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싸움
소싸움(鬪牛) / 강릉 단오제 소싸움
사람들은 송 도깨비 영감네 황소를 송 도깨비 영감만큼이나 무서워하였습니다.
덩치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고, 벌써 나이는 상당히 많이 먹었을 텐데 힘이 엄청났습니다.
다부진 어깨며, 짧고 단단한 두 뿔과 불그스름한 눈으로 사람을 희번덕거리며 쳐다볼 때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더구나 보통 황소는 누렇거나 불그스름한 털을 가진 소가 많은데 송 도깨비 영감네 황소는 검정색이었습니다. 전체가 검은 털이 아니라 머리는 거의 검은 털이었고, 목덜미 부분은 얼룩말처럼 검은 줄무늬가 줄줄이 있었으며 등 쪽은 붉은 털과 검은 털이 반반일 정도로 섞여 있었습니다.
송 도깨비 영감은 그 소를 무척 아꼈고, 사람들과는 얘기를 잘 안 해도 그 소와 같이 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소귀에 대고 속삭이곤 하였습니다.
이른 봄부터 시작한 모판 만들기와 모내기가 끝나고, 밭에 씨앗 넣는 일도 끝나면 농촌은 좀 한가해집니다. 온 봄 내내 논밭에 끌려다니며 일하느라 소들도 살이 빠지는데 이맘 때 쯤이면 소들도 쉬게 되지요. 아이들은 소들을 몰고 산으로, 들판으로 풀을 뜯기러 갑니다.
산 밑에 가면 고삐를 양 뿔에다 칭칭 감아 소를 풀어 놓고는 개울에서 미역도 감고 콩서리, 감자서리도 하며 놀다가 해가 설핏해 지면 자기네 소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이따금 소들끼리 싸움을 하기도 하는데 어른들은 절대로 소가 서로 싸우지 못하도록 하라고 아이들한테 신신당부를 합니다.
혹 소들이 다치기도 하고 살이 빠진다고 하기도 하지만, 싸움질 한 소는 성질이 난폭해져서 일 부리기가 어렵고 이따금 뿔로 사람을 들이받는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송 도깨비 영감네 둘째 아들 석이 형은 장난꾸러기일 뿐 아니라 자기네 검둥이를 아무 집의 소나 싸움을 붙이려고 해서 아이들은 석이 형과 검둥이가 보이기만 하면 기겁을 하며 소를 끌고 도망을 갑니다.
언젠가 한 번 큰 골 재명이 형네 황소하고 검둥이가 싸움이 붙은 적이 있었습니다. 재명이 형네 황소는 덩치가 검둥이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잘 들이받고, 난폭하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날은 소 풀 뜯기러 가서 소를 풀어 놓고 미역을 감는데, 석이 형과 재명이 형이 서로 자기네 소 자랑을 하다가 말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너희 누렁이, 덩치만 컸지 별게 아니야, 우리 검둥이와 한번 붙여 볼래?’
‘야, 우리 누렁이가 얼마나 힘이 센 줄 알아? 건넛마을 재궁집 소도 꽁무니를 뺐다구..’
어쩌구 하더니 둘이 물에서 나가 소를 찾으러 갑니다.
우리들은 ‘웬 구경거리냐’ 하면서 서둘러 바지를 꿰었습니다.
처음 풀밭에서 시작한 소싸움이 허리가 넘는 잔솔밭으로 이어졌습니다.
팔뚝 같은 소나무가 뿌리 채 뽑히기도 하고 나무 중동이가 부러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한나절께 시작한 싸움이 해가 설핏해져도 끝나지를 않습니다.
처음에는 뿔을 맞대고 힘자랑을 하니까 재명이 형네 누렁이가 덩치가 커서 석이 형네 검둥이가 뒤로 주르르 밀립니다. 몇 번 밀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옆으로 돌면서 앞다리를 척 꿇어 머리를 숙이고 누렁이 턱밑으로 뿔을 쳐박더니 ‘휙’하고 뿔을 위로 휘두릅니다. 그러자 그 큰 재명이 형네 황소도 앞발이 덜렁 들리며 옆으로 꼬라 박히기도 합니다.
그래도 꽁무니를 빼기는커녕 더 사납게 돌진해 들어옵니다. 힘은 재명이 형네 황소가 낫고, 꾀는 석이 형네 검둥이가 나아 보였습니다. 재명이 형과 석이 형도 처음에는,
‘이겨라, 이겨라.... 옳지 잘한다. 밀어라, 밀어..’ ‘옆으로 돌아, 밀어....’
어쩌구 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더니만 시간이 자꾸 흘러도 싸움이 끝나지 않으니까 겁이 났습니다.
어떻게든 뜯어말려야겠는데 말릴 재간이 없습니다. 고삐를 잡고 당겨 보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소가 고개를 한번 휙 돌리면 고삐를 잡았던 사람이 땅바닥에 개구리처럼 꼬라박힙니다.
고삐를 작은 소나무 밑둥치에 감아 놓고 죽을힘을 다해 잡고 있어 보기도 하지만 한번 ‘휙’ 고갯짓에 소나무가 그냥 뿌리째 뽑혀 버리곤 하였습니다. 구경하던 아이들도 겁이 나서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나뭇가지를 꺾어 두 소 사이에다 휘둘러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구경에 신바람 나던 아이들도 이젠 싸움을 말리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보지만 이미 성이 날 대로 난 두 짐승을 갈라놓는 일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 같았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마을 이장(里長) 어른께서 이 꼴을 보았습니다.
‘요런 망나니 녀석들, 한다는 짓이 꼭.....’
하더니 마을로 뛰어가십니다. 조금 있더니 마을 어른들이 세숫대야며 삽을 들고 달려왔습니다.
‘빨랑 가서 물 퍼 와라!’
삽으로 흙을 퍼서 두 짐승 머리에다 흩뿌립니다. 또 세숫대야에 물을 퍼 와서는 눈에다 끼얹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만 조금 멈칫했을 뿐 막무가내로 또 붙어 싸웁니다. 이번에는 어른 한 분이 짚단을 들고 뛰어 왔습니다. 짚단에다 불을 붙여 두 짐승 사이에다 넣고 뒤흔드니 그제서야 겨우 떨어집니다.
온통 불에 그슬린 꼴에다 눈구석에서는 핏물이 흐르는데도 눈에서는 불길이 철철 흐르고.....
그을린 데다 흙탕물까지 뒤집어 쓴 꼴이 소가 아니라 꼭 그림책에서 보았던 악마를 보는 것 같아서 몸서리를 쳐졌습니다.
그날 석이 형과 재명이 형은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송 도깨비 영감은 요놈의 자식을 죽여 버리겠다고 작대기를 들고 석이 형을 찾으러 마을을 몇 바퀴나 돌았으니까요. 석이 형은 솔밭 속에 숨어 있다가 한밤중은 돼서야 부엌으로 기어들어가 식은 밥 한 덩이를 부뚜막에 앉아서 먹고는, 다시 도망쳐 나와 우리 사랑방에서 웅이 형이랑 잤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다는 소리가 고작 이렇습니다.
‘야, 재명이네 누렁이도 세긴 세더라. 그래도 더 두었더라면 우리 검둥이가 이겼을 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