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쁨
올 봄부터 주중에 고향 상주에 포도원농장을 시작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늘 기회가 주어지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함께 생활하면서 어머니와 저녁에는 찬송을 늘 10곡 정도씩 불렀는데 어머니는 찬송가 가사가 잘 보이지 않아서 힘들어 하셨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 돋보기안경을 쓰셔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건조증을 완화시키는 약을 사용해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치료를 고려해 보았는데 여러 해 전에 수도권에 있는 안과에서 검진을 했는데 수술시기를 놓쳐서 백내장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 무기력하게 견뎌야만 하는 사실도 안타까웠습니다.
마침 근처에 사는 권사님 한 분이 충북 보은읍에 있는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고 종종 사후관리를 위해서 약 처방을 받으러 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교통편을 제공하기로 했는데 그 권사님이 어머니도 함께 가서 진찰을 받고서 수술했으면 좋겠다는 권면을 하셨습니다. 저도 권면했는데 어머니는 이미 자신의 눈은 치료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거부하셨습니다. 그런데 몇 번 권면한 후에 보은에 있는 안과에서 검사했는데 백내장이 오래 되어서 쉽지는 않지만 수술이 가능하다고 의사가 진단을 내렸습니다.
어디에서 수술을 받을까 고민하는 중에 가깝게 교제하는 안과의사 친구가 있어 상담해보니 시골지역에 있는 안과에서 수술을 받으면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치료가 힘들다는 이야기와 나이든 노인의 백내장은 단단해서 치료가 쉽지 않다면서 가능하면 큰 병원에서 수술받기를 권면했습니다. 수술장소문제로 형제들 하고 상의도 하고 여러 고민 끝에 어머니께서 고향집에서 가까운 충북 보은에서 수술을 받겠다고 하셔서 원래 수술검사를 받은 안과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오른쪽 백내장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수술 받고 나서 어머니는 갈색바지로만 알았는데 보라색바지임을 알게 되었고 까만 고무신으로 알았는데 파란고무신임을 알았다고 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릇에 때가 많이 묻은 것을 보시면서 열심히 닦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에 왼쪽 눈 수술도중에 응급상황이 발생했는데 왼쪽 눈의 수정체일부가 눈동자 뒤쪽으로 떨어져서 제거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시작할 무렵에 이런 일이 발생해서 원장선생님은 대전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진행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동안 원장은 약 오천 명 정도의 백내장환자를 수술했는데 어머니가 처음 경험하는 응급상황이었고 자신이 시도할 수 있지만 충분한 기구도 없이 무리하게 진행했다가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기에 충남대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원장선생님이 오후에 휴진이어서 함께 충남대 병원으로 갔습니다. 허리가 굽은 어머니는 진료실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시면서 여러 검사를 받는 데 힘들어하셨습니다. 오른쪽 눈만 수술받고 왼쪽 눈은 받지 말 것을 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또한 수술 전에 많은 검사를 받는 것을 불평하셨습니다.
수술실을 들어가실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어머니의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의사와 간호사들의 손길을 통해서 수술이 잘 진행되게 해주시고 수술 후에 잘 회복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어머니의 남은 생애가 예수님의 은총과 돌보심 가운데 있게 해주십시오.” 기도하는 도중에 어머니는 제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수술 준비과정을 거쳐 저녁 8시 10분경에 수술이 시작되었는데 수술예상시간인 1시간 후인 9시 10분이 되어도 수술이 끝나지 않아서 또 다른 응급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면 수술이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원장선생님도 당황해하셨습니다. 9시 35분 정도에 수술이 마쳤는데 예상보다 더 걸린 25분의 시간은 참 긴 시간이었습니다. 수술을 집도했던 안과교수님이 환자의 백내장이 단단해서 수술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렸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어머니를 모시고 오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는데 먼저 어머니의 치료과정을 지켜보면서 감사했습니다. 자신의 치료과정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에 대해서 변명하지 않고 침착하게 치료과정을 계속해서 진행시킨 원장에게 감사했습니다. 친절하게 책임지는 자세로 감당하는 원장을 지켜보면서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선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가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 ........ 그 어떤 때라도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으며, 즐겁게 의술을 펼칠 것이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참 좋은 의사 한 분을 만나면서 여러 의료인들의 수고와 헌신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머니의 치료과정을 지켜보면서 염려해준 가족들과 교우들, 마을의 어르신들에게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모든 질병의 치료와 회복의 과정도 또한 인생의 행복도 더불어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 가을에 한 송이의 아름다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다는 서정주님의 시가 생각납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정성을 모아서 이 땅의 개인과 가족 안에 생명의 역사를 더욱 풍성케 만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