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삼각지를 가다 2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철원까지 내달았을까. 역사책에 여러 번 등장하지만 나는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고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마침 짧은 서쪽 바닷가 여행을 끝낸 다음이기도 했다.
토요일 꼭두새벽에 군산의 선유도로 건너갔다. 신선이 놀았다는 섬이다. 그 옛날 새만금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신선이 놀았는지 몰라도 방조제에 이어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생긴 이후에는 어디에도 신선이 놀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룻밤 묵으려던 계획을 바꿔 밥만 먹고 나왔다.
군산에서 잠깐 철길마을 구경을 하고 대천으로 이동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짚라인을 탔다. 겁도 나고 엉덩이 부분이 간질간질할 줄 알았는데 그럴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새 끝나버렸다. 싱겁기가 고드름 장아찌였다.
한 바퀴 돌아오는데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유람선을 탔다. 그것도 싱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닷바람을 쐬며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섬 풍경은 뒷전이고 배 위에서 춤판을 벌이는 것은 진짜 꼴불견이었다.
그날 밤을 대천에서 자고 이튿날 주변을 얼쩡거리다 집으로 돌아왔다. 벼르고 간 여행이 돌아와서 생각하니 알맹이가 빠져 있었다. 낚시를 가면 꼭 월척을 낚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손맛은 느끼고 와야 보람이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 책 속에서 하는 여행보다는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그 땅에 잠재하는 역사를 탐구하든가 하다못해 함께 여행하는 사람의 마음을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늬바람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서쪽 바닷가를 누볐지만 그 바람은 약했다. 콧구멍에 바람이 들면 집 안에 박혀 있던 처녀들도 바깥출입이 잦아진다지 않던가.
생각만 나면 휭 떠나는 안젤라님이 떠올라 S.O.S를 쳤다. 경상도 식은 “됐나?”해서 “됐다”하면 바로 승부를 본다. 나는 경상도에서 태어나도 약간은 소극적인 성격인데 태생은 숨길 수 없었나 보다.
기대했던 대로 흔쾌한 대답이 돌아왔고 그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철원에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까.
안젤라님은 카페 글에서 느끼던 것과 달리 시원시원한 여장부 타입이었다. 그제서 닉네임에 ‘빈 마음으로 사는’이라고 했는지 이해를 했다. 그가 소개하는 사람들도 산전수전 겪었을 사람인데도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빨간 뚜껑 소주를 마시고 노래방도 갔다. 사람이 처음 만나면 탐색전도 있어야 하는데 바로 본 게임으로 직행한 것이다. 그다음은 비몽사몽, 아침에 눈을 뜨니 아담한 여관이었다.
다음날 기사 노릇을 톡톡히 해주신 형제님이 데리러 와 같이 가서 안젤라님이 손수 끓여주신 해장국을 원효대사가 밤중에 해골바가지 물마시듯 맛있게 먹고 덩치 큰 또 한 친구를 불러 관광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