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을 비워두고 여름의 끝자리를 서울서 지내다 왔다. 불과 보름 남짓 비웠을 따름인데 작은 텃밭이 정글이다. 호박, 여주, 수세미 같은 넝쿨은 주인 없는 제 세상을 만난 냥 사방팔방으로 뻗치고 타고 올라 울과 나무들을 다 덮었다. 마당가의 나팔꽃 유홍초도 마찬가지다. 들깨와 고추, 가지는 키를 넘겼고 마당의 잔디는 발목을 감는다. 이런 초록 마당에 나비와 잠자리까지 가득히 너울거려 정신마저 아득해진다.
예초기로 잔디를 깎고 낫으로 넝쿨들을 쳐내고 풀을 베어낸다. 제 꽃을 다 피워낸 삭은 꽃대들도 뽑아낸다. 상추, 쑥갓, 근대 등 여름 채소가 심기었던 자리는 괭이와 삽으로 갈아엎는다. 이렇게 며칠 공을 들이니 텃밭, 꽃밭, 마당이 다시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하는 김에 쪽파를 심고 무씨를 뿌리고 배추 모종을 심는다. 그러다보니 이 모두가 텃밭의 가을채비다. 그렇게 덥다던 더위도 물러나 있고 밤중 서늘함에 자다가 일어나 창문을 닫는데 밤벌레 소리 가득하다. 어느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있다.
아침을 맞아 나오면 저마다 예쁨을 자랑하며 인사하던 범부채, 봉선화, 송엽국, 세이지들도 하나둘 모습을 감추고 여린 촉 끝에 달린 나팔꽃 한두 송이와 몸치 좋은 분꽃, 백일홍 몇 송이만 남았다. 이제 석산 꽃무릇이 꽃대를 올리니 이마저도 피었다 지면 곧 단풍 들지 싶다. 이런 며칠 사이 가을비 오신다. 이 비에 촉촉이 젖은 땅에서 무와 쪽파가 순을 올린다.
날이 개여 하늘 파랗고 바람 살랑해 들깨와 고춧대 걷어내어 잎들을 훑고 따서 말린다. 주렁주렁했던 여주도 따서 곱게 썰어 말린다. 아래채 처마 지붕은 이렇게 해바라기하는 것들로 금세 빨강, 노랑, 하양으로 채색이 된다. 삽짝 건너 바다 빛을 머금은 햇살이니 더 곱다. 들깨 고춧대 뽑아낸 자리를 흙 고르기 하여 마늘과 시금치 심을 채비를 한다. 심겨질 마늘과 시금치는 겨우내 파릇한 순을 돋아 남도의 온화하고 순한 해풍을 만끽하리라.
데크의 처마 밑에 달린 해먹에 누워 한숨 쉬며 텃밭과 마당을 내려다본다. 말끔해졌다. 실바람 살랑 코끝을 스쳐 지난다. 올려다본 하늘엔 뭉게구름 둥실 떠 있다. 뭉게구름 사이로 그리움 한 움큼 피어오른다. 그리움은 또 다른 구름이 되어 노란 지붕과 고풍스런 다리 위로 떠가고 공공시장의 빨간 지붕 위로도 흐른다. 그러고 보니 이 그리움의 영상은 해먹에 오를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다. 우기가 오기 전 끝없이 투명하고 청량했던 밴쿠버의 초가을 하늘 아래 자리한 그랜빌아일랜드의 전경이다. 해먹을 여기서 사가지고 온 때문이기도 하지만 밴쿠버로 방문한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으면 가장 먼저 데리고 갔던 곳이고 또 좋은 날이면 밴쿠버의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던 곳이기에 늘 그립다. 잠자리 한 마리 코앞을 스치고 지나니 저곳의 친구들이 무단히 더 보고 싶어진다. 바람결에 묻어온 분꽃향기처럼 그리움이 인다.
올려다보는 하늘이 밴쿠버의 하늘과 닮아있다. 파랗고 투명한 빛이다. 점점이 흐르는 뭉게구름마저도 닮았다.
장년의 나이에 다 같이 바쁘게 살았던, 이민 1세대란 짐을 지고 살았던 친구들, 이제는 그곳에서 쉽게 말하는 은퇴자(Retiree)가 된 친구들은 어찌 지낼지 그립고 궁금하다. 역이민하여 여기 누워서 하늘을 보니 같은 하늘이지만 저 곳에서 말하는 고국의 하늘이니 다행이다 할 수 있을까? 아니지 아직도 천당 하나 아래인 구백구십구당에 사는 친구들이니 부러워해야지. 흔들리는 해먹에서 텃밭을 내려다보니 우리 모두가 지금의 텃밭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철 지나 꽃을 피워도 열매로 맺히지 못하는 섭리의 순응과 이미 달린 열매들을 햇살에 잘 익혀야 하는 삶의 소명과 내일에 다가올 서리와 눈, 찬바람을 거스르지 않을 순명을 닮아 있다. 그래도 그리움이야 어쩔 수 없으니 산 넘고 바다 건너 흘러가 닿으리라. 이 그리움 닿은 자리, 그랜빌 아일랜드 노란지붕 밑에서 허니라거 빈 잔을 쥐고 마냥 바라볼지라도 그리운 벗님 마주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