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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선사 유트브로 보기 https://youtu.be/r0lcML1Y784
운문록 상권 2 상당 대기 4. 그대의 머리 위에 똥을 퍼붓는 격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법어(法語) 한 칙(則)을 꺼내어 그 자리에서 알아차리게 한다 해도 그것은 벌써 그대의 머리 위에 똥을 퍼붓는 격이며, 설사 털끝 하나를 들어 온 누리를 한 번에 밝힌다 해도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격이다.
그렇긴 하나 정말로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야만 하리라.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은 허공을 날치기하는 솜씨를 갖지 못한 것이니 그때는 몇 걸음 물러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 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찾아보도록 하라. 실로 실낱만큼도 알음알이나 의혹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 하물며 그대들 각자가 가진 한 가지 일에 있어 서랴. 위대한 작용이 앞에 나타나면 다시는 털끝만한 힘도 쓰지 않고 바로 불조와 차별이 없게 되리라.
그대들은 신근(信根)이 약하고 악업이 두터워 불쑥불쑥 허다한 일을 일으킨다. 발우와 바랑을 걸머지고 모든 고을 만 리길은 다니면서 굴욕을 받아무엇하랴. 그리고 그대들에게 무슨 부족한 점이 있느냐. 대장부라면 뉘라서 분수가 없으랴. 제 스스로 알아차린다 해도 맞지 않을 터인데 남에게 속고 다른 사람의 처분이나 보아서는 안 된다. 노스님이 입을 여는 것을 보는 순간 커다란 돌을 집어 들고 그 입을 막아야 한다. 그래도 그것은 바로 똥에 모여든 파리처럼 싸우고 빨며 서넛이 머리를 맞대고 헤아리면서 도반들을 괴롭히는 일이다.
옛사람이 그대를 한번 지도해 준다면 아무도 그대를 어찌하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한두 마디로 그대들이 들어갈 길을 틔워 주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한 쪽을 들어주며 약간의 뼈와 살을 붙였으니, 어찌 조금이나마 친해질 여지를 허락함이 아니랴.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구나.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쉬는 숨은 들이쉴 숨을 보장하지 못한다. 더 이상 어찌 몸과 마음을 한가하게 다른 곳에 쓰랴. 꼭 마음에 새기도록 하고 몸조심하라.“
원오 보설
[상당하여 말씀하셨다."법어(法語) 한 칙(則)을 꺼내어 그 자리에서 알아차리게 한다 해도 그것은 벌써 그대의 머리 위에 똥을 퍼붓는 격이며, 설사 털끝 하나를 들어 온 누리를 한 번에 밝힌다 해도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격이다.]
사부대중이 법석에 모인 가운데 운문선사가 법석에 나와 사좌후를 발하였다. ."법어(法語) 한 칙(則)을 꺼내어 그 자리에서 알아차리게 한다 해도 그것은 벌써 그대의 머리 위에 똥을 퍼붓는 격이며,“라고 하셨다. 즉 이것은 공안이며 화두인 선문답을 꺼내어 즉석에서 알아차린다고 해도라는 것은 일언지하(一言之下)에 선사의 항상일구(恒常一句)를 알아 차린다는 것은 그 화두가 무슨 뜻으로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다고 해도 라는 뜻이니 화두에는 그 어떻한 답이 사실은 없다. 오직 역순경계로 한 마디 언구를 던져 그 납자로 하여금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 왜 이런 항상일구를 던지는지를 스스로 알아차린다는 것이니. 이것에 대하여 다음 언구가 말후구를 다시 역순경계로 뒤집어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항상일로(恒常一路)인 평상심에 부정하여 상대의 납자가 다시 회광반조하도록 시절인연을 맺어줄 뿐인데 이것을 다시 부정한 다는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부정하고 다시 부정하여 본래면목을 밝혀 나가도록 하는 선문답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운문선사의 여기에 대한 답을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신다.
“그것은 벌써 그대의 머리 위에 똥을 퍼붓는 격이며”라고 하신다.
그 알아차린다는 것도 역시 역순경계를 회광반조하여 뒤집는다는 것은 본래자리로 돌려 놓는다고 해도 이것은 벌써 그대의 머리 위에 똥을 퍼붓는 격이라고 하시고 계십니다.
“설사 털끝 하나를 들어 온 누리를 한 번에 밝힌다 해도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격이다.”라고도 하십니다.
이 말씀은 또 무슨 말씀입니까?
즉 모든 것은 양변을 떠나 체와 용으로 해설하는 상대성 원리를 부정하고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 뿐”인 것입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며 공즉시색(空卽是色)인 것입니다.
풀어 보면 색이 그대로 공이며 공이 그대로 색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색불이공(色不異空)이며 공불이색(空不異色)인 것입니다.
풀어 보면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색이다 공이다 하는 것은 이것은 연기적 변화하는 것이지 그 본체의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니 이것이 연기즉공(緣起卽空)이며 연기즉색(緣起卽色)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체도 아니요 용도 아닌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 뿐”인 것입니다. 이 것을 떠나 그 존재성을 드러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면목이요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시는 말씀일까요?
이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이란 맑은 허공에 재를 뿌리는 것과 같이 아무른 일이 없는데 왜 뒤집고 뒤집어 제자리로 돌려 놓느냐 있는 그대로는 아무른 일이 없는 평상심이며 무사인(無事人)인데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는가라고 반문하는 형식인 것입니다.
즉 무심에 한점 구름을 일으켜 허공을 더렵히는가 라는 뜻으로 그대의 머리에 똥을 퍼붓는 격이라고 하고 계십니다.
즉 진리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인데 왜 쓸데없이 선문답이다 뭐다 해서 본래공에 한 점의 번뇌 망상을 일으키는가 침묵이 금이다.
아무일 없는 그대로가 진리의 당체이며 평상심인데 무엇이든 한 마음을 움직이면 바로 삼매는 깨어지고 천태만상의 구름이 일으나니 아무일 없는 무사인이 무심지도인 것이라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른 목석이나 바위같이 가만히만 있으면 그것이 전부이며 침묵과 부동이 진여는 맞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바위처럼 가만히만 있으면 부처의 불타행은 언제 하며 중생구제는 안해도 되는 것이냐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그렇긴 하나 정말로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야만 하리라.]
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체가 그대로 용이며 용이 그대로의 체인줄을 스스로 알고 움직이고 활 발발한 마음의 씀이 없다면 즉 선문답도 하고 꾸지람도 들어야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바로 깨달음을 가는 수행의 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은 허공을 날치기하는 솜씨를 갖지 못한 것이니 그때는 몇 걸음 물러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 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찾아보도록 하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선문답도 하고 참선도 하고 울력도 하면서 자연과 합일하는 그 순간까지 무엇이든 용맹정진을 해야만이 밥짓는 일도 잘 알아서 할 수 있고 나무하는 것도 잘 할수있으며 중생제접고 하고 법문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양변에 머물지 말고 무엇이든 활 발발한 선기 작용을 통하여 그 작용을 통하여 활발발한 선기 방편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허공을 날치기하는 솜씨를 갖지 못한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만약 아직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로 “그때는 몇 걸음 물러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 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찾아보도록 하라”라고 하십니다. 즉 간화선의 화두라도 언제나 “이~멋 꼬?”라도 들어서 정신을 한 마음으로 모아 일심이 흩어지지 않토록 무엇을 하던 언제 어디서나 화두를 놓치지 말고 들어라는 것이다.
[실로 실낱만큼도 알음알이나 의혹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 하물며 그대들 각자가 가진 한 가지 일에 있어 서랴.]라고 하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실로 실낱만큼도 알음알이나 의혹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라는 말은 화두로 일념으로 놓치지 말아야만 번뇌망상(煩惱妄想)일 일으나지 말아야지 한 순간이라도 화두를 놓치면 바로 번뇌망상이 틈을타고 일으난다는 것입니다.
“그대들 각자가 가진 한 가지 일에 있어 서랴.”라고 하시어 한치의 허망한 행동이나 말이나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되며 오직 일념으로 화두를 놓치지 말고 화두가 그대로 전체의 마음이어야 만 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일념으로 수행정진을 하다가 보면은 일념청정하여 모든 번뇌망상이 근접을 하여지다 보면 오직 무념무상(無念無想)하여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와 하나가 된다면은 어느 때인가 시절인연에 의하여 일념청정한 무심의 경지에 들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계십니다.
[위대한 작용이 앞에 나타나면 다시는 털끝만한 힘도 쓰지 않고 바로 불조와 차별이 없게 되리라.]라고 하십니다.
위대한 작용이 앞에 나타나면 이라고 하신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인증하여 하나가 되면 경계가 바로 나의 마음이고 마음이 그대로 경계가 되어서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물아일체(物我一體)라 경계와 내가 한 몸이 되는 경지가 되는 것이니 이 때에는 “불조와 차별이 없게 되리라”라고 하고 계십니다.
[그대들은 신근(信根)이 약하고 악업이 두터워 불쑥불쑥 허다한 일을 일으킨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인 진리의 당체를 두고 왜 이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는 것은 누업겁 동안 훈습되고 습화된 관념이며 번뇌망상이 쌓이고 쌓여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무엇인가 아상(我相) 인상(人相) 수좌상(首座相) 중생상(衆生相)이 쌓였어 진리에 대한 전도몽상(轉倒夢想)이 인식화(認識化)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欲心)에 찌들은 관념(觀念)으로 훈습된 습관(習貫)과 훈습(薰習)된 사상(事相)과 철학(哲學) 그리고 종교적(宗敎的)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계속적으로 전도몽상(轉倒夢想)을 진리인줄 착각 속에 살아간다는 것을 꾸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마치 잘 살아가는 것으로 인식(認識)하여 이렇게 수행을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발우와 바랑을 걸머지고 모든 고을 만 리길은 다니면서 굴욕을 받아무엇하랴.]라고 하십니다.
지난 영산당시에는 부처님이 계셨으니 다른 곳을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궁금하고 모르면 부처님께 물어면 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심전심으로 전해오든 불법이 부처님의 28대 제자인 보리달마가 중국 양나라 때 오고나서는 인도에서는 기복불교 행위불교인 소승불교가 자리잡은 곳에서는 선불교는 더 이상 자리잡을 수 밖에 없는 것이였습니다.
보리 달마가 동양에 전한 것은 여래선(如來禪)이라고 하고 능가경을 가리쳤습니다. 중국에도 이미 불법은 전해진지가 500년이 넘었습니다. 기복과 행위 불교에 습화된 중국에서 부처님의 심인을 전하는 밀교는 사실 자리 잡기가 사실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능가경을 중심으로 혜심밀경 금강경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마음법을 전했으나 기복불교에 젖어 있는 당시에는 사실 그러한 능가경의 수행법은 사실 너무나 어렵고 힘든 고행이라 목숨을 건 고행(苦行)이 점점퍼져 참선수행이 조금씩 전파되어 달마스님이후 혜가스님 승찬스님 도신스님 홍인스님을 거쳐 삽삼조인 육조 혜능스님에 이르러
대중화되고 혜능스님에 이르러 깨달음이라는 한 목표가 이루어져 중국의 도교(道敎)적 영향을 받은 자연 그대로인 진여 자성을 믿는 선불교가 활발발하게 중국 각지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 때 부터는 조사라는 선지식이 존경을 받으면서 선지식의 현자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어 동양의 달마 8조인 마조스님이 깨달음을 얻어 선문답과 조사선(祖師禪)라는 명칭을 얻었습니다.
그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은 84명의 선지식이 각 고을에 선원을 열어 선 수행의 기틀이 이루어 졌든 것입니다.
작금의 불교는 어떻습니까? 선불교는 사라지고 무당불교 기복불교 형식불교 행위불교라는 허망함과 사주팔자라는 도교와 오색기를 휘날리는 사마니즘의 무속인들이 사찰을 다 차지하고 중생들을 혹세무민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옛날 선지식을 찾아 천리만길을 혜매이든 풍속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정말 수행불교인 선불교는 사라지고 미혹한 운명론과 허망론에 빠져 자기 스스로가 태어 날때부터 타고난 생명 그 자체가 본래부처이며 우리의 삶 자체가 불타행임을 모르고 특별하고 특출한 무엇이 있다고 깨달음을 말로만 부르짓고 있는 작금의 불교를 보면서 한탄 할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운문선사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대들에게 무슨 부족한 점이 있느냐. 대장부라면 뉘라서 분수가 없으랴. 제 스스로 알아차린다 해도 맞지 않을 터인데 남에게 속고 다른 사람의 처분이나 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한탄 하십니다. “그대들에게 무슨 부족한 점이 있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태어날때의 그 천진불이 그대로 부처인데 볼줄을 모릅니까? 듣지를 못합니까? 꽃을 보면 향기맏을 줄 알고 맛을 알고 촉감을 가지고 있고 마음으로 감각(感覺) 할 줄 아는 그 천진 자연 있는 그대로가 다 부처이며 불성인데 무엇을 찾아 그렇게 혜매이고 있느냐고 꾸짓고 계십니다. 돌~~~!!!!!!!!!!!
[노스님이 입을 여는 것을 보는 순간 커다란 돌을 집어 들고 그 입을 막아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불법이 어떻고 선이 어떻고 하는 순간 아무리 큰 스님이라고 “커다란 돌을 집어 들고 그 입을 막아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임을 자각(自覺)하시길 빕니다.
[그래도 그것은 바로 똥에 모여든 파리처럼 싸우고 빨며 서넛이 머리를 맞대고 헤아리면서 도반들을 괴롭히는 일이다.]라고 하여 행위불교를 큰 소리로 꾸짓고 계심니다.
즉 생각으로 도리로 논리적으로 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금의 불교계는 논리적으로 불법을 해석하려는 하고 있지만 그것은 잘 되어 있는 자연에 호미짓을 하고 잇는 어리석음이라고 꾸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배움이 없으면 무엇으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옛사람이 그대를 한번 지도해 준다면 아무도 그대를 어찌하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한두 마디로 그대들이 들어갈 길을 틔워 주었다.]라고 하시어 불교를 배우고 그 짚은 현지를 깨달을 때 까지는 선지식의 지도와 탁마와 선문답을 통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음으로 이렇게 선지식은 중생들의 미혹과 번뇌망상을 타파하는 길을 이렇게 자세히 설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한 쪽을 들어주며 약간의 뼈와 살을 붙였으니, 어찌 조금이나마 친해질 여지를 허락함이 아니랴.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구나.]라고 하십니다
그럼으로 이렇게 선지식은 찾아오는 재자들을 위하여 본래본불(本來本佛)을 체달해 주니 이 얼마나 통쾌하고 부처님의 혜은에 보답하는 것이 선지식이니 아 아니 좋을 수 있느냐고 하십니다. 돌~~~!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쉬는 숨은 들이쉴 숨을 보장하지 못한다.]라고 하십니다. 시간은 멈춘적이 없습니다.
한 순간에 사라지는 이 세상 단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어 선지식을 찾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얼마나 간절함 발언입니까.
[더 이상 어찌 몸과 마음을 한가하게 다른 곳에 쓰랴. 꼭 마음에 새기도록 하고 몸조심하라."]라고 말후구를 날립니다. 선지식은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습니다. 언제난 한 마음 발심하면 부디 선지식을 찾아 불교를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불타행을 행한다면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영생을 누리시기를 간곡히 바라면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 뿐]인 자연 그대로가 바로 진실여상한 진리임을 바로 깨달아 불생불멸의 안심입명(安心立命)하시어서 본불본락(本佛本樂)하시기를 비옵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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