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강 대신 '헌화로' 바닷가를 달리며...>
가파른 언덕과 내리막길을 돌고 돌면서 천천히 달렸다. 얼마 멀지도 않은 거리가 마치 깊은 강원도 길을 닮았다. 이 길의 이름이 ‘헌화로’란다. 정동진에서 옥계로 가는 해안도로 초입부분,
‘헌화로(獻花路)’는 신라 성덕왕 때에 지어진 「헌화가(獻花歌)」와 관련이 있다.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가 되어 부임하던 길에 그의 부인 수로(水路)가 바닷가 절벽 위에 핀 철쭉을 탐낼 적에, 위험한 일이므로 아무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나서서 꽃을 꺾어 바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내용은 자기가 주는 것을 부끄러워만 하지 않으면 꽃을 꺾어 주겠다는 것으로 은근한 데가 있는 노래...
좀 지나서 깊은 골짜기에 어울린만한 작은 어촌이 나온다 이름조차 ‘심곡’마을, 한쪽은 절벽과 같은 육지, 한쪽은 푸르다 못해 짙은 바다가 비장함마져 풍기는 풍경,
한 2년쯤 전에 큰 아이가 고3이 되고, 수험생이 되면 꼼짝도 못할 것 같아 큰 마음 먹고 가족 5명이 밤 기차로 여행을 왔었다. 충주에서 밤 늦게 심야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새벽 4시에 도착, 미리 예약했던 바닷가 작은 펜션에서 차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렇게 하룻밤도 아닌 새벽 조각 잠을 자고 방에서 일출을 보고, 아무도 없는 백사장을 우리 식구만 걸었다. 해안가의 텅 빈 식당에서 찌개 하나에 점심을 먹고 다시 정동진으로 나와서 오후 귀가 열차를 타고 충주로 돌아왔던 무박 2일의 기차 여행,
그때는 아내도 아프지 않았고 마냥 행복하고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 셋의 뒤를 따라가며 사진을 찍느라 연신 셔터를 누르던 기억이 아직도 남았는데...
겨울바다의 파도가 낮은 해안도로의 아스팔트로 물을 튕기는 곳도 있고, 드문드문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낚시를 하는지 구경을 하는지 눈에 띈다. 아까부터 반복되는 차 오디오의 합창이 점점 귀를 지나 가슴으로 파고든다. 소리도 보이지 않는 바늘이 되고 몸을 찌르고 들어온다는 몰랐던 사실을 체험한다.
‘히브리노예들의 합창‘, 자꾸만 바빌론 강둑을 석양의 그림자를 길게 느리우고 걷는 지친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부르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 울음 가득 담겼지만 결코 촐싹거리지 않는 묵은 슬픔...
400년 긴 포로생활과 노역에 지친 민족, 언젠가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과 메시지를 자손에게 대를 물리면서 새기고 새기며 살아 온 사람들,
<내 마음아. 황금의 날개로 /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훈훈하고 다정한 바람과 / 향기로운 나의 옛 고향
요단강의 푸르른 언덕과 / 시온성이 우리를 반겨주네
오 빼앗긴 위대한 내 조국 / 오 가슴속에 사무치네
운명의 천사의 하프소리 / 지금은 어찌하여 잠잠한가
새로워라 그 옛날의 추억 / 지나간 옛 일을 말해주오
흘러간 운명을 되새기며 /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 굳건한 용기를 주리라>
얼마나 그리워하고 사무쳤을까? 온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푸른 언덕에서 신께 경배하며 찬양하고 함께 음식을 먹던 시절이!
또 얼마나 고대하고 손꼽아 기다릴까? 고통과 슬픔이 물러가고 새 기쁨과 노래가 시작될 그 어느 날이!
굽이 굽이 돌아가는 해안도로의 난간이 없다면 바다 위를 가로 질러 무한히 가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누르며 듣고 듣고 또 들었다. 베르디는 무슨 고난과 슬픔을 지독히 겪어보았길레 나부코라는 오페라 속에 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같은 묵직한 합창을 담을 수 있었을까? 지독히 가슴저리는 긴 여운의 노래를 말이다. ...혹 그도 아내가 긴 병을 앓았던 것일까?
돌아오기 싫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산 속 기도요양원의 정문을 통과했다. 수시로 휠체어에 태우고 작은 아들과 나왔던 자리, 절벽에 막힌 듯, 더 나가지 못하고 양지쪽 햇살에 서성거리며 애꿎은 앞산에 소리를 지르곤 하던 자리, “나 돌라갈래! 나 돌아갈래!” 그러면 어김없이 돌아오던 더 짖궂은 메아리, “니 돌아가라! 니 돌아가라!”...
차를 숙소 앞에 세우고, 강릉 농산물시장에서 사온 오렌지 한박스를 들고 방으로 들어섰다. ‘이걸 다 먹으면 장 운동이 좀 나아지려나...‘ 물건에도 기도하는 습관이 생긴지 한참된 내가 우습다. 피식 웃으며,
그러나 나를 반기는 건 건강한 아내가 아니고 내가 아무리 싫어도 신발도 신을 수 없고, 당연히 도망도 못가고, 뒤돌아 눕지도 못한 채 천장만 보고 누운 사지마비의 아내,
호홉이 자꾸 거칠어지더니 결국은 위험해서 앰브란스를 불렀다. 이대로는 오늘 밤도 넘길 수 없을 만큼 힘들어 보인다.
밤길을 긴급으로 달려서 가는 곳은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
앰브란스 차 안에서 틀지도 않은 노랫소리가 자꾸 귀에 들려온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흘러간 운명을 되새기며 /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 굳건한 용기를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