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입춘대길
이영백
노랑나비 폴폴 날아다니는 초봄이다. 초교입학 전부터 서당에 다녔다. 봄이 골목어귀에 내리쪼이던 날 아버지 주문하였다. “오늘 서당에서 입춘방(立春榜) 써 오거래!”하였다. 한지 한 묶음을 주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훈장에게 여쭤보면 알 것으로 생각하고 갔다.
서당에 들어서자 벌써 은은한 묵향이 가득 찼다. 먼저 온 학형들이 궁둥이 치켜들고 괴발새발 입춘방이라고 쓰고 있었다. 덩달아 나도 벽에 훈장이 써서 걸어둔 입춘방을 임서하였다. 역시 한문글씨라고는 처음 배우고 썼으니 그것을 보고 썼더라도 차마 모두가 괴발새발이 될 수밖에 없다. 여러 장을 썼으니 괜찮을만한 몇 장의 글씨를 골라 주었다. 훈장은 “이 글자는 삐침이 잘 되었고, 저 글자는 파임이 잘 써졌네.”라고 지적 아닌 자꾸 칭찬만 해주었다. 잘못 쓴 글자는 아예 너무 많았던지 말씀조차 없다. 조금 민망하였다.
집에 들어서면서 “훈장님이 입춘방 잘 썼다고 칭찬만 받았습니다.” “그래, 정말 잘 썼나? 어디 막내아들 글씨 한 번 보자!” “여기 보십시오. 이 글자는 요기 잘 썼고, 저 글자는 저기가 잘 썼다 합디다.” “첫 글씨치고는 괜찮네. 기둥마다 갖다 붙여라.”
입춘방 써서 칭찬받고, 덩달아 칭찬일색에 기둥마다 붙이느라고 풀 이 틔었다. 매년 큰 형이 썼는데 그 해부터 바통 이어받았다. 큰방 기둥에 立春大吉, 國泰民安, 큰방 부엌문에 建陽多慶, 開門萬福來, 사랑채 문 위에는 如山富如海, 외양간문에 掃地黃金出, 春滿乾坤萬福家 등 차례로 붙이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쓴 글 모두 붙이었다.
사대부 집안에는 기둥에 붙인 입춘방 두께가 한 치나 된다고 자랑한다. “삼대가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이다.”란 말이 있듯 아버지는 일찍 그것을 헤아렸던지 두 띠 많은 큰형과 열 자식 막내인 나만 서당에 보내 입춘방 배워오라 하였던 것이다.
조상의 깊은 헤아림을 어찌 알랴마는 대대로 내려 온 입춘방이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