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밤은 깊었고, 우리는 이미 낮을 살고 있습니다”
본문: 로마서 13:11-14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여러분, 이런 경험 있으십니까?
알람은 울렸는데… 몸은 이미 깼는데… 다시 눈을 감는 순간이요.
분명 깼는데, 다시 잠듭니다.
이게 우리의 신앙 아닙니까?
말씀 들을 때는 깬 것 같은데…...
삶으로 돌아가면 다시 잠듭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말합니다.
“이제는 그럴 시간이 아니다.”
1.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 지금은 ‘카이로스’입니다(롬 13:11)
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시간을 살고 있습니까?
여기서 ‘시기’는 헬라어 카이로스(καιρός)입니다.
단순히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담김 결정적인 시간(때)를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테크의 시기, 은퇴의 시기, 자녀 교육의 시기에는 민감합니다.
하지만 정작 영적인 '카이로스'에는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잠자는 자의 특징은 세상의 성공과 안락함이라는 꿈에 취해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 바로 '영적인 잠'입니다.
지금은 “구원이 완성되어 가는 시간”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다”
이건 단순한 날짜가 아닙니다.
주님을 만날 현실이 가까워졌다는 선언이자 경고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시간에는 민감합니다.
집값 타이밍, 투자 타이밍, 자녀 교육 타이밍.....
그런데…
영적인 타이밍에는 둔감합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구원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깨어야 하는 이유는 망할까 봐가 아니라, 완성될 구원 때문입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보다, 내일의 생존과 안락함에만 집착하며 살아가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영적 무관심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세상의 꿈에서 깨어나십시오.
주님 오실 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닫는 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구원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지금 깨어야 합니다
2. 어둠을 벗고 빛을 입으십시오(롬 13:12)
12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성경은 지금의 시대를 '깊은 밤'이라고 정의합니다.
밤은 빛이신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모든 정신적,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세상이 갈수록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은 현상일 뿐, 그 본질은 '하나님 없는 어둠'입니다.
여기 ‘입자(엔뒤오, ἐνδύω) → 이는 마치 군인이 전투를 위해 군복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도덕적인 선행의 옷이 아니라 '빛의 갑옷'입니다.
이 갑옷은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우리가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How)"를 묻지만, 하나님은 "누구로 살 것인가(Who)"를 물으십니다.
신자는 세상에서 잘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빛의 자녀로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건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입니다
빛의 갑옷은 무엇입니까?
단순한 선행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우리는 빛이 아닙니다.
우리는 빛을 “입은 자”입니다.
이제 세상의 가치관(비교, 시기, 탐욕)이라는 낡은 옷을 벗어버립시다.
그리고, 매 순간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자각하는 '빛의 의식'(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착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입니다
어둠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정체성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3. 단정히 행하십시오 —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롬 13:13)
13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여기에 나열된 죄목들을 보십시오.
방탕, 술 취함, 음란, 쟁투... 이것들은 모두 '보는 이가 없거나' , '자신을 통제할 주인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여기서 단정히, 헬라어 유스케모노스(εὐσχημόνως) → 예의 바른 태도를 넘어, 질서 있고 품위 있게라는 뜻입니다.
그 품위는 어디서 옵니까?
왜 단정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코람 데오 (Coram Deo) 의식에서 나옵니다.
죄는 언제 드러납니까?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할 때
통제자가 없다고 느낄 때 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이미 영적인 낮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보고 계시고,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내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주님과의 동행이 주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 어느 유명한 조각가가 보이지 않는 신상의 뒷부분까지 정성껏 깎고 있었습니다.
행인이 "거기는 아무도 안 보는데 왜 그렇게 고생합니까?"라고 묻자 조각가는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까요." 이것이 단정한 삶의 핵심입니다.
: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은밀한 죄,
마음속으로 품는 시기와 질투가 주님 앞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정직한 삶을 구해야 합니다.
: 단정함은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 의식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식하며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품격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롬 13:14)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오늘 설교의 결론이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스스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수치를 가리려 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거부하시고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인간의 노력(무화과 잎)으로는 죄의 수치를 가릴 수 없기에, 누군가의 희생(가죽옷)이 필요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나의 공로나 의로움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대속하신 공로 뒤에 나를 숨기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옷이 나를 덮어주셔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칭의)
이 은혜를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옷에 걸맞은 삶을 살기 위해 주님과 기쁘게 동행합니다.(성화)
: 누더기를 걸친 거지가 왕자의 옷을 입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옷의 가치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라는 가장 존귀한 옷을 입은 우리가 어찌 다시 세상의 배설물을 탐하겠습니까?
: 내 결핍과 수치를 세상의 소유나 명예로 가리려 했던 시도를 멈추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으로 만족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 우리를 덮어주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를 의지하여 육체의 욕망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결론
신앙은 내가 얼마나 착해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밤이 깊어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끝까지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덮고 있는 '그리스도라는 옷' 때문입니다.
그분과 연합하여 그분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신앙의 전부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생존의 위기는 더욱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밤이 깊었다는 것은 새벽이 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낡은 옷을 던져버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주님과 동행하는 그 단정한 삶이 저와 여러분을 참된 평안과 승리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빛의 증거자로 여러분을 오늘 이 자리에 남겨두셨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밤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낮에 속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