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운해의산방 원문보기 글쓴이: 정범모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제18구간 : 쫑]
☞ 석개재-면산-토산령-구랄산-백병산-통리-
우보산-유령산-대박등-작은피재-피재 ☜
- 牛步千里 : 소걸음으로 천리 길 낙동정맥 피날레! -
♣ 산행개요 ♣
◆ 산행지 : 낙동정맥 제18구간[석개재-피재]
◆ 일시 : 2006. 7. 7.(금)/8.(토)[무박산행]
◆ 날씨 : 흐림
◆ 종주경로 : ☞ 석개재(910m)/2번군도 → 면산/두리봉(1,245.2m) → 구랄산(1,071.6m) → 토산령(930m) → 백병산(1,259.3m) → 고비덕재 → 통리(700m)/38번국도 → 유령/느릅재(932m)→ 우보산 → 유령산(932.4m) → 대박등(930.8m) → 작은피재(880m)/38번국도 → 피재(920m)/삼수령 ◀
◆ 시간대별 산행코스 :
△ 03:20 석개재 출발
△ 03:30 1,009.3m
△ 05:15 면산(1,245.2m)
△ 06:24 구랄산(1,071.6m)/삼각점
△ 06:50 토산령
△ 07:40 한고개디/토산령 정상 안내판
△ 08:30 송전철탑(No.86)
△ 09:23 백병산 갈림길
△ 09:30 백병산(1,259.3m)/삼각점(장성310, 2004재설)
△ 09:36 백병산 갈림길 복귀
△ 09:53 고비덕재
△ 11:08 태현사 포장도로
△ 11:18 통리역/20분 점심 및 휴식
△ 11:40 통리역 출발
△ 11:58 묘
△ 12:15 능선분기/우능선
△ 12:22 우보산/嘉善大夫密陽朴氏 貞夫人全州李氏 합장묘
△ 12:30 누릅령/楡嶺山靈堂
△ 12:48 유령산(932.4m)/삼각점
△ 12:56 철탑(No.17)
△ 13:09 922m/전망대
△ 13:25 서미촌재/도로공사 중/12분 휴식
△ 13:40 嘉善大夫安東權氏 配貞夫三陟金氏 합장묘
△ 13:51 봉우리
△ 14:10 묘3기/우측 숲진입
△ 14:14 임도/우방향 진행
△ 14:16 철탑
△ 14:25 봉우리/좌능선
△ 14:27 대박등(930.8m)/삼각점(태백425, 2004복구)
△ 14:37 초지/우측 숲 진입
△ 14:40 정자/우측 임도따라 진행
△ 14:53 작은피재
△ 15:03 피재/삼수령
◆ 산행거리 : 25.3km[『사람과 산』자료 참조]
☞석개재-4.2km-면산-2.1km-구랄산-1.2km-토산령-5.2km-백병산-4.4-통리-1.1km-우보산-4.7km-대박등-1.3km-작은피재-1.1km-매봉산 낙동봉(1,145m) ◀
◆ 산행시간 : 약 11시간 40분(조식, 중식 및 휴식 포함)
◆ 형태 : 德七이 합동산행[서고문, 夷希美 회장, 김진태, 오르고파, 대왕, 윤비, 천사, 탱크, 돌범, 뚜벅이, 나푸른솔, 김수영+1, 초롱아빠, 허공, 흑기사, 범털, 록수, 들꽃, 산타래, 산시조, 주유천하 : 22명]
--------------------------------
♥ 山과 詩 ♥
우리가 가는 길에 화려한 꽃은 없었다
자운영 달개비 쑥부쟁이 그런 것들이
허리를 기대고 피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빛나는 광택도
내세울 만한 열매도 많지 않았지만
허황한 꿈에 젖지 않고
팍팍한 돌길을 천천히 걸어
네게 이르렀다
살면서 한 번도 크고 억센 발톱과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귀뚜라미 소리 솔바람 소리
돌들과 부대끼며 왁자하게 떠드는 여울물 소리
그런 소리와 함께 살았다
그래서 형제들 앞에서 자랑할 만한 음성도
세상을 호령할 명령문 한 줄도 가져보지 못했지만
가식 없는 목소리로 말을 걸며
네게 이르렀다
낮은 곳에는 낮은 곳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있다
네 옆에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있다
- 도종환, “길” 전문
------------------------
1.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18구간 : 大尾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18구간은 석개재에서 면산-구랄산-토산령-백병산-통리-우보산-대박등-작은피재를 지나 백두대간의 매봉산 낙동봉(1,145m) 분기점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낙동정맥의 마지막 구간이다. 작년(2005년) 10월 15일부터 매달 두 차례씩 무박산행으로 꾸역꾸역 이어온 낙동정맥종주가 드디어 9개월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시간이다.
이 구간의 석개재에서 면산까지는 정맥길이 좌측으로 경북 봉화군 석포면을, 우측으로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을 가르는 경계가 되고, 그 이후에는 강원도 태백시와 삼척시를 가르며 지나간다. 정맥길이 경북 권역을 완전히 벗어나 강의 고향인 강원도 태백시에 접어들어 백두대간과 맥을 이으면서 낙동정맥 종주는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다.
이 구간의 도상거리가 25.3km에 이르는 다소 긴 거리이고, 중간의 통리역을 기점으로 구간을 나누어 종주하는 예도 많이 있으나, 통리에서 구간을 끊을 경우 석개재-통리구간[17.1km]이나, 통리-매봉산 구간[8.2km]이나 거리가 애매하고 어정쩡하므로 단번에 쭉 이어서 마지막 구간의 대미를 장식해보고자 한다. 특히 통리-매봉산 구간을 남겨놓는 경우 4시간 산행을 위해 그 배의 시간을 차타고 오고가는데 버려야 한다.
이번 구간을 마치면서 낙동강의 발원지인 너덜샘(은대샘)이나 황지연못을 찾아보는 것도 염두에 둔다. 낙동강의 동쪽 물막이인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낙동강의 발원지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태백시내에서 연탄불에 태백의 진미인 한우고기를 구워 맛을 보면서 우리들의 기나긴 낙동정맥의 여정을 달래볼 것이다.
그런데 이번 구간 전반부 석개재에서 통리역까지는 이슬과 산죽, 안개가 뒤범벅이다 보니 면산과 백병산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포인트도 없고, 조망도 거의 제로상태로 무성한 숲을 헤치고 가는 길이었다.
중간기점인 통리역에서 피재까지 가느냐 마느냐를 고심하다가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힘을 내어 피재까지 이어가 보았으나, 작은피재에서 매봉산 분기봉까지 이어가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피재에 당도한 것만으로 얼추 막동정맥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보니 정강이와 온몸이 열을 받아 화상을 입고 긁히고 엉망이다. 낙동정맥을 졸업하는 훈장 아닌 훈장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배낭을 정리하다 보니 석개재에서 통리까지 구간 메모지가 어디로 갔는지 행불이다. 아마도 산행을 마치고 버스에서 배낭을 정리하면서 젖은 종이들과 함께 버려진 것 같다.
따라서 이 구간은 세세한 산행시간을 적을 수 없고 부득이 디카의 촬영시간을 확인하여 중요 포인트의 산행시간만을 적어둔다. 때문에 이 마지막 구간 산행기가 지금까지의 낙동정맥 산행기록 중 제일 부실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정맥길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표지기가 숱하게 달려있어 봉우리를 어떻게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을 세세하게 적어둘 필요도 없다. 정맥길의 큰 흐름만 그려낼 수 있으면 될 듯 하다.
2. 낙동 졸업구간으로 가는 길 : 석개재
2006. 7. 7. 금요일 밤 낙동의 마지막 일정이라 마음이 한결 가볍다. 다만 장마철이라 많은 비만 내리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집을 나선다. 높은산님은 25.3km에 이르는 이 구간이 30km의 한티재-답운치 구간보다 힘이 드는 구간이라고 하고 있고, 산행기를 보니 준족인 킬文님은 작년에 이 구간을 13시간 만에 주파한 것으로 되어 있어 적이 긴장이 된다.
지난 달 답운치-석개재 구간을 마친 뒤 20여일 동안 산행을 쉬었던 터라 몸이 근질근질하다. 이번 구간 거리를 고려하여 종전보다 1시간 이른 밤 10시에 버스가 양재동에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낙동정맥 완주를 기념하는 타월을 들고 양재동 구민회관 앞으로 가보니 창암님과 무흠님, 경로님, 토끼님을 제외하고 이미 여러 회원들이 나와 있다.
밤안개님이 팔뚝부상이 완치되지 아니하여 우리들을 전송하는 것으로 낙동 마지막 구간에 합류하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몸은 자신이 잘 관리할 수밖에 없다. 젊었을 때와는 달리 한번 뒤틀려지거나 부러진 뼈는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自重自愛가 최선의 미덕이다.
매번 다르게 오는 우등버스는 예정보다 30분 늦게 양재동에 도착하였고, 버스에 오르고 보니 오랜만에 탱크님이 나왔다. 사다리의 산타래님과 산시조님도 땜빵차 우리와 합류하였고, 산행인원은 모두 22명이다. 서울의 밤의 열기를 벗어나 버스는 이번 구간 들머리인 석개재로 향한다.
우등고속버스의 안락한 의자를 눕혀 몸을 기대보지만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오늘 오후 딸이 혼자 터키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을 보고 부모들로서는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인생은 홀로 가는 길, 부디 많이 보고 느끼고 아무 탈 없이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비몽사몽을 헤매다 깨어보니 2006. 7. 8. 토요일 새벽 0시 30분경 버스는 강성월휴게소라는 곳이다. 휴게소에 지명이 아닌 사람이름을 쓰는 데도 있나 하고 마침 이곳을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제천을 지나 영월 쌍용의 이곳 휴게소 주인이 어떤 보살님으로부터 받은 휴게소이름이고, 지명이나 인명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3. 면산(綿山, 1,245.2m)
[석재개 → 면산 : 4.2km//1시간55분]
버스는 경북 봉화군 석포에서 약간의 알바를 하고 석개재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새벽 3시 10분경이다. 밤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으나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이 시간이 낙동의 마지막 새벽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없을 수 없다.
지금까지 17번째 맞는 낙동의 새벽이다. 그 동안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낙동의 새벽을 같이 했고, 그 사이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 봄을 거쳐 여름에 이르렀다. 가을의 단풍과 억새, 겨울의 매서운 찬바람, 그리고 대지의 생명이 약동하는 봄과 숲이 무성한 여름, 4계를 낙동에서 느꼈다.
운이 좋았는지 낙동에서 17번째 새벽을 맞는 동안 비를 한번도 맞지 않았다. 덕칠이팀이 창수령-백암산 갈림길 구간산행을 하는 날 종일 된통 비를 맞아 일부는 아랫삼승령에서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나, 동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와 푸른솔님, 산정무한님은 그 전(前) 구간에서 1타 2피로 2개 구간을 몰아서 종주했기 때문에 비를 맞지 않았다.
어차피 새벽 2시에 산행을 시작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고, 체조를 마치는 대로 강원도계 표석이 있는 곳의 좌측 펜스 들머리로 달라붙는다. ‘하늘이 내린 살아숨쉬는 땅! 강원도’ 도계표석 우측의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일대는 산림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생각없이 선두인 허공대장을 뒤따르다 선두들이 거미줄과 이슬을 털어내 주길 바라며 길을 비켜준다. 등로는 뚜렷하게 잘 나 있다. 장마철인데도 비가 내리지 않아 일단 안도한다. 그러나 이슬을 잔뜩 머금은 무성한 숲에서 떨어지는 이슬이 촉촉이 옷깃을 적시기 시작한다. 오르막을 꾸준히 오르는 것 같더니 석개재에서 10여분 만에 삼각점(429, 78. 8. 건설부 재설)이 박혀있는 1,009.3m봉에 오른다.
1,009m봉에서 내려서서 완만한 오르내림이 계속되나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뚜렷한 포인트도 없다. 그냥 표지기를 등대삼아 숲 속의 길을 따라 요리조리 갈 뿐이다. 방향이 북서쪽으로 휘어지는 것 같은데 아직 어둠이 풀리지 아니한 상태라 빨리 여명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거리를 줄여나간다.
처음에는 키 작은 산죽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점차 키를 높이며 무성한 산죽지대가 시작된다. 이러한 산죽은 통리 직전까지 이어지는데 낙동정맥에서는 지난 구간과 이번 구간에 산죽지대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산죽하면 뭐니 뭐니 해도 낙남정맥 지리산 삼신봉에서 고운동치 구간만큼 지독한데는 없다. 그곳은 거의 빽빽한 산죽터널지대이다.
산행시간이 1시간이 지나고 1시간 30분이 넘어가도 쉴 생각도 없이 걸음만 계속하고 있다. 좀 쉬고 가자는 회장님이 말씀도 낙동 말년들에게는 牛耳讀經이다. 날은 밝아오고 나올 듯 나올 듯 하는 면산은 먼산이 되어 간다. 다들 지쳤는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면산을 얼마 남겨놓지 않는 지점의 공터에서 배낭을 부려놓고 쉰다.
10여분 쉬고 완만한 오름길을 따르니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면산(1,245.2m)이 나온다. 면산은 옛날 사람들이 난을 피해 이 산으로 와서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며 난을 면(免)했다고 하여 면산(免山)이 되었는데 그 뒤 면산(綿山)으로 전이되어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면산 정상에서
면산을 지나면서 정맥길 좌측으로는 경북 봉화군에서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으로 들어선다. 태백 철암 하면 시커먼 석탄가루가 떠오르는 곳인데 이제는 석탄산업합리화라는 폐광의 회오리 속에 태백은 시커먼 탄광자국을 털어내고 관광과 고원체육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탄광근로자의 산재소송이 많았었고, 그 때 선산부, 후산부 등 광산용어를 익히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막장에 한번 들어가 보지 않고 여러 건의 탄광소송을 수행한 것이 쑥스럽다.
4. 낙동의 최고봉 백병산(白屛山, 1,259.3m)
[면산 → 백병산 : 8.8km//약 3시간10분]
면산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이제부터는 정맥길 좌우가 모두 강원도이다. 강원도로 들어섰으니 모든 걸 반납하고 새로 시작하라는 뜻인지 한없이 밑으로 푹 꺼지는 것이 달갑지 않다. 날은 밝았지만 숲과 薄霧로 보이는 것은 없다.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니 바지는 엉망이 되었고, 이왕 버린 몸 무대뽀로 치고 내려간다.
다시 오르막이 이어지고 뿌연 안개 속을 아침 햇살이 파고든다. 일행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산죽 숲을 헤치며 갈 길만을 갈 뿐이다. 그런데 어떤 무명 분기봉에서 오늘 통리까지만 진행한다고 하는 회장님을 따라 몇 사람이 합류하는 분위기로 빠져든다. 대간이었으면 결코 이런 일이 없었을 터인데 정맥이라고 그만큼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리라.
박무속을 파고드는 아침햇살
산이라는 게 가도 그만이고 안가도 그만이긴 하지만 初志一貫을 하지 못하는 게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일단 통리까지 가본 후 생각하기로 하고 이 분기봉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오르막을 치고 오른 봉우리에는 시멘트 말뚝 같은 삼각점이 박혀있는 구랄산(1,071.6m)이다. 지랄산도 아니고 부랄산도 아니고, 구랄산의 ‘구랄’이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다. 산 정상이라고 하지만 숲에 가려 조망은 제로.
구랄산과 삼각점
구랄산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중위그룹들이 쉬고 있다. 봉우리 두어 개를 넘는 듯하다가 산죽이 무성한 안부로 내려서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토산령이다. 그런데 토산령이면 좌측으로 휴양림으로 가는 길이 잘 나 있을 줄 알았는데 산죽 숲으로 어지럽기만 하다.
토산령
토산령에서 산죽 숲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피재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될 듯 하다. 약간의 바위가 있는 곳도 지나고 석굴과 같이 돌구멍이 깊게 뚫린 곳도 보인다.
웬 구멍?
지겨운 산죽지대
계속 이어지는 산죽 숲을 정신없이 헤치며 오르내리노라니 벌초한 것처럼 산죽 숲을 잘 정리해놓은 능선 상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 세워진 ‘토산령 정상’이라는 안내판은 휴양림 가는 길(2시간)이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좌측의 철암쪽 휴양림에서 세워놓은 것 같다. 안내판 철제기둥에는 누군가가 GPS좌표를 써넣고 ‘큰재’라고 표시해 놓았는데 그렇다면 이곳은 지도상의 ‘한고개디’로 추정된다.
토산령 정상 안내판
전에 종주일정을 조정하려고 했을 때 태백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태백고원자연휴양림(forwst.taeback.go.kr, 033-582-740)으로 내려가 1박하는 것을 고려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 중위그룹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송전철탑이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공간이 넓고 트인 곳이라 이곳에서 식사자리를 잡았다. 선두 4명은 보이지 않고 후미 7명은 뒤에 쳐져 있고, 중위그룹 11명이 모여 있다.
한고개디(큰재)에서의 아침식사
20여분간의 식사 및 휴식을 마치고 백병산을 향하여 출발한다. 산죽을 잘 깎아놓아 길이 좋다고 하는 사이에 휴양림 갈림길에 이르고 이곳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꺾이면서 다시 원래의 산죽 숲이 이어진다.
휴양림 갈림길 이정표
산죽 숲을 벗어나는 것 같더니 땅바닥이 예사롭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임도를 개설한 듯 파헤쳐진 흔적이 있다. 아마도 이 길은 송전철탑을 세우기 위해 마련한 한전임도 같다. 이 임도를 따라 쭉 올라가다가 약간 내려서서 올라간 지점에 86번 송전철탑이 서 있다.
이곳은 사방이 꽉 막혀 바람도 통하지 않고 휴식장소로는 좋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서 선두를 먼저 보낸 허공대장님과 흑기사님 등이 후미에 여럿이 쳐져 있고, 피재까지 진행하려면 오후 서너 시가 될 것 같은데 막동 마지막 날 너무 초조하게 서두를 것이 아니라 오늘 통리까지만 진행하자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86번송전철탑 밑에서 진행경로 논의 중.
그리고 나머지 통리 이후의 꼬투리 부분은 다음에 특별산행일정을 잡아 마무리를 함과 동시에 너덜샘 등 태백의 샘이란 샘을 다 찾아보는 것으로 하자는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계획이 일행 전부를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생각임은 틀림없다.
나로서는 갈등이 생겼지만 마무리 8km를 남겨놓고 중단하는 것이나, 통리에서 오전 중에 산행을 끝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 되든 말든 일단 완주를 목표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장마철에 오늘과 같이 비도 내리지 않고 땡볕도 없는 좋은 날을 만나기도 그리 쉽지 않다. 김진태님도 일단 예정했으면 끝까지 가고 보는 것이지 왜들 중단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의욕을 불태운다.
낙엽송/벌목지대
지도를 보니 철탑에서 백병산 갈림길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될 것 같다. 다시 오르막을 오르고 낙엽송지대와 벌목지대를 지난다. 슬슬 걸어가는데 허공대장님과 흑기사님이 추월하고, 나는 알아서 갈 것이니 걱정말고 가라고 해둔다. 비는 내리지 않으나 습도는 높은지 후덥지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피로도는 가중된다.
백병산 갈림길
이정석
드디어 백병산 갈림길, 이정석에는 이곳에서 백병산까지 0.36km로 되어있다. 백병산을 낙동정맥의 최고봉(1,259.3m)이라고 하는데 그냥 지나칠 사람은 없다. 당연히 배낭을 부려놓고 백병산으로 향한다. 백병산 갈림길에서 5분여 거리에 있는 백병산 정상에 갔으나 점을 찍고 오는 의미밖에 없다. 정상석이 있고, 삼각점(장성310, 재설 2004)은 좀 더 높은 지점에 박혀있다.
백병산 정상에서 불초소생
백병산 삼각점
백병산을 낙동정맥의 최고봉이라고는 하지만 면산(1,245.2m)과 큰 차이가 없고, 숲 때문에 조망이 별로인 것도 다르지 않다. 마고할미바위와 병풍바위를 보고 올 마음은 없다. 털털거리며 다시 갈림길로 복귀하니 뚜벅이님은 마고할미바위를 넘어뜨리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진태님, 김수영님, 뚜벅이님, 산타래님, 산시조님과 나는 피재까지 진행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통리까지만 진행하고 태백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5. 숨고르기 : 통리역
[백병산갈림길 → 통리역 : 4.4km//약 1시간 30분]
백병산 갈림길에서 통리역까지는 4.4km이고,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정상 0.9km]라는 표지판을 지나 헬기장이 있는 고비덕재에 이른다. 고비덕재는 태백과 삼척을 잇는 고갯길인데 고개 이름으로 보아 이 동네에 고사리와 비슷한 고비가 많이 나는 모양이다.
고비덕재를 지나는 김진태님과 뚜벅이님
헬기장에서 직진하여 다시 숲으로 진입하여 오르막을 오른다. 오르막 정점에서 정맥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튼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은 밧줄을 설치해놓았고, 오래된 통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백병산 일반 등산로 같다. 낙엽송지대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휘어지면서 내려가고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길이 잘 나있어 헷갈릴만한 곳은 없다.
쭉쭉 미끄러지면서 내려가다 보니 송전철탑을 만나고 밑으로 떨어지니 고추밭이 나온다. 개망초가 메밀꽃 마냥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우측으로 태현사 입구 표석이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농가를 지나 416번 지방도로로 떨어지고,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향하면 태백과 삼척을 잇는 38번국도와 조우하게 된다.
태현사 입구의 토종꿀 집하처
태현사 입구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 : 앞에는 우보산이 우뚝 솟앗다.
지방도와 38번국도가 만나는 통리재에서 좌측으로 국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건널목에서 철길을 횡단하여야 한다. 이곳의 표고가 730m로 되어 있고, 현재기온은 24℃로 표시되어 있다. 통리재 표지판의 표고 720m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해발 730m, 현재기온 24℃
철길 건널목 횡단
철길을 건너면 우측으로 통리역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같은 포장도로가 나온다. 통리역 앞에는 몇몇 정맥꾼들만 보이고 승객은 보이지 않는 한적한 시골역사이다. 통리역 도착시간이 오전 11시 18분이니, 석개재에서 이곳까지 8시간 가까이 걸렸다. 예상했던 7시간보다 1시간여가 초과하였다.
통리역 : 정맥꾼들만 서성일 뿐
지금까지 종주를 하면서 철길을 건너보기는 했는데 육상 역사가 있는 곳을 지나기는 처음이다(부산 지하철 개금역 제외). 통리는 마을의 사방에 산이 높고 그 가운데로 골짜기가 형성되어 흡사 구이(구유)처럼 생긴 곳이라고 하여 ‘통(桶)’, 마을 ‘리(里)’라고 하여 그냥 통리(通里)로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점심으로 짜장면이나 한 그릇 시켜먹을 요량으로 동네를 아무리 둘러봐도 중국집은 보이지 않고, 인근 식당에서 김수영님과 뚜벅이님이 칼국수를 시켜놓은 사이에 역사 안 화장실로 가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온다. 역사 안에도 사람은 없다.
식당에서 칼국수를 얻어먹고 쉬는 사이에 버스가 도착하여 배낭에서 자질구레한 것들을 꺼내 전부 버스에 놓고 보충한 식수와 간식만 챙겨 넣고 피재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냥 버스의 좌석에 드러누워 잠이나 자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나 맘을 고쳐먹는다. 시간이 12시도 되기 전이고,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르다.
우보산으로 가는 들머리
6. 우보산(牛甫山)과 유령산(楢嶺山, 932.4m)
[통리 → 대박등 : 5.8km//2시간47분]
오전 11시 40분 산시조님이 식사를 끝내는 것에 맞추어 통리역을 출발한다. 통리역 좌측(북쪽)의 절개지 좌측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밭에서 우측의 숲으로 진입한다. 올라가면서 우리가 온 길을 뒤돌아보니 우리는 태현사 도로를 따라 내려왔는데 산시조님은 정확한 마루금은 태현사 도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채탄장으로 바로 이어지는 게 맞다고 한다. 그러나 채탄장을 통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쩔 수 없이 태현사 도로를 따라 통리역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뒤돌아본 정맥 마루금과 통리 일대
묘를 지나 좌측의 솔숲으로 진입하니 계속 오르막이 이어진다. 일단 우보산까지 200여m 고도차만 극복하면 그 다음은 수월한 진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행들을 전부 앞서 보내고 무리하지 않고 슬슬 오르막을 올라간다.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졸음이 몰려와 퍼져서 잠이나 자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조금만 참아보기로 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건다.
솔숲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능선이 우측으로 확 꺾이는 지점이 나온다. 꺾인 능선을 7분쯤 진행하니 嘉善大夫密陽朴氏 貞夫人全州李氏 합장묘가 있는 우보산이다. 이 묘의 동자석 2개가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嘉善大夫라면 종2품 벼슬로 상당히 지체가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인데, 서미촌재에서 대박등으로 가면서도 嘉善大夫의 합장묘를 보았다.
嘉善大夫 합장묘 비석
나뒹구는 동자석
전망대에서 보는 좌측의 매봉산과 대간줄기
우보산에서 느릅령으로 내려가기 전의 우측 전망대에서는 멀리 매봉산이 보이고, 이어서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가면 유령(楡嶺)이라고도 하는 느릅령 고개길이다. 느릅나무 유(楡)자에 재 령(嶺)자를 쓴 것으로 보아 느릅나무가 많은 곳이다.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어갈 때 호랑이가 우글거려 이 재를 넘어가는 사람이 길이 무사하게 해달라고 돌을 하나씩 주워서 얹어놓았다고 하는 곳인데 楡嶺山靈堂이 있다.
楡嶺山靈堂
유령제 유래문
느릅령에서 산령당 좌측의 들머리로 진입하여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른다. 발걸음이 무거우나 남이 나 대신 가주는 것도 아니고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힘들게 오른 유령산(932.4m)에는 조그만 말뚝 삼각점만 박혀있고,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유령산 정상과 삼각점
유령산에서 내려와 봉우리 두개를 넘어 철탑(No.17)이 있는 곳을 지난다. 다시 오른 봉우리 전망대에서 앞으로 진행할 매봉산 방향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어서 922m봉도 훌륭한 전망대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매봉산
922m에서 바라보는 매봉산(가운데)과 낙동정맥 분기봉(우측에 약간 솟은 봉우리)
좌측으로 확 트인 전망과 매봉산줄기를 바라보면서 진행하는 길이라 오늘 구간 중 가장 조망이 좋은 구간을 지난다. 돌로 쌓은 참호 비슷한 곳을 지나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도로공사가 한창인 서미촌재로 내려선다.
서미촌재 : 목하 도로공사 중
공사장 인부들이 사용하는 컨테이너로 들어가 물 한잔 얻어 마시고, 공사장 절개지 위의 둔덕에서 12분쯤 휴식을 취한다. 서미촌재에서 작은피재까지는 4km정도이고, 2시간 이내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미촌재에서 다시 숲으로 진입하여 오르막을 오르는데 장송지대가 나타난다.
다시 만나는 嘉善大夫 합장묘의 비석
다시 嘉善大夫의 합장묘를 만난다. 嘉善大夫安東權氏 配貞夫三陟金氏 합장묘이다. 그런데 부부의 묘가 나란히 있지 아니하고, 위, 아래로 있는 것도 이상하고, 비석도 묘 앞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묘 좌측의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것도 이상하다. 다시 오르막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군용 삐삐선도 보이고, 군용 목참호도 보이는 것이 이 주위에 군부대나 관련시설이 있는 듯 하다.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묘3기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비포장도로가 지나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키나무목이인지, 자작목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묘지의 우측 들머리에 표지기가 붙어있고, 이곳으로 들어가 숲길 오르막을 오르니 임도가 나온다.
이 임도 우측방향으로 편한 길을 가다보니 철탑이 나온다. 직진하여 철탑을 지나 다시 오른 봉우리의 좌측능선을 따른다. 이 능선상에서 정점에 오르니 측량용 깃대가 꽂혀있고, 삼각점(태백425, 2004복구)이 박혀있는 대박등(930.8m)이다. 매봉산과 피재가 바로 눈에 다가온다. 드디어 종점이 눈앞에 보인다.
대박등 삼각점
대박등에서 바라보는 매봉산 일대
7. 마무리를 위하여 : 작은피재/삼수령
[대박등 → 매봉산 : 2.3km//약 35분]
앞으로 대박등에서 피재까지는 30여분이면 내려갈 수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대박등에서 10여분쯤 내려가니 초지가 나오고 우측 숲으로 들어갔다가 빠져 나오니 정자가 있다. 우측으로 임도를 따라 가면 작은피재가 나오는데 이 길은 거의 시골길 같은 산책로 수준이다.
초지
정자
시골길같은 정맥길
수자원공사 수원지
낙동정맥 분기봉과 중턱의 분수령목장건물
작은피재에서 분수령목장을 지나 매봉산의 낙동정맥 분기점을 가늠하여 진행한다. 발밑에 수자원공사의 건물과 시설물이 보이고, 계속 임도 우측으로 진행하면 드디어 작은피재이다. 대박등에서 25분 거리이고, 통리에서 3시간 10여분만이다.
작은피재
시간여유가 충분하다면 작은피재에서 낙동정맥 분기점인 1,145m까지는 1.1km라 30여분이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제일 후미로 이곳에 도착하였고, 범털총무님이 버스를 피재로 보낼 테니 피재에서 산행을 마감하라는 무언의 압력도 있고 아쉽지만 피재에서 낙동의 대미를 장식하기로 한다.
피재 입구
작은피재에서 피재까지는 35번국도를 따라 600여m 올라가면 된다. 피재에 도착하니 김수영님과 김진태님은 분기봉에 인사하러 올라갔다는 것이고, 뚜벅이님과 산타래님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김진태님은 컨디션이 좋은지 펄펄 나르신다. 피재 매점에서 시원한 환타 한 병을 들이부어 마시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피재를 비재 빗재가 격음화한 비탈재의 뜻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고(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월간 산 2006. 4월호), 이 고개를 한자로 직치(稷峙)로 표기하고 있어 피(稷)와 관련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난리가 나면 태백으로 피난하던 고개라고 하여 피재라고 보고 있다.
삼수령 표석
피재는 서해의 한강, 남해의 낙동강, 동해의 오십천으로 물길이 갈리는 분수령으로 三水嶺으로도 불린다. 낙동봉 분기점으로 갔던 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삼수령공원을 가보니 삼수정 정자는 그대로인데 조형물은 옛 것이 아니다. 이곳에는 세 갈래로 갈려 흐른 물줄기가 결국은 태평양에서 만나는 빗물의 운명탑이 있었는데 지금은 우주시대를 상징하는 듯한 요상한 조형물로 바뀌었다.
삼수정
삼수령 조형물
태백에는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낙동강의 발원지인 너덜샘과 황지연못 등 남상(濫觴)들이 있어 태백은 물의 고장이면서 강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늘 시간이 없어 은대샘과 황지연못을 둘러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은대샘은 태백에서 38번국도를 타고 싸리재 옛길을 오르다 보면 은대샘을 알리는 표지가 보이고, 황지연못은 태백시내 황지동에 있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로 내려가 본 적이 있다. 그 때 콸콸 솟구쳐 흘러내리는 검룡소의 물을 보면서 감격을 했던 추억이 있다. 낙동강의 동쪽 물막이인 낙동정맥 종주를 마치면서 낙동강의 濫觴을 찾아보지 못하고 언제 시간이 되면 따로 찾아보기로 한다.
山自分水嶺의 원리에 따라 낙동정맥은 낙동강의 동쪽 물막이 산줄기이고, 낙동강의 洛東이란 가락의 동쪽으로 가락은 오늘날의 상주를 말한다(상주에 낙동면 낙동리가 있다). 오늘날의 상주는 퇴락했지만 옛날에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를 대표하는 도읍이었다. 경상도는 慶州의 ‘慶’자와 尙州의 ‘尙’자를 합한 말이다.
이 나라의 인문지리의 기초는 산과 강과 따로 나누어 보지 않는데 있다. 산과 물은 서로 대립하고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라 서로 감싸안고 보듬는 조화의 관계에 있다. 성철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했다지만 이는 고승의 선문답이고, 강산(江山), 산수(山水), 산하(山河)라는 물에서 보는 것처럼 산과 물은 하나이다. 따라서 정맥종주를 하면서 산줄기의 흐름뿐만 아니라 강줄기의 흐름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통상 태백시내의 황지연못을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고 있으나, 정확하게는 너덜샘으로도 불리는 은대샘이 낙동강의 최장 발원지이다. 황지연못은 고문헌에 근거한 역사적 발원지이고,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공식 인정하는 최장 발원지는 은대샘(너덜샘)이다.
두문동재 중턱과 이어지는 금대봉 아래 산기슭에 있는 은대샘에서 솟아내린 물이 황지천으로 흘러들고 황지천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고 물길을 낸 구문소를 지나 낙동강이 된다. 이 강이 남으로 흘러흘러 영남지방을 적시는 젖줄이 되는 것이다.
은대샘에서 발원한 조그만 물줄기가 황지로 모여 들었다가 낙동강 1,300리 장강을 이룬다. 황지의 옛 이름은 하늘 못이라는 뜻의 천황(天潢)에서 황지(潢池)로 부르다가 삼수변이 떨어져 나가 黃池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노랭이 黃부자와 며느리 池씨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황지연못은 태백시 황지동 시내 중심가에 있다. 태백을 둘러싼 태백산, 함백산, 매봉산 등에서 땅에 스며든 물이 모여 솟아나는 곳, 하루에 솟아나는 5,000톤의 물이 낙동강의 발원이 된다. 이곳에서 발원한 작은 물줄기가 안동에서 길안천과 반변천을 흡수하고, 상주와 선산에서 위천과 감천을 합하고, 대구에서 금호강, 합천에서 황강, 의령에서 남강, 삼량진에서 밀양강을 합하여 525km의 장강을 이루며 남해로 흘러간다.
강은
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강은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산다.
강은
헤아릴 수 없는 集合이면서
單一과 平等을 유지한다.
강은
스스로를 거울같이 비워서
모든 것의 제 모습을 비춘다.
강은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한다.
강은
그 어떤 폭력이나 굴욕에도
無抵抗으로 임하지만
결코 자기를 잃지 않는다.
강은
생명에게 무조건 베풀고
아예 갚음을 바라지 않는다.
강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려서
어떤 拘束에도 자유롭다.
강은
生成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無常 속의 영원을 보여 준다.
- 구상, “江” 전문
8. 낙동정맥에서 스틱을 거두며
30여 분간 피재에서 기다리는 동안 낙동정맥 분기점을 찍으러갔던 김수영님과 김진태님이 돌아왔고, 범털총무님이 몰고 온 버스로 태백시내로 이동한다. 사우나에서 간단히 샤워만 하고 회식장소로 향한다. 언제 준비했는지 낙동정맥 완주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도 걸어두었다.
어떤 식육점에서 통리파들은 대부분 식사를 마친 상태이고, 나중에 도착한 사람들만 한우고기를 연탄불에 구워먹으며 뒷풀이 자리를 갖는다. 춥고 높은 곳에서 자란 태백의 한우는 고기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과연 육질이 좋다. 고기를 판매한다면 몇 근 사가고 싶은데 여기서 구워먹을 수는 있어도 판매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더덕주에 한우고기로 속을 채우고, 전부 낙동을 마무리하는 기념사진을 박는다. 이제 드디어 낙동정맥에서 나의 스틱을 거두며 이제 또 다른 산줄기, 호남정맥으로 가는 장도가 기다리고 있다.
낙동정맥 끝!!
버스가 늦어도 밤 10시까지 서울에 도착해야 하는 관계로 황지연못 탐방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오후 5시 버스는 서울을 향하여 출발한다. 여러 잔 마신 술의 위력으로 버스에서 그냥 곯아떨어졌는데 깨어나 보니 버스는 박달재 인근의 휴게소이다. 이곳에서 탱크님과 천사님 등은 범털님이 처가 가족의 팔순잔치 집으로 가는 길에 묻어서 떠났다.
마침 하늘에는 우리들의 낙동정맥종주를 축하하는 양 일곱 색깔 무지개가 떠있다. 밤 9시경 버스는 양재동에 도착, 이번 구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9. 낙동정맥 종주 회고 : 다시 찾는 산줄기
처음 부산에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하더라도 길게만 느껴지던 낙동정맥, 한걸음 한걸음 굼뜬 소걸음으로 정맥길 천리 길을 이어왔다.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이제 낙동정맥에서 나의 스틱을 거둘 시간이다. 내 나이로 보나 모든 여건상 나의 생애에서 다시 낙동정맥길을 밟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2005년) 10월 15일부터 연연히 이어온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도 이제 나의 추억 속에 묻어둔다. 산이 뭔지도 모르고 말 그대로 낙동정맥의 중심이나 본질로는 접근하지 못한 채 낙동 주변의 변죽, 언저리에서 어정쩡하게 맴돌기만 했다. 그러나 어쨌든 400여km, 천리 길 낙동정맥을 차근차근 이어온 나로서는 변죽을 울린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낙동정맥 종주를 통해 부산, 양산, 울산, 울주, 청도, 영천, 경주, 포항, 영덕, 청송, 영양, 울진, 봉화, 삼척과 태백 등 경상도와 강원 남부의 땅을 밟아보았다. 사실 정맥길이 아니었다면 나로서는 영덕, 청송, 영양, 봉화 등 경북의 오지의 땅을 밟아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대간이나 정맥종주를 통해 밟아보는 이 나라의 산하는 나에게는 느낌이 새롭게 다가온다. 집을 나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탕아처럼 우리 땅에 대한 애틋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9개월 동안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서 매봉산 낙동봉 분기점까지 총 17개 구간으로 나누어 천리 길 정맥길에 나의 발도장을 찍어왔다. 주로 무박 일정이었지만 부산 동래와 양산 통도사 인근의 찜질방, 그리고 창수령 자라목휴게소에서 각 1박을 하면서 연짱으로 2개 구간을 이어가기도 했다.
KTX 밤열차를 타고 내려간 부산 구포역에서 백양산을 올라 내려다 본 항도 부산의 휘황한 야경과 개금역 등 부산시가지를 요리조리 통과하던 일, 구덕산 산정에서 바라보던 눈부신 영도 앞바다도 생각이 나고, 가을 금정산의 억새밭, 텅 비어있던 천성산과 정족산도 눈에 아물거린다. 양산 통도사 인근의 찜질방에서 비몽사몽간에 1박을 하고 영취산에서 신불산-간월산-능동봉-가지산-외항재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30여km를 당일로 주파하기도 하였다.
고헌산의 매서운 칼바람, 김유신 장군과 화랑의 얼이 서려있는 단석산 정상에서의 멋진 조망, 가도 가도 끝이 없었던 한무당재 직전의 정맥길,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급경사의 도덕산 오르막을 뺑이 치며 오르던 일, 빨치산 패잔병인지 공공취로사업을 나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일렬로 쭈그려 앉아 있던 이리재 군상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피나무재에서 내려가 본 주산지, 주왕산 왕거암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내원마을로 내려가는 자폭산행 중 공단직원을 만나 곤욕을 치루고, 다음 구간에 상먹동으로 하행어프로치를 하면서 개척산행을 하던 일, 창수령에서 1박하면서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 조지훈 생가를 찾아가 본 일과 두 차례의 백암온천 어프로치, 칠보산 구간의 우람한 10지 금강송의 자태, 답운치와 석개재 인근에서의 알탕과 금강송 정자 밑에서의 뒷풀이도 나의 뇌리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이제 낙동정맥을 마무리하고 다음에는 호남정맥으로 발길을 돌린다. 혹서기 휴가가 끝나는 8월 셋째 주부터 호남정맥종주라는 대장정이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나는 이미 백두대간의 영취산 분기점에서 조약봉분기점까지 금남호남정맥은 금남정맥과 더불어 작년에 종주를 마친바 있으므로 조약봉분기점에서 섬진강변 외망 망덕포구까지의 순수 호남정맥 일정이 될 것이다.
호남정맥도 남진이냐 북진이냐 진행방향의 문제가 있으나, 낙동정맥과 같이 정맥의 끝 지점인 망덕포구에서 백두대간을 목표로 올라가는 북진의 길을 택한다. 20여회의 구간으로 예정하고 있으므로 내년 7월초쯤 호남정맥종주가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호남정맥도 각종 도로, 광산, 댐, 군사시설과 관광시설 등으로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호남정맥에는 내장산, 백양산, 추월산, 강천산, 무등산, 제암산, 사자산, 조계산, 백운산 등 명산들도 많고, 주변에 볼만한 사찰과 문화유적 등 볼거리와 먹거리들도 널려있으므로 정맥의 멋과 맛을 찾아 길을 떠나는 ‘놀고먹는 호남정맥’, 웰빙 정맥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산은 이겨야 하는 전투의 대상이 아니라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동화의 대상이다.
그 동안 낙동정맥 종주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호남정맥에서 뵙겠습니다.
-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끝 -
첫댓글 석개재에서 피재까지의 산행기입니다. 참조하세요.
너무 길어 어떻게 갈런지 큰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