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바람의 언덕(띠밭늘)

[역마살]

 

도장포 바다 바로 옆에 차를 세웠다. 그저 그런 바닷물에 그저 그런 포구였다. 차에서 내려 건너편 언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넋을 놓았다. 저 언덕 뒤편에 더욱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저 언덕 위에 서면 훨씬 멋진 풍경이 펼쳐지지만 도장포에서 바라본 그 단편적인 모습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뭐랄까… 머리로는 연신,

‘저기는 저런 게 있을 자리가 아니야.’

하면서도 시선으로는 연신 저기에 저런 게 있어야 할 당위성을 찾고 있는 모순이었다. 즉, 언덕과 그 배경을 이루는 돌, 풀, 바람, 나무, 바다, 사람의 조합은 더할 나위 없이 고유한 형태지만 하나씩 떼서 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저기에 돌, 풀, 바람, 나무, 바다,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한 것인데 저렇게 조합돼 있을 순 없다는 뜻이다. 그 이상한 조합이 [바람의 언덕]이라는 고유명사를 탄생시켰고, 거기서 받은 나의 첫인상은 이랬다.

[ 흘러가는 세월에 제 몸을 맡겨 못나지도 잘나지도 않도록 자신을 성숙시킨 뒤편 해송숲의 한국적인 자연스러움이 싫어 제 손으로 살을 찢어 일일이 솔을 뽑고, 움직일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바다로 몸을 뻗어 끝내 제 몸 한 자락을 소금물에 담그고,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초록 머리칼을 휘날리는 것으로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만족을 표현하고 있는 자존심 강하고 고집 센 비한국적이고 비자연스러운 언덕 ]

지금 생각해 보니 도장포에 차를 세우고 바다 쪽에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바람의 언덕과 수평을 이루는 주도로에 차를 세우고 솔밭을 건너가야 했다. 답답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는 솔밭을 이윽고 다 뚫었을 때, 눈 앞에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쫙 펼쳐 보이는 언덕과 바다가 얼마나 극적이었을까? 해발 0 도장포에서부터 찬찬히 걸어 올라간 우리는 줄곧 바람의 언덕을 올려다보면서 걸었다. 그래서 풍경이 점점점점 나아지긴 했지만 싱거울 수밖에 없었다. 솔밭과 맞닿아있는 최고점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보니 그 아쉬움이 더했다. 이미 알아버린 풍경이고 봐 버린 언덕이라 아무리 솔밭에 들어갔다 나온들 뭐 특별할 게 있을까? 이젠 내 인생에 극적인 바람의 언덕이란 없다.

바람이 불었다. 1 년 365 일 절대 그칠 것 같지 않은 바람이 불어왔다. 한라산 백록담 이후 이렇게 시원하게 바람을 맞아 보긴 처음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평소에 불어오는 바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바람이 나를 강타하는 순간, 그러니까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 꼿꼿이 서 있기 위해 내 이 두 눈을 부릅뜨고 온몸에 힘을 준 그 순간, 감기 싫어 핏발 선 두 눈에 각인된 제주도와 남해의 푸르름이기에 뼛속 깊이 새겨질 수밖에 없는, 그래서 내가 관까지 가져갈 수밖에 없는 푸르름이었다. [바람의 언덕]에서 나에게 들이닥친 그 바람은 바다를 쓸고 온 바람이었다. 바람은 바다를 건너와야 제격이고, 바람에 맞서 바라보기에는 바다가 최고다.

‘이 맛에 사람들이 바람의 언덕을 찾는구나……’

불어오는 바람은 세찬데 바다와 내 마음은 지극히 잔잔했다.

바람의 언덕은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니, 호리병보다 오히려 본토와 본토에 붙어 있는 쥐젖에 가까웠다. 이런 언덕만 놓고 본다면야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바람의 언덕이었지만 초록빛 본토와 본토에 붙어 있는 초록빛 쥐젖과 쥐젖을 둘러싼 쪽빛 바다와 그 바다를 둘러싼 쪽빛 산과 이 모두를 아우르는 쪽빛 하늘에서 바람의 언덕이 고집스럽게 보여주고자 한 대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오로지 농담만으로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경계를 긋고 있던 쪽빛 바다과 쪽빛 산과 쪽빛 하늘은 불어오는 바람에 가끔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하늘이 바다가 되고, 산이 하늘이 됐다. 저 산으로부터 쪽빛을 몰고 온 바람이 언덕에 도달하면 풀들이 제 몸을 흔들어 그 색깔을 받았다. 바람은 대자연을 관통하며 세상 모든 것을 희석시키고 있었다. 나도 몸을 흔들어 색깔을 받…지는 못하고 짠내만 받았다.

언덕에 남아 있는 인간의 흔적에 마음이 아팠다. 인간의 발길이 빈번히 닿는 곳 치고 온전히 남은 곳이 어디 있을까마는 풀들이 사라지고, 땅이 파이고, 길이 난 부분에 시선이 머물 때마다 마음이 쑤셨다. 어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러다 바람의 언덕이 아니라 바람의 평지 될라. 그래도 경사면에 온전히 남아있던 띠밭에서 원래 모습을 유추해 봤음을 행운이라 칭하고, 비록 경사면이긴 하지만 끈질기게 살아있던 띠밭에서 느낀 감정을 희망이라 칭하고 싶다. 바람의 언덕을 그리며 우울해지기는 싫다.

< 아래 4 장은 연달아 찍은 사진입니다... 렌즈가 없어서요... 렌즈를 끼울 사진기도 없고... >

많은 사람들이 주도로에 서서 아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눈높이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도로 너머에는 신선대전망대가 있고, 그 너머로 다시 바다가 시작될 터였다. 신선대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또한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쥐젖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까와 같은 바람이 불어오고 바다에 더욱 가까워졌지만 언덕 위만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싱겁게 쥐젖을 한 바퀴 돈 후 도장포로 돌아왔다.

처음 도장포에 도착해서 바람의 언덕을 바라보았을 때 바다 바로 옆에 흰 건물 한 채가 서 있었다. 흰 돛을 형상화시킨 멋들어진 외관과 주도로에 있던 [해금강테마박물관]을 연상시켜 볼 때 저건 영락없이 [바람의 언덕 박물관]이었다.

“은영아, 저기 박물관이 있네. 입장료가 1,000 원 이상이면 우리 들어가지 말제이.”

그런데 앞에 가서 보니 화장실이었다. 여러분, 속지 맙시다. 그리고 참지 맙시다. 

주도로에서 도장포로 내려갈 때 길을 잘못 들어 엄청 고생했다.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급경사 내리막이었는데 양편으로 숙박시설은 또 어찌나 많던지…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올까 봐 엄청 쫄았었다. 그러니 도장포로 내려갈 때 해금강테마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길을 절대로 이용하지 마세요. 좁고 위험한 길입니다. 다른 좋은 길이 있습니다.

< 아래 3 장은 신선대전망대에서 찍은 연속사진입니다 >

주도로를 따라 반도 끝까지 들어가니 해금강이었다. 유람선을 타고 갔을 때는 그렇게 멋져 보이더니 영 별로였다. 유람선을 타볼까 싶어 매표소에 가니 헉! 3 시간을 기다려야 된단다. 그 때가 오후 1 시였는데… 이게 무슨 일이여… 이런 사태는 도장포에서도, 구조라에서도 똑같았다. 우리가 날을 잘못 잡은 겨~

[후나후나]

경치 좋은데요 ㅎ

[역마살]

바람이 시원합니다...

[바람흔적]

옆으로 한번 스치고 지난곳이 바람의 언덕이네요. 호리병 모양으로 생겨서 한번가봐야지 했던 곳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좋은날되세요

[별꽃]

거제도가면 바람의언덕 빼놓을 수 없는 곳이죠. 이상하게 추울때만 가서 그 언덕에서 오는 바람이 감당이 안되었답니다^^

[역마살]

으... 추우셨겠는데... 바람이 정말 장난이 아니던데... 겨울이라면 칼바람이었을 것 같은데...

[별꽃]

잘 아시네요. 그칼바람 정말 장난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