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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투우의 발상지 론다
투우장 Plaza de Toros
안달루시아 하얀 마을 중의 하나인 론다는 근대 투우의 창설자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태어난 도시로, 지금도 유서깊은 투우장이 남아 있다.
론다는 투우사들의 성지이다.
1785년에 지은, 스페인에서도 아주 오래된 투우장이다.
18세기에 이 도시에서 태어난 프란시스코 로메로는, 소를 모는 케이프와
물레타(붉은 천)를 고안하고 근대 투우를 확립했다.
투우장 출입문
관객 없는 투우장엔 햇빛만 가득하다
고야作 <투우>
그림에서 가장 많이 투우를 다루었던 화가는 18세기 중반의 고야(1746-1828)이다.
그는 '투우'를 소재로 역동하는 소의 모습을 판화집으로 묶어 냈다.
매년 9월이면, 이 투우장에서는 화가 고야가 살던 시대의
전통 의상을 입은 고야식 투우가 열린다.
고야作 <마을의 투우> Goya 'Bull Fight'
7월의 태양이 작열하는 투우장에서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투우장 안내도
(1)가축 우리. 가축 사육장 (2)투우 대기소 (3) stables (4)화장실
(5)투우장 (6)royal harness (7)RMR의 갤러리 (8)Antique firearms collection
(9) 투우 박물관 (10) 채플 (11) 기념품 판매점
'투우박물관'에서
투우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중세 때 스페인 국토회복전쟁의 영웅 엘시드가
창으로 투우를 했고, 16세기에 까를로스 5세가 아들 펠리페 2세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바야돌릿 광장에서 투우를 죽이는 행사를 가졌다. 이렇게 18세기까지
투우경기는 귀족들의 행사였고 그들은 말을 타거나 짧은 창검으로 소를 죽였다.
18세기 중엽부터 직업 투우사가 나타나고
(론다를 중심으로) 땅에서 황소와 싸우기 시작했다.
투우장 내부에는 로메로와 그의 아들, 전설적인 영웅이 된
손자 페드로를 비롯해 론다가 배출해낸 투우사들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다.
전설적인 인물로 기록되고 있는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는
생애를 통틀어 5,585마리의 소를 죽였고, 자신은
몸에 상처 하나 남기지 않고 80세로 죽었다.
고야가 페드로의 초상화를 그린 것은 투우사가 40세 때의 일이다.
1820년, 37세의 투우사 꾸로 기옌은 치명적인 받힘을 당했다.
그는 론다 투우장의 모래 위에서 죽은 유일한 투우사이다.
피카소의 '투우사'
피카소作 <투우>
투우장의 나무 계단을 밟았던 사람들은 지켜보았으리라!
얼마나 많은 검은 숫소가 펄펄뛰며 입장했다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며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투우 [鬪牛, corrida de toros]
영어로는 불파이팅(Bull Fight)이라고 한다. 투우 [鬪牛, corrida de toros]는 에스파냐에서
발달하였고, 국기(國技)로 되어 있다. 에스파냐에 투우를 전한 것은 무어인이라고 하며,
17세기 말경까지에는 전적으로 궁정(宮廷)의 오락거리로 귀족들 사이에 성행했는데,
18세기 초 부르봉 왕조(王朝) 시대에 이르러 현재와 같이 일반 군중들 앞에서
구경거리로 행해졌다고 한다.
투우사의 개조(開祖)는 에스파냐 남부 출신인 프란시스코 로메로라고 하며,
지금도 에스파냐의 투우사 중에는 에스파냐 남부 출신이 많다.
스페인 신문들은 투우 기사를 스포츠면에서 다루지 않고 문화면에서 다룬다.
투우는 스페인 사람들에겐 놀이가 아닌 인생의 철학을 담은 하나의 의식이다. 투우는 목축업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신에게 숫소의 죽음을 바치는 의식에서 기원한다. 투우사가 숫소를 향하여 사력과 기술을 다하는 모습은 발레의 2인 무도와 비슷하다고 하며, 투우에서 살해가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이 최고의 구경거리는 아니며, 투우사와 숫소의 솜씨 즉 파세(pase)가 최고라고 하겠다.
투우의 공식적인 행사는 3월에 발렌시아의 '불축제'로 시작되며 10월 사라고사의 피랄축제로 막을 내린다 스페인의 투우 이야기, 고독한 투우사 보다 더 고독한 슬픈 검은소 ! 죽음과 맞서서 침착성으로 빚어내는 예술... 뿔이 날카로운 검은소가 노도와 같이 달려 온다. 흙먼지가 부옇다, 목표는 소를 흥분시키고 있는 빨간 천조각이다. 빨간 천을 놀리는 의젓한 복장의 투우사는 우아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모면한다. 관중들의 환호성, 스페인에서만이 맛볼수 있는 짜릿함 쾌감이다.
스페인 하면 누구나 투우와 플라밍고를 연상한다. 그래서 붙은 스페인 별명이 '정열의 나라'다. 그러나 막상 투우를 보러 가면 피가 튀는 원시적인 잔혹성과 이해 할 수 없는 고묘한 예술 적 심도로 초심자들은 쉽게 당황하게 된다. 오직 으리으리한 투우사의 복장과 5백 킬로그램 이 넘는 검은소 앞에 무릎을 꿇고 태연하게 청중을 향하는 저 유명한 '코르도베스'의 담력 앞에 우리는 그저 숙연할 뿐이다.
아무도 투우가 언제부터 서반아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한때는 아랍인들로 부터 전해졌 다는 설도 있었지만 서반아를 중심으로 고대 서양에서 헤라클레스시절부터 있어 온 사나이 들의 용기와 담력의 축제였으리라는 설이 맞다. 헤라클레스가 제리온의 투우와 히스파니아 평원서 싸운것이 전설적 시초가 된다.
고대중세에는 투우이야기가 별로 없으나 13세기 알폰소 현왕의 '총실록'(Cronica Gereral)에는 결혼식 뒤풀이에 투우놀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중세기사 '시드'의 결혼식에도 투우놀이가 등장한다. 그러나 투우에 대한 기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4세기 중반 이후이다. 특히 투우가 인기 축제로 자리를 잡은 것은 르네상스 시기인 16세기와 17세기다. 이때는 투우를 요즘 포르투칼이나 특수한 경우에 하는 식으로 말을 타고 기사가 말위에서 투우와 싸 우는 소위'레오오'(Rejoneo)방식이 유행했다.
요즘은 말 타는 투우사, '피카도르(Picador)가 그 당시 전통의 퇴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 다. 요즘은 피카도르도 소 등에 상처를 내는 일 밖에는 안 하지만… 그런 17세기 말에서 18세기부터는 요즘처럼 투우사가 땅에 서서 투우와 싸우는 방식이 일반화 된다. 귀부인에게 모자를 던지던 낭만적인 투우사들 18세기만 해도 투우와 싸우는 방식은 투우사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잔인하게 창이며 칼이며 화살로 투우를 죽였다.
화가 고야의 그림에 나오는 투우장면은 이런 잔인성과 흥분의 피투성이 무대들이다.
18세기 말에 와서야 로메로라는 사람이 오늘의 투우경기와 같은 규칙을 만들어 정격화되기 시작한다. 그때 부터 한 경기에 여기저기서 모든 투우사들이 제가끔 투우와 경기하는 식이 아니라 한 그룹이 조직적으로 경기에 참여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경기를 보게되면 맨 처음에 나팔이 울리고 투우가 시작됨을 고한다. 이때 투우사와 몇 몇 보조들이 나와 청중에게 인사를 한다.
투우사는 옛날 같으면 어느 귀족 부인에게 이 투우경기를 바친다는 식의 한마디를 하며 모자를 던진다. 이때 이 모자를 받는 귀부인에게는 그날이 영광스러운 날이 되는 셈이다. 이어서 문의 빗장을 열면 때로는 투우사가 커다란 카포테(Capote)를 휘장으로 두르고, 때로는 무릎을 꿇은 채 맨몸으로 뛰어나오는 투우를 맞는다. 펄펄 살아 날뛰는 투우를 한두번 패스(Pase)한 뒤 보조들에게 넘긴다.
보조 투우사들은 소를 피카도르(찌르는 기사라는 뜻)쪽으로 튼다. 이때 잘못하면 놀란 소에게 변을 당 할 수가 있으므로 보조들은 때로 소가 곤두박질하며 덤비면 틀 밖으로 뛰어 도망가기도 한다. 말을 타고 완전무장을 한 피카도르가 소를 유인하면 그에게 소가 덤빈다. 그때를 놓치지 않 고 피카도르는 등에 창을 꽂는다.
소는 등이 아플수록 더욱 더욱 덤비고 피카도르는 계속 투우 등에 상처를 낸다. 피카도르가 너무 소를 많이 찌르면 청중들이 소리소리 치며 야유를 놓는 것도 이때다. 소가 너무 힘이 빠져 버리면 진짜 본 경기가 시작될 때 힘을 못쓰기 때 문이다.
이일이 끝나면 '반데릴예로'(banderillero), 즉 등에 깃대 꽂는 투우사 두엇이 나온다. 맨몸으 로 서서 등에 얼이 든 투우를 부른다. 양손에 깃대 드개씩 들고, 투우가 반데릴예로 앞으로 달려오면 정면에서 등 양쪽에 깃대를 꽂고 날쌔게 도망쳐야 한다. 이미 여기서부터 투우의 멋과 예술은 시작된다.
- 투우(TORO) - 많은 사람들이 열광시키는 신성한 의식, 투우...그리고 정열적인 춤, 플라멩코. 스페인을 이야기하면서 이 둘을 빼놓으면 알맹이 가 빠진 것이나 다름 없다.
로마 시대때부터 있어 온 투우는 원래 귀족들의 오락이었으나 후에 서민들의 경기가 되었는데 안달루시아출신의 유명 투우사들이 많다.
투우는 투우사 마타도르(MATADOR)1명이 2마리의 소와 대결하며 1회 진행하는데 3명의 마타도르가 등장한다. 따라서 1회에 총 6번의 투우가 진행되며 투우1번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 마지막 순간 마타도르가 새빨간 천(무레타)을 흔들며 소가 돌진하도록 하는데 (이를 파세PASE라고 함)몸이 소와 얼마나 아슬 아슬하게 비켜나느냐에 따라 기량의 우열을 점친다. 마침내 힘이 빠진 소에게 "진실의 순간"이 다가온다.
소의 정면에 선 마타도르가 심장 바로 위를 칼로 찌르는 "의식"을 치르면 1마리 소의 운염이 마감된다. 멋진 투우를 보여준 마타도르에게 관중들은 환호를 보내며 명예를 주도록 하는데 명예란 다름아닌 넘어진 소의 귀를 잘라 마타도르에게 주는 것. 하지만 이러한 명예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위험이 따르며 상대적으로 고수익이 보장된다.
▶ 투우를 보려면..... 스페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투우는 야성미 넘치는 남성들만의 경기이다. 영화의소재 로 등장하여 우리에게도 익숙한 투우의 본고장이 바로 마드리드이다.
마드리드는 변두리와 교외에 투우장이 여러 곳 있는데 라스 벤타스 Las Ventas투우장이 가장 유명하다.
투우 는 3월부터 10월까지 열리는데 주로 일요일 오후에 경기가 있다. 메트로 벤타스역에 내 리면 찾을 수 있다.
시내의 여행안내소나 여행사에서 티켓을 구입 할 수 있고, 투우장 매표소에서 구입해도 된다. 가장 싼 좌석은 2유로~제대로 경기를 보려면 10유로~정도는 내야 한다.
피카소의 도자기 그림
'투우의 나라'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말년에
도자기에도 투우 몇 점을 그렸다.
피카소:'창으로 소를 찌르는 투우사'
피카소: '투우'
첫댓글 뜨게질하는 여혜당선생님이 저는 보이는데요.
고마워요. 유영하님도 뜨게질하고 싶지요? 흔들흔들 흔들면서...
토요일 저녁을 유익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저 흔들의자에서 뭔가를 하고 싶군요. 음........동화책 읽다가 낮잠자기? 감사합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연습에 나갔더니 에고~ 고음이 어찌나 많이 나오던지 입만 뻐끔거리다 왔다우. 동화책 읽다가 낮잠 자는 것도 아무나 하나? 혹시 김지영씨라면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