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지 창아입니다
이번에는 <아르누보>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 및 미국에서 유행한 장식 양식입니다.
'아르누보'는 영국·미국에서의 호칭이고, 독일에서는 '유겐트 양식(Jugendstil)',
프랑스에서는 '기마르양식(Style Guimard)', 이탈리아에서는
'리버티 양식(Stile Liberty:런던의 백화점 리버티의 이름에서 유래)'으로 불린대요
아르누보는 유럽의 전통적 예술에 반발하여 예술을 수립하려는 당시 미술계의 풍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 클림트나 토로프, 블레이크 등의 회화의 영향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아르누보의 작가들은 대개 전통으로부터의 이탈, 새 양식의 창조를 지향하여
자연주의·자발성·단순 및 기술적 완전을 이상으로 했어요.
종래의 건축·공예가 그 전형(典型)을 그리스, 로마 또는 고딕에서 구한 데 대해서,
이들은 모든 역사적인 양식을 부정하고 자연형태에서 모티프를 빌려 새로운 표현을 얻고자 했죠.
특히, 덩굴풀이나 담쟁이 등 식물의 형태를 연상하게 하는 유연하고 유동적인 선과,
파상(波狀)·곡선·당초무늬[唐草文] 또는 화염(火焰)무늬 형태 등 특이한 장식성을 자랑했고,
유기적이고 움직임이 있는 모티프를 즐겨 좌우상칭(左右相稱)이나 직선적 구성을 고의로 피했어요.
그리하여 디자인은 곡선·곡면의 집적(集積)에 의한 유동적인 미를 낳는 반면
견고한 구축성이라든가 기능에 기초를 둔 합리성이 소홀하여 기능을 무시한
형식주의적이고 탐미적(耽美的)인 장식으로 빠질 위험도 컸습니다.
아르누보가 비교적 단명(短命)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래요.
아르누보의 전성기는 1895년경부터 약 10년간이에요.
그보다 이전인 1880년대에는 영국의 맥머드, 미국의 설리번, 에스파냐의 가우디 등이
그래픽디자인이나 건축에서의 곡선적인 형태를 다용(多用)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특히 맥머드의 예(교회의 팸플릿 표지)는 분명 아르누보의 선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매킨토시, 벨기에의 반 디 벨데와 오르타, 프랑스의 기마르와 가이야르,
이탈리아의 다론코 등의 작가가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게 되면서 아르누보는 널리 그리고 급속도로 보급되었습니다.
특히, 1896년에는 독일의 미술품상인 빙그가 반 디 벨데에게 의뢰해서
내부장식을 한 파리의 상점은 '아르누보관(館)'으로 명명되어 독자적인 장식성으로 하여
대단한 인기를 얻고 유명해졌는데 이 신양식(아르누보)의 유행에 박차를 가하였습니다.
1897년 드레스덴의 박람회, 1902년 토리노박람회 등에서는
아르누보의 실내장식과 가구 등 공예품 전시회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어요
한편 독일·오스트리아에서는 1896년에 뮌헨에서 발간된 잡지 《유겐트(청년)》에 에크만 등
뛰어난 디자이너가 작품을 발표하면서 '유겐트 양식'이 태어났는데
이것은 아르누보와 거의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10년경부터 건축·공예계에는 기능과 사회성을 보다 중요시하는 풍조가 강해지면서
R.랄리크의 보석 디자인, E.가레의 유리공예, 그리고 미국에서의 티퍼니의 유리그릇과
에스파냐에서 계속된 가우디의 건축활동 등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 아르누보는 소멸해 갔습니다.
그러나 종래의 역사주의·전통주의에 반항하여 빈의 제체시온(secession:분리파)을 불러일으키는 등
현대미술의 확립에 선구적 구실을 했다는 점과 근대운동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야 해요
설리번이 설계한 시카고 공회당(1888), 오르타가 설계한 브뤼셀의 P.E.얀손가(街)의 가옥(1892∼1893),
기마르가 설계한 파리의 지하철역(1900) 등이 아르누보의 양식을 오늘에 전하는 대표적인 것이며
뭉크, 툴루즈로트레크, 나비파도 이 유행의 기조에 관련하는 것으로 간주된대요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