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웅 시인과 내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윤여정 선생이 당당히 거머쥐었다.
일주일간 누워있다 그의 수상소식을 머리맡의 휴대폰으로 전해듣고선 벌떡 일어나 예전의 내 인터뷰 기사를 꺼내 읽어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도 어서 일어나야겠다.
------
윤여정
VOGUE & VAGUE NUN
책상 위의 불빛 하나만 남겨놓은 채 방안의 모든 불을 끈다. 창 밖에도, 방 안에도 어둠뿐이다. 하루 내 달궈졌던 가슴이 조용히 식어간다. 일상으로부터의 침잠. 사위는 적요하다. 이 시간이 하루 중 그에게 가장 의미 있다. 오늘 하루 한 일과 만난 사람들을 지긋이 되뇌어 본다. 연기자 대기실에서 드라마 캐릭터에 맞는 메이크업을 한 후, 감독과 수많은 스태프 그리고 연기자들과 녹화를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매니저와 스케줄을 상의했으며, 평창동 찻집에서 친구와 한 시간 사십 분 동안 사는 얘기를 하다 집 문을 열고 들어서며 붉게 핀 칸나에게 눈길을 한번 주었다. 막 청소 끝내 말끔한 방처럼 정돈된 주간(週間)의 생활. 특별할 것도, 무료할 것도 없는 삶이다.
어린 시절 백일장마다 특선을 독식했던 문학의 피가 지금도 흐르는 것일까. 그는 읽다 만 책을 다시 꺼내 든다. 하루를 정리하기론 책만큼 든든한 우군이 없다. 문득 한 구절이 눈에 들어 온다. “너의 엄마는 예수님이었어.” 작가 최인호는 그의 작품 <천국에서 온 편지>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대한민국의 많은 ‘에미’가 그랬던 것처럼 최인호의 어머니도, 그의 어머니도 곡예하듯 살아 왔다. 열 살 되던 해 멋지고 박식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뜬 이래 반백 년 간 어머니는 홀로 딸 넷을 이만큼 키워놓고 여든일곱의 노인네로 그의 곁에 남아 있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딸은 초조하다. 일찍 여읜 아버지에 대한 아쉬움이 그토록 진할 진대, 가시고 난 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또 얼마만큼 가슴에 남아 소용돌이칠까.
“난 혼자 있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외로움요? 문득 그럴 때 있지… 인간은 누구나 쓸쓸한 거니깐. 하지만 난 혼자 된 이후 각오한 바가 있어 외려 덜 외로워요.”
스튜디오와 대기실을 바삐 오가는 가녀린 그의 어깨에 목화꽃 같은 오후 햇살이 떨어진다. 나이 먹으면 그렇다며, 그래진다며 에어컨 바람 못 이겨 카디건을 껴 입는 그. 예의 그 허스키한 목소리에도 짙은 외로움이 배어 있는 것 같다.
배우라면 으레 있을법한 화려함이 윤여정에겐 없다. 영화 <하녀>로 세계의 배우들이 선망하는 칸느의 레드 카펫까지 밟은 그이기에 어깨에 힘 좀 준다 해도 뭐라 그럴 이 없을 텐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소박하다. 그건, 수만 킬로미터를 헤엄쳐 모태의 개울로 되돌아 온 연어의 본능 같은 것. 생의 목표지점을 돌고 돌아 힘겹게 도달한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완숙함이다.
알려졌다시피,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김기영 감독에게 캐스팅돼 1971년 영화 <화녀>로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고, 이 작품으로 그 해 대종상 신인상,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 속편 <충녀>와 드라마 <장희빈>으로 여배우의 선두주자이자 스타 자리를 굳혔지만, 불현듯 결혼을 선언하고 아쉬워하는 팬들을 뒤로 하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10여 년 후인 84년 다시 귀국해 연기생활을 시작했지만, 지형은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배우 윤여정을 스타로 대접해 주기는커녕 기억하는 이조차 많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년 후엔 부부생활도 종지부를 찍는다. “단역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서글프기도 했지만, 제 자신을 돌아 보니 연기를 너무 못하더라고요. 지난 날의 스타라는 이름이 헛된 것이었구나, 느꼈더랬죠. 실력을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랬다. 그는 자신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었다. 한번이라도 느껴 본 사람은 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를. ‘얼’과 ‘늘’, 두 아들을 기르며 입술을 깨물고 연기에 매달렸다.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사랑밖엔 난 몰라> 같은 90년대의 인기 드라마를 그가 주도할 수 있던 건 이 같은 철학의 산물이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스로 말했듯, <바람 난 가족>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것은 생계 때문이었다. 이미 두 아들은 꽤 자랄 대로 장성했지만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생활의 배도, 마음의 배도, 삶의 배도.
“대본 외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게 싫어요, 슬퍼져. 누가 늙는다는 게 아름다운 거라 했어요? 난 그렇지 않아. 가슴 아파요. 내가 까다로워 보인다는 얘기 잘 알고 있는데, 괜히 그런 소문 났겠어요?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이젠 어른답게, 부드럽게 살고 싶어요.”
대기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베이지 컬러 같다. 자신의 단점을 과감하게 인정할 줄 아는 여유로움, 허스키 보이스에 묻어나는 정갈함도 중년이 아니면 매치하기 어려운 베이지를 닮아 있다. 모든 색을, 갖가지의 삶을 포용해 본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베이지 빛 삶의 향. 그 내음에 역설적이게도 그는 깊게 빨아들였던 보그(Vogue) 담배 연기 한 모금 내뿜어 채색한다.
사진 김영준
첫댓글 저도 먼저 윤여정님께 축하드립니다
근디
정작가님!
언제적 취재글이에요?
그리고 힘내서 일어나 빨리 정좌하시길...
이때 이야기?!
@오영이 여배우들 쫌 지나고일 걸요.^^ 비슷한 시기이긴 해요~
2010년 인터뷰여유^^
정동묵 선생님~ 일주일이나 누워있었다니 많이 아프셨나봐요;
얼능 건강 회복하시길 바래요
맛깔스러운 좋은 글 옮겨가도 괜찮겠지요?
아파서 누워있었던 건 아니고요, 무엇을 몹시 골똘하게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호호호
어여 일어나 글을쓰세요,
우린 춤을추고,노래를 부를테니까요.^^
쳇 알겠습니다. 일주일 누워있다 일어나니 통영의 맛난 바닷것들이 눈에 몹시 아른거리는군요~~^^
덕분에? 조영남씨가 입질에 많이 오르내리네요...
삶의 정성을 들인 대가가 이렇게 빛나니 참으로 축하할 일입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 냥반하고 뭔 상관이냐고요. 관련 기사는 써야겠고 윤 선생 인터뷰는 힘들 테니 그리로들 달려간 것이겠지요. 으이구 옐로 기레기들..(근디 생각해보니 저도 옛날에 그런 짓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