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은하들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잴까? 천문학자들은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을 수천 년간 고안하고 개발하고 실험해왔다. <출처: Mike Lewinski at flickr.com>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1억 5천만 km,
지구에서 태양 다음으로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의 거리는 4.25 광년 또는 40조(兆,1012) km,
우리 은하의 이웃사촌인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는 250만 광년 또는 2400경(京,1016) km,
그리고 관측이 가능한 우주의 끝은 460억 광년 또는 4400해(垓,1020) km라고 한다.
우주는 참으로 크고, 별들은 정말 멀리 떨어져 있다.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는 40년을 달려가 이제 겨우 태양권을 벗어났다고 한다.
이제 200억 km를 날아갔으니 앞으로 8만 년만 더 날아가면 가장 가까운 별에 도착할 수 있다.
8만 년 뒤의 인류에게 이 사실을 잘 알려줘야 할 텐데, 그때까지 지구상의 후손들이 존속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그 별까지 가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 거리를 알 수 있었을까?
더 멀리가면, 우주 끝까지의 거리가 정말 그런지 믿어도 되는 것일까?
상상하기도 힘든 먼 거리를 어떻게 측정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더 하기 전에 천문학자들이 어떻게 우주 저 끝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지
그 원리를 한번 알아보자.
막연히 우주가 엄청나게 크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주의 크기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도록 몇 가지 상상을 해보자.
워낙 큰 거리를 다루다 보니 천문학자들은 주로 광년이란 단위를 쓴다. 1광년(Light Year, LY)은 빛이 1년 동안 날아간
거리이므로 계산은 간단하다.
1광년 = 빛의 속도 x 1년. 이를 계산해보면 대략 1LY = 3 × 108m/s × 365d × 24h/d × 3600s/h ~ 9.5×1015m가 된다.
이는 거의 1016 m로 1경 m 또는 10조 km나 된다.
자동차로 달리면 얼마나 걸릴까 생각해볼 필요는 없다.
빛으로도 1년이 걸리는 거리이니까.
1광년을 우리 일상생활에서 주로 사용하는, 익숙한 1m로 줄여보자.
즉 지도로 말하면 축척을 1경: 1로 줄이는 것에 해당된다.
1 광년을 1 m로 줄이면, 10만 광년이나 되는 은하계는 10만 m, 즉 100 km가 된다.
서울의 폭이 대략 30-40 km 정도가 되니, 아마 경기도 정도의 크기라고 할 수 있다.
태양계가 은하계의 중심에서 3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니,
우리 은하계의 중심을 서울이라고 하면 태양계는 서울 근교 수원쯤 살고 있는 것이겠다.
우리 은하계의 쌍둥이 친구 안드로메다는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이 또한 2500 km로 줄어들어, 대략 서울에서 필리핀까지 정도의 거리가 된다.
즉 우리가 사는 은하계가 경기도라면 안드로메다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정도에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큰 축척을 써도 관측 가능한 우주의 끝이라는 460억 광년은 여전히 멀다.
이는 곧 4600만 km에 해당되는데, 대략 지구에서 금성까지의 거리 정도가 된다.
우리 은하계와 안드로메다 은하계는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우리 은하계의 위치와 크기를 경기도라고 한다면, 안드로메다 은하계는 필리핀 마닐라쯤에 있는 셈이다. <출처: Jan van der Crabben at wikimedia.org>
그런데 이렇게 큰 축척을 쓰면 태양계의 크기는 얼마나 줄어들까?
예전 명왕성이 대략 30~50 AU(Astronomical Unit,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로 1억 5천만 km에 해당한다)를 왔다 갔다
하므로, 대략 태양계의 크기를 100억 km정도로 보면 된다. 우리의 축척인 1016:1을 적용하면, 태양계의 크기는 1 mm,
즉 깨알만해진다. 그렇다.
우리 은하계가 경기도라면, 태양계는 서울 근교 수원 어느 마을의 깨알만한 공간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그 깨알 속의 원자만큼이나 작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그 원자 속 원자핵의 크기만큼이나 작은 존재인 것이다.
우리 은하계와 태양계의 위치. 사진에 나온 우리 은하계를 경기도만한 크기로 확대하면, 그제서야 태양계는
직경 1mm의 깨알만한 크기가 된다. <출처: NASA/JPL>
사하라 사막에 사는 개미가 있다. 이 개미가 과연 사막의 크기를 잴 수 있을까?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와 같이 두 발로 걸어서 측정하는 것은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답은 불가능일 것이다.
사실 위에서 축척을 통해 생각해 봤듯이 우주의 크기를 잰다고 생각해보면 우리의 처지는 사막 위의 개미보다 더 암울하다.
그러나 인간은 개미와 달리 지적인 생명체고, 논리가 있고, 과학이 있다.
우리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분명 가까운 거리부터 아주 먼 우주 끝까지의 거리를 측정하고 있다.
깨알의 크기를 측정하고 나서, 우리가 사는 도시의 크기, 그리고 이웃 나라까지의 거리,
그리고 그 너머 지평선까지의 거리를 알고 있다는 얘기다.
천문학자들은 가까운 거리를 측정할 때와 먼 거리를 측정할 때, 그때마다 서로 다른 측정법을 사용한다.
물론 각 측정법마다 측정의 바탕이 되는 원리가 있고 또 근거가 되는 과학이 있다.
천문학자들은 우선 주변의 가까운 것들부터 거리를 측정하기 시작하여 차츰 더 먼 것들의 거리를 측정한다.
그러다 측정법이 한계에 도달하면 그보다 한 단계 먼 거리를 측정하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까지의 측정이 끝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 더 먼 거리까지 측정해 나간다.
물론 각 단계를 연결해주는 연결고리가 있다.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연결고리를 통해 측정의 범위를 넓혀 나간다고 해서, 천문학자들은 이를
“우주 거리 사다리(Cosmic Distance Ladder)”라고 부른다.
우주거리사다리로 측정할 수 있는 천체들 <출처: NASA, ESA, A. Feild (STScI), and A. Riess (STScI/JHU)>
이 사다리의 각 단에는 눈금이 새겨져 있고, 그 눈금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해당하는 천체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다.
1단 사다리는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고, 2단 사다리는 어디까지 측정 가능한 것인가는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우주 끝까지 잴 수 있는 사다리를 몇 단으로 만들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통일된 국제 규격도 아직은 없다.
어찌됐든 이제 우주 거리 사다리를 한번 쭉 훑어보도록 하자.
사다리의 처음 몇 단은 누구나 상식으로 아는 얘기일 것이고, 나중에 나오는 몇 단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하다.
우주의 여러 천체 크기와 거리를 생활 속 대상에 견주어 보았다.
한 단을 오를 때마다 그보다 먼 거리를 잴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가까운 것들은 자를 들고 직접 돌아다니면서 잴 수 있으니 이를 사다리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
굳이 사다리의 단으로 구분하자면 영(0)단 또는 밑바닥 측정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0단 측정법인 자만을 가지고는 측정하기 힘든 먼 산까지의 거리는 각도기 하나만 추가하면 쉽게 잴 수 있다.
삼각함수를 이용한 방법이다.
삼각비를 이용한 측정법은 원리상으로는 무한대까지 적용 가능하다.
다만 각도기의 분해능이 있어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에라토스테네스가 태양 그림자의 각도를 측정해 지구의 크기를 알아낸 것도 삼각비를 이용한 것이었다.
비례식을 이용한 측정 방법 외에도 레이더를 이용한 직접적인 거리 측정 방법도 있다.
레이더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므로 천체에 반사돼 돌아오는 레이더 신호의 시간을 측정하여 거리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더와 비례식을 합쳐 사용하면 우리 주변의 달, 금성, 수성, 태양까지의 거리는 비교적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래서 레이더와 삼각비를 우주 거리 사다리의 제1단이라 부르도록 하겠다.
1단과 원리는 같지만 더 큰 삼각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지구의 공전궤도를 이용한 연주시차 측정법이다. 베셀(Friedrich Bessel)은 1838년에 최초로 백조자리61까지의
거리를 연주시차를 통해 측정한 바 있다.
이후 알파센타우리 등 우리 주변 가까운 별들까지의 거리가 하나 둘씩 연주 시차에 의해 측정되었다.
하지만 1900년까지 연주시차에 의해 거리가 알려진 별들은 100개를 넘지 못했다.
연주시차도 삼각측정법의 하나라서 각분해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지상의 관측 장비로는 300광년까지는 측정해 낼 수 있다고 한다.
허블이나 히파르코스 등 위성을 이용한 장비를 사용하면 이보다 더 먼 거리를 측정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은하의 크기가 10만 광년에 이르므로 연주시차는 여전히 우리 주변 동네밖에는 측정할 수 없는 방법이다.
하여간 연주시차는 수백 광년 내의 천체까지의 거리를 직접 재는 명확한 방법이니 이를 2단계 사다리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
하늘을 보며 연주시차를 측정하는 천문학자의 모습.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의 스트로미오 산 천문대에 있다. <출처: Bdigee at wikimedia.org>
연주시차에 의한 측정법이 알려지기 전에는 마땅히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방법은 없었다.
다만 별의 밝기를 통해 거리를 유추해 낼 수는 있었다.
광원의 밝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므로, 만약 모든 별들이 같은 밝기로 빛나기만 한다면 이 성질을 이용해 모든 별들의
상대거리를 유추해 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들의 밝기가 모두 같을 리 만무하므로 이 방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인 방법이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별의 색깔과 광도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별의 색깔을 알면, 광도를 알 수 있고, 이로부터 별까지의 거리도 계산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소위 H-R도라 불리는, 헤르츠스프룽(Ejnar Hertzsprung)과 러셀(Henry Norris Russel)에 의한 이 방법을 사용하면
우주 거리 사다리를 30만 광년까지 펼칠 수 있다.
이는 곧 우리 은하 내 모든 별들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이를 3단계 사다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H-R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빛의 밝기와 거리와의 관계는 이후로도 계속 중요한 거리 측정의 원리가 된다.
즉 어떤 별의 밝기만 알아 낼 수 있다면 곧 거리를 알아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천문학자들은 별의 절대 밝기를
알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 놀라운 발견은 세페이드 변광성의 변광 주기가 별의 밝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따라서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를 측정하여 그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해내는 새로운 사다리를 만들어내었다.
안드로메다가 외부 은하임이 알려지게 된 것도 안드로메다 안에 있는 세페이드 변광성까지의 거리를 측정해서였다.
이 변광성을 이용한 측정법도 원리상 한계는 없으나, 변광성이 너무 희미해서 관측할 수 없으면 이 또한 한계에 부딪힌다.
보통 1억 광년까지는 측정이 가능하다.
같은 방법이지만 1억 광년이 넘는 별들 중 이렇게 절대 밝기를 알 수 있는 천체가 있다.
바로 1a형 초신성으로, 초신성은 워낙 밝아서 1억 광년이 아니라 100억 광년이 떨어져 있어도 관측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이렇게 절대 밝기를 알 수 있는 천체를 사용하여 사다리를 더 멀리 펼칠 수 있으므로, 변광성을 이용한 사다리를 제4단,
초신성을 이용한 사다리를 제5단이라 불러 보겠다.
세페이드 변광성과 1a형 초신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다음에 따로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끝으로 우주 끝까지 천체가 보이기만 하면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는 바로 허블의 법칙에 의한 방법으로, 천체에서 오는 빛의 도플러 효과를 측정하여 거리를 유추해내는 방법이다.
이를 6번째 사다리로 놓으면 비로소 우리는 우주 끝까지 거리를 모두 측정할 수 있게 된다.
우주 사다리의 각 단은 다행히도 서로 중복되어 있어 서로를 모두 연결하여 붙여 쓸 수 있다.
각각의 우주 사다리에 사용되는 원리와 적용범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주거리사다리를 1단에서 6단까지 나타냈다.
앞으로 우리는 ‘우주 거리 사다리’의 각 단을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먼저 1단과 2단에 대해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