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점을 지목하고, 한국인으로서 한국어 언어법과 자연스러움 등을 냉정하게 바라본다는 핑계로 문화 사대주의자들은 성우를 섭외해서 목소리 연기를 맡긴 결과물에 불과한 '일본판'을 대입해서 한국어 더빙판이 '일본판'의 느낌을 살려내지 못했다며 깎아내린다. 그리고 자신들의 잣대를 들이대어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망했다고 본다. 이렇게 일어를 모르는 탓에 일본 성우들의 단점은 제대로 찾지도 못하면서, 한국 성우들의 단점은 교묘하게 잘 찾아내는 것이 문화 사대주의자들의 전형이다.
그들의 논리는 민족의 발전을 위해 <민족개조론>, <민족적 경륜>을 썼다는 이광수의 논리를 닮아 있다. 이광수는 아시다시피 식민지 시대 중기에 친일파로 돌아선 자다. 이광수의 저서들은 오히려 한겨레에게 심대한 열등의식만을 심어 주었다. 이광수의 논리를 닮아 있는 그들의 논리는, 한국어 더빙이라면 일단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 있는 것일 뿐이다. 캐릭터의 성격과 특성 혹은 스토리 내 각각의 상황을 성우들이 제대로 숙지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각국의 언어로 더빙한 결과물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자세다.
특히, <케이온!>의 경우 일어 더빙판은 주연 4명을, 데뷔 5년차 미만인데다가, 2007년 이전에는 애니메이션 더빙에 참가한 경력도 전혀 없는 신인 성우들이 맡은 반면, 한국어 더빙판은 대부분의 역할을 입사 10년차 이상의 베테랑 성우들이 맡았다. 그런데도 문화 사대주의자들은 우리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 무조건 일어 더빙판 쪽이 뛰어나다는 결론을 내린다. 또한, 그들은 한국어 더빙을 비난하는 이들의 생각이 비슷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스스로 정당한 이유 없이 비난한다는 것을 성토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그리고 문화 사대주의자들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원활한 더빙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은 숫자만 많으면 된다는 석기시대 사람들이나 할 법한 사고를 하며 비판과 비난의 차이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성우의 숫자가 적은 것이 성우들의 연기력과 어떠한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성우들의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전체적인 연기 능력이 뒤처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전쟁에서 지고는 병사의 숫자가 적어서 병사들의 전투력이 떨어졌다는 변명과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가혹한 중복 캐스팅을 커버해 내는 한국 성우들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비논리적으로 원작 훼손 운운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뜻이다. 고유의 목소리나 연기 기법에 따라서 캐릭터의 성향, 성격,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서로 다른 두 언어로 더빙한 결과물이 완전히 똑같아지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문화 사대주의자 대부분은 어떤 부분이 이상한가를 설명할 줄 모르면서, 그리고 언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않았으면서 오로지 일어 더빙판과 목소리와 느낌이 다르다는 이유만을 들이댄다. 이렇게 굳이 분개할 필요가 없는 일에 분개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과 <라라의 스타일기(키라링 레볼루션)>처럼 연예인을 섭외한 탓에 일어 더빙판 중에도 결과물이 개판인 것이 많은 것도 전혀 모른다. 이러면서 한국어 더빙판이라면 일단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이렇게 문화 사대주의자들은 연기력보다는 사람 고유 요소일 뿐인 목소리를 물고 늘어지며, 정작 일어를 모르기에 일어 더빙판에서는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로 우스운 것은 나이대가 맞지 않는 미스 캐스팅, 한국 성우계보다 더욱 가혹한 중복 캐스팅이 난무하는, 서구권 언어 더빙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국의 정서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문화 사대주의자들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무조건 일본의 것을 따라야 한다고 우긴다. 정작 한국 애니메이션은 보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말투는 캐릭터의 한 요소일 뿐이다. 따라서 말투는 '일본판'을 보지 않은 이에게는 전혀 문젯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사들은 한국 성우들이 한국어로 더빙하는 기준을 특정 집단 혹은 특정인이 평가하는 기준에 맞추어 주어야 필요가 없다. 이렇게 문화 사대주의자들은 현재 한국 기득권층처럼 애니메이션을 특정 집단의 전유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한국어 더빙판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예를 들어 '톤이 너무 불안정하다', '비음이 너무 많이 들어다', '어떤 캐릭터는 혹은 어떤 상황에서는 이렇게 연기해야 하는데 저렇게 연기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당한 이유도 없이 무조건 망했다고 비난하면서 더빙이 잘못되었다고도, 성우가 나쁘다고 한 적도 없다고 발뺌해 봤자 실사구시 주인정인이 제대로 박힌 이들 중에서 미더워해 줄 이는 아무도 없다. 또한, 한국어 더빙판이 싫다면 굳이 공개 석상에서, 매사를 존중의 자세로 임하는 '진정한 매니아'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아예 아무 말 없이 일어 더빙판을 보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