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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국풍이 소점한 자리라 해서 많이 알려진 묘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면 깜짝 놀란다. 맥도 잘 안보이는 곳에 묘역을 조성하고 경도가 심한 곳에 묘를 썼는데 과연 국풍이 썼을까 의문이 드는 곳이다. 향법으로도 잘 맞지 않고 앞쪽 조안은 묘역을 찌르고 있다. 백호 또한 묘역보다 낮아서 요함이 크다. 산쪽으로 마을 집들이 폐가가 많다. 이는 묘역의 바람이 산과 집이 있는 마을을 드나들면서 가장자리에 있는 집을 충살하여 일어나는 현상이다. 장말손선생은 크게 관직을 한 것도 아니고 왕의 인척도 아닌데 왕이 국풍을 시켜 자리를 잡아주라고 했다하니 무슨 연유가 있을 법 한데 기록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 여러 의구심이 드는 곳이다. |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1431(세종 13)∼1486(성종 17).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윤(景胤).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이고, 아버지는 현감 장안량(張安良)이며,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463년 승문원박사를 거쳐 한성참군·사헌부감찰·함길도평사를 역임하였다. 1467년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예조좌랑으로서 진북장군(鎭北將軍) 강순(康純)을 따라 평정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녹훈되고, 내섬시첨정에 임명되었다. 1470년(성종 1) 장악원부정을 거쳐 행부사직·첨지충추부사·행사직을 역임하고, 1479년 해주목사에 임명되었으며, 1482년연복군(延福君)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미지정 |
문화재명칭 |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묘 |
소재지 | 경북 예천군 호명면 본포리 산 39 |
관리자(연락처) | 인동장씨 |
▼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신도비에서 바라본 장말손 묘
▼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묘 전경
▼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묘... 현무정은 탐랑으로 보기 좋다.
▼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묘... 묘역은 매우 가파르며 경도가 심해서 용이 멈추지 못한다.
▼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묘비
▼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구묘비
▼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묘 석물... 무인석을 세울 수 있는 곳도 아니지만 무인석 자체도 아주 조잡스럽다.
▼ 장말손(張末孫) 묘 백호는 움푹 꺼져 있다.
▼ 장말손(張末孫) 묘
▼ 장말손(張末孫) 묘 도두... 양룡으로 내려와서 밋밋한 가운데 도두도 불분명하다.
▼ 장말손(張末孫) 묘 후경... 앞쪽 조안이 혈장을 향해 찌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향은 수구처로 향했다. 수구처에는 장말손 신도비가 있다. 향법으로는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