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구슬픈 육체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은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났다
암만 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잠시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지 않으려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나는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는데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불굴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하는 것은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천상의 무슨 등대같이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해저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때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이여
조화가 없어 아름다왔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다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다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기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아니 될 것이지만
천사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 사이 없이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여.
(1954)
이 시는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으며 살려는 화자가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추구하던 과거의 몸의 삶의 잊어버리는 아픔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은 것이 있어 암만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나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다.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불은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깝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켜졌다. 나는 잠시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지 않고 잊어버린 것을 생각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 시절의 삶이었는지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불굴의 의지로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 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한다. 잊어버린 생활은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활들이다. 그러나 잊어버려 말 없는 생활들이다. 마지막에는 무감각하게 될 생활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조화가 없어 아름다왔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마음으로 찾을 것은 아니다. 조화를 원하는 감덩으로 찾을 것은 아니다. 지나간 생활은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가 지자 헤어진 구슬퍼한 벗같이 여겨야 한다.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안 된다. 천사같이 흘려버려야 한다.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 사이 없이 몸이 원하는 것이 아닌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으러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이다.
이 시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은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났다
암만 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잠시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지 않으려 한다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은 것이 있어, 암만 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나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다.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니다.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깝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을 켰다. 나는 잠시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지 않으려 한다
화자에게 ‘잊어지지 않은 것’, ‘암만 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이 아니고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6연 3행)‘이며 ‘조화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8연 1행)인 ‘잊어버린 생활’(7연 2행)이다.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깝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을 켰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또는 생각없이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찾지 않으려 한다’는 ‘잠시’가 지난 후에는 찾겠다는 말이다. 지금은 불을 켠 상태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이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어버린 것’이기에 화자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상태이다. ‘통각(統覺)’은 주의를 기울이는 지각 대상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각과 정의의 마지막 단계이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나는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는데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불굴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하는 것은
화자는 막연하게 어둠 속에서 잊어지지 않는 것이 불을 켠 순간 없어졌다는 것만 안다. 그래서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생각한다. 그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고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하는 것은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는 불굴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을 끄고 누었다가 / 잊어지지 않는 것이’ 화자의 청춘 시절에 경험했던 생활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또한 화자가 ‘잊어지지 않는 것이’ ‘대지의 진동이었’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화자는 청춘 시절에 ‘땅만 만지고 싶’어 했고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며’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이 아닌 ‘땅만 만지’는데 ‘힘삼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지의 진동’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조화가 없어 아름다운 생활’일 것이다. ‘진동’은 이를 이루려는 욕망을 말하는 것이리라. ‘땅과 몸이 일체’가 되는 것은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이루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화자는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불을 켜고 앉’아서 ‘잠시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지 않’고 ‘어둠 속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 ‘불굴의 의지’로 기억하려한다. 화자가 찾으려는 ‘꿈’은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부박’하다. ‘부박’은 ‘천박하고 경솔’한 것을 말한다. 화자는 이런한 ‘꿈’을 찾으려고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힘삼고 있었’던 것이다.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천상의 무슨 등대같이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해저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때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이여
화자는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천상의 무슨 등대같이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해저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때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이여’라고 울부짖는다.
화자가 찾는 것은 불을 켜는 순간 ‘잊어버린 생활’이고 이 생활은 지금은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천상의 무슨 등대같이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활들이’다. ‘귀중한 생활들이’라 말하는 것은 화자의 정신이 아니라 ‘몸’은 이 생활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말없는 생활들’은 잊었기에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자의 ‘몸’이 ‘불굴의 의지’로 기억하려는 ‘잊어버린 생활’은 ‘마지막에는 해저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때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인 것이다. 그러나 화자의 ‘몸’은 ‘어둠 속에’서 이것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화자의 정신이 깨어 있는 ‘불’에서는 ‘몸’은 모두 잊어버린다. ‘불’에서는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화자는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아 ‘쉴 사이 없이 가야 하는 몸이’ 되기 때문이다.
조화가 없어 아름다왔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다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다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기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아니 될 것이지만
천사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조화가 없어 아름다왔던 과거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지금의 마음으로 찾을 것은 아니다.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다. 지나간 생활은 지나간 벗같이 생각하고, 해가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겨야 할 것이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안 될 것고 만
천사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다. 그렇지만 ‘불을 끄고 누’우면 ‘잊혀지지 않는’다.
‘조화가 없어 아름다왔던 생활’은 화자가 ‘불을 끄고 누’우면 ‘암만 해도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불을’ 킨 때의 ‘조화를 원하는’ 마음으로 찾을 것은 아니다. ‘조화를 원하는’ 마음으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수 없기 때문이다.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 해’가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겨야 한다. ‘지나간 벗’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벗이라 생각하여 포기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라고 자기 자신의 ‘몸’에게 말하는 것이다. ‘헤어진 구슬픈 벗’은 자신의 ‘몸’과 헤어지기 싫어해서 구슬퍼한 벗과 헤어진 것을 인정하라고 자신의 ‘몸’에게 말하는 것이다. 화자는 ‘몸’에게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천사같이 천사같이’ ‘조화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흘려버리라고 말한다. ‘것이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조화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에 미련이 남았다는 것을 담고 있다.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 사이 없이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여.
아아 아아 아아 몸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으러 쉴 사이 없이 가야 하는 몸이다. 그래서 구슬픈 육체인 것이다.
‘아아 아아 아아’는 몸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으러 쉴 사이 없이 가야 하는 몸이 내뱉는 비명이다.20210322원전1104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