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주체
주체 생성의 필수 과정으로 간주.
오이디푸스를 상징계 작용과 연관시켜 추상적으로 개념화한다. 오이디푸스 과정이란 주체가 어머니의 욕망에 종속된 상상적 동일시에서 벗어나 아버지가 부과하는 상징계의 질서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오이디푸스콤플렉스의 세 단계
주체 형성의 두 단계
첫 번째는 상상적 동일시로 거울 속에 비친 타자적인 이미지를 아이가 자신의 것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아가 형성되는 단계이다.
두 번째는 상징계 질서를 대표하는 아버지의 기표에 동일시함으로서 주체가 형성되는 단계이다. 이것을 이차 동일시라고도 하며 주체는 비로소 상징계에 자리 잡는다.
⇒이 모든 과정은 동일시에 의해 가능한데 그 근원에는 자아상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도취가있다. 두 단계의 동일시는 시간적인 선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몸담는 세계에서 상상계와 상징계로 계속해서 작용한다.
두 번째 동일시에 의해 오이디푸스콤플렉스는 극복된다. 이때 동일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모의 이마고가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시니피앙이다.
오이디푸스콤플렉스는 최종적으로 세 단계를 거쳐 해소된다.
첫 번째 시기는 아이와 어머니의 결합이 상상적 남근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시기로 이 시기 아이는 어머니의 욕망에 철저하게 종속된다.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은 어머니와 아이의 상상적 결합과 일체감이다. 아이는 자기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어머니의 욕망에 철저하게 의존 하면서 어머니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상상적 남근이 되려고 한다.→그러나 상상적 남근이란 실제로 아이가 도달할 수 없는 허구적인 것으로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표식이기도 하다.
⇒결여와 불안이 작용하는 시기
두 번째 시기는 상상적 아버지의 개입에 의해 시작된다.
어머니의 욕망은 아이가 아닌 아버지를 향해 있는데, 이때 아버지는 남근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이가 욕망하는 대상이 되지 못하게 만들고 아이를 어머니에게서 분리시킴으로써 상상적 남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아이와 어머니의 결속을 깨뜨린다.
어머니와 아이의 욕망은 아버지에 의해 새롭게 질서가 부여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금지에 기초한다.→아이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욕망에 종속된 존재임을 보면서 자신이 어머니의 남근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데 이것이 바로 라캉이 말하는 거세의 원래적 의미이다.
⇒그런데 아버지에 의한 어머니의 박탈 혹은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박탈은 욕망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구원이 된다. 아이로 하여금 절대적이고 변덕스러운 어머니의 욕망에 종속된 상상적 동일시의 질곡에서 벗어나서 자기 욕망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세 번째 시기는 상징적 동일시를 통해 오이디푸스콤플렉스가 종결되는 순간이다. 이 과정은 이미지에 대한 동일시가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이란 시니피앙에 동일시를 함으로써 주체가 상징계에 안착하는 순간이다.
상상적인 남근을 둘러싸고 아버지와 벌이는 아이의 경쟁의식이 끝을 맺고 상징계의 법이 주체에게 수용되면서 욕망하는 주체가 발생하는 과정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최초 상징화 과정에서 아이의 욕망을 지배했던 어머니의 시니피앙을 대체하면서 주체를 상징계의 질서로 인도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성 은유이다.
⇒아이는 이제 상상적 남근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상징계에서 남근을 찾으려고 한다. 이제 남근은 주체가 욕망하는 것을 지시하는 기표이자 아버지의 권위와 상징계의 법을 상징하는 핵심 시니피앙이 된다.
부성 은유와 무의식 주체의 탄생
‘아버지의 이름’이 주체에 자리를 잡는 과정은 오이디푸스콤플렉스의 극복 과정, 즉 부성은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아버지의 이름’은 일단 정착되면 주체가 그것에 근거해서 의미화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누빔점(point de capition)의 역할을 한다.→누빔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어머니의 욕망을 대체하면서 주체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머니의 상상적 남근이 되려는 원초적 욕망의 포기를 대가로 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부성 은유는 주체 욕망의 최초 대상인 어머니의 시니피앙을 억압함으로써 가능해지는데 이 최초 억압이 상징계를 출발시키는 실질적 동인이 된다.
아버지의 이름/어머니의 욕망 ․ 어머니의 욕망/주체에 대한 시니피앙x → 아버지의 이름(A/남근)
(부성 은유의 공식)
라캉은 대타자A를 무의식을 의미하는 I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대타자는 무의식적 담론의 주권자라는 의미이다. 무의식의 근저에는 남근에 대한 욕망이 깔려 있다.
무의식은 부성 은유에서 비롯되는 원초적 원압에서 발생한다. 일단 부성 은유가 성공하면 최초 욕망은 환상의 형태로 상징계에 나타난다. 부성 은유에서 억압되면서 사라진 최초 기표, 즉 ‘어머니의 욕망’은 주체가 되찾고 싶은 상실된 기표가 되면서 시니피앙 연쇄에 의해 절대로 메워지지 않는 영원한 구멍으로 남는다.→욕망은 영원히 빗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욕망하는 주체는 무의식의 주체일 수밖에 없는데 초월적 공간인 대타자의 장에서 대타자의 담론을 통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대타자의 담론은 주체가 상상했던 최초 욕망이 사라진 빈자리를 은폐하면서 작용하기에 본질적으로 주체에게 무지의 틈을 남길 수밖에 없다.
은유와 환유
주체는 은유에 의해 구성되며, 욕망은 환유에 의해 지속된다.
은유란 무엇인가
하나의 단어를 또 하나의 단어로 대체 하는 것이다.→유사한 단어들간의 바꿔치기를 통해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것.→하나의 시니피앙에서 또 다른 시니피앙으로 대체될 때, ‘의미 효과’발생⇒주체 발생
환유란 무엇인가
결합 작용 → 결합을 통해 시니피앙 연쇄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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