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서 본 ‘상윳따 니까야 (Saṃyutta Nikāya)’ 8강
오늘은 제1장의 4번째 경을 공부하겠습니다.
악쩬티 숫따
Accenti sutta (S1:4)
지나감 경
사왓티 니다낭
Sāvatthinidānaṃ. (생략)
2. 에까만땅 티따 고 사 데와따 바가와또 산띠께 이망 가탕 아바시.
Ekamantaṃ ṭhitā kho s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
2.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앞에서 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악쩬띠 까라 따라얀띠 랏띠요
Accenti kālā tarayanti rattiyo,
와요구나 아누뿝방 자한띠
Vayoguṇā anupubbaṃ jahanti;
에땅 바양 마라네 뻭카마노
Etaṃ bhayaṃ maraṇe pekkhamāno,
뿐냐니 까이라타 수카와하니띠
Puññāni kayirātha sukhāvahānīti.
세월은 지나가고 밤도 지나가서
청춘은 우리를 서서히 버립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꿰뚫어보면
행복을 가져올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바가와(bhagava)
세존
3. 악쩬띠 까라 따라얀띠 랏띠요
Accenti kālā tarayanti rattiyo,
와요구나 아누뿝방 자한띠
Vayoguṇā anupubbaṃ jahanti;
에땅 바양 마라네 뻭카마노
Etaṃ bhayaṃ maraṇe pekkhamāno,
로까미상 빠자헤 산띠뻭코띠
Lokāmisaṃ pajahe santipekkhoti.
3. 세월은 지나가고 밤도 지나가서
청춘은 우리를 서서히 버린다.
죽음의 두려움을 꿰뚫어보면
평화를 찾는 자, 세속적 미끼를 버려야 한다.
천신은 ‘행복을 가져올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라고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답변하시기를 ‘평화를 찾는 자, 세속적 미끼를 버려야 한다.’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선정수행을 해서 색계에 사는 윤회하는 천신의 견해를 말하는 것이고 부처님께서는 윤회가 끝나는 출세간의 지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악쩬띠(Accenti)는 ‘지나가다’라는 뜻인데 기존 번역본에서는 ‘사라지다’로 했습니다. 이는 시간이나 세월은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나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세월 빠르게 ‘지나간다’로 할 수도 있고 빠르게 ‘사라진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라진다’고 했을 때는 소멸을 의미할 수도 있으므로 ‘지나간다’로 했습니다. 사실 세월은 빠르게 스쳐지나갑니다. 이 모두가 덧없음을 말하는 무상입니다. 랏띠(ratti)는 밤을 뜻하며 따라(tara)도 ‘지나가다’, ‘건너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월은 지나가고 밤도 지나가서’입니다.
와요구나(Vayoguṇā)는 ‘젊음’, ‘청춘’이란 뜻이며 아누뿝방 자한띠(anupubbaṃ jahanti)는 ‘서서히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청춘은 우리를 서서히 버린다’는 뜻입니다. 서서히 버린다는 뜻의 아누뿝방 자한띠(anupubbaṃ jahanti)는 초년의 사람은 중년에 이르러서 초년을 버리고, 중년에 이른 사람은 초년과 중년을 버리고 노년이 되고, 노년에 이른 사람은 초년과 중년과 노년을 모두 버리고 마지막에는 죽는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죽는 순간에는 이 세 단계의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떻게든 우리가 죽어간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에땅 바양(Etaṃ bhayaṃ)에서 바양(bhayaṃ)은 두려움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두렵고, 밤낮이 지나가면서 두렵고, 나이가 되어서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어떻게든 누구나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덕을 짓는 일입니다. 선한 공덕을 지어서 스스로 선행을 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됩니다. 물론 공덕을 쌓으면 이 과보로 수행을 하고, 수행의 과보가 생기면 지혜가 나서 근본적으로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뿐냐니 까이라타(Puññāni kayirātha)에서 뿐냐(Puññā)는 공덕이고 까이라타(kayirātha)는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덕을 짓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덕을 지어야 수카와하띠(sukhāvahati)라는 뜻으로 ‘행복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이 모두는 하나같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가서 죽게 되고, 밤낮이 지나가서 죽게 되고, 나이가 다 되어서 결국에는 누구나 죽습니다. 이 어찌 죽음이 두려움이 아니겠습니까? 천신은 그러므로 공덕을 쌓아서 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고 천신의 말입니다.
천신의 질문은 네 문장인데 부처님께서는 천신이 말한 앞선 세 문장은 그대로 인용하시고 마지만 한 문장은 바꾸어서 말씀하십니다. 앞서서 밝힌 것처럼 색계천신은 선정수행을 해서 이른 천신이기 때문에 아직 출세간의 해탈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은 선정수행의 단계를 뛰어넘어 지혜수행의 단계를 제시하신 것입니다. 천신은 ‘행복을 가져올 공덕 지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부처님께서는 ‘평화를 찾는 자, 세속적 미끼를 버려야 한다.’라고 답변하시고 깨달음에 이르는 출구를 제시하셨습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로까미사(lokāmisa)는 ‘세속적 미끼’라는 뜻입니다. 로까(loka)는 ‘세상’이라는 뜻이고 아미사(āmisa)는 ‘미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로까미사(lokāmisa)를 ‘세속적 미끼’라고 합니다. 산띠(santi)는 ‘평화’, 또는 ‘열반’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은 도과를 얻었지만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열반이라고 말하는 뜻의 닙바나(nibbāna)라는 말을 쓰지 않고 평화라는 뜻의 산띠(santi)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지나감 경’이 드러내고 있는 뜻은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에 대한 욕심인 세속적 미끼를 버려야 열반에 이를 수 있는 평화라는 산띠(santi)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