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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트 메스너, “알피니즘은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
여섯 가지 질문에 라인홀트 메스너가 보내는 단 하나의 답변
▲ 5월 2일 트렌토시 산타 끼아라 대극장에서 1500명이 넘는 관중들에게
메스너가 ‘등반사를 바꾼 여성 알피니스트들’ 강연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 5월 이탈리아 트렌토 영화제 부대행사로 세계 산악인들이 모인 가운데 ‘세계 등반사를 바꾼 여성 알피니스트들’이라는 주제의 강연과 현재의 클라이밍에 대한 주제의 포럼이 열렸다. 두 행사 모두 라인홀트 메스너가 참석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으며, “알피니즘은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모두 공감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여성산악인 오은선씨가 참석해 많은 환대를 받았으며, 메스너 산악박물관에는 오씨의 피켈이 전시되었다. 행사에 참석한, 이탈리아 거주 산악인 임덕용씨가 보내온 동행취재기를 정리했다.- 편집자 주
▲ 5월 4일 메스너 산악 박물관에서 열린 포럼에서 같이 식사하며
마운틴에서 보내 온 질문을 인터뷰하고 있는 필자.
5월 2일 제62회 트렌토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세계 등반사를 바꾼 여성 알피니스트’라는 주제의 강연이 라인홀트 메스너의 진행으로 열렸다. 트렌토의 산타 끼아라 극장에서(Santa Chiara di Trento) 열린 강연회는 영화와 시 그리고 산 노래 라이브 음악으로 하나의 연극을 보듯 매우 감성적이었다.
메스너는 산에서 조난 당한 산악인을 위한 인사말과 발터 보나티에 대한 추모 영상을 시작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의 말은 오페라처럼 우아하고 품위 있었으며, 강한 힘이 있었다. 그는 인사말에서 “꼭 해야 할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이제 여성들은 남자 등반가들이 못하는 등반도 하고 있다. 남자들과 동등함을 넘어 부분적으로는 우월하기도 하다. 그런 여자들의 등반사를 돌아보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여성 등반가들을 조명해 보자”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19세기부터 시작된 여성산악인들의 등반사를 이야기한 후 현대 알프스와 히말라야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성들의 등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후 여성 첫 에베레스트 등정자 다베이 준코와 한국의 오은선이 무대에 올랐다.
▲ ‘세계 등반사를 바꾼 여성 알피니스트들’에 관한 강연 중 메스너와
오은선과 이야기하고 있고 필자가 통역을 해주고 있다.
메스너는 오은선에게 “왜 14봉을 등반했는가?”라고 물었고 오은선은 “처음에는 14봉을 생각도 못했다. 히말라야에 간다는 것 자체가 나의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상에 오를 때 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개를 오르고 나니 나머지를 다 등반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메스너는 “이 자리에서 ‘기록이다’ ‘처음이다’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자. 그러나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당신은 처음으로 15개월 만에 8000m 8좌를 등반한 사람인데 그 기록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라고 물었다. 오은선은 “메스너가 말하기 전까지 내가 15개월 만에 8개 고봉을 등반했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기록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등반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생겼고 더 올라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의 꿈에 대해 “산을 사랑하고 산을 오르고 산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말해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알파인 거벽등반가인 우크라이나의 안나 야신카야, 클라이밍 선수 안젤리카 라이너 등도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등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메스너는 강연을 마치며 “오늘의 여성 등반가들은 남성과 같은 수준에 있다. 그러나 그녀들은 더 엘레강스하다”는 한 마디를 남겼다.
이어 5월 4일 볼자노에 위치한 라인홀트 메스너 산악 박물관(MMM)에서는 ‘현재의 클라이밍이란?(Quo Climb is?)’이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트렌토 영화제 부대 행사로 열린 금년 포럼에는 마리안느 샤퓌자(Marianne Chapuisat), 알렉스 하놀드(Alex Honnold), 마리나 콥테바(Marina Kopteva), 에밀리오 프레비탈리 (Emilio Previtali), 안젤리카 라이너 (Angelika Rainer), 크리스토프 비엘리키(Krzysztof Wielicki) 등 국제적으로 다양하고 각 분야 최고 수준의 등반가들이 모여 수직과 수평, 각 대륙의 산과 도전, 발전하고 있는 알피니즘과 그 문제점, 그리고 미래에 관해 토론을 했다. 금세기 알피니즘의 변화와 미래를 주도한 토론이었다.
▲ 메스너가 산악 박물관을 관람하고 있는 여러 알피니스트들에게
매주 정중하게 일일이 박물관을 소개하고 있다.
최고의 알피니스트들이 말하는 현재의 클라이밍이란?
진행을 맡은 메스너는 “밥 딜런의 노래처럼 알피니즘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여러 등반의 경험이 속속히 실시간 전 세계에 정보를 주고 있고,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최첨단 장비들, 등반 성패를 좌우하는 날씨를 언제 어디서나 알 수 있고, 등반 루트 지도와 위치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중계 받는 세상이다. 율리 스텍은 안나푸르나 남벽을 프리 솔로로 28시간에 등반하고 하산을 했다. 얼마나 충격적이며 좋은 소식인가?”라며 산악계 변화의 흐름을 전했다.
메스너는 또 “인공 암장과 자연 암장에서 행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이도 등반과 볼더링, 스포츠클라이밍 대회들은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아담 온드라는 5.15대를 오르고 있고 바로 뒤를 이어 몸이 가벼운 여성 클라이머들이 따라 붙고 있다. 괄목할만한 일은 이런 대회에서 고난이도 등반을 경험한 선수들이 거대한 산에서 새로운 알피니즘을 생성하는 기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베레스트에서는 알피니스트들이 살해당할 뻔한 위험한 사건도 일어났다. 고산 여행사에서 용역을 받는 셰르파들이 단체로 알피니스트들을 구타한 것이다. 이 사건은 테러리스트들의 낭가파르바트 총기 난사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대사건으로 현재의 고산 등반이 가지는 문제와 위험성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매스미디어가 알피니즘을 변질시키는가, 발전시키는가?”라는 질문에 메스너를 비롯한 여러 알피니스트들의 답은 거의 같았다. “많은 등반은 매스미디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이 등반 결과를 미화시키거나 과장하고 상품으로 이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이다. 등반가들이 후원사의 포로가 되어 무리한 등반을 강행하다 사고가 난다면 후원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런 일이 생기면 후원사는 모르는 척 하기 일쑤이다”는 것.
이는 우리에게도 교훈이 되는 발표였다. 특히 지방 자치제 최초, 학교 동창생 최초 등을 운운하며 현대 산악계의 흐름에서 거꾸로 가는 등반 행위를 치하하고 포장하는 매스미디어들, 셰르파와 산소통, 고정 로프를 사용해서 올라가는 ‘고산 여행’ 행태의 등반이 유행하는 것에는 반성이 필요이다. 심지어는 등반대를 후원한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자사 광고를 위해 등반기와 사진을 조작하는 일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포럼은 메스너와 금세기 최고의 등반가들이 입을 모아 “고산 여행사들의 잘못된 등반”을 지적하는 기회가 되었고, 산악인을 후원하는 매스미디어가 등반사를 왜곡하는 것에 매우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 점심식사 중 황금 피켈상 조직위원장 크리스티앙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라인홀트 메스너.
라인홀드 메스너가 알피니즘의 변화를 말한다.
메스너와의 인터뷰는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5개 대륙 초유의 알피니스트들이 30명 넘게 모여 앉은 넓은 자리인데 메스너가 우연히 필자 옆자리에 앉아서 인터뷰를 했으니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질문은 6가지로 요약해서 했으나 답은 단 한 개, 그러나 모든 질문의 답이 전부 담겨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거침없이 터진 답변이었고 필자의 가슴에 거의 충격처럼 담겼다.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행사가 끝나갈 무렵 오은선씨의 발표를 통역한 후 마지막 질문자로 필자가 다시 무대 앞에 섰다.
“제가 점심시간에 메스너에게 질문한 내용인데 여러분들도 꼭 들으셔야 할 답이라 다시 묻고자 합니다.”
메스너가 놀라서 쳐다본다. 이어진 메스너의 답변에는 환호와 끊어지지 않는 박수가 터졌다. 행사가 끝난 후 이태리 국영 방송 라이(Lai)가 다시 동일한 질문을 했고 메스너는 그날 3시간 동안 3번 같은 답변을 했다. 그리고 행사의 마지막을 이 문제로 여러 발표자들이 약 15분간을 더 진지하게 논의하게 되었다. 매번 같은 답변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전 세계를 울리는 강한 힘이 있었고, 진심과 무게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독일 살레와(Salewa)사와 인연으로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던 30년 넘은 그와의 인연 중 처음으로 그에게 깊은 존경이 생겼다.
▲ 5월 4일 ‘지금 알피니즘은 변하고 있다’ 포럼에서 황금 피켈상 조직위원장인 크리스티앙 트롬프트가 발표를 하고 있다.
그는 “내년부터 황금 피켈상은 더욱 새롭게 변할 것”이라고 말하며 필자를 7월 샤모니에서 있을 조직위원회 미팅에 정식으로 초청했다.
여섯 개의 질문
1 이번 에베레스트 눈사태 사고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2 셰르파들만 희생됐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3 최근 네팔 정부에서는 에베레스트 등반 시 의무적으로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오도록 하고, 셰르파를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고, 입산료를 낮추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가?
4 히말라야 등반의 상업화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5 미국산악회 등에서 셰르파들을 돕기 위해 나섰는데 유럽 쪽 움직임은 없는가?
6 메스너가 히말라야 등반을 했던 시절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한가?
단 하나의 답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들은 길을 공사하다 사고를 당했다. 길을 만들어 달라고 지시한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공사장에서 사고가 났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들은 ‘고산 여행사의 인부’들로써 길을 만들고 있었으니 여행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여행사는 고객들에게서 많은 돈을 받았고 만약 고객들이 사고가 나면 보험으로 모두 책임진다. 그러나 그들 여행사를 위해 목숨을 걸고 길을 만드는 인부들에게는 어떤 보상을 하는가? 산악인의 한 사람으로 그들의 희생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바로 그런 고산 여행사(상업 등반대를 고산 여행사로 비하시킴)들이 많아지고 있고, 수익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책임 문제이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적 책임도 있어야 한다. 등반을 가서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인가? 바로 자신의 책임이다. 산은 높고 벽은 험하다. 등반은 위험하다. 날씨가 나쁘면 위험하고, 동계등반은 더 위험하다. 알피니즘은 바로 그 위험에서 온다. 작년에 트렌토 영화제에서 알렉스 하놀드가 요세미테 3대 거벽을 단 하루에 프리솔로로 등반하는 영화를 보았다. 그의 등반은 예술이었고 무용이었다. 그러나 그 영화를 보고 어린이가 흉내 내면 어떻게 하느냐? 위험한 등반이 아니냐? 그를 따라 등반하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 말들이 많았다. 정말 위험한 등반은 등반한 자가 책임을 진다. 알렉스는 그만한 훈련을 했고 준비가 되었다. 자신이 선택한 등반은 누가 책임지는 게 아니다.
그러나 등반을 시킨 사람이 있는데 사고가 났다면 등반한 사람 보다 등반을 시킨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
해 일하는 근로자들이 근무 시간 중 사고가 났다면 그들 고용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안전했는가, 위험한 일은 아니었는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과도하게 한 것은 아니었는가, 고민해야만 한다. 셰르파들은 생존을 위해 고산 여행사에 고용된 것이고 근무 중에 사고를 당했다. 그러니 그 일을 시킨 사람들이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재판과 처벌이 필요한 산악계의 중대한 문제이다. UIAA는 이를 조용히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된다. 누구의 책임인가를 분명히 가려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 '세계 등반사를 바꾼 여성 알피니스트들' 강연이 끝나고 초대 된 연사들이 모두 무대에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트랑고에서 38일간 신루트 등반, 2일간 하강한 우크라이너, 다베이 준꼬, 빙벽 월드컵 3회 월드
랭킹 1위 안젤리카 라이너, 스위스의 마리안느는 초오유 동계 초등, 70년대 전설적인 이태리 여성 클라이머
루이쟈, 메쓰너, 60년대 돌로미테에서 30개가 넘는 초등과 재등을 한, 오은선, 진행자, 메스너와 14좌 등반을
같이 했었으며 14좌 무산소 알파인 등반, 동계 히말라야 8천미터 3좌 초등한 폴란드.
상업주의에 물드는 산악계, 알피니즘은 무사한가?
메스너의 발언 이후 이 문제를 주제로 여러 산악인들이 의견을 나눴다. 황금 피켈상 조직위원장이자 고산등반협회(GHM) 회장인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트롬프트는 “황금 피켈상이 알파인 스타일 등반만을 후보로 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행사가 주축이 된 안내 등반은 문제가 많다. 등반 사고를 자처하여 준비가 안된 고산 관광객들이 위험에 빠트리더니 힐러리 스텝에 사다리를 놓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조금 있으면 에베레스트 정상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돈을 받고 올라가게 할 것이다. 그들은 등반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라며 “황금 피켈상 행사에서 프랑스산악연맹이나 유럽, 국제산악연맹을 배제시키는 이유도 공정성이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단체들은 산악 활동을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망치는 경우도 많다”고 내부의 자성을 역설했다.
8000m급 동계등반가이자 작년 에베레스트에서 율리 스텍과 함께 셰르파들에게 폭행을 당했던 시모네 모로는 “나는 히말라야에서 인간에게 죽을 뻔 했다. 너무나 무서운 고통이었지만 이번 트렌토 영화제에 고발 차원에서 출품했다. 바로 이런 고산 여행사가 우리 알피니즘을 거꾸로 가게하고 이제는 살인을 하고 있다. 메스너의 말처럼 그들의 인부만 죽이는 게 아니라 이제는 상업 등반대 리더들의 친구인 진짜 알피니스트들의 사고를 유발하고 있고 실수로 죽이려고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14좌를 알파인 스타일로 완등한 폴란드의 크리스토프 비엘리키(Krzysztof Wielicki)는 “메스너의 말이 100% 다 맞다. 우리가 고산 여행을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산 여행사가 진짜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등반대를 위협하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세계 산악연맹은 무엇을 하는가? 여러 산악 단체들 중에는 아웃도어 브랜드에 구걸이나 하는 산악 마피아들도 많다. 우리 폴란드는 가난한 나라이다. 요즘 동구권 등반대들이 좋은 등반을 하는 이유는 사실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셰르파와 대량 물량, 고정 로프, 산소를 살 돈이 없어서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알피니즘의 순수성은 바로 모험과 도전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고산 여행사들은 이 ‘모험과 도전’을 광고하는 한편 안전을 가장해서 돈을 벌고 있다”라고 말했다.
▲ 메스너 산악 박물관 내 히말라야 소개관 입구에 오은선이 14좌 마지막 안나푸르나에서
사용했던 피켈이 전시되어 있다. 작은 소개판에는 “오은선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라고 쓰여 있다.
여성 최초로 8000m 초오유를 동계에 오른 마리나 콥테바(Marina Kopteva)는 “우리의 선배들은 아무런 정보나 산소, 셰르파도 없이 초라한 장비만 가지고 8000m 산을 등반했다. 그러나 지금은 8000m의 고도와 산이 주는 어려움이 아닌 고산 여행사가 만들어 내고 있는 위험요소가 전 세계 산악인의 위협이 되고 있다. 내가 동계 등반을 감행한 것은 겨울에는 상업 등반대가 없고 셰르파, 고정 로프, 산소통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등반대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없었다”라며 그것이 자신의 알피니즘이고 진정한 알피니즘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많은 산악인들이 알피니즘의 정신보다는 자본의 흐름에 충실한 고산등반의 현실을 꼬집고 아픈 자성의 시간을 가졌다. ‘상업 등반대’란 말대신 ‘고산 여행사’라는 말이 처음으로 발표된 포럼이었고 그만큼 알피니즘의 현 주소를 신랄하게 비평하고 순수한 알피니즘으로 돌아가자는 금세기 최고의 알피니스트들의 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기회였다. 그간 메스너와 인터뷰 기사를 몇 번 쓴 적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격하게 흥분하며 울부짖을 정도로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보았다. 여섯 개의 질문에 대한 단 하나의 대답에서 위대한 산의 예술가이자 가장 순수한 인간, 작은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를 보았다.
글 글·사진 임덕용 마운틴글로벌(www.mountainglobal.kr) 유럽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