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 無爲自然
김영월
나와 가까운 사이인 60대 아주머니가 병석에 쓰러져 누운 지 거의 일 년이 돼 간다. 어느 날 갑자기 모르고 지내다가 뇌종양 말기라는 의사의 판정을 받고 곧바로 수술한 뒤 침대에 누워 지금까지 기동을 못한다. 회복의 기미는커녕 날로 쇠약해 가는 육신에 음식도 삼키지 못하여 고무호스를 위에 연결하여 미음이나 죽으로 연명한다. 그 분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입을 열어 말을 하거나 두 눈을 뜨고 사람을 쳐다보거나 전혀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데다가 딸 결혼식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남편과 사별한지 일 년 만에 부인마저 그리 되니 무슨 위로의 말을 전하랴. 때늦은 후회지만 가족을 비롯한 주변에서 차라리 뇌종양 수술을 받지 않고 그대로 시한부 인생을 살았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여길 뿐이다.
일본의 괴짜(?)의사인지 모르지만 나카무라 진이치(中村仁一)는 그의 저서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는 상식을 뒤엎는 상반된 견해를 펴고 있다. 그는 노인 요양원에서 의사로 15년 동안 근무하면서 자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가능한 의료적 간섭을 거부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의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고무호스를 통해 음식물을 투입한다든지 인공호흡기를 씌운다든지 심폐소생술을 실시한다든지 등의 진료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주 위급한 경우에 구급차에 실려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잉진료를 당할 때는 냉정하게 거부의 뜻을 전하라고 까지 한다. 그러한 진료에 걸려들면 꼼짝없이 고통스런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항암제의 경우는 암세포를 괴롭혀 죽이는 과정에서 고통이 더욱 가중 된다고 하며 차라리 그대로 내버려두면 덜 아프게 지낼 수 있다. 항암제는 거의 독약이나 극약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심한 부작용이 따른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한다. 왜냐하면 암세포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정상 세포와 조직까지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는 암을 방치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죽을 수 있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16년 동안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에 관여하며 죽음을 시야에 두고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지금’을 완벽하게 채워가며 산다는 의미라고 했다. 잘 죽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결국 잘 사는 방식을 추구하기 위함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과 죽음을 존엄하게 마무리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죽음에대한 자기만의 시선을 마련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13가지로 분류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전 의료 의향서’라는 항목이었다.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혼수상태 또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거나 중증 치매로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워진 경우에 어떤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은지, 아니면 받고 싶지 않은지 따위를 의식이 맑고 판단력이 정상일 때 표명해 두는 문서이다. 사전 의료 항목엔 심폐소생, 기관절제, 인공호흡기. 강제 인공영양 공급,
수분 보급, 인공투석, 수혈, 강력한 항생물질 사용 등이 있는데 가능하면 거절하는 쪽으로 작성하여 무의미한 생명 연장보다 품위 있는 죽음을 권고한다. 그는 자연의 섭리인 죽음과 노화를 병으로 둔갑시켜 건강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만든 그 불편한 진실에 정면으로 다가선다. 더불어 자신의 인생을 더 이상 남의 손(의사)에 맡기지 말고 스스로 죽음을 준비해 후회 없는 삶이되기를 원한다.
춘추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공자와 노자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노자는 그의 도덕경에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라고 역설하고 공자는 인의예지와 같은 사람의 도를 직접 추구하는 입장이다. 노자 사상은 한 마디로 무위의 도(無爲之道)라면 공자는 유위의 도(有爲之道)이다. 물은 무언가 한다는 자의식 없이 자연을 돕고 만물을 소생 시킨다. 따라서 무엇인가 작위하려는 자기 욕망을 끊고 물처럼 무위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 도이며,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道常無爲而不爲). 노자의 핵심사상을 이루는 무위자연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모른다.
사람의 몸도 스스로 병을 이길 수 있는 자연치유력(면역체계)이 있기 때문에 나카무라 진이치는 가능하면 의사의 과잉 진료에 의존하지 말고 자연사의 길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라는 충고가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내가 당장 말기암에 걸렸거나 가족이 그러할 때 유위의 도 대신에 무위의 도를 따를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유명의사와 첨단 의료 장비, 온갖 특효약이 유혹하는데 어찌 강심장으로 버틸 수 있으랴 싶다. 의사인 저자가 환자 편에서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고 용기를 주고 다시 한 번 자연사의 가치를 깨우쳐 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박수를 보낸다. *
첫댓글 무위자연 無爲自然/ 많은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