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용흥초등학교 뒤편 하늘재로 동로로 문경으로 나가는 삼거리길 관음요의 안내판이 보인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황토 버섯 집이 보인다 이곳에 많은 다인들로부터 선남선녀가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이는 도예인 이기 전 사람 됨됨이가 되었다는 말인 것 같다 요장문을 열고 들어서니 언제나 한결같이 반겨 맞는다 대한민국 도예분야 신지식인 관음요 미산 김선식 관음요의 내력은 흙과의 씨름은 은근과 끈기의 표본인 것 같았다 8대조인 김영만이 이곳에서 서당훈장으로 있으면서 터전을 마련하였다고 하였다. 도자기 빚기 1대인 김취정에 이르러 비로소 사기장으로 출발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어떤 연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기장으로 알려진 1대조 이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200여년간 사기장 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라 하였다. 2대인 김광표의 묘소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중벌리에서 사기장 생활을 하였으며. 3대인 김영수는 관음리 중점에 사기장 가계의 터전을 다시 마련하였고 4대인 김낙집은 부친의 가업을 계승하여 사기장으로 활동하였으며 5대인 조부 김운희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기장으로 발탁되어 이곳에 종사하였으며. 5대인 김운희는 조선시대 마지막 관영 사기공장인 분원이 1883년 민간 물주의 손으로 운영되자 과도기를 거쳐 이십 여년간 광주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고향인 문경 관음리로 돌아 오고. 6대인 김교수 할아버지는 1897년에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광주 분원에서 19세까지 사기장 일을 하다가 고향인 관음리로 돌아와 사기일을 했다. 7대를 이어온 아버지는 3형제 중 둘째로서 그 시대 어려운 가운데 대학의 물을 먹고 2세 교육에 뜻이 있어 신북고등공민학교장으로 2세 교육에 열성을 다하였으나.
▲ 경명 진사 연지와 다기 - 경명진사 특허등록품
도자기의 혈통을 이은 집안이라 집안 어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도공의 길을 택하여. 한때 말 못할 어려움도 겪었고. 그 가운데서도 막내아들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나는 삼성회사 입사 후 몇 달이 되지 않아 또 도공의 길을 택했다. 이때 나는 부모로부터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 주었는지 지금도 죄스럽고 미안할 때가 있다 라고 하였다 이것이 8대 가문의 도자기 빚기에 우연의 일치기 아니라 예정된 운명이 아닌가 싶다 8대를 이은 나는 부모님의 실망을 시키고 싶지 않고 아버지가 하시는 힘든 일을 조금이나마 도와 드리고 싶은 마음뿐 그래서 도자기 빚는 것을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이 생각하였으며 부친이 전수해준 그대로 정성을 들여 흙을 주무르고 지질 박을 사용하여 각종 기물을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우렸다 작품의 면모를 보고 섬세하게, 정교하게, 예술적 감각을 익히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서예를 하는 사람이 성공하려면 붓을 많이 들어야 하고 도공이 성공하려면 물레를 많이 돌려야 한다는 철칙되로 작업장에서 꼬박 날을 세우기가 부지기수 였다. 유약을 만들 때도 자연 유약 그대로 신명을 바치는 고집스러움을 아버지로부터 터득하였다 . 불의 지핌도, 나무의 선별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된다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작업의 분담은 7대, 8대의 합작으로 애호가들의 욕구의 성취도를 높이고 있었다.
▲ 분청 댓잎 항아리 - 초벌 2번 재벌1번의 작품
아버지는 원래 그리기에 소질이 있어 화쟁이란 별명을 들었다. 아버지로부터 당초 문양과 어문등, 동, 식물을 두루 섭렵하였다. 가식 없는 그림, 관요의 정교함보다는 민요의 간결한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과 미혹에 빠지는 텃치. 하루도 물레를 차지 않으면 팔이 아플 정도 정도였다. 사토가 많은 기물을 많이 돌려 손끝에 피가 나는 애 아림도 잊은 채 물레를 돌리 때 나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타고난 도공가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싶었습니다. 슬픔에서 새로운 도약을 향해 아버지와 함께 하던 일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도자일을 혼자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럽고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업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나의 요장 현판에 법고창신 이란 말이 있습니다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말을 늘 되새겼다 이제 새로운 도약을 해보자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전통도자기 만들기 여러 가지 비법 중에 진사 중에 진사 경명주사를 넣어 진사의 비색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유약 실험하기를 수백 번 내가 바라던 선홍과 같고 비치색이 나는 진사도자기를......
▲ 물레질 하는 미산의 모습
새로운 진사가 나오기를 염원하면서 ...... 전통도자기 기법과 소성 방법을 그대로 유지 하고 붉은 색을 내는 진사의 새로운 연구개발로 다양하고 환상적인 색감을 연출할 수 있는 진사유약 개발 (발명특허출원) 도자기 진사유약 조성물에 관한 것으로 즉, 장석, 규석, 석회석을 주성분으로 한 94~96중량%와, 산화동1~3중량%와, 경면주사2~4중량%의 조성비로 이루어진 것을 특징으로 하는 도자기의 진사유약을 만들어 사용하며 도자기에서 붉은색을 내는 유화안료인 진사유에 경면주사를 첨가하여 진붉은 청록색의 선명도를 지닌 발색력을 갖고 도자기에 접착력을 높이면서 유리모양의 두꺼운 결정으로 환상적인 색감을 지닐 수 있도록 하고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도자기 진사유약 조성물에 진사유인 산화동의 사용은 줄이고 황 화합물로 황화수은을 주성분으로 하는 경면 주사를 첨가하여 접착성과 선명도를 높이며 두꺼운 결정으로 다양한 색감을 나타낼 수 있는 진사유약으로 도자기를 소성하였고 장석은 점토 내에 있는 알루미나 성분과 작용하여 점토에 융착시키는 역할을 하고, 규석은 유리질이 주성분으로 유약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석회석은 유약표면의 광택과 유연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 청화백자 모란문 주전자
댓잎 덤벙 분청 다구의 특허제품으로 덤벙 분청의 약점인 유약과 태토의 밀접 도를 높이고 질감의 자연스러운 느낌을 갖도록 2번의 초벌과정을 거쳐 재벌을 하는 새로운 소성방법 연구와 질감이 있는 표면과 댓잎문양의 기물을 연구개선 하여 많은 다인들에게 주문를 다해대지 못할 지경이라 하였다 댓잎 덤벙 분청 다구의 이 기법은 기물를 성형하고, 성형된 기물에 묽게 반죽한 적황토를 덧붙이는 형태로 요철표면을 만든 다음 900℃에서 5시간 소성이 이루어지는 1차 초벌구이 공정과 초벌구이공정을 거친 기물을 분(粉)에 담갔다가 건져내면서 기물표면의 일부분은 분이 묻지 않도록 하여 자연적인 무늬가 형성되도록 한 다음 900℃에서 5시간 소성이 이루어지는 2차 초벌구이를 한 기물에 유약을 바른 다음 1300℃에서 12시간 불을 지피는 방법이다. 1차 초벌구이 공정 점토를 이용하여 항아리, 대접, 컵, 차 주전자등과 같은 기물로 성형을 하고, 상기의 성형된 기물표면에 묽게 반죽된 적황토를 수작업으로 덧 붙혀서 다수의 요철모양을 갖도록 형성한 다음 이를 건조시킨 상태에서 숯불 가마에 투입하여 900℃의 온도에서 5시간 정도 소성한다. 2차 초벌구이 공정 상기의 1차 초벌구이공정을 거쳐서 나온 기물을 초벌상감 분(粉)에 담갔다가 건져내어 분이 묻혀지도록 하되 기물을 담글 때 손을 파지하고 있는 반대편 절반부분을 묻힌 다음 파지부분에 묻힌 다음 파지부분에 해당하는 나머지 절반부분을 묻히는 과정에서 기물표면의 일부분을 댓잎 모양 형태로 묻히지 않도록 하여 자연스런 댓잎모양을 형성한 다음 이를 건조시킨 후 장작 가마에서 900℃온도에서 5시간 정도 소성한다. 상기의 분(粉)에 사용되는 백토는 경남 산청의 백토와 경북 상주산의 백토를 사용하였고, 유약은 경북 문경 평천 장석과 감나무 재를 사용하였다. 재벌구이 공정 2차 초벌구이를 하고 난 다음 기물에 유약을 바른 다음 1300℃의 온도에서 12시간정도 장작 가마에 소성하여 도자기가 완성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제조된 도자기는 성형된 기물에 적황토를 덧붙여서 요철표면을 갖도록 되어 질감이 뛰어나고, 1차 초벌구이 한 다음 기물을 분(粉)에 담그면서 댓잎 모양과 같은 자연적인 무늬를 형성하게 되고, 2번의 초벌과정과 유약을 바르는 공정에 의해 접합성이 좋고 높은 강도의 내구성을 가진 완전 자화된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많은 도예가 들은 초벌과 재벌로 끝나는 도자기를 나는 고집스럽게도 2번 초벌과 재벌로 한 단계를 높여서 라도 좋은 도자기를 만들고 싶었다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도자 세계를 여는 것이라 생각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주문의 물량이 문제가 아니라 많은 도자기 애호가와 다인들로부터 호응도가 아주 좋았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물과 다구는 사용자들의 입소문으로 서로들 전시회 초청도 들어와 대구 대덕문화회관 초청 전시회. 순천문화회관 영호남 다리 잇기 전시회. 중국청도총영사관 초청전시회. 영주 선비촌 초청 전시회 서울 금호 갤러리전시회, 작년에 성남 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열어 많은 호응도를 얻게 되었으며 그리고 일본 중국에서 다량의 주문량 들어와 오늘도 쉬임없는 물레질과 혼 불을 지펴야 하는 즐거움이 따르고 있다
▲ 망댕이 가마 마지막 칸불 넣기
8대를 이어온 명맥 도자명문가의 새로운 도약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평소에 평한 많은 세인들 입에서 오르내림이 있어 2005년도 대한민국 도자기분야 新知識人으로 인정되었다고 본다 그 외 전국영남미술대전 대상을 비롯하여 각종 입상 경력이 말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가문의 혈통은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예인으로 태어나기에 충분조건이 아니었나 싶어 진다 그러나 彌山은 자기의 일을 農職이로 말 한다 農職이의 마음으로 윗대의 작품을 터득했으며 새로운 미래를 향한 그의 마음은 소박하고 담백하면서 온화한 속 깊은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다 彌山의 작품에서 어느 하나라도 정감이 가지 않는 작품은 없으며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으면서도 빨려 들 듯 한 질감, 양감, 선의 아름다움에 매혹됨을... 팔대를 이은 도공가의 숱한 애환을 꽃피우는 완숙 미에 접어들었음을 볼 수 있었다 날렵한 솜씨로 빚은 자기는 친근하면서도 안정된 자연미, 건강미가 넘치는 진실한 혼이 담겨 있기에 그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부친으로부터 전수 받은 당초문, 어문등 가식 없는 민요의 특징을 간결한 텃치로,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과 미혹에 빠지게 충분조건이었다 관음요 현판 法古創新이란 정신을 새로운 도전과 창조의 정신으로 이글거리는 불꽃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진정한 모습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선정 되지 않았나 본다 이러한 노력이 예술을 사랑하고 도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오늘도 관음요로 발걸음을 재촉하는지 모른다 많은 지인들로부터 입에 오르내리는 彌山... 관음요의 도자 작품이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많은 다인들에게 사랑 받는 작품이 되기를 바랄 뿐이며 오늘도 도자기 농사짓기에 여념이 없다고 하면서 이글 그리는 살창 구멍으로 새로 태어나올 작품을 상상하며 장작을 넣었다 ...
문경 용흥초등학교 뒤편 하늘재로 동로로 문경으로 나가는 삼거리길 관음요의 안내판이 보인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황토 버섯 집이 보인다 이곳에 많은 다인들로부터 선남선녀가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이는 도예인 이기 전 사람 됨됨이가 되었다는 말인 것 같다 요장문을 열고 들어서니 언제나 한결같이 반겨 맞는다 대한민국 도예분야 신지식인 관음요 미산 김선식 관음요의 내력은 흙과의 씨름은 은근과 끈기의 표본인 것 같았다 8대조인 김영만이 이곳에서 서당훈장으로 있으면서 터전을 마련하였다고 하였다. 도자기 빚기 1대인 김취정에 이르러 비로소 사기장으로 출발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어떤 연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기장으로 알려진 1대조 이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200여년간 사기장 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라 하였다. 2대인 김광표의 묘소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중벌리에서 사기장 생활을 하였으며. 3대인 김영수는 관음리 중점에 사기장 가계의 터전을 다시 마련하였고 4대인 김낙집은 부친의 가업을 계승하여 사기장으로 활동하였으며 5대인 조부 김운희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기장으로 발탁되어 이곳에 종사하였으며. 5대인 김운희는 조선시대 마지막 관영 사기공장인 분원이 1883년 민간 물주의 손으로 운영되자 과도기를 거쳐 이십 여년간 광주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고향인 문경 관음리로 돌아 오고. 6대인 김교수 할아버지는 1897년에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광주 분원에서 19세까지 사기장 일을 하다가 고향인 관음리로 돌아와 사기일을 했다. 7대를 이어온 아버지는 3형제 중 둘째로서 그 시대 어려운 가운데 대학의 물을 먹고 2세 교육에 뜻이 있어 신북고등공민학교장으로 2세 교육에 열성을 다하였으나.
▲ 경명 진사 연지와 다기 - 경명진사 특허등록품
도자기의 혈통을 이은 집안이라 집안 어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도공의 길을 택하여. 한때 말 못할 어려움도 겪었고. 그 가운데서도 막내아들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나는 삼성회사 입사 후 몇 달이 되지 않아 또 도공의 길을 택했다. 이때 나는 부모로부터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 주었는지 지금도 죄스럽고 미안할 때가 있다 라고 하였다 이것이 8대 가문의 도자기 빚기에 우연의 일치기 아니라 예정된 운명이 아닌가 싶다 8대를 이은 나는 부모님의 실망을 시키고 싶지 않고 아버지가 하시는 힘든 일을 조금이나마 도와 드리고 싶은 마음뿐 그래서 도자기 빚는 것을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이 생각하였으며 부친이 전수해준 그대로 정성을 들여 흙을 주무르고 지질 박을 사용하여 각종 기물을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우렸다 작품의 면모를 보고 섬세하게, 정교하게, 예술적 감각을 익히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서예를 하는 사람이 성공하려면 붓을 많이 들어야 하고 도공이 성공하려면 물레를 많이 돌려야 한다는 철칙되로 작업장에서 꼬박 날을 세우기가 부지기수 였다. 유약을 만들 때도 자연 유약 그대로 신명을 바치는 고집스러움을 아버지로부터 터득하였다 . 불의 지핌도, 나무의 선별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된다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작업의 분담은 7대, 8대의 합작으로 애호가들의 욕구의 성취도를 높이고 있었다.
▲ 분청 댓잎 항아리 - 초벌 2번 재벌1번의 작품
아버지는 원래 그리기에 소질이 있어 화쟁이란 별명을 들었다. 아버지로부터 당초 문양과 어문등, 동, 식물을 두루 섭렵하였다. 가식 없는 그림, 관요의 정교함보다는 민요의 간결한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과 미혹에 빠지는 텃치. 하루도 물레를 차지 않으면 팔이 아플 정도 정도였다. 사토가 많은 기물을 많이 돌려 손끝에 피가 나는 애 아림도 잊은 채 물레를 돌리 때 나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타고난 도공가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싶었습니다. 슬픔에서 새로운 도약을 향해 아버지와 함께 하던 일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도자일을 혼자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럽고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업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나의 요장 현판에 법고창신 이란 말이 있습니다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말을 늘 되새겼다 이제 새로운 도약을 해보자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전통도자기 만들기 여러 가지 비법 중에 진사 중에 진사 경명주사를 넣어 진사의 비색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유약 실험하기를 수백 번 내가 바라던 선홍과 같고 비치색이 나는 진사도자기를......
▲ 물레질 하는 미산의 모습
새로운 진사가 나오기를 염원하면서 ...... 전통도자기 기법과 소성 방법을 그대로 유지 하고 붉은 색을 내는 진사의 새로운 연구개발로 다양하고 환상적인 색감을 연출할 수 있는 진사유약 개발 (발명특허출원) 도자기 진사유약 조성물에 관한 것으로 즉, 장석, 규석, 석회석을 주성분으로 한 94~96중량%와, 산화동1~3중량%와, 경면주사2~4중량%의 조성비로 이루어진 것을 특징으로 하는 도자기의 진사유약을 만들어 사용하며 도자기에서 붉은색을 내는 유화안료인 진사유에 경면주사를 첨가하여 진붉은 청록색의 선명도를 지닌 발색력을 갖고 도자기에 접착력을 높이면서 유리모양의 두꺼운 결정으로 환상적인 색감을 지닐 수 있도록 하고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도자기 진사유약 조성물에 진사유인 산화동의 사용은 줄이고 황 화합물로 황화수은을 주성분으로 하는 경면 주사를 첨가하여 접착성과 선명도를 높이며 두꺼운 결정으로 다양한 색감을 나타낼 수 있는 진사유약으로 도자기를 소성하였고 장석은 점토 내에 있는 알루미나 성분과 작용하여 점토에 융착시키는 역할을 하고, 규석은 유리질이 주성분으로 유약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석회석은 유약표면의 광택과 유연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 청화백자 모란문 주전자
댓잎 덤벙 분청 다구의 특허제품으로 덤벙 분청의 약점인 유약과 태토의 밀접 도를 높이고 질감의 자연스러운 느낌을 갖도록 2번의 초벌과정을 거쳐 재벌을 하는 새로운 소성방법 연구와 질감이 있는 표면과 댓잎문양의 기물을 연구개선 하여 많은 다인들에게 주문를 다해대지 못할 지경이라 하였다 댓잎 덤벙 분청 다구의 이 기법은 기물를 성형하고, 성형된 기물에 묽게 반죽한 적황토를 덧붙이는 형태로 요철표면을 만든 다음 900℃에서 5시간 소성이 이루어지는 1차 초벌구이 공정과 초벌구이공정을 거친 기물을 분(粉)에 담갔다가 건져내면서 기물표면의 일부분은 분이 묻지 않도록 하여 자연적인 무늬가 형성되도록 한 다음 900℃에서 5시간 소성이 이루어지는 2차 초벌구이를 한 기물에 유약을 바른 다음 1300℃에서 12시간 불을 지피는 방법이다. 1차 초벌구이 공정 점토를 이용하여 항아리, 대접, 컵, 차 주전자등과 같은 기물로 성형을 하고, 상기의 성형된 기물표면에 묽게 반죽된 적황토를 수작업으로 덧 붙혀서 다수의 요철모양을 갖도록 형성한 다음 이를 건조시킨 상태에서 숯불 가마에 투입하여 900℃의 온도에서 5시간 정도 소성한다. 2차 초벌구이 공정 상기의 1차 초벌구이공정을 거쳐서 나온 기물을 초벌상감 분(粉)에 담갔다가 건져내어 분이 묻혀지도록 하되 기물을 담글 때 손을 파지하고 있는 반대편 절반부분을 묻힌 다음 파지부분에 묻힌 다음 파지부분에 해당하는 나머지 절반부분을 묻히는 과정에서 기물표면의 일부분을 댓잎 모양 형태로 묻히지 않도록 하여 자연스런 댓잎모양을 형성한 다음 이를 건조시킨 후 장작 가마에서 900℃온도에서 5시간 정도 소성한다. 상기의 분(粉)에 사용되는 백토는 경남 산청의 백토와 경북 상주산의 백토를 사용하였고, 유약은 경북 문경 평천 장석과 감나무 재를 사용하였다. 재벌구이 공정 2차 초벌구이를 하고 난 다음 기물에 유약을 바른 다음 1300℃의 온도에서 12시간정도 장작 가마에 소성하여 도자기가 완성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제조된 도자기는 성형된 기물에 적황토를 덧붙여서 요철표면을 갖도록 되어 질감이 뛰어나고, 1차 초벌구이 한 다음 기물을 분(粉)에 담그면서 댓잎 모양과 같은 자연적인 무늬를 형성하게 되고, 2번의 초벌과정과 유약을 바르는 공정에 의해 접합성이 좋고 높은 강도의 내구성을 가진 완전 자화된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많은 도예가 들은 초벌과 재벌로 끝나는 도자기를 나는 고집스럽게도 2번 초벌과 재벌로 한 단계를 높여서 라도 좋은 도자기를 만들고 싶었다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도자 세계를 여는 것이라 생각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주문의 물량이 문제가 아니라 많은 도자기 애호가와 다인들로부터 호응도가 아주 좋았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물과 다구는 사용자들의 입소문으로 서로들 전시회 초청도 들어와 대구 대덕문화회관 초청 전시회. 순천문화회관 영호남 다리 잇기 전시회. 중국청도총영사관 초청전시회. 영주 선비촌 초청 전시회 서울 금호 갤러리전시회, 작년에 성남 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열어 많은 호응도를 얻게 되었으며 그리고 일본 중국에서 다량의 주문량 들어와 오늘도 쉬임없는 물레질과 혼 불을 지펴야 하는 즐거움이 따르고 있다
▲ 망댕이 가마 마지막 칸불 넣기
8대를 이어온 명맥 도자명문가의 새로운 도약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평소에 평한 많은 세인들 입에서 오르내림이 있어 2005년도 대한민국 도자기분야 新知識人으로 인정되었다고 본다 그 외 전국영남미술대전 대상을 비롯하여 각종 입상 경력이 말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가문의 혈통은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예인으로 태어나기에 충분조건이 아니었나 싶어 진다 그러나 彌山은 자기의 일을 農職이로 말 한다 農職이의 마음으로 윗대의 작품을 터득했으며 새로운 미래를 향한 그의 마음은 소박하고 담백하면서 온화한 속 깊은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다 彌山의 작품에서 어느 하나라도 정감이 가지 않는 작품은 없으며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으면서도 빨려 들 듯 한 질감, 양감, 선의 아름다움에 매혹됨을... 팔대를 이은 도공가의 숱한 애환을 꽃피우는 완숙 미에 접어들었음을 볼 수 있었다 날렵한 솜씨로 빚은 자기는 친근하면서도 안정된 자연미, 건강미가 넘치는 진실한 혼이 담겨 있기에 그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부친으로부터 전수 받은 당초문, 어문등 가식 없는 민요의 특징을 간결한 텃치로,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과 미혹에 빠지게 충분조건이었다 관음요 현판 法古創新이란 정신을 새로운 도전과 창조의 정신으로 이글거리는 불꽃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진정한 모습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선정 되지 않았나 본다 이러한 노력이 예술을 사랑하고 도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오늘도 관음요로 발걸음을 재촉하는지 모른다 많은 지인들로부터 입에 오르내리는 彌山... 관음요의 도자 작품이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많은 다인들에게 사랑 받는 작품이 되기를 바랄 뿐이며 오늘도 도자기 농사짓기에 여념이 없다고 하면서 이글 그리는 살창 구멍으로 새로 태어나올 작품을 상상하며 장작을 넣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