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 바티칸서 공식 서임
16일 출국 …27일 귀국
[염 추기경님의 이력]
성 명 : 염수정(廉洙政)
세 례 명 : 안드레아
생년월일 : 1943년 12월 5일
출 생 :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
본 적 :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1943년 12월 5일 경기도 안성 출생
1970년 12월 8일 가톨릭대학교 졸업ㆍ사제수품
1971 ~ 1973년 불광동 성당, 당산동 성당 보좌신부
1973 ~ 1977년 성신 고등학교(소신학교) 교사, 부교장
1977 ~ 1979년 이태원 성당 주임신부
1979 ~ 1980년 해외 연수
1980 ~ 1987년 장위동 성당ㆍ영등포동 성당 주임신부
1987 ~ 1992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사무처장
1992 ~ 1998년 서울대교구청 사무처장
1995년 사무처장 겸 청담동 성당 주임신부
1996 ~ 1997년 사무처장 겸 세종로 성당 주임신부
1998 ~ 2001년 제15지구장 겸 목동 성당 주임신부
2002년 1월 25일 주교수품
2002년 1월 25일 ~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2002년 2월 1일 ~ 2002년 10월 29일
재) 서울가톨릭청소년회 이사장 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이사장
2002년 2월 1일 ~ 2013년 4월 22일 재)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이사장
2002년 10월 2일 ~ 2013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겸 총대리
2005 ~ 현재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
2006 ~ 현재 중서울지역담당
2012 ~ 현재 서소문 역사문화공원ㆍ순교성지 조성위원회 위원장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 교구장 임명
2012년 6월 25일 서울대교구 교구장 착좌
성 명 : 염수정(廉洙政)
세 례 명 : 안드레아
생년월일 : 1943년 12월 5일
출 생 :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
본 적 :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1962년 성신고등학교 졸업
1969년 가톡릭대학교 신학과 졸업
1970년 가톨릭대학교 연구과 졸업
1970년 7월 5일 부제 수품
1970년 12월 8일 사제 수품
2002년 1월 25일 주교 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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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71) 추기경이 22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열린 서임 예식에서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가톨릭 교회 추기경에 공식 임명됐다.
염 추기경은 이날 오전 11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서임 예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순교자의 피와 추기경을 상징하는 진홍색 주케토(성직자들이 쓰는 원형의 작은 모자)와 비레타(주케토 위에 쓰는 3각 모자)를 수여받았다.
이날 서임식에서는 염 추기경 외에 교황청 국무장관인 피에트로 파롤린 대주교와 신앙교리성 장관인 게르하르트 루드비히 뮐러 대주교, 영국, 캐나다, 니카라과, 코트디부아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필리핀, 아이티 등 15개국에서 19명이 추기경에 공식 취임했다.
이 가운데 염 추기경을 비롯 16명은 80세 미만으로 가장 중요한 추기경 권한이자 의무인 교황 선출 투표권을 갖게 된다. 교황 선출권을 가진 추기경은 아시아에서 2명, 아프리카에서 2명, 북미에서 1명, 중남미에서 5명이 포함됐으며,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출신 4명을 포함해 총 6명이 임명됐다.
이들의 서임으로 전 세계 추기경은 218명, 콘클라베에서 교황 선출권을 갖는 만 80세 미만 추기경은 122명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교황선출권을 갖는 추기경 중 2명이 오늘 3월이면 만 80세를 넘게 돼 정원인 120명이 될 전망이다.
서임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 추기경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안드레아 염수정 아르키에피스코포(대주교) 디 서울'이란 염 추기경의 이름은 19명 중 12번째로 선포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 추기경 대표의 감사 인사가 끝나고 나서 강론을 하고 새 추기경들의 신앙고백, 교회에 대한 충성 서약 그리고 순명(順命) 선서 등의 순으로 서임 의식을 진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홍색 복장을 하고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입장했던 신임 추기경들 한 명 한 명에게 진홍색 주케토와 진홍색 비레타를 씌워주고 포옹을 했다. 아래는 사각형, 위는 삼각형인 비레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이로써 새 추기경들은 완전한 복장을 갖추고 교황을 보좌하는 사제로서의 임무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파하는데 헌신해 달라는 표지로 추기경 반지도 수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라틴어로 "추기경을 나타내는 진홍색은 추기경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표지"라며 "이는 자신을 용맹하게 그리스도교 신앙과 평화, 하느님의 백성, 가톨릭 교회의 자유와 복음 선포를 위해 헌신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훈화했다.
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연대하고 있다는 의미로 로마시내 트레스테베레 지역에 위치한 성 크리솔로고 성당(San Crisogono)을 명의 본당으로 지정받고, 이 성당의 명의 사제로 임명됐다.
지난 2006년 2월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렸던 정진석 추기경 서임식 때와 달리 성 베드로 성당에서 진행된 이번 서임식은 폐쇄회로 TV를 통해 성 베드로 광장에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군중에게 중계됐으며, 한국인 참관객들은 염 추기경의 이름이 호명되고, 주케토와 비레타를 받을 때마다 환호했다.
이날 행사에는 각국의 고위 성직자들과 외교 사절, 일반 순례객 수천 명이 참석했다.
염 추기경 등 신임 추기경들은 오후 4시30분부터 바티칸 바오로6세 홀에서 순례객들의 축하 예방을 받으며, 염 추기경은 저녁에 교황청 주재 대사관에서 열리는 한국정부 대표단 축하 만찬에 참석한다.
염 추기경은 23일에도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리는 서임 축하 미사에 참석하고 이어 한인 신자들과 로마 한인 신학원에서 별도의 미사를 가질 예정이다. 또 24일 오전 11시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오후 4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한다.
염 추기경은 26일 로마에서 출발, 27일 오후 5시25분께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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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cardinal, 樞機卿]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로마 가톨릭에서 추기경단의 구성원.
교황을 선출하며, 교황의 최고 자문위원이자 전세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운영에 협력한다. 추기경은 로마 교황청의 주요임원(로마 가톨릭 교회의 관료)이고, 주요교구의 주교이며 종종 교황의 특사로도 일한다. 추기경은 특유의 진홍색 옷을 입으며, 예하(猊下)라는 칭호를 듣고, 교회의 왕자(Prince of church)라고 한다.
추기경이라는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일치된 의견이 없다. 그러나 이교도들이 서유럽을 침입했을 동안 자신의 주교관구가 점령된 뒤 공석이 된 주교관구에 편입된 주교를 지칭하는 말로 카르도('중추'라는 뜻)라는 말에서 유래된 라틴어 카르디날리스가 처음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현대 학자들간에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로마에서 처음 추기경으로 불린 사람들은 6세기초 로마의 7개 지역에 있는 부제들이었는데, 당시 추기경이라는 말은 '중요한'·'탁월한'·'상급의'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또한 그 칭호는 로마의 각 '명의'(名義) 성당(교구성당)의 수석사제와 로마 주위에 있는 7개 주교관구의 주교들에게도 사용되었다. 8세기경 로마의 추기경들은 로마의 성직자들 사이에서 특권층으로 자리잡았다. 그들은 로마 교회의 행정과 교황의 전례에 참여했다. 769년에 열렸던 한 교회회의의 법령은 오직 추기경만이 교황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니콜라우스 2세가 교황으로 있던 1059년에는 교황선출권이 추기경에게만 주어졌다. 한동안 교황선출권은 주교 추기경들이 독점했지만, 제3차 라테란 공의회(1179)에서는 추기경 전체에게 되돌아갔다.
로마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는 추기경이라는 칭호가 명예의 표시로서 특정 성직자에게 붙여지기 시작했다. 최초의 실례는 747년 교황 자카리아스가 프랑크의 단신왕 피핀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데, 자카리아스는 파리의 사제들을 지방의 성직자들과 구분하기 위해 추기경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추기경이라는 말은 이러한 의미로 급속히 퍼져나갔으며, 9세기부터는 주교가 관리하는 여러 도시의 성직자들 사이에 추기경으로 알려진 특수 계층이 생겨났다. 1567년 피우스 5세는 로마의 추기경들에게만 이 명칭을 사용하도록 했다.
3개 직위(주교·사제·부제)로 구분되는 추기경단의 기원은 우르바누스 2세(1088~99 재위)의 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기경단 내의 이러한 직위들은 추기경의 성직서임 직위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즉 뉴욕·파리 같은 교구에서는 주교가 사제 추기경일 수도 있다. 교황청이 아비뇽에 있었던 때(1309~77)부터 추기경단의 국제화 문제가 강력히 제기되었으며, 식스투스 5세(1585~90 재위)가 개혁을 통해 국제화를 대비하는 일을 시도했다. 이 문제는 여러 시대에 끊임없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20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주교 추기경들은 로마 주변에 있는 주교관구의 주교 계승자들이다. 8세기에 이러한 주교관구가 7개 있었으나, 후에 그 숫자는 6개로 줄어들었다. 1962년 이 전에 각 주교 추기경들은 자신의 주교관구에 대해 완전한 관할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62년 이후 그들은 아무 권한 없이 직함만을 갖게 되었고, 그 관할권은 그 지역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교에게 넘겨졌다. 1965년 파울루스 6세는 동방 가톨릭 총대주교들 가운데서 추기경들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총대주교의 직함을 갖고 주교 추기경이 되도록 했다. 추기경단에서 2번째이며 가장 수가 많은 직위는 로마의 '명의' 성당에서 봉사하는 초기 사제단의 계승자들인 사제 추기경들이다. 11세기 이후 이 직위는 주교 추기경이나 부제 추기경의 직위보다 더 두드러지게 국제화되어 세계 도처에 있는 주요 주교구의 주교들이 이에 속했다. 부제 추기경들은 로마의 7개 지역에 있는 부제들의 계승자이다. 10~11세기경 로마에는 18명의 부제들이 있었는데, 우르바누스 2세가 개혁을 하면서 그들 각각을 부제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원래 이 직위는 부제급 이상으로 진급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었다. 후에 교회법은 부제 추기경은 적어도 사제 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요한네스 23세와 파울루스 6세는 주교가 아닌 자를 사제 추기경으로 임명한 다음 곧바로 그들을 주교로 축성했다.
1586년 식스투스 5세는 추기경의 전체인원을 70명으로 고정시켰다. 그중 6명은 주교 추기경이고, 50명은 사제 추기경이며, 14명은 부제 추기경이었다. 요한네스 23세가 70명의 제한을 폐지한 이래 이후 추기경의 숫자는 100명을 넘고 있다.
새 추기경은 교황만이 임명할 수 있다. 교황은 비공식 추기경회의를 소집해 그들에게 새 추기경의 이름을 발표한다. 그런 다음 새로 임명된 추기경은 공식 추기경회의에서 그 직위의 상징인 진홍빛 비레타와 반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