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박사를 그리워하면서
金 政 吾
수필가. 문학평론가
이석우 박사님! 당신이 보고 싶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이 하늘 아래서는 볼 수가 없다. 2017년 2월 14일 비보를 받는 순간 놀랐던 일이 다시 생각납니다. 이건 아닌데...얼마 전에도 만났으며, 그 후로 통화도 했었는데....
훤출한 키, 당당한 체격에, 바바리코트를 멋지게 입고,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손을 잡아 주던 이석우 박사님! 당신은 나의 2년 후배로 중고등학교 동문회에서 함께 임원을 맡으면서 정이 많이 들었던 이석우 박사님! 그 후 겸재미술관 관장으로 부임한 후부터는 더욱 자주 만나 우의를 다졌던 이석우 박사님!
이박사의 부음을 듣고, 분당 서울대 병원 영안실을 찾았을 때, 당신과 가까이 지내던 신용철 박사가 호상으로 문상객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 박사님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 그대로, 그러나 영정사진이 되어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망연자실 넋을 잃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사랑하던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두고 어찌 이리 빨리 떠났습니까! 그 자리에는 학계와 예술계의 많은 별들이 당신의 덕을 기리면서 추모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서울 시의원이면서 강서문단 회원으로 활동하던 김경자 시인도 그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이 박사! 당신은 경희대학교에서 어거스틴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그 학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리고 중앙박물관장, 언론정보대학원장, 대학사학회회장등을 역임한 후 옥스퍼드 대학교, 버밍업 대학교,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교 연구 교환교수를 다녀왔으며, 미술에 깊은 지식까지 있었기에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 A)정회원이 되었으며, 강서에 있는 겸재 미술관 관장으로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필가로 등단, 활발하게 문단활동도 했습니다. 당신은 겸재 미술관장으로 부임한 즉시 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겸재미술관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더욱 자주 만났으며, 김포공항입구까지 원정을 다니면서 우리만이 즐기는 식사도 자주 했습니다.
이 박사님은 역사문화연구소 소장과 한겨레 역사문학 연구회 고문을 역임하고, 사) 서울역사 포럼의 임원도 함께 맡았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오키나와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역사 문화 탐방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대표 저서로는 역사의 숨소리. 시간의 흔적, 예술혼을 사르다간 사람들, 역사의 들길에서 내가 만난 화가들, 명화로 만나는 성경은 새롭다. 대학의 역사, 아우구스티누스, 기독교 사관과 역사이해,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과 그밖에 수많은 명 저서가 있습니다.
당신은 말했습니다. 인문학의 전문영역과 의식 있는 대중 사이의 소통공간을 넓혀가는 새벽들의 산책자 같은 집필인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고,...참으로 멋진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다 이루기도 전에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박사님의 1주기가 되는 2018년 2월 14일 1주기 행사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행사는 겸재미술관 주최로 김용권 당시 겸재 미술관장의 주관 하에 열었습니다. 그날 행사장에는 김병희 강서문화원장을 비롯하여 이 박사님을 잊지 못하는 수많은 내외 귀빈들이 자리를 가득 매웠습니다.
손국현 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에서 고지현 사모님의 이 박사님과의 한 삶(一生)에 대해 회고 말씀을 전하실 때, 장내는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김병희 강서문화원장께서 이박사님의 인품에 대해서 말씀했으며, 안희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박사님의 예술 세계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우인을 대표하여 신용철 박사께서 이박사님의 인품과 학문세계를 전했습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겸재미술관을 더욱 반석위에 올려놓겠다고 애쓰던 던 중 폐렴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고 만 이 박사님! 이 박사님은 지금 아름다운 하늘나라에서 겸재의 진경산수를 감상하시면서 옛일을 회고하실 것입니다. 이 박사님을 먼 길로 떠나보내고 허전해 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알기나 하십니까? 그러나 인간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법, 우리 다시 만날 때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로 해야겠습니다. 아름다운 나라에서 편히 지내실 것을 믿으면서 이만 붓을 놓습니다. 고이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