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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부산 및 경남동부 권역 순례 잘 다녀왔습니다.
여러 선생님 만나 이야기 나누며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무엇하나 놓치기 아까운 이야기들 기록으로 다 옮기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해한 만큼 글로 옮기고, 이야기 들으며 떠오른 생각을 중심으로 배움기록 채웠습니다.
선택과 집중했습니다.
(" " 형식의 문장도 제 나름의 정리를 위해 각색했습니다. 이야기 한 분의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혹시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4.13
1. 최은진 선생님
최은진 선생님은 봉사활동을 통해 장애인복지와 특수교사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씀하셨다. 대구대학교 입학 후 서재용 선생님의 추천으로 정보원을 알게 되었고, 섬활 1기로 활동하셨다고 한다. 섬활을 통해 선생님께서 하고 싶던 복지가 무엇인지 찾았다고 하셨다. 철학과 가치관을 문장으로 다듬지는 못했다고 하셨지만, 최은진 선생님의 말씀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었다. '사람답게, 여느 사람처럼' 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셨다. 나부터 부족함이 많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사람에겐 누구나 주어진 역할이 있다는 것을 섬활을 통해 알았다고 하셨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각자 가진 역할로 채워준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크게 와닿았다.
선생님은 졸업 후 바로 울산장애인복지관에 입사하셨다고 한다. 행정팀, 사회재활팀 등 여러 부서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오셨다고 한다. 한 기관에 10년간 몸담고 계시고, 각 부서마다 선생님이 갖고 계신 철학과 가치관을 녹여내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다.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는 모습이 기획서나 평가서에 어떻게 담기는지 여쭈니 '복지관 직원이 ~를 했다.' 보다 '지역주민이 ~를 이룬다.' 같이 표현이 바뀐다고 하셨다. 평소 학습은 어떻게 이루고 계신지 질문드리니 정책과 제도가 부서의 역할에 중요해서 회의 할 때 바뀌는 내용을 공유한다고 하셨다. 최근엔 매주 수요일 아침에 일찍 출근하여 학습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여 주셨다.
최은진 선생님께서는 기관에 오랫동안 근무하시며 자신의 뜻을 이루기에 앞서 다른 직원들과 경험을 공유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좋았던 경험을 나누니 자연스럽게 그 뜻을 공감하고 함께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고 하셨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뜻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 어렵게 느껴졌는데 최은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야기 나누는 중간에 문득 기획과 복지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무엇에 가슴이 뛰었는지 생각해보니 무언가를 '기획'할 때 가장 가슴이 뛰고 몰입했던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기획을 복지와 어떻게 연결짓고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정리해야겠다.
2. 김민경 선생님
숙소 도착하여 김민경 선생님과 이야기 나눴다. 유쾌한 김민경 선생님 덕분에 '깔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몇몇 동료들은 숨이 가프도록 웃었다. 순례 첫날 긴장된 분위기는 피어나는 웃음에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김민경 선생님께서 순례단을 위해 가져오신 보따리를 풀었다. 안에는 당시 쓰시던 배움노트와 옛 사진이 가득했다. 순례지마다 얻은 배움, 추억들이 빼곡하게 적힌 노트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이우석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순례는 선생님들의 과거와 우리의 미래가 현재에서 만나는 활동이다." 그 말의 의미가 와닿았다. 선생님은 우리의 모습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고, 우리는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래를 꿈꾸고... 이렇게 생각하니 앞으로 순례일정이 더옥 소중하게 다가왔다.
순례 마치고 김민경 선생님과 이야기 나눈 내용을 떠올려보면 선생님은 직장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회사업의 가치를 녹여내고 계셨다.
대학에서는 교수님의 역할로 학생들이 어울리도록 하셨고, 마을에서는 주민의 역할로 주민들이 어울리도록 하셨고, 모임에서는 모임참여자의 역할로 모임구성원이 어울리도록 하셨다. 어느 곳, 어느 자리에서나 사회사업 하고 계신 김민경 선생님을 보며 '전공자 관점'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민경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사람들을 엮어내고 모으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더불어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최은진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며 생각했던 '기획과 복지'가 다시 떠올랐다. 기획하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잘하는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김민경 선생님 이야기 들으며 잠시 '내가 잘하는 일'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거리가 멀지 않기를 바랐다.
누군가 김민경 선생님께 "선생님 살고 계신 동네는 누구라도 살고 싶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 듣고 있던 누구라도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그 말에 선생님께서 "그리 되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답했다. 그 답의 여운이 길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고, 사소한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여 이를 구실로 이야기 나누고, 아이가 준비물을 챙겨갈 때 준비못한 아이들을 생각하여 조금씩 더 챙겨가도록 하고, 동네잔치 같은 생일잔치가 열리는 모든 모습이 김민경 선생님의 삶이고 일상이고 집이고 동네였다. 김민경 선생님과의 만남 덕분에 부산 및 경남동부 지역 순례의 큰 주제를 '일상과 복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4.14
1. 전동규 선생님
"인정받고 인정이 넘치는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전동규입니다." 전동규 선생님께서 인사에 이어 학창시절 복지순례 어떻게 다녀오셨는지 이야기 해주셨다. 후배의 제안에 복지순례를 시작했고, 후원금 50만원을 지인들에게 받았다고 하셨다. 순례 마치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고자 두 달에 거쳐 복지순례기를 쓰셨다고 한다. "전국에 있는 순례단원들이 제게 힘이 되는 자원이에요." 선생님의 말씀에 옆에 있는 동료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간략한 선생님의 소개 다음으로 질문이 이어졌다.
"신입사회복지사가 어떤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현장을 아는 것에 주력하고 때를 기다렸어요. 지금은 중간관리자에 입장에서 신입복지사에게 제 뜻을 전하기 어려움을 느끼기도 해요. 혼자 변화를 이루기는 어려워요. 같이 이뤄가야 해요."
"직책이 올라가도 사업을 맡을 수 있나요?"
"그러진 못하고 지금은 행정가 역할에 집중하고 있어요. 기관에서 바라보는 역할과 책임이 있기 때문이죠. 지역주민보다 직원들과 사회복지를 풀어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현장과 행정의 딜레마를 어떻게 하셨나요?"
"당장은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서류들이 없어서는 안되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직원들이 지역주민을 만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복지순례기 보니까 기록이 대단했어요. 바쁜 일정 중에 어떻게 정리하셨나요?"
"다른 동료들의 기록도 합친 내용이에요. 순례 마치고 두 달을 꼬박 작업했어요. 글을 썼기 때문에 아직까지 기억하고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자필로 레포트 쓰던 시절에 워드를 배워서 기록했어요."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 어느 정도까지에 관한 지침이 있을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펼쳐낼 수 있는 시기가 올 때 까지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복지순례 잘 누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녁시간에 동료들 이야기 공유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서로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며 배움이 더 커질거라 생각해요. 자유여행도 재미있게 보냈으면 좋겠고, 동료들이 말한 내용을 어록으로 만들어내는 방법도 좋은 것 같아요."
"공공기관에서 사례관리 업무를 맡고, 마을만들기로 지역사회조직 활동을 하는 곳이 많은데 종합복지관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까요?"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예전에는 정말 종합복지관의 역할을 했는데, 단종복지관이 생기고 사례관리도 공공기관에서 맡아서 종합복지관이 설 자리가 줄었어요. 종합복지관은 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해야 해요. 앞으로 지역사회 복지관은 지역사회 주민의 생각을 표현하는 역할이 되어야 해요.
"지역사회와 함께한다고 하셨는데, 실적을 내어야 하는 복지관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사례관리 실적 잡는 방법을 다르게 봐요. 만나는 과정에 대해 실적화를 하죠. 사회복지 실적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계획을 세울 때에 어떤 식으로 실적을 세울지는 담당 사회복지사의 역할이기 때문에 여기에 가치와 철학을 담아내는 중이에요.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소통하던 직원이 떠나버리는 경우에요. 맞지 않는 상황을 떠나기 보다 어떻게 변화시켜 볼까 생각하면 좋겠어요."
전동규 선생님의 복지순례기가 탄생한 배경이 놀라웠다. 타자를 익혀가고, 배움을 곱씹고, 추억을 떠올리며 두 달 동안 복지순례기를 작성하셨을 전동규 선생님의 학창시절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선생님의 열정을 본받아 휴학생 복지순례기 기록도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을 단단히 한다.
2. 이지은 선생님
이지은 선생님께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진정성 있게 만나려고 합니다." 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셨다. 이어서 미리 연락하고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았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라 말씀하시며 아쉬워하셨다. 빡빡한 일정에 수동적으로 변해가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이지은 선생님께서 금정구복지관에 입사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셨다. 대학교를 마칠 무렵, 공모전을 통해 부산지역 복지기관을 탐방할 기회를 얻었다고 하신다. 기관탐방에서 처음 만났던 곳이 금정구복지관이라 하셨고, 복지관 선생님들의 모습에 입사를 결정했다고 하셨다. "스스로 복지관 문을 두드려본적이 있나요?" 라는 이지은 선생님의 질문이 따끔하다.
이지은 선생님은 사회복지를 정의 내릴 때에 여러 정의를 보고 나에게 맞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더불어 지역사회조직 사업을 하시며 어떤 활동에서도 자주성과 공생성을 풀어내려 노력한다고 덧붙여주셨고, 인문학교실, 육아용품대여, 자원봉사자관리, 주민조직, 한미모사업의 사례를 차근차근 이야기 해주셨다.
육아용품 대여는 이전까지 돈 받고 이용하고, 회원가입, 정산, 반납의 체계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이지은 선생님께선 이를 구실로 엄마들과 엄마들의 만남을 주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에 앞서 자신과의 관계맺기부터 시작하셨다고 한다. 이름 외우고, 종종 생각나는 분은 안부전화도 드리며 나와의 관계를 통해 사람들과 맺을 구실을 찾는다고 하셨다.
인문학 교실은 기존에 책 읽고, 생각나누고, 체험하고, 일지쓰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큰 틀에서 변화는 없지만 현수막을 아이들이 달도록 하고, 다과 살 때 아이들이 금액에 맞추어 사도록 돕고, 먼저 온 아이들에게 다과상 차리는 일을 부탁한다고 하셨다. 인문학 교실은 독서토론회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정해진 회기만 채우면 되는 활동이었는데, 사전회의를 진행하여 아이들이 주인이 되도록 도왔다고 말씀하신다. 사전회의에서 읽고 싶은 책을 정하고, 일정을 짜고, 인문학 교실의 선배들을 초대할 때에는 아이들이 주소록을 보고 아는 선배들을 직접 섭외하도록 도우셨다고 하셨다.
자원봉사기초교육에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담아내려고 노력하셨다. 내가 사회복지사로 당사자를 만나며 주의하면 좋겠다는 내용을 담았고, 대표적으로 자원봉사자는 주는 사람이고 당사자는 받는 사람이라는 관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한미모 사업에서 매년 나눔장터를 운영했는데 물건 파는 사람, 부스 관리할 사람, 공연 할 사람 등을 매번 섭외해야 했다고 한다. 이렇게 외부에서 섭외하기 보다는 '재능을 나누자'고 생각하셨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하나의 부스를 맡고, 요리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의 부스를 맡고, 먹을것 좋아하는 사람이 먹거리 준비를 돕도록 하셨다. 이렇게 부탁 드릴 때에는 '봉사 말고 내가 잘하는 걸로 했으면 좋겠어요.' 라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업소개가 끝나고 질문이 이어졌다.
"어떻게 한 분 한 분 나와의 관계를 맺고 사람간의 관계를 맺게 할 수 있나요?"
"모두 안고 갈 수 없고, 단기에 이룰 수 없어요. 느슨한 관계, 강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인지해요. 사람이 어떻게 한 번에 친해지고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요?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에게 주안점(자주, 공생)을 가지고 만날 뿐이에요. 인사 할 때에는 입사, 명함, 승진, 1주년 같이 구실이 있을 때 찾아가면 좋아요. 이미 복지관과 관계 맺는 사람들, 선임 사회복지사가 아는 분, 기관에서 자주 찾는 곳, 복지관 오가며 보이는 곳에 찾아가서 인사해요."
"기존에 해왔던 사업에 변화를 시도하는데 기관의 입장과 충돌하지 않았나요?"
"1년은 기존에 사업을 따라아 해요. 함부로 기존의 것을 바꾸려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회사업 주안점인 주체성과 공생성은 외부의 틀을 바꾸지 않고 녹여낼 수 있었어요."
"일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있으세요?"
"우선 알기 때문에 실천하지 않으면 불편해요. 그리고 같이가는 동료가 있기 때문에 힘을 얻구요. 그렇다고 내 시간 빼앗겨가며 일을 하지는 않아요. 마땅한 일을 한다고 가족이나 친구를 져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 삶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주민조직이란 무엇인가요?"
"내가 하고 싶은 사회사업이 있고, 기관에서 원하는 사회사업이 있어요. 저는 주민조직을 목적이 아닌 방법론으론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어울려 지내면 좋겠어요. 지금은 제 입장과 기관의 입장 사이이를 조정하는 단계에요."
이지은 선생님의 이야기는 명쾌했다. 명쾌한 선생님 말씀에 현장에서 발로 뛰어보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가치를 쌓는 일에 더하여 서류 및 행정업무를 익히고 내가 어떤 업무를 할 지 상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다. 현장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3. 김혜정 선생님
김혜정 선생님과 순례단의 일정이 맞지 않아 짧은 시간 밖에 이야기 나누지 못했다. 먼저 연락드렸다면 일정을 맞춰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누군가 연락하겠지' 하고 수동적으로 다닌 것 같아 반성했다. 김혜정 선생님께 5분 정도 반송 느티나무 도서관의 역사를 들었다. 살고 싶은 마을은 살고 있는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란 생각에 98년도부터 반송에서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점차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고, 활동한 지 10년이 지났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고향을 만들어줄까?' 생각하셨다고 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고, 마을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 주민들이 운영하는 도서관이 탄생했다고 한다. 수십년의 역사를 짧은 시간에 듣고 주민회의에 참관했다.
회의 안건은 어린이날 행사 어떻게 하면 좋을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순례단이 둘러앉아 구경하는게 방해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회의 시작하니 괜한 걱정이었단 걸 알 수 있었다. 구성원 모두 회의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의견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볍지만도 않았다. 음식 하나를 정해도 진지한 표정과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회의는 대학시절 동아리 회의를 생각나게 했다. 그땐 회의 자체가 만남의 구실이고 놀기 위한 구실이었다. 이런 점에서는 주민회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주민회의에서 느낀 점을 나누었다. 복지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 곳에 복지가 지향하는 내용이 녹아있었다. 이우석 선생님께서 일상과 복지의 관계를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일상적인 모습들을 복지를 전공했기 때문에 복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니 머리를 '쿵'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전공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나 반성했다.
복지가 일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의미가 와닿지 않았다. 나중에 이우석 선생님께 여쭤보니 예를 들어 설명해주셨다.
주민회의를 복지관(복지)에서 하지 않고 집(일상)에서 한다면? 반대로 주민회의를 집(일상)에서 하지 않고 복지관(복지)에서 한다면?
간단한 예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복지의 영역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문득 '전문가여 내 삶을 돌려주오' 라는 김동찬 선생님의 글이 떠올랐다.
'... 글 쓰는 것을 어려운 일로 만들고 있는 작가여, 정치적 토론을 밀실로 옮기고 있는 정치가여, 성층권 밖에서 귓속말을 나누는 과학자와 기술자여. 당신이 전문가라면, 나를 보시오. 당신이 이룬 것들 앞에 내 무한한 능력을 잊어가는 나를 보시오. 내 삶을 돌려주시오.' (naturalfare.org/nf/index.htm)
복지를 전공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아야 한다. 복지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전공의 함정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살이가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할 것이다.
4.15
1. 노수연 선생님
노수연 선생님께선 순례단에게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들려주셨다. 영화와 예술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3학년부터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셨으며, 휴학하고 어머님 가게를 도와드리는 시기는 사회복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셨다. 유럽여행을 마치고 복학하여 4학년 2학기에 실습했던 부산사회복지협의회에 취직하셨다고 한다.
모두 사회복지협의회가 무얼 하는 곳인지 궁금해했다. 노수연 선생님께서 이런 궁금함을 예상하셨는지 사회복지협의회, 사회복지협의체, 사회복지사협회를 구분하여 설명해주셨다. 사회복지협의회는 사회복지에 대한 이해증진, 시민복지증진, 시민참여유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노수연 선생님께선 출판홍보사업, 자원봉사활성화사업, 정보관리사업을 담당하고 계셨다.
간략한 기관소개가 끝나고 담당하고 계신 사업을 어떻게 풀어가고 계신지 말씀해주셨다.
출판홍보사업으로 부산사회복지신문을 발행하고 계신데, 효율성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하신다. 그래도 지역사회와 소통을 이어가기 위해 기관의 제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현장 사회복지사들의 글을 게제하고,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사를 칭찬하도록 하는 란을 만들었다고 하셨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렇게 변화를 만들어가고 계셨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신문보다 좀 더 효율적으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하셨다.
자원봉사단 관리는 직원들이 힘들어하던 사업이었다고 한다. 기관에서는 자원봉사단의 조직화와 자생화를 원했지만 생각대로 이루기 어려웠다고 하셨다. 처음 자원봉사활성화 사업을 담당했을 땐 기관에 들어오며 생각했던 업무가 아니라 당황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업이면 복지순례하며 배운 가치를 녹여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고, 사업을 맡아 직접 봉사활동에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의존적이던 봉사단 분들께 한 순간에 변화를 이끌어내긴 어렵지만, 만나고, 지금까지 어떻게 활동 하셨느지 묻고, 공감하며 조금씩 가치를 풀어내고 있다고 하셨다.
정보관리사업으로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계셨다. 사회복지업무는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잘 되어있지 못해 아쉽다고 말씀하셨다. 홈페이지 구축을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공부하셨고, 협의회만이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다.
사업소개를 마칠 때에 노수연 선생님께서 부산복지협의회에 계시며 느낀 생각들을 전해주셨다.
"개별기관에 있어도 지역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이어가면 좋겠어요."
"사회복지사가 오히려 지역사회를 헤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지역의 일을 같이 풀어가려면 참여가 필요한데, 정부 지원으로 움직이는 기관이 많으니 그러기 어려워요."
노수연 선생님의 이야기로 복지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었다.
질문이 이어졌다.
"학창시절에 활동한 기억이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학창시절 관심을 갖고 다양하게 보았던 것이 자연스럽게 업무에 녹아드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읽은 책을 보니 사회에 관한 관심이 많아보이셨는데, 사회복지 영역에서 어떻게 풀어내시나요?"
"사회복지 일하는 사람은 사회복지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다양하게 풀어내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다양한 분야를 보고 싶어 책을 읽었어요."
"협의회에 어떻게 입사하셨고, 하시는 일이 어떠신가요?"
"처음에는 아동양육시설에서 실습했었어요. 기관 네트워크나 지역사회 켐페인을 하고 싶다고 하니 부산복지협의회를 소개해주셨구요. 협의회에서 실습을 했고, 조직의 슈퍼바이져 선생님들을 보고 입사를 결심했어요. 사업은 불만도 있지만 배울 점도 많았어요. 협의회 분위기 자체가 할 수 있는대로 바꿀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이라 좋아요.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노력하려 합니다."
"부산사회복지신문 업무 맡으시며 배운 점이 많으실 것 같은데, 소식지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요?"
"소식지 내용, 배포 모두 사회사업의 구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산사회복지신문과 소식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아직도 비용에 비해 효율성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 비용으로 온라인 정보망을 구축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또 출판보다는 기관 홍보담당자가 모두 모여 지역사회켐페인을 크게 벌여도 좋을 것 같아요."
노수연 선생님을 만나 협의회 일을 들으며 더 넓은 시각의 사회복지를 만날 수 있었다. 노수연 선생님의 직장생활 이야기 중에는 내가 어려워하던 부분에 관한 고민도 있었다. 입사 초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혼자서 일하는게 마음에 편하다고 하셨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때, 도움 드릴 기회가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먼저 고민하신 선생님 덕분에 '함께'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다.
2. 오우석 선생님
노수연 선생님 소개로 사회공헌정보센터에서 일하고 계신 오우석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오우석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는 '명언제조기'라는 별명이 선생님께 붙었다. 오우석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만큼 순례단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 듯 했다. 사회공헌정보센터에서 하시는 일과 일하게 된 배경을 처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같이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복지관과 시민단체를 거쳐 사회공헌 일에 자리 잡았다고 하셨다. 오우석 선생님은 사회공헌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고, 기업도 공동체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두고 일하고 계셨다. 부산에는 사회공헌과 관련된 일이 많지 않아서 위와 같은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주셨다.
사회공헌 일은 기업의 이미지를 살리되, 철저하게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가고 있다고 하셨다.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이 사회공헌을 통해 지역의 지지를 받아 매출이 올라가고 지역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지향한다고 하셨다. 오우석 선생님은 다른 지역의 영리컨설팅 팀이 오기 전에 이와 같은 분위기를 미리 조성하여 네트워크와 지역사회의 힘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계셨다. '흐름을 만들어가는 일'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사회공헌 이야기에는 선생님 나름의 가치와 철학이 담겨있었다.
"연민과 동정으로 사회공헌 하려하지 않아요. 남들은 연민과 동정으로 사회공헌 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사회공헌으로 연민과 동정이 없어야 해요."
"불쌍하다고 누군가를 보면 불쌍하다고 한 원인에서 내가 동떨어지게 됩니다. 그럼 남의 일처럼 느껴지게 돼요."
"극과 극 사이에는 타협점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민주노총과 대기업 사이에 사회공헌이 있는거죠. 오히려 최전선은 여기라고 생각해요. 기업이 공동체를 생각하도록 만드니까 말이에요."
"1년에 걸쳐 바꾸고 싶으면 투쟁하지만, 100년에 걸쳐 바꾸고 싶다면 커피 한 잔 마시는 거죠."
오우석 선생님의 생각들이 이야기 속에 고스라히 묻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마치며 선생님께서 "순례 다니며 많은 사회복지사를 만나죠. 사회복지사 수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니 소화해서 자기 색으로 만들었으면 해요. 다음에 저를 볼 때 사회공헌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사회공헌은 지금 제가 맡고 있는 도구일 뿐이에요. 여러분이 보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니까 돌아가면 나도 저렇게 해야지보다 내가 저렇게 한다면 하고 생각해보면 더 좋은 일이 생길거라 확신합니다." 고 말씀하셨다. 오우석 선생님 말씀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례임을 다시 확인했다.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 아쉬운 눈빛이었다. 오우석 선생님도 분위기를 보시고는 더 이야기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셨다. 주저없이 "네", "좋아요" 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오우석 선생님의 실패와 좌절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오우석 선생님께서 복지관 입사하고 느꼈던 좌절에 대해 덤덤하게 말씀해주셨다. 사회초년생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프로포절에 몰입하셨다고 한다. 프로포절에 신경쓰니 일이 바쁘고 재미없게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건 나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돈만 쓰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방향, 지향점을 고민하고 사람을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윤지가 시민단체에서 일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시민단체에서 일하실 때에는 어떠셨는지 물었다. 오우석 선생님께서 답하셨다.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는 것과 시민으로 참여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시민단체에서 일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시민단체 활동 열심히 합니다. 좋은 곳에 가도 좋은데, 내가 있는 곳을 좋게 만들어도 좋습니다." 한때 시민단체를 고민하던 나에게도 반가운 질문이고 답변이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실패와 좌절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린 계속 실패를 할거에요. 그래야 내 다음에 오는 사람이 성공하니까요." 이야기를 듣고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추기 바빴다. 오우석 선생님에게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배움과 위로의 시간이었던 오우석 선생님과의 만남이 소중하다.
3. 서재용 선생님
순례단 일정상 남구시니어클럽으로 찾아뵙지 못했다. 대신 부산시민공원 안에 있는 북카페 '숲'에서 이야기 나누었다. 서재용 선생님께서 학창시절 자전거로 복지순례 하셨던 이야기, 백두대간 산행 이야기 들려주셨다. 유쾌한 선생님의 이야기에 오후에 나른함이 달아났다.
서재용 선생님은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카르페디엠' 두 개의 말을 붙잡고 일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술마시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어떨까?"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다. 서재용 선생님께선 그 어르신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도우셨다고 한다. 어르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여 아파트 청소를 부탁드렸더니, 다른 사람들이 청소하는 어르신을 보고 칭찬하셨다고 한다. 어르신께선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본다며 기뻐하셨고, 그 어르신께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그 전과 달라졌을거라 하셨다. 사회복지사는 이렇게 세상을 바꿔간다고 하신다. 거창한 일을 하기 보다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선생님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선생님의 요즘 키워드는 '즐거움과 재미'라고 한다. 내가 재미없으면 꽝이라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하셨다. 올해 이루고 싶은 일로 소설쓰기, 수필쓰기, 아들과 등산하기, 독서하기, 아내에게 편지쓰기, 가족여행을 말씀하셨다. 덧붙여 소모임은 즐거움과 재미를 위한 돌파구라고 말씀하시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셨다. 철학, 독서, 기타 소모임 등 서재용 선생님의 활동에는 즐거운 기운이 가득했다. 모임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선생님의 일상이 사회사업 현장과 같았다.
서재용 선생님은 김민경 선생님과는 또 다른 유쾌함을 전해주셨다. 그렇지만 비슷한 점이 더 많았다. 사람과 함께하고, 일상에서 시작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선생님들의 기운이 주변을 밝게 비추고, 세상을 밝게 비추리라 생각한다.
4. 김두례 선생님
부산복지개발원에서 일하고 계신 김두례 선생님을 만났다. 부산복지개발원이란 이름이 생소하여 선생님과의 만남이 더욱 기대되었다. 김두례 선생님께선 정보원 1기 실습팀을 소개하시며 이야기를 풀어가셨다. 김두례 선생님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한덕연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다.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는 김두례 선생님의 모습이 아이처럼 즐거워보였다.
긴 시간에 거쳐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 가운데 와닿은 내용을 글로 옮긴다.
"나하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 교류 관계의 어려움으로 기관 내부에서 에너지를 받기 어려우면 외부에서라도 받아야 한다."
"조직의 생산성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자. 내가 앞서서 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따르도록 하는 사람이 생산성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실천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지만 정책에도 현장과 관련된 분야가 있다. 장애인권익연구소가 대표적이다."
"나부터 안된다고 생각하면 누가 된다고 생각하느냐? 우선 된다고 생각하고 안되면 그 다음에 생각하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너를 돕는다.' 는 말도 있다."
"대충 아는 것은 정말로 아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 아니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해도 우리가 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주일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깊이 하면 좋겠다."
김두례 선생님 이야기 속에는 '치열함'이 담겨있었다. 선생님은 밤 11시에 퇴근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퇴근하면 씻고, 책 읽다가 주무신다고 하신다. 그리고 다시 아침 일찍 출근하셔서 이 생활을 반복한다고 한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업무량이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의 표정은 밝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김두례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선생님 삶의 모습 그 자체가 배움이 되었다.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고 열정적으로 이야기 하시는 모습과 이야기 중간중간에 묻어나는 치열한 삶의 모습은 매순간 뜨겁게 다가왔다. 이야기하고 계신 선생님을 보며 '작은거인' 같다고 생각했다. 포옹인사 나누고 복지인 구호 외칠 때에 진심으로 기도했다. '순례단의 기운이 김두례 선생님에게 가득 전해지길, 나 역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치열하게 살아가길...'
4.16
1. 김국보 서은아 선생님
김해시종합복지관에서 김국보, 서은아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들께서 순례단 반겨주셨다. 선생님들의 이야기 잘 듣고 싶었는데 감기기운으로 컨디션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몸살기운이 느껴졌지만 주어진 시간이 아쉬워 최대한 집중하려 노력했다. 서은아 선생님부터 활동하신 이야기 들려주셨다.
자활사업으로 복지관 내에 카페운영을 돕는다고 하셨다. 할 수 있도록 돕기보다 활동에 주인이 되도록 돕는다고 하셨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카페가 만들어졌고, 장애인 바리스타분들과의 의논을 통해 잘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운영하도록 도우셨다고 한다. 이렇게 활동하니 바리스타분들께서 "제가 수세미 사왔어요.", "제가 물티슈 사왔어요." 말씀하셨다고 한다. 바리스타분들이 카페의 주인이 되셨다. 카페 운영하며 우유가 부족할 때도 많은데, 대량주문보다 동네 슈퍼를 이용한다고 하셨다. 지역에서의 관계를 살피는 서은아 선생님의 생각에 배움을 얻었다. 카페를 만들고,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을 돕고, 동네 카페에 취직을 돕는 서은아 선생님의 노력에는 평범한 사람살이와 더불어 사는 사람살이를 꿈꾸는 사회사업의 가치가 녹아있었다.
이어서 김국보 선생님과 이야기 나눴다. 김국보 선생님 이야기에는 '관계'를 생각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라히 담겨있었다. 먼저 사람들에게 찾아가고 연락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관계를 지속하는 힘이 느껴졌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소중히 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따뜻했다. 김국보 선생님께선 복지관이 특정계층만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선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지역주민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역주민에게 다가가는 역할을 조직화 사업을 통해 이뤄가고 있다고 하셨다. 마을에 두루 인사다니신 김국보 선생님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추동에서 마을인사 다녀서 그런지 김국보 선생님의 이야기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가는 과정을 더욱 듣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했다.
마지막에 김국보 선생님께서 복지사가 복지 업무만 생각하면 일상이 무너진다는 말을 덧붙여주셨다. 사회복지사 말고 나는 누구인지, 지역과 기관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복지관 일은 업무이지만 그것도 내 일상이고 내 삶이기 때문에 복지가 생활 속에 있어야 즐길 수 있다고 하셨다. 이번 순례에는 일상과 복지라는 단어가 순례단을 따라다녔다.
김해시종합복지관을 나서며 준혁이가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고 했다. 이지은 선생님과 준혁이의 말처럼 내 주변에 있는 기관을 잘 살펴보아야겠다. 더불어 다음 순례에는 몸 관리를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2. 정재훈 선생님
밀양시종합사회복지관에 입사한지 15일 지난 정재훈 선생님과 소소봄에서 이야기 나눴다. 정재훈 선생님께서 순례단 만나기 위해 밀양에서 양산까지 찾아와주셨다. 그 마음에 감사했다. 밀양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떻게 일하게 되었는지 이야기 듣고 자연스레 질문이 이어졌다. 주로 학창시절 및 사회초년생에 관한 내용이었다. 정재훈 선생님은 입사한지 15일 지났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만큼 나름의 생각을 잘 풀어내고 계셨다.
"먼저 전화 받으면 다른 사람들의 업무가 대략적으로 파악이 돼요."
"마을인사 다니기 어려울 때엔 주로 해야 할 일을 얼른 마치고 선임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따라갑니다."
"컴퓨터 작업 모를 때에는 '모르겠습니다.' 보다 '이렇게까지 해봤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해요."
"기록은 '어떤 생각을 갖고 갔는지', '어떤 방법을 적용했는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세 가지로 나누어 해요."
이야기 들으며 앞으로는 활동 어떻게 이뤄가실지 궁금해졌다. 정재훈 선생님의 활동 사례집이 기대된다. 문화로 복지를 녹여낼 선생님의 내일이 기다려진다.
3. 이우석 선생님
이우석 선생님과 복지요결 전공자 관점을 공부했다. 사회사업 공부를 직업으로 생각하면 범위가 한없이 작아진다며 사회복지 공부가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우석 선생님의 말씀에 전공자 관점이 담겨있었다. 전공자 관점은 '그 공간, 그 자리, 그 삶, 그 터가 사회사업의 현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 하셨다.
"사회복지학과 학생일 때의 나와 그것이 없을 때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야구선수의 그라운드가 야구장이라면, 사회복지사의 그라운드는 삶 자체이다."
이우석 선생님의 말씀이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복지가 삶에 녹아들어야 했다. 반송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배웠던 '복지가 일상이 되도록' 이라는 말과 맥이 통했다. 사회복지가 내 삶이 된다고 생각하니 나의 색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사회복지는 나를 표현하는 도구가 되어있었다. 사회복지 이준화가 아닌 인간 이준화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디서든 사회복지를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주체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색이 사라지기보다 오히려 선명해지는 듯 하다.
이우석 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다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돌아가서 어떤 실천을 해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여러 활동이 생각나 당장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우선 앞집과 윗집에 인사드리러 갈 생각이다. 복지가 삶에 녹아들도록, 그 시작을 잘 이루도록 해야겠다.
첫댓글 우와~ 반가운 기록! 반가운 분들1
준화 고마워요.
와! 전효민 선생님 고맙습니다^^
순례마치고 돌아와서야 전효민 선생님께서 기록마다 덧글 남겨주신줄 알았어요.
9월 순례 기록도 잘 남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