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1편, 시 3편 중에서...
[시 3편]
1.
꽃바람 부는 날
박시은
네가 서있던 그곳은
아득한 먼발치였는데
그새 문밖에 다다랐구나
그리 매섭던 동장군도
아기 뺨처럼 보드라운
봄바람에 무릎 꿇고
포근한 햇살 인기척에
고개 내민 홍매화 꽃망울
봉긋봉긋 설렘 전한다
시샘추위 가고
꽃바람 부는 날
온누리에 향기 번져갈 너
완연한 봄아
내가 기다리는 거 알지?
빨리 만나고 싶어
ㅡㅡ
2.
은빛 내리던 밤
박시은
한 때는 그대 있으매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 다 가진 듯
내 가슴 우주를 품었고
내일이라는 설렘은
풍선처럼 둥둥
하늘을 날아다녔지
동두럿 달 뜨고
은가루 쏟아지던 밤
속닥속닥 별들의 속삭임
사랑을 꽃피우던 모닥불
아찔한 향기 내뿜으며
밤을 하얗게 태워버렸지
파도소리에 실려온
은빛 내리던 밤
아름다운 겨울이야기는
가버린 날들의 옛 추억
이젠 빛바랜 색처럼
아련한 여운 안고
그리움으로 잠이 든다
ㅡㅡ
3.
봄비로 오신 임 박시은
마른 땅 촉촉이
단비가 적셔주듯
외로운 가슴 달래주는
그리움이 내린다
이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애타는 심장
목마른 보고픔이여
후두둑 빗소리는
토닥여주던 정겨운 손길
봄비로 오신 임
포근한 숨결 들린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흠뻑 젖어들어라
사무치는 그리움이여
사랑하는 나의 엄마
꿈에서나마 우리 만나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수필 1편]
내 살아갈 이유 있음이니..
박시은
퇴색한 것은 가치가 없다. 천리향은 우아한 우유빛 아름다운 꽃망울을 맺으며 피어날 때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다. 뭇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하던 그 고운 자태도 언제까지나 지속되던가? 초췌한 모습으로 시들어 꽃잎 떨굴 때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인향은 만리를 간다는데, 인간사에 변하지 않는 게 무엇 있을까마는. 영원히 불변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쉽게 변해버리는 것 또한 사랑이더라. 다만, 아가페와 에로스의 차이가 있을 뿐.
이리저리 갈대를 흔들던 가을바람이 마음을 싣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눈을 감고 행복했던 추억의 책장을 살포시 넘겨본다. 괜 스레 시린 아픔마저 스멀거리며 새어나올 것만 같은 한 묶음의 숱한 사연들. 펼쳐보려다 말고 그 안에서 더 잠들게 조심히 덮어버렸다. 한 가지를 매듭짓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무한 반복되는 그와의 고단한 삶에서, 삭히고 지우며 잊으려 부단히도 애써온 기억의 편린들이 아프다.
어떤날엔 절제된 생각 한줌이 허물어지고, 잃어버린 나를 찾고자 심오한 생각 끝에 냉정한 결심이 필요한 시점이라 여겼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갑자기 맞닥뜨리게 된 상황 속.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버린 내가 되었기에, 그 해법을 풀어야만 하는 나는 또 이렇게 분주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스쳐가는 먼 기억들이 현실과 교차하면서 빚어내는 괴리감에, 나도 모르게 가끔씩 터져 나오던 헛웃음이 순간순간의 낯설음을 희석시켜주곤 한다.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에 겨운 웃음도 무너진 가슴에 차오르는 쓰라린 눈물도 영원하진 않다. 다 지나간다. 아련한 추억이 담긴 빛 바랜 사진첩엔 그리움 머물다 간 흔적이 여운을 남긴다. 세월 흐름에 순응한 계절은 언제 어떻게 왔는지 슬그머니 내 마음 속에 비집고 들어와 이내 자리를 잡는다. 늦가을로 가는 길목이다.
흐르는 시간 따라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 늦가을. 돌아보니 벌써 또 1년이 훌쩍 지났다. 애잔한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갔던 그 계절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때가 되니 그때 그자리로 다시금 되돌아왔다.
인간의 마음과 유전자에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본능이 내재되어 있다는 바이오필리아 학설처럼...
이렇듯 질서 정연하고 조화로운 자연은, 지난 기억 속의 추억을 소환하여 잠자는 감성을 깨우고 상심을 정화시켜 주기도 한다. 무릇 욕망을 좇는 우리 인간들에게 오롯이 내어주고 베풀기만 하지, 신의를 저버리는 일은 결코 없다.
나부터 그러하듯 생존경쟁 치열한 인간세상은, 대개 하나라도 더 가지려 애쓰고, 강한 소유욕으로 내 것 쌓기에 집착한다. 비워야 채우는 법이라 했거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거라 생각 했던 나의 그이는 알아주던가? 고맙고 미안하다. 앞으로 더 잘하겠다. 다음부터는... 이라던 그 다짐과 언약들이 독야청청 푸른 소나무처럼 아니 변하던가?
쉬어 갈 줄 모르고 그저 묵묵히 제자리 지키며 앞만 보고 달려온 미련한 바보가 나였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된 것임에도 사생결단으로 거절할 줄 모르고, 실타래처럼 얼기설기 얽혀버린 질긴 인연 줄을 끊어낼 줄도 모르고 여즉 인내와 포용을 품고 살아왔다. 지금까지 내가 얻은 건 무엇이고, 남은 것은 무엇인가? 결혼한지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한 때 건강을 잃었고 가계 부담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 있었다.
남편과의 서류 정리는 수십 년 수십 번 마음으로만 했고, 실지로는 행하질 못했다. 피붙이라는 게 무언지. 아이가 어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부모가 세상에 내놓았으니 마땅히 책임져야 할 우리 자식들이 아닌가, 이 고귀한 존재들 때문에... 인생 참 덧없고 부질없다! 어느날 문득 서글픔이 밀려드는 창가에서 고독을 마주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줄기 서광이 비췄다.
매일 부대끼고 살면서도 너무 가까이 있어 열어보지 않았던, 크고 투명한 보물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광채가 너무도 눈부셔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 맞다! 나에게 이런 큰 자산이 있었구나!'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다운 맛을 모른다."고 괴테가 말했던가. 채워도 비워지기만 했던 인생 여정. 그 허망함의 대가(?)로, 나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을 얻어서 간직하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내 삶에 기꺼이 보람이 되어준 나의 보배인 딸과 아들이다.
착한 내 딸이 후학을 양성하는 중등 교사로서의 사명감으로 보람있는 삶을 예쁘게 살고 있고, 사회성이라곤 하나 없는 듯한 어리숙한 내 아들이지만, 누나를 본받아 대재 4년간 전면 성적장학생을 유지했으니... 교사 월급도, 군인 월급도 둘 다 내게 맡기고 용돈을 타 쓴다. 경제개념이 있어야 할 나이라고, 직접 관리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엄마가 다 써버린다고 엄포를 놓아도, 다 써도 된단다! 그사람 사업자금 관련한 일과 내 업무도 벅찬데, 애들 통장까지 관리해주는 거. 솔직히 신경쓰이고 귀찮지만, 엄마로서 신뢰 하나는 얻고 사는 모양이니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애들이 초중등 학생일 때의 일화 하나가 떠오른다.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우리 딸내미 시험 잘 봤니?"하고 물었더니,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 몰라!" 했다. 아들에게도 똑같이 물어봤었는데, "응. 잘 쳤지. 오늘 시험 억수로 쉽더라. 내 아는 거 다 나왔더라!" 고 했었다. 시험 결과, 성적이 나왔을 때 난 그만 웃음이 빵 터졌다. 예외없이 혹시나 했던 마음은 역시나로 귀결됐다. 전과목 올백을 못 받게 되었다고, 달랑 한 문제 틀린 걸 갖고도 속상해했던 딸. 한 과목당 너 댓개씩 주룩주룩 소나기가 내렸어도, 잘 쳤다고 싱글벙글대던 아들. 둘의 성격은 완전히 반대다. 그랬던 녀석이 이젠 다 컸다고. 어두운 거실에 혼자 앉아 소리없는 눈물 삼키던 날. 슬쩍 곁에 다가와 속상해하는 나에게, 우리 엄마 불쌍하다고 등을 토닥이며 같이 눈물도 흘려주었다. 어느새 그리 철이 들었는지...
요렇게도 고운 딸과 순진한 아들이 내가 사는 이유의 전부이고, 내 삶의 원동력이다.
내 살아갈 이유 있음이니... 이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무의미한 시간의 기억은 하나 둘씩 지워나가련다. 밤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별빛이 날 향해 손 흔들며 반짝반짝 응원한다.
2020년 가을을 만났던 날.
한 편의 시를 그리다.
다시 만난 가을 박시은
감성 언저리
머물러 있던 시상이
새벽 찬 공기에
나를 흔들어 깨운다
계절을 한 바퀴 돌고
언제 성큼 다가왔는지
내 곁에 서 있는
낯익은 듯 낯선 가을
인사할까 말까
옷깃 여미게 하는 선선한 바람
물들어가는 나뭇잎
빛바랜 기억들 되살아나
외로이 심장에 스며들고
흐르는 시간 속
묻혀가는 세상 이야기
마음 뒤숭숭 몸짓 어정쩡
길 잃은 철새 방황하듯
마음둘 곳 없는 공허가
가을 속으로 잦아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발행인 이사장님!
저는 국보문학에는 처음으로 글을 게재하게 되어, 프로필도 올려봅니다.
카톡으로 쓰니까
메일과 달리 행이 잘 맞지 않습니다.
▪️문단 약력
경북 선산 출생. 대구 거주
WINNIE ENGLISH 원장
(초중등 영어 20년)
E메일: fgt9181@naver.com
계간 『문예세상』수필 부문 등단(2019)
월간 『문학세계』시 부문 등단(2019)
문예세상 문인회 정회원
문학세계 문인회 정회원
(사)한국국보문인협회 정회원
제31호 동인문집 내 마음의 숲 편집위원
◇동인지 공저:
°문학세계ㅡ영시, 소시집 외 다수
°명작가선ㅡ2020 한국을 빛낸 문인:
별빛은 그리움을 깨우고 외 2편(시)
°'문세사람들' (3호, 4호)
°'하늘비 산방': 정지이 추억(수필)
°'주간 구미 신문': 수필, 시 게재
◇공저 작품들:
°수필: 아나운서 지원 때 화면발에 충격 먹다 , 부처님 오신 날, 내 마음외 일기 외 다수.
°시: 꼬맹이의 시골 여름 기억 (1)(2),
야생화, 겨울나목, 산 외 다수
첫댓글 국보사랑 선생님의 리플-교정을 참조하여
본문을 최종 수정했습니다! (2021. 3. 18. 5p.m.)
시 같은 수필을 쓰고 싶은 개인적 취향이랄까, 뭐 그런 바람으로..
2019년도 수필 등단작부터 글 마무리 하단에,
수필 내용에 부합하는 시를 한 편씩 남거보고 있답니다. ^^
*문단 약력. 양식에 맞춰 줄여주신 것을 참조하여 수정했사오니,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인지: 영시와 소시집 사이에 가운데점으로 분류
명작가선, 하늘비 산방 추가
E메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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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호 동인문집 ‘내 마음의 숲’ 편집위원
동인지 공저: 『소시집 ㆍ영시 』『명작가선 』『 하늘비 산방 』『문세사람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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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메일: fgt918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