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공휴일로서는 마지막 제헌절 휴일 하루는 잘 보내셨는지요 ? (내년부터는 식목일과 제헌절이 쉬는 공휴일이 아니랍니다. ^^)
위 사진은 익히 아시다시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 학위 소동의 장본인 사진입니다.
언론매체마다 관련기관들의 그 동안의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한 장탄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사기 내용이 백일 하에 드러난 이후에 장본인이 오히려 음모론을 들고 나온 것을 보고, 소위 "리플리 병" 환자가 아닌가 하는 진단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신병리학자들은 자기의 상상을 현실화 시키지 못할 때 가상의 공간에서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 마치 자신의 모습인 양 활동하는 것을 "리플리 병"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1960년에 개봉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이 연기한 리플리 역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하구요. 이 영화에서 리플리는 사소한 거짓말 때문에 아이비리그 출신 재벌가의 아들인 디키 그린리프를 만나게 되고, 그 후 그의 삶을 동경하게 된 리플리는 점점 더 대담한 거짓말과 신분 위장으로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됩니다.
리플리병 환자들은 개인의 사회적 성취욕은 크지만 사회적으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통로가 봉쇄되어 있는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굳이 거창하게 사회제도의 모순을 그 이유로 끌어다 붙일 일은 아니겠지만, 이번 소동을 계기로 새삼스럽게 돌아본 우리 사회는, 대선 검증 공방 등을 지켜보면서 건강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와는 어쩐지 거리가 있어보이는 것도 사실이 아닌지요..
오래 전 홍콩에 거주하면서 당시 느꼈던 홍콩 사회에 대한 단상을 올려봅니다.
1997. 9.29
직원 여러분, 홍콩입니다.
요즈음 홍콩은 예년과는 달리 아침 최저 20도, 낮 최고 24도 안팎의 서늘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보셨겠지만 어제 프랑스 월드컵 예선 한.일전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2:1의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경기는 홍콩에서도 Star TV에서 전 경기를 생중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적마저 뜸했다는 바로 그 시간, 이 곳 홍콩의 거의 모든 한국인들 역시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 끝에 숙적 일본을 제압하는 역전의 드라마를 숨죽이면서 보았습니다. 다소 복잡한 민족감정까지 덧붙여져서 그야말로 속이 후련했던 오후 한나절이었습니다.
홍콩에 살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홍콩의 사회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 실체가 과연 무엇일까?”
홍콩 정착 초기에는 다음과 같이 잘 갖추어진 가시적인 Infrastructure가 우선 눈에 들어왔었습니다.
Elevated Walkway가 도심 주요 건물들을 잇고 있어서 행인이나 차량 모두 서로가 방해를 받지 않고 원활히 움직입니다. 주요 건물 역시 일반인들의 통행에 최대한의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어서, 밤 늦은 시간까지 통로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홍콩은행 본점 건물의 지상 부분을 아예 빈 공간을 조성해서 엄청난 인파의 흐름을 흡수하면서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건물마다 마치 전혀 제한이 없이 틀어대는 것 같은 에어콘의 서늘한 바람이 도로까지 내뿜어지고 있어서, 아무리 더운 날이라 하더라도 도중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홍콩섬 Mid Level이라고 하는 주거 지역에는 산 중턱에 있는 지리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24시간 운행되는 옥외 Escalator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Escalator은 사람들이 마치 등고선처럼 되어있는 여러 갈래의 도로까지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이 씌워져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한편 지하철 구내의 Escalator는 출퇴근 Rush Hour에는 상하 운행 방향을 적절히 조절해주어 인파의 흐름을 무리 없이 조절해 줍니다. Time Square라는 대형 쇼핑몰의 4대의 대형 Escalator는 개점, 폐점 시의 인파의 흐름을 쫓아 상하 방향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운행됩니다.
Kai Tak 국제공항을 나서면 요금이 저렴하면서도 구석구석을 운행하는 잘 갖추어진 공항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오른편에는 양쪽으로 각각 5~6개의 지점으로 나누어 배치된 택시스탠드에 안내요원이 신속하면서도 원활하게 승객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어마어마한 줄도 20분 내외면 사라집니다.
그런가 하면 공항 주차장으로 이르는 길은 별도의 구역을 통하게 되어있어 건널목에서 달려오는 차량과 행인이 부딪히는 일이 없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시내에서 공항에 이르는 혼잡한 도로에는 공항버스만이 질러 들어갈 수 있는 별도의 차선이 마련되어있어 공항버스 운행의 효율을 최대한 살리고 있습니다.
도로표지만 해도 목적지까지 끊어짐이 없이 안내를 해 주고 있으며, 도중 차선 변경도 충분한 예고를 하고 있어서 처음 가는 지역이라도 무리 없이 다다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홍콩의 병원을 가보면 바닥에 오색선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습니다. 병문안차 들러 안내창구에서 물어보면 예컨대 황색선을 따라가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뿐입니다만, 그 선을 따라가면 정말 간편하게 목적지에 이르게 됩니다. 복잡한 설명과 시행착오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와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의 시스템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름아닌 각종 법규의 엄정한 시행입니다.
단적인 예가 교통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도로 표지판을 잘 갖추어 놓았어도 막상 운전자들이 지키지 않으면 허사일텐데, 이 곳 홍콩의 운전자들은 묵묵히 잘 지킵니다. 넘나들지 말라고 그어놓은 실선은 절대로 넘지 않습니다. 우측에서 진입하는 차량에 우선권을 주는 로타리형 Round about에서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마냥 기다립니다. 주정차가 금지된 도로변 황색선 근처에서는 택시기사가 절대로 승객을 승하차시키지 않습니다. 승객 없이 택시만이 길게 늘어서 있는 택시 승강장에서 뒷편에 서있는 택시를 탈라치면, 맨 앞에 서있는 택시를 타라고 손짓합니다.
이와 같은 교통문화는 물론 홍콩의 경찰의 업무에 임하는 자세 역시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우선 경찰 차량이나 사이드 카 스스로가 교통 법규 위반을 하지 않습니다. 지리하게 막히는 곳에서도 옆길로 질러간다든가 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깜빡이 등 역시 정확히 사용합니다. 사소한 접촉사고가 발생하면 어느 틈에 달려와서 신속하게 마무리 짓고는 사라집니다. 교통 혼잡 시 적시에 나타나서 능숙한 솜씨로 소통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어느 경우에도 일반 시민에게 군림하는 듯한 자세는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성실히 봉사하는 자세가 엿보입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교통 위반 벌금을 물었을 때의 일입니다. 공항에 급히 가는 길에 깜빡 착각하여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우왕좌왕하다가 버스 전용차선을 침범하였습니다. 공항에 급히 가야 함을 밝히고 혹시 외국인이니 조금 봐줄까 하는 얄팍한 기대를 가져보았습니다만, 가차없이 Ticket이 발부되었습니다. 공항에 급히 가야 한다는 말을 기억하고는 사이드카로 앞장서서 공항 주차장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경찰에게 외국인인 저 역시 신뢰가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홍콩에는 1995년 말 Public Golf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Public Golf장에서 골프를 치려면 홍콩 골프협회가 발행하는 Handicap증명서와 홍콩 ID Card가 필요합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빠트리고 가면 절대 입장시키지 않습니다. 본인 확인을 위한 것이니만큼 다른 증빙서류가 있으면 가능할 만 한데도 규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담당 직원이 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책임자를 불러도 같은 대답입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지독히도 융통성이 없다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긍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융통성 있게 제정한 규정의 엄정한 시행.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기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신문에 보도된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음주운전 단속 강화의 케이스로 ICAC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 즉, 우리나라로 치면 감사원의 부원장이 적발되어 사직하였고, 장관 중 한 사람이 Housing Allowance를 부적절하게 사용하였다고 면직당했습니다. 홍콩 과학기술대학의 교수는 사택이 제공됩니다만 단신 부임자가 살기에는 너무 크다고 Sublet를 주었다가 규정위반으로 면직되기도 했습니다.
오래 전 서울 올림픽에서 사전 예고 없이 바뀐 경기장을 찾느라고 늦어버린 미국 권투선수가 실격패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팀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게 멍청하게 그런 일을 당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도 눈치껏 알아서 하지 못하느냐는 것이 또한 저의 솔직한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눈치가 아닌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 이런 질서를 이끌어내는 사회 시스템이야말로 정말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첫댓글 가짜 교수가 통용되는 사회에서 보면 홍콩사회는 부러운곳이기도 하지요. 우리 사회를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살맛이 안나는 나라이지만 어떻게 합니까! 점차적으로 낳아지는 나라가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을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