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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하늘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_오십의 운명
제1절 운이란 좋고 나쁨이 없다_운
하늘의 도가 운을 행하여 만물을 낳아 기르는 것이다.
天道運行 生育萬物也. (이천역전 제1괘 중천건괘 단전 ; 19쪽)
운은 이처럼 예정된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글자에 담고 있다. (...) 운이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예정대로 달성하는 힘을 말한다. 그러므로 '운이 좋다, 나쁘다'보다는 '운이 강하다, 약하다'는 표현이 보다 부합한다. (...) 왜냐하면 사람 자체가 운이 아주 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이 세상의 만물은 기립지물(氣立之物)과 신기지물(神機之物) 둘로 나눈다. 기립지물은 바위와 나무처럼 '기운에 의해 그저 서 있는 존재'를 말하고, 신기지물은 곰과 사람처럼 '정신이 기틀(몸) 속에 들어선 존재'를 말한다. (...) 사람은 신기지물 중에서도 가장 운이 강한 존재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제일의 운인 갑기토운(甲己土運)을 부여받은 것이다. (20-22쪽)
결국 이루고자 하는 일을 예정대로 달성해 내는 강한 운을 부여받은 사람은 그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 이처럼 스트레스의 극단에까지 나아갔기 때문에 운이 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보다도 더 운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 대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 이것이 운의 비용이자 대가다. (25쪽)
공자가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자공이 말했다. "스승님이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는 무엇을 진술하겠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시더냐? 사계절을 운행하고 만물을 낳건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시더냐?"
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논어 양화편 제19장 ; 27쪽)
제2절 길흉을 만나야 대업을 이룬다_길흉
역에는 태극이 있으니,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는다.
사상이 팔쾌를 낳으니, 팔괘가 길흉을 정하며,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계사상전 제11장 ; 29쪽)
앞서 사람에게 부여된 운이 이미 충분히 강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언제나 자신에게 부여된 운이 부족한 듯 느끼곤 한다. 이 때문에 언제나 운이 좋아지길 바라는 것이다. 이처럼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람이 언제나 '길흉'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29-30쪽)
길흉이란 바라는 것을 잃고 얻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회린이란 그것에 작은 하자가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吉凶者 言乎其失得也.
悔吝者 言乎其小疵也. (계사상전 제3장 ; 30쪽)
하늘의 계시를 기록한 역경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의 결과를 '길흉회린' 네 가지로 평가한다. 이때 '길'이란 '바라는 것을 얻은 경우'를 말하고, '흉'은 '얻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회'는 '바라는 것을 얻긴 얻었는데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미련, 아쉬움, 회한 등)이 남는 경우'를 말한다. '린'은 '바라는 결과를 얻긴 했지만 그 주어진 결과가 좀 인색한 경우'를 가리킨다. (30쪽)
역경은 주인공인 군자가 인생의 여행길을 답파해 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 여행길에서 군자가 맞이한 결과를 놓고 보면 길(吉)이 141회, 흉(凶)이 57회 등장한다. 회(悔)가 32회, 린(吝)은 20회 등장한다, 길흉만 놓고 보면 그 비율은 대략 70대 30이다. 길한 일이 흉한 일보다 두 배 넘게 많으니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흉한 일이 57회나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역시 힘든 세상이라고 해야 할까, 바라는 것을 얻기 얻었어도 미련이나 아쉬움, 회한이 남는 것은 또 어쩔 것이며, 바라는 것을 기왕 줄 것이면 마음에 차게 줄 일이지 왜 또 인색하게 준다는 말인가. (30-31쪽)
* 중국 지도층에서 준거로 삼고 있는 70 대 30 변증법의 근거로 삼을 만한 내용이며, 에드 디너 등이 집필한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에 나오는 17%의 어둠의 행복을 상기할 수도 있음. (박희택)
어째서 하늘이 창조한 이 세상이 지극히 평탄하지 못하고, 길흉 같은 것이 존재할까? (...) 서두에서 제시한 계사상전 제11장이 이 질문에 대한 역경의 대답이다. 이를 보면 '대업'을 낳기 위해 길흉이 존재한다는데, 여기서 대업이란 앞서 말한 만물을 낳아 기르는 것, 즉 천지 창조를 가리킨다. (...) 계사상전 제11장의 내용을 그림으로 제시하면 [그림1]과 같다. 이는 우주를 낳은 근원적 '일자(一者)'로부터 우주의 삼라만상이 펼쳐져 나간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일자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비롯한 근원을 지칭하는 철학 분야의 용어다. (...) 이 태극이 궁극의 일자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에는 태극이 있다'라고 했으니, 역이 일단 작용을 일으키고 나서 태극이 있기 때문이다 (31-32쪽)
* '일자'는 '무극'을 지칭하며, [천부경]과 하이데거도 '일자'를 말함. (박희택)
'태극이 양의를 낳는다'에서 양의(兩儀)는 음과 양의 대대(待對) 구조를 말한다. 대대란 서로 의지하는[待] 동시에 서로 대립하는[對] 관계를 뜻하는 말로, 이는 우리 우주의 삼라만상이 이러한 대대의 상호분리를 통해 생겨나고 존재하게 되는 원리를 뜻한다. (34쪽)
* '待對'를 '對待'로 표기하기도 함. (박희택)
20세기에 이르러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닐스 보어는 물리적 세계에서 모든 성질은 상보적으로 쌍을 이룬 켤레로서만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이후로 오늘날 물리학에서는 우주의 기본구도가 대칭을 이룬다는 사실을 하나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통해 점인들이 상고시대에 내려받은 계시가 틀림없는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4-35쪽)
* 닐스 보어(1885~1962, 덴마크 물리학자)의 이러한 분석을 '상보성의 원리'라고 함. (박희택)
모난 모습에 따라 동류끼리 모이고 만물이 무리로 구분되니 길흉이 생겨난다.
方以類聚 物以群分 吉凶生矣. (계사상전 제1장 ; 35쪽)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며,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간다.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문언전 ; 36쪽)
이 역시 천지만물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동류끼리 서로 애착하는 성질이 있다는 말이다. 결국 하늘과 태극을 떠나 천지만물이 생기고 나면 모난 모습에 따라 동류끼리 모이고 무리로 구분되며, 이후 동류끼리 서로 애착하고 미워하는 경향이 생기니 결국 길흉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경이 파악한 이 우주의 모습이다. (36쪽)
길흉이란 정함을 이기는 것이다.
천지의 도는 정함이 보아 내는 것이다.
일월의 도는 정함이 밝히는 것이다.
천지의 움직임은 정함 무릇 이것 하나인 것이다.
吉凶者 貞勝者也.
天地之道 貞觀者也.
日月之道 貞明者也.
天下之動 貞夫一者也. (계사하전 제1장 ; 37쪽)
'정(貞)하다'는 것은 역경이 볼 때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자세 중 하나다. 윗 구절을 통해, 천지의 움직임은 오직 정함 하나일 뿐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정하다'는 개념이 역경에서 그토록 중요하니 여기서 살펴보기로 하자. 나머지 둘은 추후에 살펴볼 것이다. (...) 역경에서 '정(貞)하다'는 표현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고 처음에 품었던 뜻을 올곧게, 굳게 지킨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의미를 명쾌하게 우리말 단어로 옮기기 어려워서 필자는 '정하다'는 표현을 그대로 쓴다. (37-38쪽)
* '세 가지'는 有攸往, 有孚, 貞을 말하는 바(강기진, [삶이 불안할 땐 주역 공부를 시작합니다], 위즈덤하우스, 2024, 241쪽), 이 '세 가지'에 대한 언급은 49쪽, 51쪽 등에도 나옴. (박희택)
역경에는 일반적인 정(貞) 외에 안정(安貞), 빈마지정(牝馬之貞), 유인정(幽人貞), 간정(艱貞), 석서정(鼫鼠貞), 무인지정(武人之貞) 등 사람의 정한 마음가짐이 7가지 종류로 구분되어 쓰였다. (...) 은나라의 점인들이 보기에 이 세상에 길흉이 존재하는 이유는 정한 사람이 이기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 이 세상에 흉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태한 사람, 방만한 사람, 약삭빠른 사람들이 길운을 다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흉운을 섞어 넣음으로써 흉운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이기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세상의 구조라는 것이다. (38-39쪽)
이 세상에서 참으로 좋은 것은 그 무엇이든 시련을 통한 단련을 거친다. (...) 결국 하늘은 이 세상을 창조할 때 길운과 흉운을 70 대 30의 비율로 섞어 넣음으로써 깊은 맛을 지닌 진선미가 꽃을 피우도록 했고, 그에 따라 천지창조라는 대업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천지창조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길흉이 있어야 한다는 역경의 말을 쉽게 부정하기도 어렵다. (40-41쪽)
* '70 대 30'에 관해서는 31쪽에도 나옴. (박희택)
제3절 가고자 하는 바가 분명해야 하늘도 돕는다_운명
곁에서 나란히 행하되 휩쓸리지 않는데,
하늘을 즐기고 명을 아는 고로 우려하지 않는다.
旁行而不流,
樂天知命故 不懮. (계사상전 제4장 ; 42쪽)
운명의 사전적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어떤 대상에게 일어날 미래의 일을 뜻하는 것으로서, 다소 좋지 않은 일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 운명의 작용에는 오만한 자의 무릎을 꺾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세상의 신비를 보여 주는 것이지 '좋지 않은 일'이 아니다. (42-43쪽)
운명이란 길흉의 질곡을 뚫고 자신에게 부여된 명을 향해 운전해 가는 것이다. 운이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예정대로 달성하는 힘이라 했다. 하늘이 내린 명을 이루라고 부여된 힘이 운인 것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부여된 강한 운인 갑기토운의 힘을 발휘해서 길흉을 뚫고 자신이 명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44쪽)
* 명을 운전해 감(명+운) = 인을 연으로 가꾸어 감(인+연)이기에 '운명'과 '인연'은 상통함. (박희택)
군자는 자신에게 하늘이 부여한 명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군자는 길흉의 질곡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헤쳐 나간다. 반면 소인은 자신에게 명이 있음을 알지 못하기에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안위에만 집착하는 사람이다. (...) 군자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명이 있기에 마냥 남들과 휩쓸려 지낼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사실 편안치 못하다. (...) 더 나아가 군자에게는 흉한 일이 닥칠 수 있다. 주변과 함께 휩쓸리지 않는 군자를 고깝게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놓인 군자에게 구원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역경은 '명을 아는 것'이 군자의 구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자는 '하늘을 즐기고 명을 아는 고로 우려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46-47쪽)
하늘이 내린 명은 나의 존재 목적이다.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 낼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만큼은 타당한 것이다. 자기가 이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 낼 수 있다. (...) 명을 이루기 위해 써야 할 자신의 힘을 공연히 낭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군자가 취하는 태도가 낙천(樂天) 즉 '하늘을 즐기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뜻이 통하지 않아 불편한 상황에서도 군자는 하늘의 도가 운행하고 있음을 알기에 낙천할 수 있다. 하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기에 인간의 감각에는 더디 흐를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사필귀정할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하늘의 뜻이 어떻게 펼쳐져 가는지를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48쪽)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있음은 군자의 뜻이 명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有隕自天 志不舍命也. (제44괘 천풍구괘 5효사 상전 ; 50쪽)
무엇보다 사람이 자신의 명을 알지 못하면 자기 삶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자신의 삶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지난 삶인 과거도 뒤범벅이 되어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사랑할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지나온 삶인 과거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 오십에게 주어진 과제는 자신의 명을 정립함으로써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날의 의미를 명확히 정립하는 것이다. 그때라야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고, 그래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다. 그때라야 비로소 '아모르 파티'가 가능하다. (51-52쪽)
제4절 모두가 각자 인생의 일등이다_팔자
시초의 덕은 원을 이루어 신묘하고,
괘의 덕은 모남이 있어 할 일을 아는 것이다.
蓍之德 圓而神,
卦之德 方以知. (계사상전 제11장 ; 53쪽)
세상 만물을 표상하는 64괘의 모습은 어떠한가? (...) 모두 궁극의 일자인 하늘이 펼쳐진 결과로 생겨난 것이지만, 어느 것 하나 모난 모습을 벗어난 것이 없다. 사람 역시 세상 만물에 포함되므로 이는 사람 역시 모두 모가 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은 둥글고 원만한 모습이 아니며 완전무결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자꾸 자신의 팔자를 탓하게 되는 것이다. 일찍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 카를 융은 모든 인간의 내면은 불균형하며, 또한 이러한 불균형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적절하게 지적한 바 있다. 사람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불균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54-55쪽)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이른다.
天命之謂性. (중용 제1장 ; 56쪽)
이 성(性)은 의식 이전의 것으로 하늘이 내게 부여한 것이다. 성은 내 마음의 씨앗이자 핵으로, 이후 나의 성질, 성격, 특성, 가능성 등이 모두 이 성에서 비롯한다. (...) 원래의 성은 하늘이 부여한 '신령한 성'이라는 의미에서 영성으로 부르고 있다. 불가에서는 대개 본성으로 칭하며, 대승불교의 심학자들은 여래장 또는 장식(藏識)으로도 명명했다. (56-57쪽)
* '영성'은 '불성(佛性)' 또는 '자성(自性)'을 말함. (박희택)
영의 바깥 층위에 모남이 있는 혼백이 자리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심학자들이 아뢰야식이라 불렀고, 서양의 신비주의 사상에서는 아스트랄체라고 부르며 주목해 온 내면의 영역이 바로 이것이다. (...) 우리 의식은 가장 바깥 층위에 가서야 비로소 즉 가장 표층에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은 평상시 마음속 심연에 잠겨 있는 영성과 혼백의 심층 구조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이 눈을 감고 명상이나 삼매에 드는 이유가 바로 마음의 심연으로 깊이 내려가서 혼백을 넘어 순수의 결정체인 영성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57-58쪽)
인간의 혼백이 완전무결한 둥근원인 영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크게 튀어나온 부분과 움푹 들어간 부분이 있어서 모가 나 있다는 사실이다. 카를 융이 인간의 내면에서 관찰해 낸 불균형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균형은 왜 존재할까? 우선 이는 완전무결한 영성이 유한한 물리 공간인 인간 육체의 형질에 담기면서 그 제약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 혼은 '하늘에서 내려온 부분(영성의 반영)'이고, 백은 '땅에서 연유한 부분(형질의 반영)'이다. 이 때문에 별도로 혼을 '신령한 혼'이라는 의미에서 영혼이라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심층 구조에서 혼백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처럼 각기 하늘과 땅에서 연유한 이원성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핵심 특성이다. (59쪽)
하늘과 땅에서 연유한 이원성이 합쳐져 생긴 것이다 보니 모난 모습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이를 보면 둥근 영성에 그대로 머문다면 아무런 운동력이 없기 때문에 혼백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영성의 상태로는 아무런 창조가 일어나지 못한다. 반면 혼백같이 한 방향으로 모가 나면 그 방향으로 흐르는 방향성이 생기고 그로 인해 운동 에너지가 생긴다. (...) 역경이 말한 모남[方]이 있어서 '자기 할 일을 안다'는 것이 이를 말한다. (...) 혼백같이 모남이 있어서 자기 할 일을 알 때 비로소 예술혼을 불태우고, 투혼을 불사르며, 혼을 다 바치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세상에는 온갖 삼라만상이 피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팔자는 이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60-61쪽)
* '모남' = '팔자'는 기질의 긍정적 측면을 말함(80쪽 참조). (박희택)
자아가 주동이 되어 나의 마음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만, 나의 마음 전체에서 보면 이 자아는 아주 작은 부분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혼백의 방향성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 혼백의 심층적인 힘이 자신의 의식, 의지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느끼기에 "아이고, 내 팔자야" 하고 팔자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61쪽)
사람은 자신에게 새겨진 팔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운이 좋아질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늘이 원하는 방향이 그쪽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천명 역시 자신에게 부여된 팔자의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그림 5]같이 공동체 전체가 조화로운 원을 이루는 데 기여하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하늘의 천지 창조 대업에 기여한다는 말 역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63-64쪽)
제5절 도망치기 때문에 팔자가 꼬인다_기인
신비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기인에게 달려 있다.
묵묵한 가운데 이루고 말 없는 가운데 믿는 것은 덕행에 달려 있다.
神而明之 存乎其人.
默而成之 不言而信 存乎德行. (계사상전 제12장 ; 65쪽)
일찍이 카를 융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한 예수의 말씀에 크게 주목했다. (...) 예수의 이 말씀은 예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몫의 십자가 고통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인생의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융은 각자에게 주어진 자기 몫의 십자가 고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는 불균형, 부조화, 결핍, 결점, 상처 등등. 아무리 떼 내고 싶어도 떼 낼 수 없는 지긋지긋한 그것, 그것이 초래하는 고통 등등이 각자의 십자가라는 것이다. (67-68쪽)
* 예수의 말씀은 [누가복음] 14:27에 나옴. (박희택)
결국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이러한 불균형이 초래하는 고통을 감내하고 자기 삶을 기꺼이 부둥켜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결점을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것, 이에 대해 눈감고 외면하지 않으며 기꺼이 짊어진 채 자기 자신의 운명을 살아 내는 것이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무의식 중에 이러한 십자가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진다. (...) 자기 팔자가 지시하는 삶을 살아 낼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팔자가 꼬이기 시작한다. 팔자가 꼬이는 것은 스스로 팔자로부터 도망치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68쪽)
사람에게는 비관적인 전망을 낳게 하는 동물적 욕구 외에 영혼의 욕구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전일성(全一性)에 이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이는 인간의 혼이 영에 이르고자 하는 욕구다. [그림 6]에서 b방향의 내면의 결핍을 채워 완전한 영에 이르고자 하는 욕구다. 이 욕구가 사람의 영혼이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인간 내면의 결핍에는 큰 뜻이 있는 것이다. 이를 느끼는 인간 정신의 감수성이 사람을 깨어 있게 만들고, 사람을 살아 있는 영혼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신비가 존재함을 밝히는 '기인(其人)'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70쪽)
나는 하늘이 기다려 온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지금의 나 이외에 아무도 없음을 알 수 있다. (...) 마음먹고 걸으면 나는 이 길을 아주 잘 걸을 수 있다. 하늘의 도움 역시 음으로 양으로 따를 것이다. (...) 이처럼 나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천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72쪽)
제6절 결국 자기 생긴 대로 사는 법이다_기질
태소음양인의 식견과 재능은 각각 장점이 있으니, (...)
온갖 행동이 각각 같지 않아서 다 그 오묘함을 달리한다.
太少陰陽人 識見才局 各有所長, (...) 凡百做造 面面不同 皆異其妙. (동의수세보원 사상인변증론편 ; 74쪽)
자신의 성격에서 초래되는 마음의 괴로움을 간직한 분은 자신에게 새겨진 기질의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질은 혼백에서 백이 초래하는 측면이다. 완전무결한 성(性)이 유한한 인간 육체의 형질에 담기면서 성질을 이룬다. 그러므로 원래는 성질로 써야 맞는데, 오늘날 성질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달라지면서 지금은 흔히 기질로 부르고 있다. 이 기질에는 장점과 단점이 반드시 있다. 그리고 기질은 반드시 마음의 아픔을 초래한다. 이 사실은 사상의학을 정립한 동무 이제마가 밝힌 것이다. 동무는 평생 역경이 제시한 성이 인간에게서 어떻게 발현하는지를 천착했다. 그 결과 역경의 사상(四象)에 대응하는 사상체질의학을 정립했다. (74-75쪽)
네 가지 체질인 태음인, 태양인, 소음인, 소양인에 대한 언급은 고대의 [황제내경]에 이미 나타나므로 그 유래가 오랜 것이다. 하지만 [황제내경]의 단계에서는 아직 연구가 정밀하지 못하여 태소음양인에 대해 대략 외형만 말할 뿐 오장의 이치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동무의 사상의학에 이르러 오장인 간심비폐신의 강약에 따른 기질의 차이를 바탕으로 사상체질의학이 정립되었다. 특히 동무가 남긴 위대한 업적은 우리 마음의 문제를 풀었다는 것이다. 동무는 우리의 마음이 몸의 주재자이며 이 세계의 주재자임을 밝혔다. 종래의 의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음과 몸을 별개로 다루었다. 그러나 동무는 사상의학을 통해 마음이 치우쳐 고착한 것이 몸의 병이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상의학에서는 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먼저 마음 건강을 회복할 것을 가르친다. 마음이 건강할 때 천수를 온전히 누려 장수할 수 있고, 원기를 보전하여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무의 저서 [수세보원]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75-76쪽)
동무는 사람이 보다 많은 체질로 나뉨을 알았다. 실제로 질병에 대한 처방은 여덟 가지 체질로 나누어 제시하기도 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팔체질'이 이것이다. 이는 역경의 체계에서 사상이 아닌 팔괘에 대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동무의 사상체질을 각각 넷으로 나누면 MBTI의 16성격이 되며, 이 16성격을 다시 각각 넷으로 나누면 64괘가 된다. 결국 사람의 성격 유형은 총 64가지이며, 앞서 [그림 5]가 바로 인간의 성격 유형이 총 64가지임을 보여 준다. (...) 동무가 남긴 통찰의 진면목을 알면, 무지막지하게 시대를 앞서갔던 대천재를 보게 된다. 이런 분이 한반도에 나셨음은 모든 한국인의 기쁨일 것이다. (76-77쪽)
체질(기질)은 사람에게 새겨진 결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만물에는 각자 독특한 결이 있으니, 이는 만물이 각자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늘이 부여한 것이다. 사람에게 새겨진 결도 마찬가지다. 하늘은 사람이 천명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므로, 사람이 각자 천명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도록 그에 맞는 결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에게 새겨진 결(기질)을 받아들이 걸어 나가면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 하늘이 사람에게 이처럼 독특한 결을 부여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면, '모남이 있어 할 일을 아는 것'이라는 역경의 통찰을 다시금 주목하게 된다. (...) 이에 대해 '사람이 모가 났다'는 비판이 따르기도 하고, 스스로도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하고 괴로워하지만, 달리 보면 이것이 바로 하늘의 의도한 바라고 할 수 있다. [그림 5]가 상징하는 하늘의 뜻은 각 사람이 자신의 체질·기질대로 고집을 부려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비타협적으로 자신에게 새겨진 결의 방향대로 나아가 하늘의 뜻을 실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 하늘은 천지창조를 이루기 위한 대리인으로 사람을 낳은 것이며, 사람 각자가 자신의 팔자의 길로 나아가도록 그에 합당한 독특한 결을 부여한다. 그 결과 사람은 자기 기질대로, 자기 고집대로 자신의 길을 나아가며 좌충우돌 모난 모습을 보인다. 또한 그 결과 이 세상에는 천지창조의 진선미가 만발하게 되는 것이다. (78-80쪽)
* 기질의 긍정적 측면을 말하고 있음(60쪽 참조). (박희택)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 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허준이 교수의 말 ; 81쪽)
제7절 성실하게 궁리하되 집착하지 마라_낙천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뜨리고 겸허한 것을 이롭게 하며,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변하게 하고 겸허한 쪽으로 흐르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하고 겸허한 것에 복을 주며,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고 겸허한 것을 좋아한다.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제15괘 지산겸괘 단전 ; 84쪽)
간절히 바라면 바랄수록 온 우주가 방해한다. 사실 간절한 염원을 간직한 사람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간절한 염원(가고자 하는 바)이 있기에 이를 실현시키고자 불철주야 노력하는 사람이 군자다. 그 노력이 이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에 역경은 군자를 위한 조언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 조언은 간절한 염원이 잘못 흘러갈 경우 도리어 반작용을 부를 수 있다고 말하니 유의할 일이다. (85쪽)
운명은 작용은 끝내 오만한 자의 무릎을 꺾어 놓는다. 이렇게 하늘은 늘 강한 자를 무릎 꿇게 만들고 약한 자를 보살피고 있다. 약자를 해치려 드는 하늘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세상은 늘 돌고 돈다. '시초의 덕은 원을 이루어 신묘하다(53쪽 참조)'라는 것이 이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하늘의 뜻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신비를 발하고 있는 그러므로 간절한 염원이 있는 사람은 그 염원이 잘못 흘러 가득 찬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걸 이루지 못하면 내 인생은 의미가 없다'는 태도는 아주 위험하다. 바로 간절히 바라는 그 염원 하나로 가득 찬 것이다. 이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집착으로 가득 찬 것이다. (87-88쪽)
온통 집착하는 것이 과연 이루어질까? 온 우주가 미워하고 방해한다는 것이 역경의 조언이다.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나? 낙천(樂天)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무언가 하늘의 뜻이 있을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에는 나의 이해를 넘어선 하늘의 뜻이 있을 것이다. 군자는 이러한 하늘의 뜻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88쪽)
* 역경의 '낙천'은 철학 일반의 '낙관'과 같은 의미이며,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의미치료)에서의 '비극적 낙관주의'와도 통함. (박희택)
이치를 궁구해서 성을 다함으로써 명에 이르는 것이다.
窮理盡性以至於命. (설괘전 제1장 ; 93쪽)
여기서 '성을 다한다'는 (...) 하늘이 내게 부여한 성에서 비롯하는 나의 성질(기질), 특성, 가능성 등을 다 펼치는 것을 말한다. 역경은 이처럼 각자에게 부여된 성질, 특성, 가능성을 다 펼침으로써 명에 이르는 겻이 사람의 인생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에게 부여된 특성과 가능성을 다 펼치기 위해서는 이치를 궁구하는 궁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 궁리의 대상은 [그림7]의 인생 여행 과정에서 마주치는 연을 통해 나에게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이다. 달리 말하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우리의 삶을 휘둘러 대는 변덕스러운 우연들 즉 흉운이다. 결국 역경은 우리가 삶을 통해 마주치는 흉운을 달리 볼 것을 촉구한다. (93쪽)
* '궁리진성'은 군자의 방식임. (박희택)
우리 각자는 이 세상과 우주의 중심이다. (...) 나의 우주는 중심인 나와 내가 관계를 맺은 연(사람·사건 · 사물)으로 구성된다. (...) 천명은 무엇인가? 나의 우주를 이루어 준 나의 연들을 통해 하늘이 내게 비친 뜻이 나의 천명이다. 나의 천명은 나의 연들을 통해 내게 찾아오는 것이다. 나는 매일 새로운 사건과 마주친다. 그에 따라 나의 천명도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 인생에서 무엇도 잘못되지 않는다.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그에 합당한 새로운 천명이 나에게 제시되는 것이다. 귀천하는 날까지 부지런히 길을 걸어가면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나의 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맺은 연들은 각기 하늘의 대리자이므로 내 뜻대로 좌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낙천해야 하고, 또 낙천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벌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무언가 나의 이해를 넘어선 하늘의 뜻이 있을 것이다. (...) 낙천의 지혜를 깨칠 때 오십은 비로서 비상할 수 있다. (95-96쪽)
제8절 오십은 용이 비로소 하늘에 오를 때다_오십
양 기운이 다섯에 이르니, 날아야 할 용이 비로소 하늘에 오른 상이로다.
대인을 만나야 이로우리라.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제1괘 중천건괘 5효사 ; 97쪽)
자신의 기질을 넘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더 이상 운에 치이지도 않는다. 변덕스러운 우연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고삐를 틀어쥐고 주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99쪽)
* '객관화'는 기질의 부정적 측면의 극복함을 말함. (박희택)
성인이 일을 이룸에 능한 것은 사람들이 도모하고 귀신이 도모하며 백성이 더불어서 해내는 것이다.
聖人成能 人謀鬼謀 百姓與能. (계사상전 제12장 ; 101쪽)
임이 진정 천명의 길로 나아간다면,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마치 태초부터 임을 돕기 위해 그곳에서 기다려 온 듯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102쪽)
무릇 배우는 사람은 그 스스로 많이 하려 드는 것을 덜어내어 빔으로써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면 능히 널리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도는 완성되면 필히 변하는 것이니, 무릇 가득 참을 직접 지니면서 오래간 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 그 차고 빔을 조절하여 자기 스스로 가득 채우려 하지 않아야 능히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다.
夫學者損其自多 以虛受人. 故能成其滿博也. 天道成而必變, 凡持滿而能久者 未嘗有也. (...) 調其盈虛 不令自滿 所以能久也. (공자가어 육본편 제8장 ; 103쪽)
인생의 절정에 이른 오십에게 불안이 찾아오는 이유 중 하나는 그로 인해 겸허하게 만들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함이다. 쉽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천지의 오묘한 조화다.
무릇 스스로 덜어내는 자는 필히 더하게 될 것이고,
스스로 더하려는 자는 필히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감탄하는 것이다.
夫自損者必有益之,
自益者必有決之.
吾是以歎也. (공자가어 육본편 제8장 ; 104쪽)
그러므로 사람이 나이가 오십에 이르렀는데도 독불장군이라면 곤란하다. 그래서는 결코 오십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단 한 사람이라도 대인이 있어야 한다. 대인이란 군자와 동급인 사람을 말한다. (...) 낙천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은 기꺼이 비어 있음으로써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낙천하는 사람은 가고자 하는 바가 있지만 그 염원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그 염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무언가 하늘의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처럼 집착하지 않는 그의 태도, 하늘을 즐기는 태도가 도리어 능히 큰일을 이루어 낸다. (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