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서 몇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이루어져 l,400여개의 방들이 있으며 역대 교황들이 모은 수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바티칸 박물관의 수집품들은 고대 시리아(Syrian), 그리스(Greek), 로마(Roman), 이집트(Egyptian)와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의 역사적인 유물과 조각, 그림, 태피스트리, 지도 등으로서 역사적/예술적으로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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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단순히 규모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에서도 세계최대라 할 수 있는 성당으로 유럽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곳이다. 거대한 반구형 돔이 인상적인 성 베드로성당은 로마 르네상스 건축의 정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15세기에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카톨릭 총 본산으로 대변할 만한 성당을 재건립할 계획을 세운 후 대대로 교황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총력을 기울여 건립한 르네상스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거대한 반구형 돔이 인상적인 건물로서 르네상스 시대의 기념비적인 건축물로서, 미켈란젤로의 설계와 구상부터 시작, 총 120년간 공사를 하여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인정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완성되었다.
동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 상'이 보이고, 또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돔의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청동제의 성 베드로 상이 있다. 이 동상의 발을 만지거나 키스를 하면서 기도를 하면 축복을 받는다는 말때문에 동상의 발 부분만 유난히 반짝거리고 발가락 부분이 닮아있을 정도다. 왼쪽의 제2,제3 예배당쪽 벽에는 포라이워로가 만든 노이첸시오 8세의 기념비가 있다. 그리고 제1, 제2 예배당 사이에는 옥상인 대 쿠포라로 오르는 입구가 있는데,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테라스에서 부터는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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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광장의 남쪽에 위치한 진실의 입은 옛날 가축 시장이 있던 곳에 자리잡은 곳으로 보카 델라 베리타 광장에 있는 산타 마리아 코메스틴의 성당 현관에 수호신처럼 새겨진 부조상이다. 이 곳은 콜로세움이나 카라칼라 욕장에서 걸어서 갈 수 있다. BC 4세기에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새긴 대리석 부조물로서 평소에 거짓말을 한 사람은 이 조각상의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로마의 휴일' 에 나오는 관광지로 오드리 햅번과 그레고리 펙이 이 곳에 가서 손을 집어넣고 깜짝 놀라는 장면으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진 명소이다. 이 곳에 가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진실의 입안에 손을 넣어 보고 잠시 긴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장면을 연출하며 손을 집어넣은 채 기념 촬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곳은 관광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지만, 구석에 있어서 놓치기 쉽다. 현재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알려져서 한참동안 줄을서서 사진을 찍어야 할 정도로 인기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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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처'란 뜻을 가지고 있는 카타콤베는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당시 로마의 가난했던 사람들은 가족을 위한 무덤을 땅 위에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돈이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해서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그리스도가 공인되지 않아 그리스도 인들의 박해가 시작되였으며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으로 기독교가 공인 되기까지 거의 300년 동안 박해는 끊이지 않았고 박해를 피해 지하로 피하게 되었다.
카타콤베는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통랑을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구아피아 가도 부근에는 대소 25개의 카타콤베가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를 합치면 500Km나 된다고 하며, 이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곳은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로서 5층으로 되어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는 20Km이다. 이 곳에는 3세기의 교황의 유골이 모두 모셔져 있고, 음악의 수호성자 성체칠라아의 묘도 있다. 카타콤베의 형태에는 로쿨로, 포르마, 아르코솔리오, 쿠비콜로, 크립타등의 5개로 나누어진다. 로쿨로는 카타콤베 내부에 가장 많은 무덤 형태로, 내부의 지하 통로 양쪽으로 벽처럼 되어 있는 곳에 직사각형으로 구멍을 파 놓고 죽은 사람을 구멍안에 눕혀 놓고, 그 위에 천만을 덮고 무덤을 가리기 위해 뚜껑으로 막은 것이다. 포르마는 규모가 큰 공동 무덤이 있는 곳의 땅에 마련된 무덤이다. 아르코솔리오는 3-4세기에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카타콤베 내부 무덤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꾸며진 무덤이다. 쿠비콜로는 가족묘지로 사용되었으며 내부 벽 위에는 벽화들이 많이 남아 있다. 마지막 크립타는 카타콤베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소이며, 이 곳에는 주로 순교자 교황 또는 성인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공간이 넓기 때문에 교회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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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상징적인 명소인 콜로세움은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포리 임페리알리 거리에서 1Km정도 거리가 다하는 곳에 있다. 이 것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72년에 시작해 80년에 완성된 원형 경기장이다.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이며 이 곳의 명칭은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근처에 네로 황제가 세운 높이 30m의 거대한 금도금 상인 클로소(Colossus)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다른 하나는 거대한 건물(콜로사레)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고대 로마 시대 유적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로마를 상징하는 원형극장으로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은 높이 48m로 4층이고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곳에는 5∼8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으로 설치되어 있다. 콜로세오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기도 하고, 중세에는 교회나 큰 건물을 짓기 위한 채석장으로 변해 외벽의 절반 이상이 없어지는 등 몹시 훼손되었는데 18세기에 교황의 명으로 그리스도 교도의 수난의 현장으로 수복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되었다.
이 경기장은 로마시대 가장 위대하고 웅장한 사적으로 손꼽을 수 있는 곳으로 검투사들의 격투시험장으로 또한 맹수들의 사냥 시합장으로 사용되었다. 로마 제정기 때에는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서, 장내에 물을 채워 넣고 전투를 하는 모의 해전, 생명을 내건 검투사들의 싸움인 검투사의 격투, 맹수와 인간과의 사투와 맹수들끼리의 싸움 등이 시행되어 지는 처참하고 잔혹한 게임이 벌어지곤 했다고 한다. 그 후 300년 이상이나 처참한 사투가 되풀이되다가 405년 오노리우스 황제가 격투기를 폐지함으로써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막을 내렸다. 현재는 통로와 방의 칸막이가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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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수 많은 분수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분수로 '트레비'란 삼거리란 뜻으로 바로 앞에 3개의 길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트레비 분수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것은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명에 의하여 니콜라 살비가 디자인하여 30년 만인1762년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완성하였다. 이 분수는 100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1485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에 위해 복원되었으며, 17세기에 재건되어 로마의 명물이 되었다. 이 분수의 거대한 물줄기는 조그만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바로 엪에 붙은 궁전의 한쪽 끝을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조각으로 완전히 독차지하고 있다.
이 분수는 흰대리석 작품으로 벽면에는 조각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팔라초폴리 건물의 한쪽면으로 한 가운데 대양의 신 오체아누스가 있고 양옆의 석상은 풍요와 건강을 상징한다. 브란치의 작품으로 폴리 궁전 배후의 벽면을 교묘하게 이용한 조각은 바다의 신 트리톤이 이끌고 있는 두 마리의 말은 격동의 바다와 잔잔한 바다를 상징하고 분수대의 거대한 수반은 대양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바로크 미술 후기의 걸작으로 꼽힌다. 또한 해마다 끄는 조개껍데기 전차를 탄 해신의 역동적인 조각이 눈길을 끈다. 트레비 분수의 아름다움은 밤에 조명을 받았을 때 더욱 빛이 난다.
트레비 분수의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 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지친 병사에게 물이 있는 샘물을 한 처녀가 알려 주었는데, 이 트레비 분수의 샘이 그 곳에서 끌어왔다고 하여 전해진 말이라고 한다. 이 분수에서 등을 돌리고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방법은 동전을 오른손에 잡고 트레비 분수를 뒤로 하여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한 개의 동전을 넣으면 로마에 다시 돌아오기 위하여, 두 개를 넣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개를 넣으면 이혼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분수 바닥은 세계 각국의 동전으로 가득 차 있다.
베르지네 호수에서 끌어오는 분수의 물은 로마에서 가장 부드럽고 맛 좋다고 알려져 수세기 동안 바티칸 궁으로 실어 나를 정도였으며 로마에 살고 있는 영국인 차 제조업자들은 단지에 담아 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1916년에 음료수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정되었고 오늘날은 전기 펌프에 위해 순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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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너치아 광장과 콜로세움 사이에 위치한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의 중심지로 포로라는 이름대로 처음에는 변두리 성의 사람들이 모이던 시장 터였다가 하수도로 만들어진 BC 6세기경부터 차츰 상점, 건물 등이 들어서고 도시의 기능이 충실해져 상업, 종교,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의 포로 로마노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던 것을 발굴한 것이다. 포로 로마노를 방문하기 전에 캄피돌리오 광장의 세나토리오 궁 뒷쪽 좌우에 설치된 테라스에서 유적지의 장관을 보는 것이 좋다. 캄피돌리오 언덕은 로마의 주요 7개 언덕 중의 하나로 고대 로마 당시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하던 주피터 신전이 세워졌던 곳이다. 캄피돌리오 언덕에 있는 캄피돌리오 광장은 바닥이 기하학적 무늬로 되어있어 아름답다. 이 곳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으로 왼쪽의 건물은 캄피돌리오 박물관이고 오른쪽의 건물은 콘세르바토리 궁전이다. 이 곳에서 내려가 포로로마노 거리를 따라 첫번째로 마주치는 것이 기원후 367년경의 델리데이콘센티 건물의 주랑 현관이다. 바실리카 에밀리아는 로마에 세워진 두번째 공화당으로 사법, 금융, 상업등의 거래를 행하는 공공 건물로 410년에 서고트 족이 로마를 점령할 당시 화재로 일부가 소실된 건물이다. 현재 원로원은 바실리카 에밀리아의 북서쪽에 있는 4층 벽돌 건물로 BC 7세기 경에 세워졌으며 높이 20m의 건물로 바닥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안토니우스 황제와 파우스티나 황후의 신전, 로물루스 신전, 사투누스의 신전, 베니스 신전, 2개의 개선문이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로원 앞에 있는 루스투름은 고대 로마인들이 연설을 하던 곳이었으며 당시 시내 중심지였다. 이 곳에서 조금 내려 가다보면 로마 시대 가장 중요한 신전이였던 사투르누스의 신전이 있다.포로 로마노 입구 동쪽에 있는 거대한 신전은 막센티우스 신전이다. 308년 막센티우스 황제가 짓기 시작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완성하였다. 아우구스투스 신전 엪에 있는 산타 마리아 안타쿠아 성당은 포로 로마노에 있는 가장 오래된, 사적 가치가 가장 높은 기독교들의 기도소였다.그 밖의 건물은 기둥이나 초석 등이 남아 있는 정도이다. 이 곳은 규모가 커서 걸어서 둘러보는 데에도 2시간이 소요될 정도이다. ■ KeyPoint 이태리 완전일주하기, 유럽여행하시는 모든분께 수프리모 샘플킷(커피믹스2+블랙믹스2개입)을 드립니다. 이태리와인1병도 드립니다, 똑 소리나는 이탈리아 여행법책자 증정합니다. 이태리여해을 계획중이신분은 한 번 꾸욱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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