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시 만든 십계명 돌판
출애굽기 34:1-16 찬송 304장 / 찬송 314장 20131215
오늘도 출애굽기 34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째 십계명을 받게 되는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했다는 증거로 하나님께서 직접 써 주신 “증거의 돌판”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증거판”이라고도 말을 합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이 쉽지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었고, 홍해를 지나왔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고, 반석을 쪼개어 물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듯이 하나님을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40일동안 십계명을 받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 금송아지가 우리를 구원한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첫 번째 십계명 돌판은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3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심판하시고, 철저한 회개기도를 통해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셔서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가 두 번째 돌 판을 깍아 만들어 시내산에 올라오면 다시 십계명을 직접 써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다시 언약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4:1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왜 굳이 이렇게 돌 판에다가 십계명을 써서 언약을 맺으시려고 하는가? 하나님께서 “언약, 계약이라는 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또한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통해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다시 언약을 맺겠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네가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세워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꾸 언약을 강조하시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세상의 죄가 가득한 땅입니다. 그 곳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우상을 믿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나안 땅이 바로 세상을 상징하는 땅입니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이 노아가 술을 먹고 벌거벗었을 때 그 수치를 들추고 다녔던 함이 저주를 받아 사단의 길을 가게 되었고, 그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아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죄악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런 가나안의 땅을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불러서 내가 “가나안의 땅”을 네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약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결국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속과 계약이라는 것은 법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지켜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지켜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기업을 얻을,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와 언약한 백성들은 절대로 세상과 언약을 맺으면 안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 까 하노라”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과 언약을 맺는 다는 것은 “다른 신을 섬긴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 임이니라”
“여호와 카나” 질투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내가 너희와 언약하고 결혼했기 때문에 다른 신과 언약하거나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약속을 통해 자기 백성을 삼으시는 것을 신약에서는 혼인잔치로 비유합니다. 결혼식이 바로 약속하는 식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신랑이 되고, 성도는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을 남편으로 섬기기로 언약하고 그 주님만 바라보고 섬기고 살아야 하는데, 세상의 재물과 세상의 음란과 세상의 쾌락의 유혹에 넘어가서 거기 마음을 주게 되고 그 것을 따라가면 결국 그 뒤에 있는 영적인 존재 사단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식이라는 언약식을 통해 내가 예수님과 언약한 거룩한 신부라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때 거룩한 신부로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9장에는 성도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성도는 언약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34:27-2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언약하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계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언약의 말씀이 곧 하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십계명을 법궤라는 금으로 만든 통에 넣어 보관 하고 이 말씀을 지켜 순종할 때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십계명은 10가지 상징적인 명령이고, 이 십계명의 자세한 실천 사항들이 레위기 율법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레위기 율법의 말씀으로 안약을 하시고, 이 말씀을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에 그 말씀에 기록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의 욕심과 세상의 죄의 유혹에 끌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죄악의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십계명과 레위기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쳤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후손들에게 가르쳤고,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또 제자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 우리 손에까지 이 말씀이 기록되어 전해 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이요, 또 복을 주시는 방법입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수 천 년의 역사를 통해 이 말씀을 기록하시고 보전하셔서 우리 손에 들려주셔서 읽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깨달아서 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읽고 듣고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깊이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절기를 강조 하심
그리도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지킬 “절기”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항상 자기 중심적이고, 또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시간 속에 절기라는 마디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여기 절기라는 절 자가 “마디”절 자 입니다. 한번 끊고 쉬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여호와의 절기”라고 말합니다.
레위기 율법에 이 절기의 규례가 몇 장에 나옵니까? 예! 레위기 23장에 3가지 절기가 나옵니다.
“유월절과 맥추절과 초막절” 이렇게 이스라엘의 3대 절기가 나오는데 오늘 본문에 십계명을 다시 만드는 사건 속에 이 절기를 기록해 놓은 것은 이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잊어 버리지 마라!, 절대 잊어버리지 마라!”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18절에 “무교절”이 나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에서 일주일동안 지키는 절기는 무교절이라고 말합니다. 죄를 상징하는 애굽에서 또 장자의 죽음에서 구원받은 것을 상징하는 구원의 절기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22절에 “칠칠절과 수장절”이 나옵니다.
칠칠절은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맥추절 또는 초실절이라고도 합니다. 처음 곡식을 거두는 것에 대한 감사의 절기요, 또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말씀을 받은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약시대 성령이 임하실 때도 오순절에 오신 것입니다.
구원을 상징하는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막절, 수장절은 가을에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이기도 하고, 40년의 광야생활에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초막절에는 광야에서 초막을 짖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절기를 지키게 됩니다.
이렇게 절기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이요, 일년이라는 기간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님의 장치 입니다.
그래서 23절에 보면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라고 말씀합니다.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남자들이 하나님 앞에 다 나와야 합니다.
24절에도 보면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도우시고, 대적을 쫓아주시고, 지경을 넓혀 주셔서 복을 주실 때 매년마다 3번씩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을 기억할 때 아무도 우리의 가정과 기업을 탐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기를 지킬 때는 반드시 부모님들이 나오고 또 아이들이 함께 차여 함으로 아이들이 하나님을 배우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로 아무리 말하는 것보다, 이러게 절기를 지키면서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감사를 표현하고 예물을 받치고 온 나라가 온 교회가 온 가정이 떠들썩하게 움직일 때 아이들이 함께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나 가정에 절기를 지키는 것은 형식적이기 보다 진지하게 참여하게 될 때 가정과 자녀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는 구약의 절기와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올해에 앞으로 남아 있는 교회 절기로는 “성탄절”이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온 세계 사람들이 다 이 날을 기뻐하고 서로 축복하고 선물을 주고 받고 즐거워 하는 절기 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성탄절의 의미가 많이 변질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기뻐하니까? 덩달아 불신자들도 기뻐하면서 저마다 이유를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는데,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나오고, 루돌프 사슴이 나오고, 성탄 추리가 도시마다 더 빛을 발하면서 서 있습니다.
사실은 성탄절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역사속으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없이 성령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보고 기뻐하며 축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감당하시는 십자가를 보면서 감사하는 절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도 세상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예수님께 이 땅에 오신 것을 감사하고 축하면서 우리 각자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감사하시고, 또 같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깨어진 돌 판을 다시 만들어 언약하시면서 이 언약을 잊지 말라고, 다시 절기를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지킬 절기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다시 기억하면서 감사하고 감격하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 절기 때도 우리가 작은 모임이지만 함께 축하도 하고, 기뻐하며 아름답고 행복한 절기를 지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얼굴에 빛이 나는 모세
마지막으로 29절-34절에 보면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 빛이 나는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무슨 SF영화도 아니고, 3400년 전에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 빛이 나게 됩니다.
이것은 모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과 함께 40일동안 함께 있었다는 증거로 그 얼굴에 빛이 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자기 얼굴에 빛이 나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저 하나님과 함께 거하면서 말씀을 받고, 말씀을 기록하고 그 말씀을 가지고 내려 온 것 뿐 입니다. 아마 모세는 즐겁게 그 일을 했을 것입니다.
29절에 보면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는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40일 동안 물도 먹지 않고 떡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돌판을 가지고 내려 온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이것을 흉내 내면서 40일 금식을 한다, 산 기도를 한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모세에게 특별한 은혜가 있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도 있고, 성령도 있고, 하나님의 분명한 은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산에 올라가서 40일씩 금식하면서 자기의 몸으로 시험하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 봅니다.
모세가 한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하고 내려오니까 그냥 얼굴에 빛이 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사역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은혜 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늘 엎드리면 그 말씀이 나를 새롭게 하고 말씀이 나를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뭐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살아가다 보면 바르게 정직하게 때로는 즐겁게 사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세상에서 강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볼 때는 대단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에 보면 자신이 한 일들을 자랑하는데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23-30절에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엄청난 곤난을 당했습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입이 벌어집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습니까? 정말 대단하시네 그러는데 바울은 마지막에 뭐라고 하느냐하면 “내가 한 게 아닙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단한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모세는 자기 얼굴에 빛이 나는지 자기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가지고 오는 그 일이 엄청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얼굴에 빛이 나지 않습니까? 조명을 좀 해야 되겠네요!
저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을 준비할 때 정신 없이 합니다. 너무 재미있고, 은혜가 있고, 이런 말씀이 있었네! 하면서 말씀을 또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고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모든 일들 속에 예비하신 은혜를 보게 하시고 누리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성도들에게는 대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도 하고, 주일날 하루 종일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수요일 교회가도, 목요일 또 성경공부하고 이렇게 교회에서 뭐를 하는지 다니는데 가족들이 행복하고, 사업도 잘되고, 자녀들도 착하고, 가정에 문제도 없고, 늘 만나면 생글 생글 웃고, 욕도 안하고, 가는 곳 마다 행복하게 살아봐요 세상 사람들이 놀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행복합니까?
그때 “나는 그냥 하나님과 함께 한 것 밖에 없어요.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출애굽기 34:30절에 보면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우리가 믿음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두려워할 겁니다.
우리가 정말 제대로 말씀대로 예배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부부가 살고, 자녀들이 살아간다면 우리는 세상 속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했던 모세가 얼굴에 빛이 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던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예배의 삶, 말씀 충만한 삶을 살아서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3가지 모습입니다.
다시 돌판을 써주시면서 끝까지 언약을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세상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서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 자녀로 복을 받고, 세상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이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