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로만 봐도 강행군의 강행군인 법회들이 열렸다.
이때마다 청중들이 차고 넘쳤다. 모두가 그 법회에 와서 눈물바람을 하였다. 그러다가
연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강행군을 하는 데는 2009년 4월부터 11월까지 불교방송 무상사에서 열린
[법화경]법회가 큰 버팀목이 되었다.
매주 법회가 열리기 전부터 법회가 끝난 후까지 무상사에는 ’큰스님을 더 가까이 뵙고
싶은‘ 신도들이 몰려왔다. 무비스님의 법회 대기실은 늘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비스님은 여전히 불편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부산에서 서울 서초동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법문을 하러 상경을 했다.
무비스님도, 청중도 그해 34주 동안 크게 아프지도 않고, 넘어지지도 않고, [법화경] 법문을 다 같이 ’행복하게‘ 소화해냈다. 모두에게 놀라운 경험이었다.
서초동의 무상사 뿐만이 아니었다.
2년 뒤인 2011년 봉은사에서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주제로 매달 [법화경] 법회가
2년간 열렸다.
선교율 법회에서 ’교‘에 해당하는 법회를 무비스님이 맡은 것이다.
’선과 교가 하나다‘라는 무비스님의 신념이 법회를 융성하게 했다.
무비스님의 병고 이후에 인연이 된 사람들이 매달 그 법회를 찾아왔다.
무비스님의 법회 대기실로 쓰인 다래헌에서 법회가 열리는 법왕루까지 무비스님은
한결같이 단정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꼿꼿이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서 걸었다. 그러느라 24개월 동안 [화엄경]경판을 모신 봉은사 <판전>앞에
눈이 쌓이고 봄꽃이 피고 햇빛이 찬란하고 낙엽이 지는 풍경을 다 같이 지켜봤다.
[법화경]속에 이미 [화엄경]이 꽃피고 있었다.
첫댓글 [법화경] 속에 이미 [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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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사, 봉은사에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어른스님 편찮으실까봐 얼마나
마음조렸는지.. 모든 일들이 어른스님의
원력으로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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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친견의 기회가 없어서
Tv로만 법문을 들었어요
연세가 있으신데도 불구하고 강의의
열정은
대단하십니다
부처님 법을
더욱 많이
전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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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무비스님의 사형이신 통광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무비큰스님이 병고 이후에 "더 큰스님"이 되셨다.'
바야흐로 우리 스승님의 덕화가 발휘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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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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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때 마다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_()()()_
서울 신도분들의 사진으로 본. 기쁜 표정들이 생각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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