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어떤 집단에서나 아니 그 전부터 서로가 한 공동체인 것을,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함을 강조하며 이 말을 내세웠던 것 같다. 진실이 무엇인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지역과 동문을 앞세워 본인이 속한 집단이 가장 합당하다고 주장하며, 단합이라고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사실상 자기네 집단의 이익을 밑에 숨긴 채 말이다. 심지어는 어느 순간 걸러지지 않은 가짜 뉴스, 일명 페이크뉴스(fake news)에 현혹되어 본인들이 믿는 것이 사실(실제는 본인이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는..)인 것처럼 신봉하고, 상대방 혹은 나와 다른 집단을 매몰차게 몰아세우고 거짓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꼭 사회나 특정집단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신 친정엄마에 대하여 자식의 도리에 따른 입장과 이해관계가 달랐다. 결국, 서로 언성이 올라가고 실망과 섭섭함으로 형제 사이에 냉랭한 분위기가 돌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과 각자의 위치와 생각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 다른 형제들이 중재랍시고 억지로 예전의 형제관계로 빨리 회복시키려고 이 형제에게 이 말하고, 저 형제에게 저 말한 행동이 또한 부작용으로 작용했다. 서로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 생각했다. 나 또한 어떤 형제의 편을 들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능한 상처를 받는 형제가 더 생기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러나 쉽게 아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중에야 안 것인데 오랫동안 곪아온 불만과 섭섭함이 분노로 터진 것이다. 심지어 본인들의 상처와 분노를 다른 형제의 탓으로 몰아세우며 자기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바빴다. 결국은 같은 뜻을 가진 형제들끼리 뭉치는, 일명 편나누기 싸움으로 번졌다. 같은 편(?)끼리 상대 편을 몰아세우며 본인들의 기억이 정확한 사실처럼, 그리고 상대편은 거짓이라고 몰아세웠다. 나중에는 ‘아버지의 뜻’이라고 본인들의 주장에 타당성과 힘을 싣기도 했다. 아버지의 뜻보다 살아계신 엄마에 대한 안위가 먼저일 텐데 말이다. 이제 한 줌의 흙이 되신 아버지의 뜻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렇다고 이제 더 이상 여쭐수 도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부모님 슬하에 클때는 ‘우리처럼 우애 있는 형제도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몇 년은 ‘세상에나,,, 우리같은 형제도 없네.’ 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형제들끼리 다독임으로, 혼자 남겨지신 엄마에 대한 자식의 도리와 역할을 고민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은데 서로 생채기를 내는 데에 급급한 형제들을 보며 아픔과 씁쓸함이 밀려왔다.
마치 국가의 이익과 발전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은데, 본인이 속한 정당의 이익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나라의 정책은 밀려나는 정치판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나의 지나친 기우일까?
‘사람은 본인들이 믿고 싶은 만큼만 보이고 들린다.’
사실을 알고 싶지도 않고 믿어버린다. 본인들이 믿고 싶은 방향으로 그냥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편의와 이익(?)과 연결되서 그런 것은 아닐까하고 다시 한번 더 의심해본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한순간 남이 되고 가장 남이었던 사람이 한순간 숨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는 어떤 작가의 글이 머리 속에 스친다.
사실 우린 모두가 남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까이서 숨을 나누는 남(?)의 다독임이 그리운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