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씨 본관 순위
동아닷컴 인터넷뉴스(2013.1.18.)에 보도된
『우리나라 성씨 본관 순위, 나는 몇 위 일까?』를 읽었습니다.
통계자료가 몇 년도 작성된 것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았으나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는
통계청의 2000년 자료로 소개한 곳도 있었습니다.
본관별 성씨순위를 보면 333개 성씨 중 서흥김씨는 28,313명에 인구 순위 180위 였습니다. 1백만명 이상의 본관성씨가 다섯이나 되고, 1천명 미만의 성씨도 47개나 존재합니다.
본관 성씨 순위를 보며 스스로 물어봅니다.
서흥김씨가 인구순위에 밀려있다고 작은 문중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왜나구요?
서흥김씨는 비록 인구는 작지만 지금도 명문가로 칭송받고 있고
앞으로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요?
최근 유럽에서 출시를 앞둔 갤럭시S3의 홍보문안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독일어로 "작지만 엄청 큰 것이 온다(S0 Gross Kann Klein Sein)
영어로는 “Something small will be really big” 라고 표현합니다.
이름은 헛되이 전(傳)해지는 법이 아니라는 뜻의 고사성어에
명불허전(名不虛傳)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성(名聲)이나 명예(名譽)가 널리 알려진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理由)가 있다고합니다. 비록 서흥문중이 작지만 우리 문중은 조선의 시대정신을 이끈 큰 선비를 배출했습니다.
문경공 한훤당 김굉필[文敬公 寒暄堂 金宏弼, 1454(단종2년)∼1504(연산군10년)]
도학(道學)을 세상에 펴시고 그리고 동방 오현의 수현으로 문묘에 종사되신
서흥문중의 후손들이 평생 기억해야 할 선조님입니다.
한훤당 선생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조선의 남명, 퇴계, 율곡과 같은 유학자들이
선생을 한결같이 칭송한데에는 조선의 핵심정신이 된 ‘도학(道學)’을 후학들에
청출어람(靑出於藍)의 큰 뜻을 품고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한훤당 선현의 글 ‘한빙계(寒氷戒)’를 읽어봅니다.
寒氷은 물보다 찬 얼음(寒氷)과 같이 공부를 함에 있어 『엷은 얼음을 밟듯하라(여의박빙,如履薄氷)』는 자아수련의 뜻을 담고 있다고 경현록(景賢錄)은 전하고 있습니다.
옥계 반우형(玉溪 潘佑亨)이
한훤당(寒暄堂) 선생의 글을 받고 남긴 후기 중 일부를 발췌해봅니다.
푸른색(靑色)이 쪽(藍)에서 나왔으면서도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氷)이 물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보다도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
옛 사람[순자 荀子]의 이런 말은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것을 칭찬한 말이다.
청색과 얼음이라 하지 아니하고 특히 찬 얼음의 경게[寒氷戒]라고 쓴 것은,
그 공부가 나보다 훨씬 높기를 바라는 동시에,
엷은 얼음 밟듯 하라는 뜻으로 경계함이다.
《소학(小學)》에 이르지 아니하였는가.
증자(曾子) 말씀에 『깊은 못에 다다른 듯 엷은 얼음을 밟듯 하라.』하신 것은 경계하고 삼가고 두려워함이 지극한 것으로, 실로 《소학》을 공부하는 대강령이 되는 것이니
인의예지(仁義禮智),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생각이 사특함이 없을 것(思無邪)과,
공경하지 아니함이 없을 것(毋不敬)과, 공경함이 태만함을 이겨 낼 것(敬勝怠)과
구사(九思)와 구용(九容)과 쇄소응대(灑掃應對)하는 것과, 스승을 높이며 벗을 친하는 도리가 모두 이 문호(門戶)를 통과햐여야 할 것이다. 만일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정성이 깊지 아니하면, 경(經)을 배우는 것은 한갓 겉치레만 되고 실지의 공부가 없는 것이다.
한훤당 선현의 글 '추호가병여태산부(秋毫可竝旅泰山賦)'
즉 '추호를 태산에 겨눌 수 있다는 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600여년전에 쓰신 이 글속에서 서흥문중의 현재와 미래가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까?
추호수소 구태극야(秋豪雖小 具太極也)
추호가 아무리 작지만은 태극의 이치를 갖추었으며,
태산수대 천소작야(泰山雖大 天所作也)
태산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역시 하늘이 만든 것.
의여나여 초군절륜(猗歟那歟여 超群絶倫)
아아 훌륭하여라! 옥을 자르고 갈고 쪼고 문지름이도다.
『우리나라 성씨 본관 순위와 서흥 문중』
너무 장황한 글이 되지 않았나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또 있습니다.
작지만 큰 우리문중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작지만 큰 명문가로 자부하기보다
명실상부한 명문가로서의 길을 걷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길을 걷기위해
우리문중이 우리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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