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사람으로 났으면..사람으로 살아야하지 않겠니??
깨어있어라!나에게 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걷는 걸음에 들려지는 그 소리는..저에게 하는 소리였나봅니다..
깨어있어라..무엇으로 나를 깨어있게 할까요.
뉘든 내게 커다란 무언가를 바라진 않을텐데....
찾아오는 친구들과 갈 수 있는곳이 없습니다.
그나마 이곳이었는데요.. 맘과 달리 제가 알아서 그네들에게
줄만한 것이 너무 없더군요.
민주니..애국이니..그런 거창한 말끝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알아야하고 잊지 말아햐 할 부분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의 나만큼이나 자라 있는 아이들에게 말로 인식은 시켜주지 못할망정..
깨어있는 엄마이고는 싶었더랍니다.
5.18망월묘지......
2002년도부터 국립묘지로 불리워지고 있지만..
역시나 그곳은 우리에게 잠들지 않는 영원한 망월동일 뿐입니다..
사실상 5.18국립묘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진입로를 돌아서면 365일 지지 않은 꽃..5월의 꽃입니다..
뒤켠에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신하시던 아주머니...
국립묘지 들어서기 전 도로변 마을앞에 있었습니다.
전에도 앞으로도..불의앞에 눈 감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돌아서지 말라는..네 뒤에 우리 있음을 잊지 말라는...
잠깐 쉬며 발 아래 크로바를 보았습니다..
아직 한창 꿈을 꾸어야 했을 님들..
그 님들도 이 속에서 네잎 크로바를 찾으며 희망을 노래했겠죠..
찾아가는 길이 한가하니 좋습니다.
만나진 분이 있습니다.독일분이랍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것을 알고 있었지만..그냥 지나칠수는 없었습니다.
이곳을 찾아주신 그 마음에 기꺼이 고개를 숙이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의외로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시던 그 분..
우리게만 없는.....우리만 외면하는..
세계속에 큰분..윤이상님과 오랫동안 교제를 하셨던 분이랍니다.
윤선생님의 음악속에서 광주를 알았답니다.
살면서.. 가장 오고 싶었던 이곳이라며...
안내를 하겠다 앞섰습니다....
민주의 문이라 일컬어지는 이곳..
민주화 운동을 하시다 돌아가신 영령들을 모셔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라 해서..민주의 문이라 명명했습니다.
민주의 문에서 본 전경입니다..
추념문 들어서기 전.. 민주광장이 있습니다.
넓직한 이곳은 5월이 되면 각종 집회나 행사를 진행합니다.
추념문이라 합니다.. 추모 광장에 들어서기 전 한번 더 5.18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뜻으로
추념문이라 명명했습니다.
묘지에 모셔진 님들을 받드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
추모탑은.. 높이 40m로 두개의 대칭되는 사각기둥 모양인 탑신의 골격은
우리나라 전통 석조물인 당간지주 형태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형상화한 것입니다.
중간에 양손으로 품고 있는 형상은.. 난형환조인데요..
해가 비취는 방향에 따라 반사되는 빛은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을
상징하며 다음 생에는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뒤로 10개의 부조가 있습니다.
5.18당시 10일동안의 항쟁을 일지 형식으로 전개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탑명은 소설가이신 송기숙교수님께서..
시는 김준태 시인의 시입니다.
80년 항쟁이 진압된 뒤 전남매일 신문에 실렸지만,
군부가 절반 이상을 삭제시켜
내보내게 함으로써 내용을 알 수 없었던 시입니다.
역시나 원본에서 삭제된 부분이 많은 시이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입니다.
항쟁에 나섰던 시민군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무장 항쟁과, 대동세상을 표현했습니다.
공원은 전체 30,000여평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묘역으로 조성된것은 총3,000평으로 784기를 수용 할 수 있습니다.
관련 부상자가 4000여명이 넘는데..턱없이 부족한 상태이죠..
사망하신 순서대로 안장되어 있습니다.
흘러나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낳게 한 윤상원 박기순님을 비롯해
저수지에서 목욕하다..뒷동산에서 친구들과 놀다..
죽어가는 이웃에게 피를 나눠주다.. 남편을 기다리다..
동지를 묻을 관을 구하러가다..민주주의를 외치다..
그렇게 가신 분들입니다.
방문하신 분들의 역사 체험 고안으로 안내하는 시설물로
공간으로 조성된 곳입니다.
]
지하에는 당시의 생생한 사진과 영상물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공간 뒤쪽.. 구망월동 묘지로 돌아가는 방향에 있습니다.
복층건물로 되어있으며, 5.18묘역을 내려다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하자는
의도에서 높게 종각을 세웠으며 그 안에서는 영상물을 볼 수 있습니다.
97년 신묘지가 조성 되기 전 망월동 묘지로 불렸던 구묘지입니다.
신묘지 조성 후 5.18관련 희생자들은 신묘지로 옮겼으나,
그 외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36분의 열사님들은
구묘지에 모시고 있습니다.
뭘까요...
구 묘지의 예전 입구 입니다.
아아 광주여! 우리 나라의 십자가여!
김준태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서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 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만 뒤집어 쓸망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 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산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지금 우리들은 다만
쓰러지고 쓰러지고 울어야만 하는가
공포와 목숨 어떻게 숨을
쉬어야만 하는가...
아아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서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아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 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나는 당신의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아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한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우리들의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드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