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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고(盤古)
중국 신화에 의하면 반고(盤古)는 최초의 생명으로 만물을 창조하고 천지를 개벽했다고 한다.
2) 여와(女媧)
중국 전통 신화에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여신(女神).
3) 신농(神農)
신농(神農)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황제이자 문화 영웅으로 5천년 전에 고대 중국인들에게 농업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또 수백 종의 약초와 독초는 물론 다양한 식물의 특성을 밝혀내어 전통 한의학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고 전해진다.
4) 창힐(倉頡)
중국 고대 제왕인 황제(黃帝) 때의 사관(史官)으로 눈이 4개나 있었으며 매우 총명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본떠 한자(漢字)를 만들어 그때까지 새끼의 매듭으로 기호를 만들어 쓰던 불편을 덜어주었다고 한다. 창힐에 관한 전설은 전국시대(戰國時代) 후기 저작인 『순자(筍子)』에 기록이 있다.
5) 도법자연(道法自然)
『도덕경』의 한 구절.
6) “대학(大學)의 도(道)는 밝은 덕을 분명히 하는데 있다(大學之道,在明明德)”
원래는 『예기(禮記)』 제42편이었으나 나중에 신유학을 집대성한 주희에 의해 재구성되어 이후 이른바 4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하나로 아주 중시되었다. 본문에서 인용된 부분은 『대학』 첫머리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구절이다.
7) 박대정심(博大精深)
직역하면 넓고 크며 정밀하고 심오하다는 뜻.
8) 성당(盛唐)시기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당나라(AD 618~907)를 다시 세분하여 초당(初唐, 618~712), 성당(盛唐, 712~762), 중당(中唐, 762~827), 만당(晩唐, 827~859)이라고 하는데 그중 기원 712년부터 762년까지를 성당이라고 한다.
9) “먼 곳의 사람들이 불복할 경우, 학문과 덕을 닦으면 자연히 오게 된다.”
“故遠人不服,則修文德以來之”(『논어』계씨(季氏)제16편.)
10) 도가사상
이 때문에 흔히 도가 사상을 “黃老之學”이라고 하는데 즉, 황제와 노자의 학문이라는 의미이다.
11)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고, 예에서 거닌다.”
“志於道,據於德,依於仁,遊於藝.”(『논어』 술이(述而) 제7편)
12)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夕死可矣.”(『논어』 이인(里仁) 제4편)
13) ‘모든 경전의 으뜸’
群經之首.
14) ‘입세(入世)’
속세에 들어가 동참한다는 의미로 세속을 떠나 수행한다는 출세(出世)의 반대말.
15) “효도하고 공경하는 그것이 바로 인(仁)의 근본이 아니겠느냐?”
“孝悌也者,其爲仁之本歟?”
16) “사람을 대함에 있어 공경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자가 윗사람을 배신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其爲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논어』 학이(學而) 제1편)
17)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할’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이 말은 본래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나온 말이다. 원문은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脩其身; 欲脩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脩, 身脩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19) “하늘이 변치 않는 한 도(道) 역시 변하지 않는다.”
한대(漢代)의 유명한 사상가 동중서(董仲舒, BC179~104)의『천인삼책(天人三策)』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天不變,道亦不變.”이다.
20) 『서유기(西遊記)』
중국 명(明)나라 때 완성된 장편의 구어체 장회소설(章回小說)로서 이른바 중국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 내용은 당(唐)나라 태종 때 현장법사(=삼장법사)가 불경을 구하기 위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81난(難)을 극복하고 마침내 경을 가지고 돌아와 이 공로로 부처가 된다는 이야기.
21 ) 『홍루몽(紅樓夢)』
청(淸)나라 건륭(乾隆) 연간에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장편소설로 원제는 『석두기(石頭記)』이다. 내용은 당시의 인간군상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개성의 비극과 시대의 오탁(汚濁)을 극명하게 부각시켰다. 청대 최고의 소설로, 92년 정을본이 초간된 이래 100종 이상의 간본과 30종 이상의 속작(續作)이 출간되었으며, 홍학(紅學)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유명하다. 이 소설에 대한 연구는 현대 중국문학계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되었으며 전국민이 애독하는 소설이다.
22) “분분한 세상사 끝이 없어도 천수(天數)는 망망하여 벗어나지 못하네.”
“紛紛世事無窮盡,天數茫茫不可逃.”
23) 『동주열국지(東周列國誌)』
명나라 때 문인 풍몽룡(馮夢龍, 1574~1645)이 지은 춘추 전국 시대를 다룬 역사소설. 흔히 삼국시대를 다룬『삼국지』에 비견된다. 전 12권인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소설의 형식을 지니고 있긴 하나 완전한 픽션이라기 보다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전국책(戰國策)』 『여씨춘추(呂氏春秋)』 등 춘추 전국 시대의 중요 문헌들을 꼼꼼하게 열람한 후 그것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각색한 것이다.
24) 『설악전전(說岳全傳)』
청대(淸代) 전채(錢彩) 지은 소설로 남송시대 유명한 장수인 악비(岳飛, 1103~1142)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악비는 금나라 군대의 침략에 맞서 의병을 이끌고 큰 공을 세웠으며 이로 인해 젊은 나이에 절도사 및 선무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대금(對金) 항전을 주장하다가, 금과의 화진을 내세운 재상 진회(秦檜)의 모함에 빠져,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나중에 죄가 없음이 밝혀졌으며 그를 기리는 사당을 만들었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수이자 충(忠)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25) 제갈공명
본명은 제갈량(諸葛亮, AD 181~234)이며, 공명(孔明)은 자이다. 삼국시대 때 촉나라의 승상으로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 했다.
26) “나라를 위하여 전력을 다 바쳐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원문은 “鞠躬盡瘁,死而後已”
27) ‘겉으로 형상은 달라도 안으로 성리(性理)의 동일함을 실증하나니......사람들과 더불어 선(善)으로 돌아가고자 함’
청대에 『도장(道藏)』을 새로 편집하여 중요 부분만 선별하여 만든 『도장집요(道藏輯要)』에서 인용한 글.
28) 평서(評書)
중국 민간 문예의 일종으로, 장편 이야기를 부채 등 소도구를 이용하고 손짓을 해 가면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는 것.
29) “생사는 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
“死生有命,富貴在天”(『논어』 안연(顔淵) 제13편)
30) 명이하지변(明夷夏之辨)
공자의 말로, 이민족과 중화민족을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는 뜻.
31) “무릇 한 정권을 무너뜨리려면 늘 먼저 여론을 조성해야 하며, 늘 먼저 의식형태 방면의 작업을 해야만 한다.”
중국 공산당 제8기 10중전회에서 마오쩌둥의 연설.
32) “나는 승려가 우산을 든 것처럼 법도 없고 하늘도 없다(無法無天)!”
마오쩌둥은 여기서 일종의 언어유희를 하고 있는데 중국어 法(Fa)는 머리털을 의미하는 髮(Fa)와 발음이 같다. 즉, 머리카락이 없는 승려가 우산을 받쳐들면 원래 머리카락이 없으니 머리털이 없고 우산으로 하늘을 가려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髮를 法로 해석하면 법도 없고 하늘도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33) 성탕(成湯)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인 폭군 걸왕(桀王)을 치고 상(商)나라를 세운 임금.
34) 무왕(武王)
상(商)나라 마지막 왕인 폭군 주왕(紂王)을 치고 주(周)나라를 세운 임금.
35) 문천상(文天祥)
문천상(1236~1282)은 중국 남송(南宋) 말기의 정치가이자 시인으로 자는 송서(宋瑞) 또는 이선(履善)이며 호가 문산(文山)이다. 20살 때 진사에 수석 합격했다. 1259년 원(元)나라 군사가 쓰촨성[四川省]에 침입했을 때 천도 문제가 논의되자 상서를 올려 단호히 반대하다 해임되었고 이후 재기용 된 뒤에도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했다. 1275년(德祐 1) 원나라 군사가 수도인 임안(臨安)에 육박했을 때, 토호·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혼성 의용군을 이끌고 임안 방어에 참가했다. 나중에 송나라가 망한 후에도 끝까지 항전하다가 원나라 군사에게 사로잡혔다. 원 세조(世祖) 쿠빌라이는 그를 이용하여 송나라의 잔당을 소탕하려 했으나, 그는 충절을 굽히지 않고 3년간의 옥고 끝에 살해되었다. 장시(長詩) 『정기가(正氣歌)』는 1281년 옥중에서 지은 것으로, 천지간의 불변의 기(氣)를 송나라에 대한 자신의 충절에 비추어 노래한 것이다. 저서로 『문산전집(文山全集』20권이 있다.
36) “귀한 것은 백성이오, 그 다음이 사직(社稷)이고, 임금은 그 다음이다.”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맹자(孟子)』 진심장구하(盡心章句下)]
37) 사생취의(捨生取義)
“生, 亦我所欲也; 義,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맹자』 고자장구상(告子章句上)]중의 유명한 구절에서 나온 성어로. 생명도 소중하고 의리도 소중하지만 만약 2가지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생명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의리를 택하겠다는 의미이다.
38) “여태껏 무슨 구세주가 없었으며, 또한 신선(神仙)이나 황제(皇帝)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인류의 행복을 창조하려면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 의거해야 한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가의 가사 중 일부.
39) 삼무일종(三武一宗)
멸불정책을 실시한 황제들의 연호에 武가 셋, 宗이 하나 있어서 흔히 삼무일종이라고 하면 멸불정책을 의미한다.
40) 후주(後周)
AD 907-960 사이 중국 오대십국시대에 5대에 속한 왕조의 하나.
41) 백마사(白馬寺)
백마사(白馬寺)는 중국 최초의 불교 사찰로 서기 64년 동한(東漢) 영평永平 8년에 지어졌다.
42) 패엽경(貝葉經)
패엽은 야자나무 과에 속하는 아열대성 식물이다. 이 나무의 잎은 아주 두꺼워서 보관할 때 벌레가 슬지 않고 완전 건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고대에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을 때 따이족 조상들은 그 잎에 글씨나 글을 써서 기록을 남겼다. 그 잎 위에 새겨진 글과 경문(經文)을 각각 패엽문(貝葉文) 그리고 패엽경(貝葉經)이라고 한다. 따이족은 중국 운남성 일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으로 불교를 숭상한다.
43) 베이징 이화원(頤和園)
중국 베이징시 서쪽 교외에 있는 공원으로 총면적 2.9㎢에 달한다. 1153년 완안량(完顔亮)이 행궁(行宮)을 설치한 것이 시초이며, 원(元)나라 때 지금의 만수산(萬壽山)과 곤명호(昆明湖)를, 명(明)나라 때 호산원(好山園)을 조성하였다. 청(淸)나라 때인 1764년에 개축, 청의원이라 불리다가 1888년 서태후(西太后)가 다시 개수하고 이화원이라고 개칭하였다. 1924년 공원으로 바뀌었으며 인수전(仁壽殿), 낙수당(樂壽堂) 등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많다. 이 밖에도 고전적인 조경 풍치림의 특성을 풍부하게 살린 화려한 건물·정원·산 등이 조성되어 있어 중국 조경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이다.
44) 누관대(樓觀臺)
누관대(樓觀臺)는 중국의 유명한 도교 사당으로 도가에서는 최초의 축복받은 곳으로 숭배하고 있다. 이 사당은 종남산 북쪽 산허리에 있는데 서안(西安)에서 7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45) 당(唐) 고조(高祖) 이연(李淵)
중국 당(唐)나라를 창건한 초대 황제(618∼626). 본명은 이연(李淵)이며 묘호(廟號)가 고조(高祖)이다. 당태종 이세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46) 인민공사
1958년에 창설된 중국 농촌의 행정·경제기구. 중국 공산당은 58년 중반 무렵부터 종래의 농업생산협동조합을 합병시키고, 공업·농업·상업·학교·민병의 각 조직을 포함하며, 그때까지 향정부(鄕政府)가 가지고 있던 행정기능까지 갖는, 인구 수만 명에 이르는 하나의 커다란 코뮌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마오쩌둥의 지지로 순식간에 중국 농촌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나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82년 헌법개정을 통해 이전처럼 향정부제도를 부활시키고 인민공사도 해체시켰다.
47)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석가모니부처의 열반을 종교적·철학적으로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편찬한 불교경전. 이 경은 대승불교의 몇 가지 중요한 사상을 천명한 것으로 내용은, 첫째 불신(佛身)이 상주(常住)한다는 사상과 둘째 열반의 긍정적 가치를 선언하고, 열반에는 상(常)·항(恒)·안(安)·청량(淸凉)·불로(不老)·불사(不死)·무구(無垢)·쾌락(快樂)의 팔미(八味)가 있다는 사상 및 셋째 일체 중생에는 모두 불성이 있다는 사상 등이다.
48) “파계(破戒)한 사람은 천(天)용(龍)귀신(鬼神)이 모두 증오한다. 나쁜 소리[惡聲]가 널리 퍼진다 ...... 죽으면 곧 지은 업(業)에 따라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다. 액운을 다 겪고 나서야 지옥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데, 그 다음에는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의 몸을 반복적으로 받게 된다. 마치 끊임없는 윤회속에서 해탈할 시기가 없는 것과 같다.”
『대반열반경』중에서
49) “문서상으로 폭로된 자료만해도, 대륙의 성직자 중 지주, 악질 토호라는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사람의 수가 8840명에 달했다. 그리고 노동개조를 당한 사람이 3만9천200명에 달했다. 한편, ‘반혁명’이란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사람이 2천450명에 달하였으며 이 죄명으로 노동개조당한 사람도 2만4천800명에 달했다.”
바이즈(百志) 『중국 공산당의 종교탄압 이론과 실천』중에서 인용.
50) ‘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을 돕는다(抗美援朝)’
직역을 하면 ‘미국에 반대하고 조선(북한)을 원조한다’는 의미로 한국전쟁을 미국의 북한침략으로 단정짓고 북한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중국 공산당 군대가 한국전쟁에 개입하였다.
51)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당신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는 계명 중의 첫째이자 아울러 가장 큰 것이다.”
마태복음 22장.
52)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케사르의 것은 케사르에게”
마태복음 22장
53) 1951년 3.8절
여성의 날
54) “절의 재산을 몰수하고 승려와 비구니더러 마르크스주의를 배우도록 강요하고 강제세뇌를 강화하였으며 승려, 비구니를 노동에 참가하도록 강요하였다. 예를 들어 저장성(浙江省) 닝버(寧波)에는 ‘불교공장’이 하나 있으며, 그곳에서는 2만5000명에 달하는 과거 승려, 비구니들의 노동력을 짜내고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중국 공산당은 스님과 비구니를 결혼하도록 장려하여 불교신앙을 와해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51년 3.8절 여성의 날 전에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 부녀연합회는 전 성(省)의 비구니들에게 반드시 며칠 내로 결혼하라고 명령하였다! 그외 젊고 힘센 남자 승려들은 전쟁에 참가할 것을 강요하였고 전쟁터에 보내 총알받이를 만들었다!”
- 바이즈(百志) 『중국 공산당의 종교탄압 이론과 실천』중에서 인용.
55) 장보쥔(章伯鈞)
1895~1969. 중국의 저명한 민주당파 인사로 중국민주연합 창립멤버 중 하나이다. 57년 마오쩌둥에 의해 우파로 분류되어 탄압받았으며 아직까지도 명예가 회복되지 않았다.
56) 소동파
소식(蘇軾 1036~1101)은 중국 북송(北宋) 때 정치가이자 문학가로 자는 자첨(子瞻), 호가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송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을 대표하는 사대부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며, 학자이자 시인이었다. 21세에 문과에 급제했고, 26세 때 제과(制科)에 합격하여 조정에 등용되었다. 그러나 당시 신종황제가 왕안석(王安石) 등을 기용해 재정혁신법을 추진하는 데 반대해 지방관으로 좌천되었다. 호주(湖州)지사로 있던 44세 때, 시문으로 조정을 비방하였다 하여 사형의 위기에 처했으나 황제의 은총으로 죽음을 면하고 황주(黃州)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작품 『적벽부(赤壁賦)』를 써내어 동파거사라는 호를 받았다. 철종황제 때 잠시 복권되어 벼슬이 예부상서까지 이르렀으나 다시 신법이 부활되자 해남도(海南島)로 유배되었다. 이 유배에서 풀려나 귀향 길에 사망했다. 저서로는 『동파칠집』이 있다.
57) 문징명(文徵明)
문징명(1470~1559)은 명대(明代)의 걸출한 화가이자 서예가로 본명은 벽(壁)이고 징명은 자(字)이다. 박학다식하고 총명하며 시, 글, 서예, 그림에 모두 능통하여 당시에 이름을 날렸다.
58) 당백호(唐伯虎)
본명은 당인(唐寅 1470~1523)이며 백호는 자이다. 명나라 성화(成化) 6년 경인(庚寅)년에 태어나서 이름을 인이라고 지었다. 만년에는 불학에 심취하여 호를 육여(六如)거사라고 했다. 젊어서는 벼슬에 뜻을 두었으나 나중에 서화에 관심을 돌렸고 특히 산수화를 잘 그렸다.
59) 왕희지
왕희지(307~365)는 동진(東晉)의 유명한 서예가로 자가 일소(逸少)이다. 명문 출신으로 351년에는 우군장군(右軍將軍)·회계내사(會稽內史)에 임명되어 보통 왕우군(王右軍)이라고 한다. 353년 3월 난정(蘭亭)에서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던 사안(謝安)·손작(孫綽) 등과 회합하여 시를 지은 것이 유명하며, 곡수연(曲水宴)으로 후세에 전한다. 서예는 어릴 때부터 잘하였고, 특히 한나라 때 시작된 해서(楷書)·행서(行書)·초서(草書)의 실용서체를 예술적인 서체로까지 완성하였다. 그의 글씨는 살아 있을 때부터 존중받아 남북조시대의 송(宋)·제(齊)·양(梁) 등 각 왕조의 왕후귀족이 애호하였다. 특히 당(唐) 태종(太宗)은 왕희지를 존중하여 그의 글씨를 널리 수집하였다. 오늘날 왕희지의 진필은 전해지지 않지만, 『난정집서(蘭亭集序)』 『십칠첩』 『집왕성교서(集王聖敎序)』 등의 탁본이 전해진다.
60) 오승은(吳承恩)
명(明)대의 문학가로 자는 여중(汝中), 호는 사양산인(射陽山人)이다. 어릴 때부터 글과 그림에 뛰어났다. 1544년 공생(貢生)이 되었지만 관직은 장흥현승(長興縣丞)에 머물러, 주로 글을 지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빈곤하게 살았다. 주요 저서에 『서유기』 『사양선생존고(射陽先生存稿)』 등이 있다.
61) 오경재(吳敬梓)
오경재(1701~1754)는 청(淸)대의 문인으로 자는 민헌(敏軒)·문목(文木)이다. 명문 출신으로 글재주가 있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빈궁한 생활 속에서 창작을 시작하여 사회의 기층의 다양한 신분과 성격의 인물들을 묘사하였으며, 특히 상층 문인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저서에는『유림외사(儒林外史)』 이외에 시문집 『문목산방집(文木山房集)』 『금릉경물도시(金陵景物圖詩)』 등이 있다.
62) 청진사(淸眞寺)
회교 즉, 이슬람교 사원을 뜻한다.
63) “불경은 무슨 불경인가? 모두 개소리이다.”
원문은 “甚麼佛經盡放狗屁”
64) 『홍기(紅旗)』 잡지에서 『공구 그 사람(孔丘其人) 』
구(丘)는 공자의 이름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던 스승인 공자를 폄하한 글.
65) 병음화 정책
전통 한자(=繁體)가 배우기 어렵고 쓰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변경한 간체자를 보급하고 더 나아가 한자 발음을 알파벳을 이용한 병음으로 바꾼 정책. 원래 공산당은 장기적으로 아예 한자를 없애버리고 병음만으로 문자를 대신하려 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오직 중국 공산당만이 간체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외 한국, 일본 등 다른 모든 한자 문화권에서는 번체자를 사용한다.
66) 우쉰(武訓)
우쉰(1838~1896)은 원래 집안이 가난하여 구걸을 해서 모친을 봉양하여 효자 거지로 알려졌다. 나중에 어머니가 사망한 후에는 구걸한 돈으로 무료 학교를 운영하였다.
67) 상방(上訪)
중국의 전통적인 청원방법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원인이 해당 기관에서 민원을 받아주지 않을 경우 상급기관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68) 610사무실
중국의 전 독재자 장쩌민의 지시하에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설립된 전문조직. 나치의 게쉬타포와 같은 일종의 초법적인 비밀조직이다.
69) “8억이나 되는데 싸우지 않고 되겠는가?”
마오쩌둥이 중국 인민을 다스리려면 반드시 투쟁이 필요함을 강조한 말.
70) “때려 죽이면 그만이다”
중국의 전(前) 독재자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할 때 수련생을 죽여도 관계자를 책임추궁하지 않겠다는 의도에서 한 말.
71) “원수를 깨물고 한(恨)을 깨물고 원한을 씹어서 억지로 삼키면 원한은 마음속에 들어가 싹을 틔운다.”
문화대혁명 당시 유행했던 중국 가극에 나오는 노래 가사.
72) 홍안병(紅眼病)
'Red Eye Syndrome'이라고도 하는데 남이 자신보다 출세하거나 수입이 많은 것을 보고 부러워하면서 셈을 내는 병적인 심리를 의미.
73)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 시킨다.’
원문은 “己所不欲,要施於人”으로 이 말은 원래 공자가 『논어』에서 한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구절을 패러디 한 것이다.
74) 모범극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성행한 일종의 가극.
75) 어록가(語錄歌)
마오쩌둥의 어록으로 만든 노래.
76) 『지도전(地道戰)』
항일전쟁시기를 배경으로 중국 인민들이 일본 침략자들에 맞서 땅굴을 이용해 용감히 싸운 것을 표현한 영화로 1965년 작품.
77) 『지뢰전(地雷戰)』
1940년대를 배경으로 허베이성의 홍군 전사들이 일본군에 맞서 사제 폭탄을 만들어 싸운 이야기를 표현한 영화.
78) “군주는 가볍고 백성이 귀하며 사직이 중요하다”
원문은 “君輕民貴,社稷為重.”
79) 3년 대기근
1959~61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천8백만에서 4천3백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가 발생한 역사상 가장 큰 기근. 사실은 중국 공산당이 무모하게 추진한 대약진 운동의 결과임에도 공산당은 이것을 자연재해 탓으로만 돌렸다. 실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당시에 자연재해는 존재하지 않았다.
80) 사람의 천성은 조용하여 외물을 감지한 후에야 사람의 정감(情感)에 영향을 주며 아울러 자신의 심지(心智)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정(情)이 생긴다. 만약 제약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무궁무진한 외부 유혹과 내심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동화하여 수많은 나쁜 일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왕(先王)은 예악(禮樂)을 만들어 사람을 제약하였다
“人的天性是好靜的,感知外物以後就會影響人的情感,並按照自己的心智產生好惡之情,如果不加以節制的話,人就會被無窮無盡的外部誘惑和內心好惡同化而做出許多壞事,所以先王制做禮樂來節制人.”
81) “즐겁되 음란하지 않으며 슬프되 상심하지 않는다.”
“樂而不淫, 哀而不傷”(『논어』 팔일(八佾) 제삼)
82) 『시경(詩經)』
중국 최고(最古)의 시집. 황하(黃河) 유역의 여러 나라와 왕궁에서 부른 시가(詩歌) 305수(首)를 수록한 것이며, 서경(書經)·역경(易經)·춘추(春秋)·예기(禮記)와 함께 오경(五經) 중 하나이다. 서주(西周) 초기(BC 11세기)에서 동주(東周) 중기(BC 6세기)에 이르는 약 500년간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83) “『시경(詩經)』에 나오는 삼백편의 시를 한마디로 하자면 생각에 삿됨이 없는 것이다.”
“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논어』 위정(爲政) 제이)
84) “군자는 재물을 아끼지만 도(道)에 맞게 얻는다.”
“君子愛財,取之有道.”
85) 도연명(陶淵明)
동진(東晉)·송(宋)나라 시대의 시인. 이름은 잠(潛)이고, 연명은 자(字)이다. 호(號)는 오류선생(五柳先生). 하급귀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젊어서부터 면학에 힘쓰며 입신의 뜻을 품었으나 13년 만에 관직에 종지부를 찍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에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토로한 것이 그 유명한『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이후 63세로 죽을 때까지 주로 심양 근처에서 지내면서 은사로 처세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가 지은 시는 오늘날, 사언시(四言詩) 9수, 오언시 120여 수가 전해지고 있다. 내용은 전원에서의 은사의 생활을 노래한 것, 유유자적한 심경을 토로한 것, 주·현의 관리들과 주고받은 시, 영사(詠史), 의고시(擬古詩) 등이 주이다. 그는 은사의 처세를 뛰어난 감각으로 노래한 최초의 시인이었다. 당(唐)나라 때에 왕유(王維)·맹호연(孟浩然)·위응물(韋應物)·유종원(柳宗元) 등 자연파시인들의 찬탄을 받았고, 송나라 소동파에 이르러서는, 육조제일(六朝第一)일 뿐 아니라 고금독보(古今獨步)의 시인이란 명성을 얻었다.
86) “동쪽 담 아래에서 국화를 따서 멀찍이 떨어진 남산을 바라보네”
“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