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 ■
말티스, 아미
신단향 (시인)
1.
그녀의 몸에 흐르는 전류는 고기압이었다.
산열로 콧잔등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신열이 높았다. 아무것도 해 줄 수
가 없었고, 다만, 미역국과 소고기를 잘게 썰어 논바닥 같이 쩍 갈라진 입
에 들이밀 뿐이었다. 그녀는 흘끔 얼굴을 한번 들어 킁킁거려 보곤 이내 고
개를 품속으로 파묻어 버렸다. 파고드는 새끼에게 젖가슴만 열어주고는 눈
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새끼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변이 마려우면 하반신이 산혈에 물든 몸으로 쪼르르 달려가, 급하게 변을
보곤 쪼르르 달려 와선, 새끼들 옆에 비집어 눕곤 하는 것이 새끼들이 젖을
뗄 때까지였다.
네 마리의 새끼 중 제일 힘이 세어서 맏이가 되었는지. 덩치도 크고 젖도
제일 많이 먹었다. 다른 새끼들은 문턱을 넘는데 맏이로 태어난 그 녀석만
큼은, 제 덩치가 무거워 문턱도 못 넘고 바동거렸다. 우리는 그 녀석을 보
고 왕초(차인표 주연의 ‘왕초’ 드라마가 방영할 즈음)라고 불렀고, 얼마만
큼 자랐을 때는 제일 먼저 분양을 시켰다. 분양을 시키면서 녀석의 몸값을
받지 않은 탓이었을까? 그 녀석은 첫 번째 분양, 두 번째 분양에서도 이러
저러한 이유로 되돌아오곤 했다. 어린 모습, 재롱떠는 게 귀여워 욕심을 부
리다가 막상 똥오줌 못 가려 질려버려서일까. 되돌아 와선 꼬리치는 그 모
습이 측은했다. 아마도 나와 같이 살라는 인연인 것만 같아, 새끼들 다 떠
나면 서운해 할 어미 곁에 두기로 했다. 어미는 녀석이 다 자랐는데도 똥구
를 핥아주고, 귀와 얼굴, 녀석의 쩍 벌린 입속 이빨까지 핥아 주었다. 먹을
것조차도 늘 녀석이 먼저 먹고 나서야 제가 먹곤 했다.
점점 녀석은 기세가 등등해졌다. 제 어미에게 으르릉 대기도 하고, 가끔
은 어미의 등 위에 올라 끄떡대기도 했다. 먹을 것을 줄라치면 어미보다 제
가 앞서 달려왔고 어미는 뒤따라 왔다. 당연히 서열도 녀석이 우위가 됐다.
어미는 그 모든 것을 녀석에게 양보해 주었다. 심지어는 양팔에 어미와 녀
석을 함께 안아주면 어미는 내려달라 버둥거렸고 녀석은 더 바짝 매달렸
다. 그러면서 부러운 듯 바라보는 어미의 측은한 눈빛을 외면 한 채, 우리
는 자연적으로 녀석을 더 귀애하게 되었고 녀석은 그것이 당연했다. 그러
다 어미를 더 이뻐하며 안아주면 녀석은 셈이나 죽겠다는 듯, 앞발을 치켜
올리며 짖어 댔다. 그런 녀석을 보며 어미는 얼른 내려 달라고 버둥거리다
가 펄쩍 뛰어내렸다.
그러다 얼마 후, 느닷없이 우울증이 있는 듯하던 어미가 심장마비인지
뭔지로 갑자기 죽어버리고, 장난삼아 어미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녀석은
눈만 멀뚱거릴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런, 녀석의 나이가 열 살이 넘는다. 어느 날 한쪽 볼이 부어오르는 것
을 어디에 부딪쳤나? 왜 그러지? 하고 말았다. 그런데, 녀석의 얼굴에서 부
운 것이 내려앉은 대신 털이 축축이 젖어 흘렀다. 동물병원을 달려간 진료
결과는, 잇몸이 곪아서 얼굴 살을 뚫고 고름이 나온 것이라 했다. 그 정도
가 될 때까지 녀석은 이빨이 얼마나 아팠을까. 나이가 들어 앞니도 하나 빠
져나가고 없다.
사람도 짐승도 세월에 삭아가는 고철처럼 몸이 닳아간다.
나이가 들면서 내 몸도 닳아간다. 뼈 마디마디마다 얇아진 연골이 삐그
덕거리는 것을 느낀다. 치주염으로 흔들리는 이빨을 빼고 임플란트를 하는
데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녀석도 흔들리는 이빨을 뽑고 혀를 휘두르며 쩝쩝
대는 모습과 마취에 취해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서 나는 어쩌면 녀석을 통
해 나를 느꼈을 것이다. 잇몸 뼈에 쇠기둥을 박기위해 마취주사를 놓을 때,
나는 마치 아이를 낳기 위해 수술대 위를 기어오를 때처럼, 두려웠으니까.
졸시,「 말티스, 아미」는 그렇게 탄생된 시다.
병원을 다녀온 후, 너의 몸은 굳어 있었다. 마취에 취해 빙빙 돌고 있는
지구를 딛지 못했다. 사시나무 떨 듯 떠는 몸, 혀를 휘두르며 마른입 쩝쩝
대는 네 모습은 아픔을 호소하는 신음이었다.
이팝나무 꽃잎, 이빨처럼 망울 맺을 때 네가 태어난 건 나쁜 징조였다.
몇 겁의 생은 사람과 짐승과 날 파리로도 태어난다는 어느 나라의 종교처
럼, 내 품을 열어 아픔을 덜어 주고 싶을 때, 네가 스친 어느 인연의 겁이
너와 내게 쌓였을까. 너의 입 가득 고름에 묻힌 이팝나무 꽃망울 생살 찢어
뽑아낼 때 내 몸에도 신열이 올랐다.
바들거리며 떨고 있는 생의 한 시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체온이 대기
를 잡고 매달린다. 끓어오르는 불구덩이는 이승에도 있는 것인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 떨리는 몸 곧추세우며 핏발선 눈물 맺는다. 먹은 것
없이 거품만 연신 게워내는 작은 몸집이 생에 매달리는 동안, 내 몸 어느
한 귀퉁이 탯줄에서 머물다 흘렀을 태교의 환생일 것만 같아
통조림 한 통 묽게 으깨어 놓고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말끔해진 네 밥
통, 아, 생은 그렇게 웅덩이처럼 깊더란 말인가. 나에게 괜찮냐, 며 꼬리 흔
든다.
녀석은 지금 또다시 동물병원에 출타 준비 중이시다. 그 나이가 되도록
불임증으로 한 번도 새끼를 갖지 못해서일까. 유방 주변에 덩어리가 만져
진다. 암일지, 지방덩어리일지, 주변의 누구는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고 충
고를 하는데…
다행히 병원에서는 두고 보자고 하였고 나는 녀석을 수술시킬 수는 없다
고 병원 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병세가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
고 녀석의 노령에 수술을 이겨낼 수 있을까가 걱정이다. 녀석의 젖가슴에
새끼손가락만한 혹을 어루만지며 제발 더 이상 커지기만 말아 주길 바랄
뿐이다.
2.
내가 녀석에게 가지는 애착은 사람과는 또 다른 사랑이다. 녀석은 나에
게 있어서 꽃이다.
베란다 화분에 우두커니 심어져 있는 꽃나무들은 내가 방심하면 죽어버
리기 일쑤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물주기를 잊어버리고 나면 그들은 배배 꼬
여 이파리가 시들해도 낑낑거리지도 않으니 더욱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내
가 찾지 않으면 꽃나무들이 나를 찾는 법이 없다.
늦은 시간 피곤에 지쳐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또는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 제일 먼저 쪼르르 달려와 반기는 것은 녀석이다. 꽃처럼 환한
몸짓으로 나에게 달려들어 반갑다고 안아 달라고 매달린다. 몸이 물에 젖
은 솜덩이처럼 축 쳐져 있지만 나는 녀석을 안아야 했고 안고 어우르다 보
면 피곤하고 짜증스런 마음까지 잊는다.
자신이 키워 오던 꽃나무에서 꽃이 활짝 피었을 때의 반갑고 대견함처럼
녀석이 나를 반길 때, 내가 녀석을 쓰다듬을 때, 녀석은 나에게 활짝 핀 꽃
이다. 까맣게 반들거리는 눈은 포도 두 알이고 깎았던 털이 자라나 듬성듬
성 입가에 자라난 활짝 핀 털은 국화송이다.
나는 포도와 국화를 가슴 가득 안고 거울 속으로 녀석과 나를 비춘다. 그
러면 녀석은 제 모습이 싫은지 거울을 외면한 채 얼굴을 돌려버린다. 처음
엔 그저 어쩌다 그러는 줄 알고 얼굴을 다시 돌려 거울에 비쳐주었지만 녀
석은 매번 거울을 바라보지 않는다.
어느 날, 딸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미가 좋아, 내가 좋아?”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조금 당혹했고 이내 장난기가 돌았다.
“그럼 말 안 듣는 너 보다 낳지. 신아미, 그렇지?”
딸은 녀석의 이마에 꿀밤을 먹이곤 서운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찼다. 그
후로 딸은 내가 없으면 이뻐하다가도 내 앞에선 괜히 심술을 부리곤 콩! 한
대 꿀밤을 주곤 지나간다. 그럴수록 녀석은 제게 차갑게 대하는 딸의 마음
을 환심 사려는지 딸의 주변만 쫓아다닌다. 내가 부르면 잠시 같이 있어 주
는 척하다간 슬그머니 일어나 딸의 발치에서나 머리맡에 웅크리고 누워 눈
은 데굴거리며 밖에서 서성이는 나를 주시한다.
몇 년 전에 알고 지내던 30대 초반의 그녀에게서 정말 몇 년 만에 뜬금없
이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신 내림을 받았다는 그녀는 무녀가 되
었다 한다. 조금은 얼떨떨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일인 걸 하곤 무심히 지나쳤지만, 실은 마음 깊이엔
그렇지가 못했나 보았다.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면 먼 화성쯤에서 사는 사
람 같았고 이제는 다정하게 마주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서로 다른 세상
에서 직선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걸어가야 할
무녀의 길이 순탄할런지는 모르지만 작두를 타고 덩실덩실 굿판을 벌일 그
녀의 모습에 마음이 저렸다.
만약, 그녀가 점을 치며 공수하게 될 윤회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있다
면, 그녀의 전생은 신통한 영감을 가진 우주 어느 별에서 내다버린 선녀였
을까.
나는 누구였으며, 누가 될까. 윤회설이 생각나게 했다. 그녀가 있는 곳
으로 달려 가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생각에서 생각이 맴돌던 차에, 나를
위해 꼬리를 치는, 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맑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녀
석의 내생이 궁금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있지만, 녀석의 내생은
개가 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지내다 보면 어떨 땐 사람보다 낮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기구
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개 팔자보다 못하겠지만, 그래도 사람보다 낫겠
는가. 다음 생엔 내 엄마가 되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낯선 이가
나타나면 나를 지켜주겠다는 든든한 마음에, 때로는 내가 오히려 녀석의
품안에서 젖이라도 한 통 배불리 먹고 쑥쑥 자라고 싶다. 철마다 환생하는
꽃잎이 베란다 너머에서 녀석과 나의 재롱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꽃과 녀
석,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움직이지 않는 꽃과 움직이는 꽃의 차이다. 그러
나 꽃에겐 윤회설이 없다.
영혼의 기억을 가진 녀석의 먼 미래가 궁금해지는 망상은, 녀석이 마취
에서 깨어나 오한이 들어 희미한 눈빛 속에서 나를 보듯, 어쩌면 먼 발걸음
의 내가 궁금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도 저마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 앞에서 깊은 발자국을 새기고, 밤은
어둠을 터널처럼 감싼다. 터널을 통과하는 어둠 속에서 누가 서성이다 돌
아서 가나 보다. 집 나간 사람들이 쏙쏙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나 막상 돌아올 사람은 없으니, 저 녀석마저 누군
가를 기다리는지 서성이는 그림자를 찾으며 한사코 짖어댄다. 들창을 열어
보지만 누가 바람을 타고 왔다갔는지, 공기 속에 머무는 훈기가 뺨을 스친
다. 어수선하게 뒹구는 낙엽만이 바람의 내막을 알 뿐, 사람이 술렁이는 곳
마다 개 짖는 소리 요란하다.
꽃들은 모두 숨었다 피어난다.
땅속 어디쯤 뿌리 끝에 매달려 있다가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꽃은 꽃이 되어 웃는다.
수억만 년 변함없이 땅과 맞물려 핀다.
이름 없는 풀포기에게도 뿌리는 깊다.
작두날 위에 꽃을 피우는 여자가 되었다고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로 불쑥,
그녀가 잡아버린 꽃줄기를 전했다.
그녀의 음성이 먼 행성처럼 다가왔다.
그녀의 영혼 속에 덧씌워진 또 하나의 영혼으로 왔다.
떨쳐버릴 수 없는 미련의 매듭들을 가녀린 체구에 담고
퇴마와 위령을 위한 호통의 공명으로
신령을 깨워야 할 여자가 되었으니,
무덤 속 썩은 뼛조각에서 전해오는 잠자고 있는 말들이
줄기 위로 피워 올려야 할 꽃이파리가 되어
제단 위 촛불가에서 떠돌 것 같다.
그녀가 올리는 기도문 속엔
자신이 제물로 되어버린 눈물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라도 꽃 중의 꽃이 되고 싶다던 그녀를
어느 계보의 조상이 대찬 여인이 되게 했는지.
핏줄 속에 숨은 꽃이
선녀의 빙의로 뫼비우스의 족쇄를 채우는지.
창밖의 꽃들이 넌지시 고개를 빼고 들여다본다.
개가 요란스레 꽃을 향해 짖는다.
- 졸시, 「 핏줄 속에 숨은 꽃」전문
신단향 시인
* 2005년《육필문학》으로 등단.
* 시집으로『고욤나무』가 있음.
* johta06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