 평생을, 아니 세세생생을 보살행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불교라고 하는 사실이다.
약미륵(若彌勒)이 득멸도자(得滅度者)인댄 일체중생(一切衆生)도 역당멸도(亦當滅度)니
“‘만약 미륵이 멸도를 얻었을진댄 일체중생도 또한 응당히 멸도를 얻었을 것입니다.’”
멸도라는 것이 무엇인가? 말하자면 제도를 얻었다 하는 것이다.
소이자하(所以者何)오 제불(諸佛)은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이 필경적멸(畢竟寂滅)하야 즉열반상(卽涅槃相)이라 불부갱멸(不復更滅)이니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필경에 적멸해서 곧 열반의 모습이기 때문에 더 이상 열반할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열반이라는 말도 사실은 본래 열반이다. 대승불교에서는 그렇게 본다. 적멸이 열반의 모습이다. 더는 열반할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시고(是故)로 미륵(彌勒)이여 무이차법(無以此法)으로 유제천자(誘諸天子)니 실무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實無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며 역무퇴자(亦無退者)니라
“‘그러므로 미륵이여, 이러한 법으로서 모든 천자들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실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낸 사람도 없으며, 또한 최상의 깨달음에서 물러선 사람도 없습니다.’”
결론이 그것이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서 다음에 부처가 된다. 그거 아주 차원 낮은 소리니 하지 말라는 것이다.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낸 사람도 없다. 본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또한 최상의 깨달음에서 물러선 사람도 없다. 우리 모두는 한 발자국도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서, 보리심에 대해서 물러선 사람도 없고, 실제로 그 마음을 낸 사람도 없다. 가지고 있는데 따로 낼 것이 없다.
우리가 편의상 ‘보리심을 발한다’는 말을 쓰기는 하는데, 사실에 있어서는 보리심을 발하는 것도 아니고, 보리심에서 물러선 사람도 없다. 모든 존재가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또 방편상 ‘발보리심하라’ 어떻게 하더라도 ‘보리심을 내라’ 그러한 표현을 곧잘 쓴다.
그것은 필요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러한 것들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면 모순같이 들리는 불교의 논리가 세속적인 말로서는 모순같지만 실제로 불법을 제대로 설명하는 데는 그런 세속논리와는 맞지 않는 논리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사용해도 된다. 그래서 불교에는 그런 이야기를 아주 무심코 자유자재로 걸림없이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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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보살품 첫째 미륵보살을 이야기 하였다. 미륵보살에게 두 가지 과제가 있었는데 수기의 문제와 뒤편에는 깨달음, 보리의 문제가 있다. 오늘 수기의 문제를 다뤘는데 참 중요한 이야기이다. 대승불교에서 수기라는 말 같이 중요한 말도 드물 것이다. 수기라는 말 속에는 대승불교의 진정한 관점이 다 담겨 있기 때문에 그렇다.
너도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부처님이 인정해주고 보증해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기라는 말 속에 대승불교의 사상이 아주 잘 녹아 있다.
오늘 유마경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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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명이 지금 동시에 시청하고 있고, 다녀가신 분은 132분 정도 되는 것 같다. 여기에 이름 올리신 분은 불과 몇 명 안된다. 이름 올리지 않고 듣기만 하고 나가시는 분들이 많다. ‘왜 이름 올리지 안올리느냐’고 하니까 ‘아유 부끄러워서요’ 이러한 분들도 있다. 부끄러워할 것 없다. 이름 올려놓으면 ‘아 이러한 분이 왔구나’ 하고 저와 대면하는 것이 된다.
88명이 지금 시청하고 계시는데 여기 이름 올리신 분은 불과 20명이 안된다. 이름 한 번 연습삼아 올려보시기 바란다.
많은 사람에게 불법을 전하고 자기가 터득한 이치, 자기가 ‘이것은 내게 믿음이 간다’고 하면 강력하게 전도해야할 것이 아닌가? 전도라는 말도 우리 불교에서 먼저 썼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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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은 더욱 더 밝게 빛나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날로 더욱 더 힘차게 굴러가서
미망에 뒤덮여 있는 중생들
하루빨리 지혜의 빛을 밝게 받아서
지혜롭게 사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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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열반...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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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戒香ㆍ定香ㆍ慧香ㆍ解脫香ㆍ解脫知見香!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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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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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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