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욜날 심야버스타고 동대구환승역에서 노숙신세지고
새볔에 북대구터미날가서 유나님만나 창녕보까지 픽업해주신다
감사한마음 가득담아 인사드리고 천천히 가본다
낙동강과 황강과 물길이 합수되는곳
수량이 그닥많지않다
우측으로 수도지맥이 황강에 고개를 숙이는 곳~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이 남하하다 삼도봉(초점산)을 지나 1180봉에서 줄기하나가 분기되어
동남진을 시작하는데 수도산, 단지봉, 우두산, 오도봉 등 천고지가 넘는 산들이
중심을 잡고 105.8 km를 이어가며 경북 김천시, 성주군, 고령군, 경남 거창군,
합천군 등에 삶의 터전을 만들면서 남으로는 황강, 북으로는 감천과 회천의 분수령이 되어
황강과 낙동강의 합수점에서 생을 다하는 산줄기이다
*황강*
낙동강의 지류이며, 길이는 119㎞이다.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남덕유산 동쪽 계곡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흐르며, 합천호를 이루었다가 심하게 곡류하여 합천군 청덕면 적포리 일대에서 낙동강에 흘러든다. 주요지류로는 위천·대천·가천·가야천 등이 있으며, 유역에는 산간분지가 발달하고 있다. 하도의 경사가 급하고 토사의 퇴적이 많아서 하천 하류에서는 천정천이 나타난다. 유역 내에서는 쌀·맥류·잡곡·사과·누에고치·완초 등이 생산된다. 해인사·가야산국립공원·덕유산국립공원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강의 중상류유역을 가로질러 지난다.
현재도 자전거 도로를 계속공사중이다
참말로 이랄라카나 ?
얼라들도 아니고 ~
박진교 건너기전~
박진(朴晉[1], 1560년 8월 25일 ~ 1597년 3월밀양성 전투에서는 패배하였으나 영천성에서 의병 주도로 벌어진 영천성 전투를 지원하여 승전을 거두었고 이후 왜적 111명의 수급을 베어 왕에게 올렸으며, 제2차 경주성 전투1594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순천부사, 그 뒤 전라도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1596년 황해도병마절도사 겸 황주
일본군 장수 사야가는 그를 만나 조선증 병조판서에 증직되고 응천군(凝川君)에 추봉되었으며, 후에 다시 의정부좌찬성밀양정유길
혼자유유자적 은빛향연을 즐기면서 ~
"아지" 하니 혼자헛웃음이 나온다
40년이지난 아득한 떠오르는 얘기가있어 적어본다
군대있을떄 후임이 있었는데 내무반 장기자랑을 하는데
이놈도 뭘하기는 하나 해야겠는데 웃기는 재주는없고~
대뜸 나오드니 하는소리가 자기는 장가가면 딸을 놓으면 "아지"
아들을 놓으면 "충이"라고 짖겠단다
순간 내무반 애들이 데구르르 굴렀다는 얘기 ~ 이놈이 "송"씨였거든요
요즘으로치면 아재개그이지 ㅎ
*개비리길*
이얘기를 요약하자면 대충이렇다
양아지마을에 사시는 어른이 개를 먹였는데 새끼를 11마리 낳았다한다
개는 본래 젖이 10개밖에 없는데 한마리는 젖을 제대로 못먹었터
할아버지는 튼실한 열마리는 시장에 내다팔고 젖도 제대로 먹지못한
부실한 한마리를 집에서 키웠더랬는데 재넘어 시집간 딸이 자기가 키우겠다고
시집으로 개를 데리고 갔답니다
하루는보니 새끼의 엄마가 찾아와 젖을 물리고 있었던것
신기하다싶어 뒤를 밟아보니 재를 넘지않고 벼랑위 눈이없는 곳으로
새끼를찾아와 매일같이 젖을 물리고 있었던것입니다
어미개가 새끼를위해 눈길을 마다않고 젖을 물리러 다닌길이라해서
그렇게 불린다고 하는데 ~ 경상도 사투리로 "벼랑"을 비리라 부르는듯~ ㅎ
팽나무 연리목
읽어보시구요
우리 조상들은 풀한포기,돌한덩이,나무한그루에 의미를 부여하고
얘기를 꾸미기를 좋아하신듯하다
여기도 곳곳에 그런곳이 참많네요 참고하고 보시면 좋겠네요
감나무 시집보내기 ?
읽어보시구요
바위가 이쁘게 생겼습니다
저걸신고 걸을수나 있었을런지 ~
여기는 아마 임란때 "기음강전투"가 있었던듯 보입니다
1592년5월4일,5월6일 양일간에 천강홍의장군 곽재우장군이 최초 승리를 기록한전투다
낙동강의 최후방어선
남지철교에가면 당시의 처절한 상흔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자세히 읽어보시면 좋을듯합니다
참멋진 길인것같네요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둘러보길 권합니다
저도 다음에한번 들러볼까합니다
남지 수변공원
반대편에서본 능가사는 한폭의 그림같습니다
남지철교
총탄의 흔적인것같고~
창녕함안보
위령탑에서 잠시 묵념을하고
함안보 지나기 전부터 전국구님이 전화오시고
걱정이되나보다 걱정하지 말라고해도 계속 진행상황을 물어보신다
잠잘곳과 식당을 알아놓으셨다고 하신다 고맙기만하다
그렇게 5km여를 걸어가다 전국구님이 역으로 마중을 나오시고~
전국구님이 찍어주시네요
*임해진*
경상남도 창녕군의 부곡면 청암리 임해진에서 창원시 북면.'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지명은 『1872년지방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 사창(社倉)의 조세곡 수송뿐만 아니라 온정역 이용에 중요한 교통요지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강 건너 온천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였다고 하며, 지금은 임해진-노리 간 도로가 개설되어 교통이 편리해 졌다.
*소우정*
이 정각은 벽진이씨 휘 도일(1581선조14년~1667현종8년)
호 소우헌 공의 유적입니다. 공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서
조부는 참판 이엄이며 아버지는 공조참의에 추증된
덕암 이석경입니다. 일찍이 한강 정구 선생의 문인으로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제현으로부터 추앙을 받았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일필 성문하였습니다.
1592년 (선조 25) 12세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따라 강릉으로 피신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
때는 17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의병에 가담하여 화왕산성에서
곽재우장군을 도와 전공을 세웠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창의하여 그의 창고 정곡400석을 군량미로 수송하고,
의병을 모아 싸움터로 보냈습니다. 이후 척화파 김상헌 공의
천거로 칠원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사양하였습니다.
주화파와 척화파의 주장을 맞서다 결국 항복한다는 비보를 듣고
통곡하면서 북벌책을 상소하여 설욕하고자하였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어필로 동지중추부사를 특제하였고
후에 수직으로 가선대부에 올랐습니다.
만년에 임해진 강가에 이 정자, 일명 강정을 지어
소우정, 또는 그 규모가 겨우 무릎을 용납할 만하다 하여
용슬헌 이라 편명하고, 산수와 더불어 소요자적 하였다 합니다.
소우정에 올라서면 멀리 낙동강의 언저리도 보이고
강과 산이 수려해서 근심 걱정을 쓸어버릴 것 같은 풍광입니다.
가계문닫기전 도착했네요
전국구님의 배려로 모처럼만에 편안하게 쉴수있었습니다
이렇게 다니면서 느끼는것은 먹는것 쉬는것이 참불편한데
세심하게 신경써주신 전국구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첫댓글 묵언 수행하면서 노숙 하고 다니라니까, 민박이나 하시고, 남 대간길이나 넘 보고 가고 잡다고ㅇㅅ 老 松
강길 때려 치우고 대간길 합류 하시지유,,, 그래도 그쪽 동네는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은 곳이유.....
남에 밥 그릇 넘 보지 말고 내 밥 그릇이나 잘 챙기세유,,, 낙동길도 이제 얼마 안남은것 같습니다.
시원한 강바람에 얼굴 안 상하게 잘 싸매고 다니시길,,, 화성이라는 아름다운
능가사가 그림같습니다....
전국구님께서 배려의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18.12.16 추산대장캉 박진고개 개거품 물고 오르막 오르고 나서 흔적을....ㅎㅎㅎ
우찌 거기 보이시덩교 ^^
長江의 끝이 보이네요 이젠 한구간,,, 수고많았습니다.
낙동강 그래두에이션하셔야죠 성대하게...^^
동대구역에 노숙자들 틈에서 일박 하셨구먼요
새벽에 혼자 강길 떠나시는 뒷 모습이 찡하니 그렇더니만
우쨋거나 낙동강길 끝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