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새 이은정
가스라이팅! 최근 몇 해 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외래어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 사실 사건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상대방이 기억, 정신력 등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 이라고 한다. 굳이 사전적 의미를 들지 않아도 긍정적 의미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더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가스라이팅" 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의미를 대충은 알고 있는 듯 하다.
얼마 전 상담을 전공하시는 지인과 담소를 나누다가 내가 가스라이팅을 앓고 있다고 했다. 가해자(?)는 돌아가신 아버지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우리 아버지 그런 사람아니예요." 라고 외쳤다. 그 분이 하신 말씀은 이렇다.
" 선생님(나)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50 여 년 동안 아버지는 선생님 삶의 울타리이자 무한한 지지자였어요. 선생님도 그걸 너무 잘 알고 있구요. 그래서 아버지의 기대와 지지를 알기에 '길' 이 아닌 곳은 가지 않았고, 선생님의 살고 싶은 방향과 바램과 의지보다는 아버지의 그것을 알기에 당연히 의심 않고 아버지의 바램과 아버지 삶의 방향대로 살려고 애써왔어요. 물론 '이게 나의 길이구나' 거기에서 오는 성취감도 맛보면서 보람도 느꼈단 것도 부정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선생님은 정체성을 잃은 거예요. 이제는 '이게 나의 길 맞나?' 하는 불안과 의구심과 혼란도 오구요. 선생님은 지금 아버지에 대한 분리불안과 가스라이팅을 함께 앓고 있다고도 할 수 있어요."
사실 맞는 것 같다. 아버진 학식이 풍부하시거나 말씀도 많으신 분도 아니셨지만 , 한마디 한마디가 정수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난 의심않고 따랐다. 아버지와 나를 있는 그 줄만 따라가면 문제가 없었고 평생 그 길만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내 나이 50에 그 줄이 끊긴 것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 '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가고싶은 길인가? 이제 난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를 향해 가야하나?' 하는 두려움이 더 나를 힘들게했다. 더 심각하게 나아가 사방으로 낭떠러지가 있는 곳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누가 나를 아버지만큼 무조건적인 사랑과 조건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 때는 남편도 아이들도 나에겐 의미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투명 인간같았다. 이 세상 끝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아버지가 원망스럽기까지했다.
얼마 후 아이가 아팠다. 열이 나고 계속 몸이 처지고 먹지도 않으려했다. 병원에 갔다 온 후에도 침대 구석에 몸을 움크리고 꼼짝도 하지않았다. 겁이 덜컥났다. 급한 마음에 아이 옆에 누워 아이를 끌어당겨 안았다. 아이는 내 품안으로 폭 안겼다. 마치 날지못하는 아기 새 같았다.
'나의 아기 새가 아프구나. 내가 정신 못 차리는 동안 내 새끼는 아프구나' 하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아버지가 나를 나약한 인간으로 만드려고 한게 아닐텐데,, 믿음과 지지를 보내는 영원한 버팀목이었는데 내가 나를 그렇게 나약하게 만든 것 같았다.
나의 소중한 아기 새도 내가 이끄는 줄을 따라 크고 있는데, 내가 그 줄을 제대로 끌지 못하구나.
이젠 아버지가 아닌 내가 그 줄을 잘 이끌어야한다. 남편도 아이도 아닌 내가 그 줄을 단단히 몸에 매어 끌고 가야겠다 . 내 줄을. 뒤에는 나의 아기새들이 있으니까. 이제 아버지에 대한 분리 불안에서 벗어나 , 아버지의 줄을 끊고 날아 올라야겠다. 하늘을 향해 박차 날아 오르는 어미새가 되어!
" 용기를 내어라. 내가 있다. 두려워마라 너는 사람을 낚을것이다."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