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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란 무엇인가?
미술은 개인의 열등한 자아를 외면화한 지도라고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사용되어질 수 있다.
Peter London, 더 이상 매개물이 아닌 예술
우리는 한번 이상은 미술의 창조적이고 스스로 풍부해지는 잠재력을 경험해왔다. 아이였을 때,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면서, 종이 찢기 꼴라쥬를 하면서, 모래성을 쌓으면서, 또는 점토에 손바닥을 찍으면서 기쁨을 발견했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 자신이 창조적이라든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여전히 어느 정도 미술의 치료적인 면을 경험했을 것이다. 창조의 과정을 즐기고, 그러한 창조적인 활동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림일기, 자신의 꿈 그리기, (무의식의) 상징 메모하기, 그리고 그것들의 뜻 생각하기를 계속할 수도 있다. 책상의 메모판 가장자리에 선들을 긁적이고, 그것은 당신이 더 명확하고 안정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 모든 활동들은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스트레스와 긴장을 완화하고 즐거움과 기쁨을 주며 근심거리를 초월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그 활동들은 자신의 존재 상태를 바꾸는 자기표현의 방법들이고, 자신의 직관적이고 창조적인 힘을 두드린다.
미술 작품의 어느 정도의 치료적인 힘을 경험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미술이 치료와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미술의 정의에 의지한다면, 미술을 장식, 오락, 또는 진기한 물건, 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러한 그림이나 조각품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미술을 아이들의 놀이나 오락꺼리, 취미 정도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이란 때때로 정의내리기 어렵지만 아마도 미술이 자신의 존재를 높인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미술이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완전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미술은 장식으로써 쓸모가 있거나 박물관에 걸려 있지만, 미술에는 자기이해, 뜻 찾기, 개인적인 성장, 자신의 권한 부여, 그리고 치료의 다른 목적들이 있다. 우리중 상당수는 이러한 목적과의 접촉을 잃어버리고 있거나 미술이 진기한 물건이나 장식품 이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림(drawing), 회화(painting), 조각, 그리고 다른 미술의 형태들은 힘 있고 영향력 있는 대화의 형태이다. 그리고 시대를 통한 문화는 그들의 예술을 통해서 정의되어지고 이해되어져 왔다. 미술이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어지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의 생각, 감정, 꿈, 포부를 구체화시키기도 한다.
미술은 심원한 기쁨에서 깊은 슬픔으로 승리감에서 외상성 장애(trauma)로의 감정의 넓은 범위를 연대기로 기록하고 전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술은 이해시키거나, 뜻이 통하게 하거나 내면의 경험을 말없이 명백하게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공되어져 왔다.
미술치료는 이러한 개념 - 즉, 미술의 이미지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자기표현을 통해서 삶을 풍부하게 하도록 돕는다. 이것은 확실한 치료방법과 자기이해, 감정변화, 그리고 개인의 성장을 위한 양식으로서 받아들여지고 폭넓게 이해되어진다.
미술+치료 = ?
미술 치료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종종 미술치료라는 용어가 뜻하는 것을 혼동한다. 그것이 치료에 있어서 미술표현 사용을 묘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소의 엉뚱한 가설들을 종종 초래한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미술치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많은 흥미 있는 표현들을 들어왔고, 그것들 중 몇몇은 꽤 재미있다. 나는 전에 미술치료가 오직 “아픈” 혹은 “정서 장애가 있는”, 즉 우울증, 불안, 또는 창조적인 문제(block)가 있는 예술가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최근에 미술치료가 사람들의 그림과 회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또 다른 사람은 내가 “문제”가 있는 그림과 조각품들을 연구하는지 물었다. 명확히, 그 사람은 미술치료가 “나쁜” 그림과 조각들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상상했다.
미술치료라는 용어가 특히 어떤 개인적인 경험이 없이 처음 직면했을 때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술치료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미술치료는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 대해 실용화하였다. 미술치료의 사용은 아이들, 젊은이들, 어른들과 노인들 즉 마약 중독자들 심각하고 때때로 말기 병의 사람들, 퇴역군인들 장애인들 어려움을 경험한 가족들 죄수들 그리고 정신적 장애의 넓은 잔상을 경험한 사람들 을 포함한 다양한 개체의 사람들에 대해 기술되어져 왔다. 미술치료가 집단 약물 남용에 의해 상처를 입어 온 아이들과 그 들의 문제를 검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 또는 사립요양원에 있는 장애 노인들에게 많이 사용되어진다는 것을 들어봤을 것이다. 치료의 한 부분으로 그들의 부모들이 그림을 그리게 요청하는 심리학자나 만성 질병 또는 다른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미술을 사용하는 표현 치료사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반신 마비자 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도우면서 그들을 위해 일하는 예술가들이나 장애 어른들을 위한 미술 스튜디오를 만들고 있는 치료사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어봤을 것이다. 학습 또는 발달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지방학교 시스템에서 일하는 치료사들이나 지역 공동체에서 암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있는 메디컬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미술치료가 사용되고 있는 일반적인 예이며, 그 분야의 방대한 다양성의 증거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치료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미술치료가 그 자 체의 경험적인 본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미술치료는 art making을 통한 경우에, 자기 자신의 치료에 자신이 참여함을 요구하는 역동적인 치료이다. 그러므로 미술치료를 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직접 체험한 경험을 필요로 한다. 미술과 치료라는 말의 복합은 또한 혼란스러울 수 있다. 미술치료 학자이자 심리학자인 Judith Rubin은 이번 장인 미술+치료=? 라는 구절을 삽입했다. 이 공식은 미술과 치료의 혼성인 미술치료를 만든 등식을 뜻한다. 미술치료는 필수적으로 미술과 심리학이라는 두 가지 학문의 결합이다. 다른 것들 사이에서의 시각미술, 창조적인 과정, 인성 발달, 행동, 인격, 그리고 정신건강의 면들은 미술치료의 활동범위와 정의 내리기에 중요하다.
미술치료는 이 모든 원칙들 때문에 처음에 대했을 때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미술치료에 대한 몇몇 혼란들은 미술치료사들로부터 나온다. 미술 치료사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물었을 때, 각자 각 분야의 많은 예들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미술치료는 다양한 집단에 사용되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를 더욱더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미술치료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에 대한 전문적인 분야 내에 약간의 반대가 있다는 것이다. 미술치료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기 때문에 이 chapter의 다음 몇 section들은 건강과 복지를 강화하는 데서 사용되어져 왔던 다른 양상과 미술치료를 구분하고 그 분야를 형성해 왔던 개념을 다룰 것이다.
내면(마음)으로부터의 그림
많은 미술치료사 사이에서 인기 있는 말이 있다. : 미술치료-내면(마음)의 그림. 이것은 미술치료의 기본적인 정의이며 미술이 사용되어 왔던 다른 방법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미술치료를 하는 기간은 표면적으로는 미술수업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 목표는 다르다. 예를 들자면, 전형적인 미술 수업 스튜디오에서는 모델을 그리거나, 스틸 생명의 모조품들을 그리거나, 숲속을 산책하면서 본 자연을 스케치하라는 요청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보통 본 것을 그리게 하고 그것에 음영을 넣고, 색칠하고, 숙련된 기술로 강조하면서 정확한 비율로 묘사하도록 요청받는다.
미술치료의 새로운 장을 연 한 사람인, 미술치료사 Don Jones는 누가,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그림 1.1) 라는 자화상 그림에서 “내면으로부터의 그림”의 핵심을 정확히 잡아냈다. 존스는 그 자신의 물에 비친 그림자를 상상하면서 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을 묘사한다. 그의 감은 눈은 미술과 상상을 통하여 자아를 알아가는 내면의 경험을 강조한다.
미술치료는 사람들에게 그 자신의 내면의 경험- 감정, 자기인식, 그리고 상상 을 묻는다. 미술치료가 숙련된 솜씨나 미술적인 기술을 필요로 할지 모르겠으나, 제일 강조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바깥세상에서 본 것들보다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오는 이미지를 나타내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전통적인 미술 수업에서 자신의 상상을 그리도록 요청할 수 있겠지만, 미술치료에서는 개인의 상상, 감정, 생각, 이념들의 세계가 시종일관 중요하며 그 경험에 기초를 둔다.
치료라는 말은 그리스어인 therapeia 에서 왔는데, 이것은 “주의 깊은”이라는 뜻이다. 이 뜻은 두 가지 방법에서의 미술치료의 과정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경우, 숙련된 전문가는 미술을 행하고 있는 개인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이러한 개인의 지도는 치료 과정에 열쇠가 된다. 이 지지적인 관계는 미술작업의 경험을 이끌고 이 방법을 따라 하는 미술작업을 통해 개인이 의미를 찾도록 돕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면은 미술작업의 자기 고유의 개인적 과정과 개인적 의미 즉 이야기, 묘사, 또는 미술의 뜻을 찾는 것 미술작품에 가져다주는 것에 대한 개인적 참가이다. 대부분의 치료사들은 개인의 역동적인 참여에 그다지 의존하지 않는다.
미술+치료 = 과정+결과
미술 치료사들이 미술 치료의 많은 명백한 정의들을 생성시켰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두 개의 일반적인 카테고리 중 하나에 이른다.
첫 번째 미술작업 고유의 창조적 치료에 대한 믿음을 포함한다. 이 관점은 미술작업의 과정은 치료적이라는 생각을 포함한다. 이 과정은 때때로 미술이 치료의 이름으로 칭해진다. 미술작업은 상상으로, 진정하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표현하는 기회와 시간을 넘어서 자아실현, 감정의 치유, 그리고 변형을 이끌 수 있는 경험을 가지는 기회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점은 또한 본질적으로, 저절로 창조적인 과정이 건강을 강화시킬 수 있고, 성장을 생성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지게 한다.
두 번째 미술은 상징적인 대화의 수단이라는 생각에 기본을 두고 있다. 종종 미술 심리치료라고 불리는 이러한 접근은 그 창작물들 그림, 회화, 그리고 다른 미술 표현들 문제, 감정, 그리고 논쟁을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강조한다. 심리치료는 이러한 접근에 필요하며, 미술심상은 개인과 치료사 사이의 언어 교환을 강화하고, 통찰력을 얻는데 중요하다. 치료적인 안내와 지지와 함께, 미술은 새로운 이해와 통찰력을 촉진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충돌과 문제점들을 해결하도록 돕고, 새롭게 인지된 것이 긍정적인 변화, 성장, 치료를 이끌도록 공식화한다.
실재로 미술치료를 실용화한 대부분의 치료사들은 치료로서의 미술과 미술심리치료를 다양한 등급으로 그들의 일과 통합한다. 다시 말하면, 미술작업이 치료적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미술 작품이 치료에 적절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생각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다.
치료사들은 그들 자신의 철학과 미술치료에서의 개인의 필요와 목표에 근거하여 다른 것을 뛰어넘는 한 가지 분야만을 강조할 수 있다.
해석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들이 미술치료가 단순히 미술에서 나타내는 표현내용을 해석하는 것인지를 궁금해 한다. 때때로 나는 내가 그들의 그림을 분석해주기를 원하는 사람, 혹은 아이들의 그림에서 그들이 학대받아왔거나 상처받았는지를 말해주기를 원하는 다른 치료사들을 대면할 때가 있다. 이미지라는 것은 말이 없는 의사소통의 형태라서, 그것들이 어떤 숨겨진 뜻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지 당연히 궁금할 것이다. 미술치료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은 또한 그들의 이미지가 뜻하는 것을 더 많이 찾아내는 데에 관심이 있다.
미술을 해석하는 데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중 몇몇은 성격을 사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심리학 테스트에 길들여져서 생긴 것이다. ink-blot 이미지에 응답하도록 되어있는 로샤 테스트에 대해 알 것이다. 혹은 그림이 종종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진단을 돕는 것으로서 사용되어 진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미술치료가 image making 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사정이나 진단을 목적으로 한 해석적 미술을 포함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어느 정도까지는 미술치료사들도 사람들의 그림, 회화, 그리고 다른 종류의 미술작업의 뜻에 관심이 있고, 이미지와 상징에 흥미를 가진다. 많은 연구들이 상징, 미술적인 내용, 그림의 스타일들이 정신장애, 상처, 신체적인 질병, 또는 신경증들을 재현하고 있는 것인가를 조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술치료사들은 해리장애나 유년시절 모진 외상성 장애를 진단받은 어른들의 그림표 현에서 어떤 내용이 재현되는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많은 치료사들은 이미지와 색깔이 어떤 심리적이나 신체적 상태와 연관성이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 만다라(원)그림의 상징적, 구조적 면을 탐구해왔다. 심리학자, 임상 상담가, 미술치료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간단한 사람 그림이 다른 것들 사이에서 인성, 발달, 그리고 신경증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탐구해왔다.
이러한 작업의 유형은 인성발달이나 자기이해적인 면보다 사정적인 면에서 미술표현의 사용에 많은 초점을 맞춘다.
치료 상에서 만들어진 미술이 뜻은 매력이 있지만 대부분의 미술치료사들은 미술이 그들 자신의 해석을 따라잡도록 하게끔 사람들을 돕는데 더욱 관심이 있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그림에 반영된 것을 물어보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미술치료과정의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첫째, 미술표현에 있어서 몇 가지 일반적인 상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술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종종 매우 개인적이다. 사람들은 미술작업을 할 때 이전 인생 경험, 문화적 영향, 그리고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포함한 자기고유의 유일한 배경을 낳는다. 미술작업에서의 개인적 경험은 또한 사람들이 미술을 통하여 자신의 감정, 생각들을 어떻게 전달하는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미술치료에서 이러한 면은 이미지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미술이 결정짓는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 때문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이러한 반응들은 모두 치료과정의 모든 분야이고, 미술 그 자체만큼 개인적이다.
또한, 미술 이미지의 뜻은 진실로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렸다. 만약 당신과 내가 같은 그림을 본다면, 우리는 둘 다 조금씩 다른 면을 볼 것이고 그 이미지가 무엇에 관한 것인가에 대한 해석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만약 내가 그림의 의미에 대해 묻지 않고 미술치료를 받아온 사람의 그림을 본다면, 나는 아마도 부분 부분에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이 본 이미지에 대한 자신의 믿음, 감상, 생각, 감정들을 연구하거나 전달하려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미술 감상은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바뀔 수 있다. 즉, 만약 몇 주 뒤에 그림이나 회화를 본다면, 새로운 면을 보게 될 것이고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새로운 인상과 반응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미술의 마술 같은 부분이지만, 그림, 회화, 또는 조각품에 대한 특이한 의미를 만들어냈을 때, 또한 그것의 미스터리한 부분이 된다.
왜 미술치료가 돕는가?
미술이 작업하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을 성취하는 데 사용되어지지만, 미술치료의 과정과 사람들의 성장, 원상회복, 그리고 치료를 돕는 그것의 잠재력은 또한 실재로 미술작업을 하는 데서 나온다.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그들의 미술 감상이 확실히 미술치료의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지만, 미술작업을 하는 과정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미술치료는 보상, 변화, 그리고 자기탐구에 대한 특별한 능력을 갖는 양상을 띤다.
눈에 보이는 생각
눈에 보이는 생각은 우리의 능력이고, 이미지를 통한 우리 주위의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감정, 생각, 그리고 인지를 조직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낮에 계획하는 일부터 밤에 꿈꾸는 일까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널리 퍼져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의 인지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경험한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visual reference를 사용한다. 우리 대부분은 “한 장의 그림이 천 마디의 말보다 값지다” 같은 진부한 말이나, 또는 “She was green with envy” (그녀는 질투에 불탔다) “ I have blues”(나는 우울하다), 또는 “He looks at the world through rose-colored glasses” 와 같은 색깔에 관한 말에 익숙하다.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묘사를 해서 세상을 나타내고, 기술한다. ; 우리는 이미지 안에서 생각하고, 종종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것들을 사용한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간주되어지는 프로이드는 볼 수 있는 형태(visual form)안에서 눈에 띄게 경험되어진 꿈, 감정, 생각들을 관찰했다. 그는 만약 꿈을 그릴 수 있다면 꿈을 묘사하면서 환자의 욕구불만은 완화되어질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프로이드는 또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인지는 말로 표현하는 능력보다 먼저 오므로 미술은 무의식에 가깝다고 인식했다. 이미지는 초기 경험의 부분이고 말하기 전 생각들의 대부분은 이미지 안에 있다. 더욱이 어른의 경우, 소리나 냄새 같은 감각을 통해서 일이나, 장소 또는 사람을 기억하지만 또한 경험의 정신적 이미지를 가지려고도 한다.
꿈과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상징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칼 융은 또한 치료에서의 이미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기분이나 그림이 그려지는 데 대한 문제점을 인정함으로서, 또는 꿈이나 미술을 통한 이미지로 묘사함으로서 그것을 더욱 명백하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고, 그 이미지 안에 담고 있는 감정들을 경험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융의 철학은 기억과 꿈의 이미지에 매우 의지하여 온 심리치료의 장과 감정의 대립과 문제를 통하여 사람들의 일을 돕는데 있어서의 감정에 대한 그들의 관계에 영향을 끼쳐왔다.
더욱 최근에는 연구들은 상처받은 기억들은 종종 이미지의 형태로 마음에 부호화되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우기가 폭력적인 것이나 대 참사 같은 외상성 사건은 경험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이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기억들이 이미지의 형태로 처음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볼 수 있는 미술은 덜 위협적인 방법으로 그것들을 의식으로 가져다주면서 상처받은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공한다.
나는 수백 명의 상처받은 아이들과 어른
들을 치료해오고 있지만, 특히 한 사례는 말이 이미지들을 묘사하기도 전에 심한 외상의 경험이 어떻게 이미지의 형태로 돌아오는지를 논증한다. 몇 년 전 Carla라는 젊은 여성이 그녀가 지난 몇 달간 그린 그림들로 가득 찬 스케치북 가방을 들고 나를 방문했다. 칼라는 최근까지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꿈과 그녀의 상상 속으로부터의 이미지들을 그리도록 매일 강요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 1.2와 1.3) 이러한 이미지들의 내용은 그녀를 힘들게 했고 그녀는 만약 그림들을 미술치료사들과 공유한다면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림들의 대부분은 무엇이 명백히 폭력적이고 상처받은 장면인지를 나타낸다. 그림의 스타일이 흥미로웠다.
그것들 중 몇몇은 어른에 의해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은 어린 아이의 그림이라고 쉽게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몇 달 후 나는 그녀가 이미지의 의미를 결정하도록 돕기 위하여, 그리고 왜 그녀가 종이에 이러한 이미지들을 그리도록 강요받는지 발견하기 위하여 그녀를 상담하였다. 미술작품을 만들고 최면치료사를 통해, 칼라가 아이였을 때 심각한 학대로 고통 받았고 지금은 해리정체성장애 (이전에는 다중 인격 장애라고 알려진)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발견하였다. 미술 표현을 통해서 그녀는 학대의 기억을 털어놓을 수 있었고 이해와 너무 상처받아서 크게 말할 수조차 없는 경험으로부터 분열된 그녀자신을 통합하는 긴 과정을 시작했다. 미술 이미지들은 또한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당한 심각한 상처에 대항하기 위해 발전시켜왔던 다중 인격을 해결하고 동일시하기 위하여 칼라와 나를 위한 방법이 되었다.
미술작업에서의 볼 수 있는 언어는 좀 덜 익숙한 의사전달이고 그러므로 덜 제재를 받는다. 칼라를 위해서는, 미술이 복잡하고 어려운 인생경험을 표현하는 데 안전한 방법이었다. ; 말로는 그녀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대조적으로, 말은 몇몇 사람들의 진짜 감정의 표현을 피하거나 감추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대화의 미술 같은 비언어적 방법은 언어를 통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을 나타내는 창이 될 수 있다. 미술작업의 이러한 본질은 무의식의 감정과 생각에 다다르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여러 번, 우리는 몇몇 경험들과 감정들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술치료에서, 사람들은 그림, 회화, 또는 다른 미술의 형태를 통해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도록 용기를 얻었다. 칼라의 사례처럼, 상처와 학대에 대한 그녀의 기억들은 너무나 아픈 것이어서 그녀가 그림을 통해서만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녀의 그림은 그녀의 어린 시절의 사실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전에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도움이 되었다. 그녀의 사례에서 보면, 미술은 그녀가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회상하는데 도움을 주고 말을 통해서는 명백하지 않고 즉시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감정과 생각들 을 표현하는데 도움을 준다.
미술표현은 1차적 과정이 아니고 구문, 문법, 논리, 올바른 철자법과 같은 언어의 법칙을 준수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술표현은 동시에 많은 복잡성들을 표현할 수 있다. 미술치료사인 Harriet Wadeson은 이것을 미술의 공간적인 모체라고 부른다. : 형태, 색, 선을 사용하는 의사전달 관계에 대한 미술의 능력. 예를 들어, 가족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를 그린 그림에서, 다른 시간, 장소, 가족구성원 간의 관계는 같은 그림이나 회화에서 쉽게 묘사되어질 수 있다.(?) 말로 묘사되어진 논평들은 한 장의 그림을 통해서 더 손쉽게 표현되어질 수 있다. 다의적이고 헷갈리거나 심지어 모순된 요소들은 또한 같은 그림이나 회화에 놓여 질수 있다. 왜냐하면 미술은 말과 달라서, 구조나 조직에 대한 법칙이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미술의 이러한 능력은 사람들이 대립되는 감정이나 경험들을 통합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미술치료는 어린 아이들한테 특별히 더 유용하다. 아이들은 그들의 감정이나 경험들을 묘사하기 위한 확장된 어휘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의사소통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으로서 미술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최근에 연구에는, 미술을 통해서 위기나 감정적으로 괴로운 일을 나타내는 아이들은 말만 했을 때보다 그들의 경험을 언어적으로 더욱 상세히 표현할 수 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리스트가 공격한 사건은 아이들이 그들이 본 것을 상기하고 그들의 두려움, 걱정,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하는 물음들을 상징화시키기 위해서 그림을 사용하기를 갈망하는 것을 증명한다.(그림 1.4) 많은 아이들이 텔레비전으로 그 사건을 보거나, 세계무역센터나 펜타곤 재앙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미술은 아이들이 그들의 경험을 말없이 지각하도록 하였다.
감각적 경험
미술작업은 실제적인 활동이다. - 그것은 구성하기, 정렬하기, 터치, 소조, 붙이기, 그리기, 고정시키지, 색칠하기, 형태잡기, 그리고 다른 실체적인 경험들을 포함한다. 그림 그리고, 칠하고, 조각하는 것은 또한 정신운동상의 경험이다. ; 즉, 그것들은 사용된 미디어에 따른 비전, 터치, 움직임, 소리 그리고 다른 감각을 포함하기 때문에 자연의 감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일 때,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 배운다. -종이에 끄적거리고, 놀고 흉내 내는 것을 통하여. 심리학자인 Eugene Gendlin 에 따르면, 이러한 경험들은 “촉각”(felt sense), 상황, 사람 또는 일에 대한 신체적인 자각을 포함한다고 한다. 생각에 더하여, 느껴진 감각은 우리주위의 세계를 이해하고 감사하도록 도와주도록 하는 목적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러한 미술작업의 감각적인 특질은 종종 말만 가지고 하는 것보다 더 쉽게 우리의 감정과 지각을 일깨우는 방법을 제공한다. 정신적 충격, 상실 또는 학대의 경우 미술 작업이 감각을 통해 표현되어지는 복잡한 감정들을 재통합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미술 재료의 촉각적인 측면-예를 들어, 점토, 파스텔, 또는 색칠하는 작업 - 은 스스로 진정하고 안정할 수 있기 때문에, 미술작업은 또한 감정 순화와 치료의 과정을 도울 수 있다. 7장에서 예술 표현의 감각의 특질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 충격이 큰 기억, 슬픔, 상실을 느낀 감각을 소생하고 재구성하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읽을 것이다.
감정적 전이
미술치료는 또한 감정을 전이하는데 도움을 준다. 심리학적인 용어로, 이러한 경험은 카타르시스라고 불리 운다. 카타르시스의 문자 상으로 “깨끗하게 하기”, “정화시키기”를 뜻한다. ; 치료에서의 그것은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강한 감정의 표현과 배출을 이른다. 그림 그리고 색칠하고, 조각하고 또는 다른 미술의 형태는 고통 받거나 힘든 감정을 제거시키는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미술에 그들의 생각, 경험, 그리고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이미지, 특히 정신적 상처의 경험이나 기분을 묘사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감정정화를 하는 것이다.
미술작업의 실제 과정은 또한 정서적인 스트레스와 휴식의 생리적인 반응을 만들어 내거나 분위기를 바꾸면서 오는 불안을 완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창조적인 활동은 실제적으로 우울증과 화학적 연관이 있는 뇌의 세로토닌을 증가시킬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미술 표현을 통한 내면의 평화와 평온을 찾으면서 명상의 형태로서의 미술을 경험한다.
그림, 회화, 또는 점토 적업의 반복적이면서 자가 진정의 성질은 “휴식 반응”, 심장박동과 스트레스와 관련된 호흡의 감소를 유도할 수 있다.
작품 창작하기
미술을 무엇을 위한 것인가 ? ( In What is art for?) Ellen Dissanayake는 미술작업이란 손으로 만들려는 우리의 본능적인 흥미와 특별하거나 유일한 작품을 만들려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술은 사람들의 진정한 기질이며 요구인 “특별한 것을 만들기”의 방법인 꾸미고 장식하는 역사를 통해서 쓰여져왔다. 몇몇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은 것, 또는 그리거나 조각을 통해 유일한 것을 만든다. ; 다른 사람들은 중요한 경우를 위해 특별한 옷을 입거나 어떤 일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한 음식을 요리한다. 이러한 것들은 “특별한 것 만들기”의 눈에 보이게 하는 방법이고 인간행동의 기본적인 것이다. 미술치료는 아마도 실체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몇 안되는 치료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뜻, 경험, 감정을 기록하여 영속시키는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술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영구적인 성질은 진귀한 이점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의 방법으로 생각을 기록하고, 후에 재검토할 수 있고 다른 이미지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지각들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여러 주 혹은 여러 달 동안 창조되어진 미술표현들을 재검토하는 것은 시간을 넘어선 생각, 감정, 사건들, 주제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창조적인 과정과 상징화한 대화가 미술치료의 두 가지 기본적인 면이지만, 치료적이라고 생각되어질 수 있는 미술치료 과정의 몇 가지 다른 면들도 있다. 그것의 가장 간단한 생각으로는, 미술작업은 자존감을 발생시키고, 위기 대처력을 북돋워주며 실지훈련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 주며 사람들의 인생을 풍부하게 해주는 활동이다. 미술치료의 범위는 단순한 재미 같아 보이지만, 창작의 과정- 자신의 손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것과 자신이 유일한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은 부정할 수 없는 치료의 이점을 통한 파워풀한 경험이다. 자신의 손과 자신의 상상으로부터 창조해낸 것은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하고도 믿을만한 무엇인가가 있다. 미술작업을 하는 것은 우리자신의 많은 다른 부분을 터치한다. 그것은 어린아이 때 그린 그림의 긍정적인 과거 경험 또는 점토 조각 하나를 완성하는 데서 얻는 자신감과 성취감, 또는 꼴라쥬 작업을 하기위해 이미지를 모으는 장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예술 창조는 삶의 질을 높인다.
역사는 대단한 스트레스에 놓여있는 개인이 내면의 갈등을 표현하고 나타내는 방법으로서 예술을 창작했다고 알려져 온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Vincent Van Goah와 다른 잘 알려진 미술가들의 창조적 작품은 이 경우를 증명한다. 역사를 바탕으로 보면, 예술가들은 인간 고뇌를 탐구하기 위해, 그들의 감성적 투쟁의 의의를 찾기 위해, 그리고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그들의 예술작품을 사용하였다.
심리학자 Abraham Maslow는 사람들의 기초적 욕구-의식주, 안전-가 충족되면 그들 스스로의 감정표현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고 하였다. 기초적 욕구조차 충족되지 않을 때에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예술을 통해 그들 자신을 표현하기에 힘쓴다. 1990년대 초반 계속되는 포격과 Sorajevo에서의 sniper fire 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그들 스스로를 표현하길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콘서트를 열고, 오케스트라와 성가대를 지지하고, 그리고, 어떤 한 시점에서, 미술이 도시의 파괴로부터 소재를 끌어내어 창작하기 위해서 파괴되어진 극장을 전시장소로 바꾸었다. 이것은 미술을 통해 우리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파워풀한 인간의 욕구라는 것을 설명한다.
미술이 우리들의 두려움과 긴장감과 다른 스트레스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안, 또한 영혼과 마음 또한 어루만진다. 가족, 일, 그리고 다른 삶의 일부분이 우리를 충족시키는 반면에, 미술창조를 통한 창조적 경험은 우리가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다른 활동과 상호 작용을 할 수 없는 우리들의 내면과 교통한다. Sarajevo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예술이 일상 삶을 초월하도록 도와주는지 그리고 완전함을 불러 오는지, 그리고 파멸과 황폐함으로 인한 기초적 욕구와 안정성의 부족함 속에서도 채워지는 우리의 삶 속에서의 자기만족에 대한 좋은 예이다.
미술 치료사 Bruce Moon은 미술창조는 존재의 목적이 되고 지루함, 역기능적 관계, 학대, 중독, 그리고 무미건조함으로 가득 차 보이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미술 창조는 사람들이 존재의 공허함과 영혼을 잃은 듯 한 그들의 마음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술 창조와 우리의 상상력을 이용함을 통해, 우리는 두려움, 긴장감 그리고 우울증으로부터 안정을 되찾을 수 있고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로운 이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심리학자 Rollo May가 말하기를 기품, 조화, 아름다움 그리고 안정은 시가적 예술의 많은 특성중의 일부라고 하였다. 그는 미술은 초월함을 제공하고, 사람들이 상징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시각적 표현방법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하며 그들 스스로 새로운 방법 속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창조적 과정은 개개인과 그의 최대한의 잠재력에 도달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며 성장과 변화를 위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끝으로, 미술 창조는 즐거운 활동이며 생기를 주며, 활력을 주며, 기쁨을 주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대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동안 더욱 생기 있고 명항하며 작품을 창조한 후에는 다른 이들과 더욱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미술 창조는 사람을 더욱 융통성 있게 만들고, 자기의 잠재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게 하고 창조적 문제 해결 능력과 직관적 지식을 기르게 한다. 미술 창조를 통해 사람은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감정 표현법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실험할 수 있게 된다. 기쁨, 놀이, 창조를 의미 있는 방법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 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며 미술을 창조하는 것은 이러한 경험들을 제공한다.
관계 형성
마지막으로, 미술 창조가 스스로 안정될 수 있고, 정서적으로 충족되고, 자가 치료 경험이 될 수 있지만, 미술치료의 효율성은 미술 창조자와 치료사 사이의 관계에 편승된다. 치료의 모든 형태에서, 치료하고 고치고 회복하는데 있어 촉진자 또는 증인의 대면이 반드시 요구된다. 치료사와의 믿을만한 관계인 동시에 만족스런 작품의 완성은 치료 형태로서의 미술 창조의 잠재력을 높인다. 미술 요법 상담에서, 치료사는 미술자료에 의한 클라이언트의 성찰에 따라 지지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개개인이 이미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미술 창조자의 창조적 표현에 대한 감정 이입의 답변을 제공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을 때에 자기표현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치료사들은 격려, 동기부여, 허용, 그리고 자신의 성장과 자신감을 북돋아줄 수 있는 긍정적 지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9장에서 읽게 될 내용처럼, 무리 속에서 예술을 창조하는 것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강조된다. 만약 당신이 studio art course를 들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작업하는 것은 새로운 생각과 창조적인 본질을 자극하고 상호작용, 상호이해, 그리고 상호교환을 자연스럽게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룹에서 색칠하고 그림 그리고 또는 구성하는 동안, 당신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이점을 가지게 되고 당신 스스로의 작품에 대한 반응을 들을 수 있고 미술창조자들 사회의 집단적인 힘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미술 치료사 Shaun Mcniff 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혹은 그룹을 내에서 미술을 창조하는 것은 각자의 미술작품들을 공유하고 다른 미술 창조자들의 창조적인 잠재력에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받는 것을 통해 개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한다.
미술 창조는 모든 이에게 가능하다
미술치료에 대한 흔한 오해는 그것을 값어치 있게 하기 위해 예술적 재능이 필요하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미술을 첨삭하게 하지 못한다면, 미술치료는 성공하지 못하거나 그들이 다소 실패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이에 반하여, 미술치료에 있어서의 미술작업은 예술적인 훈련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림 그리고, 색칠하고 다른 미술 형태의 다양함은 나이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가능한 간단한 표현 방법이다. 미술작업은 또한 표준화된 경험이다. 즉, 모든 사람들은 미술을 통해 창조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치료의 철학은 모든 미술표현이 수용적이라는 생각을 포함한다. 목적은 훌륭한 미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미술치료인지, 그림 그리고, 색칠하고, 또는 다른 양상을 통해 치료를 경험하고 있는지를 나에게 묻는다. 예술이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철학자들, 예술가들, 예술 역사학자들은 어떠한 의견일치 없이 수백 년 동안 “예술이란 무엇인가?” 란 물음에 대해 숙고해오고 있다. 몇몇은 순수 미술에 비해 이미지는 다른 목적을 위해 창조되어지기 때문에 미술치료로부터 온 것은 미술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미술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순수 미술 또는 장식으로서 창조되어진 미술과 예술가들의 내면세계를 볼 수 있도록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술 사이에 일치성이 있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훌륭한” 미술을 창조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창조적이게 되고, 미술작업을 통해 개인의 만족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예술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우연히, 미술 작업이 훈련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한 사람은 Grandma Layton 이라고 알려진 Elizabeth Layton 인데, 그녀 자신을 예술가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조울증을 앓은 30년을 치료하는 것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에 이르렀다. Layton에 따르면, 전기충격 치료법, 리튬, 심리치료는 그녀의 상태로부터 안정을 지속시키는데 실패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67세였을 때인 1976년 그녀의 아들의 죽음 후에 Layton은 그녀의 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대학 근처의 그림 수업에 등록했다. 그 시절 가능했던 유일한 수업은 윤곽을 그리는 것이었다. 윤곽을 그린다는 것은 그리고 있는 종이에서 바라보기보다 그리고 있는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본 것으로부터 창조되어진 선 그림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이러한 이유로, 종종 왜곡되게 나타나지만 개성과 세부적인 면에서는 풍부하게 나타났다.
Layton은 윤곽 그리기가 결코 예술을 만들 수 없다는 데 다 달았다. 그 수업 강사는 만약 그릴 주제가 없으면, 그녀 자신을 꾸밈없이 그리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Layton은 이 조언을 받아들여, 모든 주름, 검버섯, 그리고 그녀의 늙은 몸의 부분들을 묘사하는 그림 시리즈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그림 1.5) 그러나 그녀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다른 생각들: 노인들에 대한 사회의 대우, 나이와 싸우는 그녀 자신, 그리고 우울, 비탄, 상실의 경험을 나타낸다. 그림을 통해 그녀의 생각, 감정, 그리고 인지를 직면하고 표현함으로써, 그녀는 그녀의 우울이 덜어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Granma Layton은 윤곽을 그리는 것이 그녀의 삶을 바꾸어왔고, 그녀의 상태를 끌어올려주었다고 믿는다. 후에 그녀는 추가로 그림의 과정은 그녀를 치료로 이끈 그녀의 그림 각각의 의미의 발견이라고 결론지었다. 미술가들이 종종 그들의 이미지의 내용을 반영하는 것처럼, Layton도 그녀의 미술을 통해 자기이해를 경험하였다.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은 그녀의 심한 정서적 고통의 카타르시스 경험을 도왔던 반면, 그림에 대한 그녀의 기록은 그녀의 자화상의 의미를 알도록 도와주었고, 일평생 그녀를 어려움에 빠뜨린 경험과 감정들을 종결짓게 도와주었다.
Grandma Layton은 또한 그녀의 그림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미술가 Don Lambert 와 미술 치료사 Robert Ault와 함께 더욱 더 많은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들과 함께 한 Layton의 대화는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고 그녀의 정서치료를 더 깊게 하였다.
그녀의 그림은 미국과 나머지 세계를 통해 사람들에 의해 고맙게 여겨져 왔다.
창작과정의 마술이 사라질까 두려워,Layton은 그녀의 어떤 그림도 결코 팔지 않았다. 그녀는 천장이 넘는 많은 그녀의 창작 그림들을 가족, 친구, 그리고 자선단체에 주었다. Layton의 작품은 창작은 일생을 통틀어 중요하고, 병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미술이나 아니면 다른 방법들을 통해 감정이 표현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아는 방법으로서의 미술
Layton의 경우, 그림은 말로 하기 어려운 것을 소통하기 위한 수단 이상이었다. ; 그것은 또한 그녀의 진정한 자아를 알기 위한 방법이었다. 미술을 통해 그녀는 깊은 비통함과 상실을 표현할 수 있었고, 30년이 넘도록 경험해 온 정서적 고통과 우울을 표현할 수 있었다. Layton은 미술 창작이 마침내 그녀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창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Pat Allen이 ( )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쓴 미술이 알기 위한 방법이다. 라는 책에서, 미술은 또한 “우리가 정말 믿고 있는 것을 아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는 우리의 신념을 탐험하는 과정을 시작한다. 우리는 고통이나 우울증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수도 있고, 또는 기쁨과 창조적 잠재력의 원천을 확인할 수도 있다. 미술은 인격의 특질에서의 개인력을 확실히 말해준다. : 우리의 감정, 생각, 경험, 가치, 그리고 믿음. 미술을 통해 이러한 볼 수 있는 것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관점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제공받고 그 관점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미술 + 치료 = 강력한 치유
대부분의 미술치료사들처럼, 나는 미술치료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나 자신만의 개인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이 정의는 이전에 언급한 생각의 혼성이다. 나는 미술치료사로서의 내 역할은 미술을 통해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를 치료적으로 탐험하고 표현하는 것을 돕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는 감정, 위기 또는 상처로부터 위안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에 대한 통찰력을 찾아낼 수 있고, 행복감을 증가시키고, 창조적인 표현을 통해 그들 일상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또는 개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자기이해를 넓히고, 다른 방법을 통해서 불가능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그리고 사람들의 소통하는 능력을 넓힐 수 있는 미술의 힘을 안다. 나는 또한 사람들이 첨부하는 그 이미지의 이야기를 통할 뿐만 아니라, 이미지들을 통해 시사되어지는 개인의 이야기로서의 미술 표현을 본다. 이미지에서 개인적 의미를 찾는 것은 미술 치료 과정의 일부이다. 몇몇 사람들에게, 그것은 미술표현의 가장 강력한 치료적 특질 중의 하나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강력한 방법이고, 치유의 강력한 형태이다.
다음 장에서 당신은 개인 미술작업을 통해 미술치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게 될 기회와 그것의 유일한 직접적 특질의 몇몇을 경험하게 될 기회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먼저 미술치료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와 왜 그것이 건강을 증진시키고, 감정의 변화를 북돋우고 개인적 의미를 찾는데 중요하게 되었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2. 미술치료: 과거와 현재 그리기
미술은 내면 세계와 내면세계의 만남의 장이다.
Elinor Ulman, 이론과 연습의 미술치료
이제 당신은 미술치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생각을 가졌으니, 당신은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할 것이다. 미술치료는 많은 생각과 연관된 장들: 예술, 예술사, 인류학, 심리학, 그리고 정신의학 에 의해 형태 지어져 온 새로운 장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의 미술치료의 출현은 많은 굉장한 사건들의 결과로서 일어났다. 미술치료가 비주얼 아트와 심리학 양자에서 기초되어온 이래, 고대와 현대를 걸쳐 많은 영향력을 끼쳐왔다. 1950년대 이후, 미술치료의 발전에 영향을 미쳐왔고 그것의 높은 관심을 창조해왔다.
미술 : 오래된 치유자
많은 다른 치료의 형태와 같이 미술치료는 먼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대 이래로, 미술은 치료의 역할을 담당하였고, 상징적 표현은 치유의 종교의식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왔다. 미술창작의 욕구는 기초적 인간의 충동이고, 언어, 섹스, 사회적 상호작용, 그리고 공격성만큼 자연스러운 우리들의 특성이다.
이집트의 상형문자 같은 고대의 글은, 종종 동물과 새 같은 사물의 그림을 사용하였다. 수메르인의 설형문자, 마야문명의 표어문자, 그리고 고대와 동시대 양자의 중국 글자들은 다른 예이다.
적어도 기원전 20,000년 전부터, 장식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주술을 만들기 위해사람들은 기호와 이미지들을 만들어오고 있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최초의 이미지 메이커들이었다. ; 그들은 동굴 벽에 그림과 모양을 그리기 위하여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환경조건, 동물, 그리고 알지 못하는 무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는데 몰두하였기 때문에, 도구와 집뿐만 아니라 이미지들을 창조하였다. 이러한 시초의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먼저 “포획”을 기원함으로써 성공적인 사냥을 안전하기 위해 힘쓰는 것은 가능했다. 이러한 그림들 중에 가장 유명한 것들 중 몇몇은 유럽의 깊은 동굴에서 발견되어졌고, 그것은 장식이 아니라 어떤 목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제시한다. 아마도 그것은 주술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단순한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식으로 쓰여 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악마나 해악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공포나 불안과 같은 강력한 감정을 표현하고 조정하기 위한, 사냥과 같은 다가올 일들로부터 스스로 준비하기 위한 주술의 목적으로 미술을 창조하였다. 예를 들자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들이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미라 관 위에 보호하는 상징을 새겨 넣었다. 기원전 두 번째(?) 천년동안, 히타이트 족은 보호를 위한 주술 의식에 다른 색의 울을 사용했다. 많은 문화에서 보면, 가면을 만들고 쓰는 것은 자기보호의 열쇠이고 특별한 힘을 기원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몇몇 아프리카 사회에서 가면은 4번째 조상을 부르는 것으로 믿어졌고, 위험한 힘을 피할 수 있고 강력한 짐승과 영혼의 존재를 더 약하게 생각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믿어졌다.
문자사용 이전의 사회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문화에서, 미술은 상징적으로 병을 고치고 신체적, 정신적 안정을 가져오는데 쓰였다. 예를 들어, Navajo는 특이한 병에 사용되어진 특수한 양식의 노래, 춤, 그리고 모래 그림을 결합시켰다. 티벳 사람은 또한 기도를 위해, 그리고 치료와 고통을 완화하는 의도로서 만다라의 형태의 모래그림을 사용했다. 이 예인 모래그림의 중심 요소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상징화라는 것이고 부분적으로 전환과 치료를 의도했다는 것이다. 미술이 주술, 효능 있는 변화, 또는 사람과 환경을 변화시질 수 있다는 인간의 믿음은 미술이 또한 치료라고 보여 지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샤머니즘은 현대 정신과 의사와 특히 미술 치료사들의 오래된 선각자이다. 샤머니즘의 작업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몸으로부터 해로운 것과 건강하지 않은 요소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고, 이미지와 의식을 사용하여 마음과 몸, 정신을 치료하는 것이다.
샤머니즘은 영혼을 끌어당기고, 의식상태의 전환을 이루고 치료를 하기 위해서 옷, 의식에서 visual 기호를 이용한다. 샤머니즘의 작업은 치료와 치유의 양식으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을 사용하는 미술치료의 장과 강하게 연관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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