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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오일장 날이다. 끝 자가 3과 8이 붙는 날에 서는 재래시장이다. 나는 신식 마트보다 재래시장이 좋다. 나는 장날과 쉬는 날이 같으면 시골냄새가 풍기고 정겨운 이 장날을 꼭 간다. 어려서 대구에 살 때 시장이 서는 날이면 엄마는 꼭 기미가 없어지는 동동 구리무와 커다랗고 노란색의 꽃무늬가 있는 곽에 담긴 분을 사셨고 우리를 위해 물방울 땡땡이 옷을 사다 주셨다.
그리고 ‘둥둥’ 북을 치고 약을 파는 아저씨한테 아주 작은 통에 담긴 호랑이 기름도 꼭 사셨다. 아래 남동생이 어찌나 개구쟁이였는지 모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넘어져 오고 동네 친구들과 싸우다 긁혀서 오곤 하였다. 그 시절에는 그 호랑이 기름이 만병통치약이었다. 지금의 후시딘 같은.
시어머니께서는 장날이 서는 날은 소풍 가는 날이라 하셨다.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꼭꼭 감추어 놓은 참깨나 앞마당의 감나무에서 딴 감으로 말린 곶감을 가지고 저 건너 사는 동생 주려고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시장에서 만나 자장면도 드시고 서로 가지고 온 물건들을 바꾸어 오시곤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시면 미처 못 갖다 준 물건을 챙기며 다음 장날을 기다리셨다.
이곳 일산 장날에는 예전 같은 모습은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뻥튀기’ 아저씨가 꼭 오는 날이다. 마침 일요일이고 날씨가 좋아서 손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며느리는 친정어머니가 보내셨다고 보리를 가방에 한 가득 넣어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볶아서 보리차를 만들 생각이다.
‘뻥’ 아저씨한테는 벌써 튀겨야 할 콩, 옥수수, 쌀, 누릉지 등이 깡통에 담겨 줄을 이어있다.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그사이 시장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손자 아이들 신기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 생선가게 앞에서 꽃게의 집게발을 보고 자리를 못 뜬다. 양손 손가락 두 개씩을 집게로 만든다. “이렇게 물어?” 흉내를 낸다. “물어 가까이 가지마.” 그래도 얼굴을 바짝 댄다.
요즈음 찬바람이 나면 애호박과 붉은 고추를 따고 늦게 달린 애고추가 많이 나온다. 새벽에 따온 고추도 사고 호박도 사고 홍시도 샀다. 옛날 국수도 샀는데, 옆집 떡 가게에서는 인절미를 먹어보라고 주셨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은 시장이다. 다음에는 아이들한테 보여줄 신기한 것들이 있는 곳으로 길을 건너갔다.
여기는 동물을 파는 곳이다. 강아지가 우리 안에서 낑낑거린다. 고양이도 있고 닭도 오리도 칠면조 그리고 십자매 잉꼬 새도 있다. 아이들 자리를 뜰 생각을 않는다. 아예 쪼그리고 앉는다.
“할머니 이새는 이름이 뭐예요?” “참새처럼 생긴 작은 새는 십자매이고 앵무새처럼 생신 새는 잉꼬 새야.” “주둥이가 빨갛고 흰 새는 문조야.” 어릴 때 아버지가 새를 키운 신 적이 있어 나는 새들의 이름을 잘 안다. 기침 소리에도 놀라 넘어지는 메추리 새끼도 있다.
구관조 새장 앞에서는 30분도 더 머물렀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하며 굵은 목소리로 “사랑해요.” 라고 따라 말하는 것이 신기하여 몇십 번을 말한다. 주인한테 미안해 “가자. 가자.” 하며 겨우 일어났지만 아쉬운가 보다. 다음 장날 다시 오자며 겨우 달랬다. 일어서자 바로 옆에 한동안 못 보던 소쿠리 장수가 있다. 지게도 있고 키도 짚신도 있다. 절구도 있다.
“이게 오줌 싸면 머리에 이고 소금 얻으러 다니는 키다.” 제법 아는 체한다. “뭐? 나도 오줌 싸면 이것 머리에 놓아?” 작은 아이 머리에 얹으면 무거운 듯 오줌 다시는 안 쌀 거란다. 짚신을 보고 비 오면 양말이 젖을 거라고 걱정을 했다.
다시 돌아와 보리 볶은 것을 찾았다. 마침 ‘뻥’ 소리에 귀를 막았다. 그리고 뽀얀 연기에 아이들 신기해했다. 연기가 다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의 옛것을 보며 좋은 산 교훈을 얻은 셈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날이 좋으면 장날에는 아이들을 꼭 데리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