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오빠
어릴 적 우리 집은 대식구였다.
할머니, 부모님, 우리 오남매에 큰오빠가 일찍 결혼을 해 조카도 낳고 해서 꽤 많았는데 내가 우리 식구라고 치는 이가 한 명 더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바 오빠다.
그 오빠는 한동네 살면서 형편이 어려워 우리 집에 일꾼으로 와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를 ' 아바'라 불렀다.
물론 이름은 따로 버젓이 있었지만 그 오빠가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라 말을 배울 수 없었다.
단지 그가 낼 수 있는 소리는 아바바바~~하는 단음뿐이니 사람들에게 아바로 불리게 된거다.
일꾼이라지만 아버진 그 오빠를 한 식구처럼 여겨 밥도 큰오빠랑 꼭 겸상으로 차리게 했다.
밥상을 세 군데나 차리느라 올케, 나, 언니가 늦게서야 밥을 먹을라치면 꼭 천둥처럼 우렁우렁한 아버지의 목소리~
"얘, 에미야. 저기 아바 밥 좀 더 갖다줘라"
아버지는 아마 밥을 많이 먹는 만큼 일도 많이 하리라 믿으셨나보다.
그런 그 오빠랑 나랑은 다른 어느 식구보다도 친했다.
큰오빠와 둘째오빠는 나이 차이가 많이나서 아버지보다 무서웠고 바로 위 오빤 연년생이라 눈만 뜨면 싸우니 웬수같았고
언니는 제 또래하고만 어울렸다.
그러니 살갑게 대해주는 그 오빠를 따를 수 밖에....
개구리 뒷다리의 맛도 그 오빠로 인해 알았고,
그 오빠의 지게에 올라타 산에 가서 캐먹은 달콤쌉쌀한 칡뿌리의 맛, 나무로 만든 새총은 어떻게 겨누어야 머스마들 뒤통수를
명중시키는지, 또 산에서 새 알 찾는 법, 딱지 잘 접는 법, 싸울 때 주먹을 어떻게 쥐어야 한방에 상대의 코피를 터뜨려 이길 수 있는지
그 오빠가 아니면 내가 어찌 알았으리?
무릎이며 정강이에 피멍이 들도록 배운 자전거도 그 오빠가 아버지의 눈총을 받아가며 열심히 잡아준 덕이다.
그런 그를 두고 아버진 늘 안타까워 하셨다.
"쟤가 성하게만 태어났어두 웬만한 눔덜 대여섯은 상대두 못될거여"
그랬다.
그 오빤 난청을 극복하다보니 다른 기관이 발달했는진 몰라도 눈치가 기가 찼고 손끝은 짜고 매웠다.
여름엔 외양간에 소꼴이 늘 가득했고 집안팎 청소며 조금이라도 허술한 곳은 못질, 망치질로 단단히 해 놓았다.
겨울 지나 봄이 되어 밭갈이를 할 때면 우리 집 소가 젤 기름이 잘잘 흐르고 실하다고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으곤 했다.
그 당시엔 수화는 없었지만 손짓 발짓으로도 충분했다. 웬만한 대화는 다 통했으니 말이다.
근데 그런 그 오빠가 정말 불쌍하고 애잔해 보였던 적이 한 번 있었다.
내가 5학년 때 쯤인가?
하루는 우리 집 부엌 수리한다고 농협 구판장에 가서 리어카에 시멘트 대여섯 포를 싣고 그 오빠는 끌고 난 밀고 하며 집으로 오는데
그 당시 좀체 보기 힘든 멋진 양장차림의 아가씨가 지나가는 게 아닌가?
그러자 그 오빠, 얼른 리어카를 멈추고 입에 손가락을 넣어 휘파람을 부는데 제대로 된 소리가 아닌 헛바람 소리만 요란하게 났다.
처음엔 웃기만하던 내가 귀를 가리키며 안들린다고 하자 더 세게 불라는 줄 알고 헛바람만 불어대는 사이 그 아가씨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때 그 오빠의 표정이라니....
한창 춘정을 느끼며 청춘을 만끽할 나이에 청춘은 커녕 제대로 된 구애조차 못하고 있으니 어린 내 눈에도 측은할 정도면 그 부모는 오죽했을까?
그런 그 오빠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됐다.
우리 동네서 산을 몇 개 넘어에 있는 동네의 색시감은 신랑보다 장애가 조금 더 심했지만 다행히(?) 부자집이라
그야말로 처가로 장가를 가게 될 거라고 했다.
장가 가는 게 얼마나 좋았으면 겨우 중2 철부지인 나를 붙잡고는 겨우 한 번 본 색시감 얘기를 끝도 없이 해댔다.
색시가 얼마나 예쁘냐고 묻는 내게 귀밑이 찢어지게 신이 나서 설명하는 그 오빠의 손짓 발짓에 의하면
' 천하에 그런 양귀비' 도 없을 터였다.
난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또 서운했다.
마치 친오빠가 결혼하는 것처럼 말이다.
며칠 뾰루퉁해서 말도 안하니 그 오빠, 뒷산에서 따 온 내가 젤 좋아하는 깨금(개암 ) 몇 알을 손에 쥐어주며 자주 오겠노라 했다.
그렇게 장가를 간 그 오빠는 약속처럼 자주 못오고 대신 한동네에 사는 친가를 통해 들은 소식으론 두 내외 금실이
사방 오십리를 들썩이게 할 만큼 좋은 데다 부지런하고 똑똑하여 장인사랑이 말도 못한단다.
사뭇 잊고 있었을까?
그러는 사이 나도 결혼을 해서 큰아이 백일 지나 막 봄이 오고 있을 때 친정엘 갔는데 거기서 그 오빠를 만났다.
친정집 앞밭에서 얼갈이 배추 조금 솎아서 펌프질을 해가며 쭈그리고 앉아 씻는데 뒤에서 뭔가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아바바바~ 소리가 들렸다.
웬 소란인가 싶어 엉거주춤 일어나 뒤를 보니 세상에~세상에~ 그 오빠였다.
쭈그린 뒷모습만 보고도 난 줄 알아보고 그리도 숨가쁘게 뛰어 온 거였다.
나도 물이 잔뜩 묻은 손으로 그 오빠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 순간은 단발머리 계집애와 반가운 오빠의 눈물겨운 상봉이었다.
그 오빠, 부지런히 손발을 놀려가며 자기가 이미 아들 둘에 딸 하나 세 아이의 아버지이며 작년 겨울 본가로 들어와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며 아들이 자기를 닮아 잘 생겼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실제 그 오빠는 인물이 좋았다.
나 역시 큰애를 보여주며 아들이라고 하니 엄지를 척 세우며 내가 최고란다.
그 이후, 친정에 갈 때마다 그 오빠를 볼 수 있었고 그 때마다 얼굴 가득 주름이 지도록 웃으며 반겨주던 그 오빠,
워낙 몸이 부실하여 늘 자리보전을 하던 부인과 오래 전 사별을 했다.
그 때 비통해 하는 모습이라니.....
그러다가 나도 친정부모님이 돌아가시니 친정에 잘 안 가게 되었다.
큰오빠도 돌아가시고 큰올케만이 고향을 지키고 계시지만 이젠 조카들의 친정이 돼버리고 내겐 그냥 고향으로 남은 그 곳,
그래도 가끔 이렇게 옛 일을 추억하며 웃을 수 있고 생각만으로도 맘을 훈훈하게 해주는 아바 오빠가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