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즈음
김은호
세상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싱크홀
지구 반대편에서 총 맞은 아이가 웃고 있다
이곳은 수많은 실수가 파놓은 허점투성이
줄거리 없는 이야기
속 비어가는 뼈들의 지게가 일흔 개의 봄을 지고 간다
느티나무 아래 계단에
고목의 그늘진 음성이 들려온다
‘여보게, 천천히, 이제 더는 넘어져선 안 돼!’
넘어질 준비를 하면 저 아래 바닥이 보이고
사라진 난간이 보이고
먼저 간 친구의 뒷모습이 보인다
마침내 하늘도 보인다
글썽글썽 오는 하늘
파랗게 물드는, 또 하루 가까워진다
먼 데서 오는 시를 마중 나간다
어둠 거슬러 오는 내 언어들의 이즈음
물총 든 아이의 천진난만이 휙 지나간다
잣나무숲 목욕탕
김은호
우리 동네에는
잣나무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목욕탕이 있다
잣나무들이 떠받치고 있는
푸른 정결 한 채
날마다 굴뚝에서 숲 향기 솟아오르고
창틈에선 모락모락 새소리 피어난다
입구에는 ‘연중무휴 ’ 입간판이 놓여 있다
요즈음 불경기라서 너구리, 오소리, 고라니, 멧돼지 같은
단골손님들 발길이 뜸하다
단체 할인 받는 박새들만 부지런히 드나든다
신혼여행 온 백로 부부의 사랑을 찜질방이 달궈주기도 한다
예금통장, 컴퓨터, 텔레비전 같은 것에 대한 집착은 벗어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피톤치드 욕조에 찰랑거리는 고요
나무들이 서로 등 밀어주는 소리
아, 입 벌리면
샤워기에서 박하사탕 같은 햇빛
때 묻은 시간의 등 닦아주는 손 빽빽한,
영혼 저 밑바닥까지 개운해지는 목욕탕
푸른 날갯짓 하며 날아가는 목욕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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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 2015년 계간 <시와소금>으로 등단.
시집 『슈나우저를 읽다 』(출판사2018.5. 문학의전당)
첫댓글 2018.5. 문학의전당' 이 무엇인가요? 여기로 등단이란 뜻인가요? 상을 수상했다는 뜻인가요?
그리고 줄 간격이 맞는지 본인이 확인 좀 해 주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줄 간격--- 행 바꾸기)
요즈음 불경기라서 너구리, 오소리, 고라니, 멧돼지 같은
단골손님들 발길이 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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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통장, 컴퓨터, 텔레비전 같은 것에 대한 집착은 벗어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시집 펴낸 곳 ---문학의전당, 2018년)
(띄어쓰기)
1번 시의 '파놓은', '허점투성이', '가까워진다'와 2번 시의 '할인받는'.....의 표기도
부산대, 네이버 등 맞춤법 검사기에 확인해 보니 맞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미 출판된 원문대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