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묵상(44) - 2024/1/29>
44. 그리스도의 나라가 가까이 임하고 있다.
막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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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9:1의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하시니라”(Καὶ ἔλεγεν αὐτοις 카이 엘레겐 아우토이스). 마가복음에는 ”이르시되 ... 하시니라“ 라는 서언적 형식의 문장을 자주 사용하는데(2:25.27; 4:9.24)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중요한 사건에 대해 말씀을 시작하실 때마다 쓰는 표현이다. 9장의 본 절은 시간적 상황과 문맥으로 볼 때 8:31-38의 말씀에 계속해서 연결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는 부분이므로 마가복음에서는 본 절의 예수님의 말씀 앞에 ”카이 엘레겐 아우토이스“ 라는 설명구를 삽입해 구분한 것이다.
한편 ”이르시되“ 라는 의미로 번역된 ”엘레겐“은 원형 ”레고(λέγω)“ 의 미완료 과거로서 ”그가 계속 말하고 있었다“ 는 의미이다. 이는 본 절의 예수님의 말씀이 8장에 이어 단절됨이 없이 계속되는 말씀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υ θεου ἐληλυθυιαν ἐν δυνάμει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엘렐뤼뒤안 엔 뒤나메이) 은 본문과 병행 구절인 마16:28 에는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 눅9:27 에는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다.
이 부분은 해석이 매우 난해하여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엿새 후에 제자들이 본 변화산의 영광스런 모습이라고 해석하는 자들도 있고 (Chrysostom, Bengel), 부활로 말미암아 확실시된 십자가상에서의 주님의 승리 (Alan Cole), 오순절 성령 강림 (Godet) , 예루살렘의 멸망(Alford) 그리고 주님의 재림 (Mayer) 등 그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이상근 주석에서).
이에 대한 보다 정확한 해석을 얻는 데 있어서는 본문의 내용, 즉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제자들이 보게 될 시간이 큰 변수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죽기 전에“라고 말씀하심으로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몇몇 제자들이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렇게 볼 때 먼저 예수님의 재림은 물론 초대 교회 성도들이 대망하던 바이지만(빌4:5), 그의 재림은 초대 교회는 고사하고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본문이 ‘재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은 몇몇 제자들이 생존했던 A.D.70년에 이루어지긴 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과 일치시키기에는 두 사건의 개념 사이에 서로 조화시킬 수 없는 너무나 깊고 큰 괴리가 있기 때문에, 본문이 ‘예루살렘 의 멸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또한 이를 엿새 후에 있을 변화산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도 ”죽기 전“ 이란 다소 시간적 여유를 두는 표현과 조화시키기 어렵다.
그러므로 본문은 부활로 말미암아 확실시된 십자가상에서의 주님의 승리, 오순절 성령 강림, 그리고 역동적으로 확산되는 복음의 전파 등과 연관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임하는 것“으로 번역된 단어 ”엘렐뤼뒤안“ 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엘렐뤼뒤안“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들어오다“ 란 뜻을 지닌 원형 ‘에르코마이(ἕρχομαι)’ 의 현재완료분사이다. 헬라어에서 완료분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어떠한 일이 이루어져 그 결과물이 남아 있는 것을 가리키며, 이루어진 시점은 주동사의 시제보다 한 단계 앞선다. 즉 주동사의 시제가 현재라면 현재완료분사는 과거에 이루어진 사건이며, 그 결과물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현재 완료 분사로 사용된 ”엘렐뤼뒤안“은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 시점은 생존했던 몇몇 제자들이 보기 전이라는 사실과 이미 임해 있는 그 나라를 제자들이 보게 될 것을 가리킨다.
한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이전에도 이미 임하여 있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8) 고 주께서 확증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것이 ”권능으로(엔 뒤나메이)“ 임한다고 했으므로 본문에서 가리키는 하나님의 나라는 마12:28 에서 언급한 그것과 성질이 다르다고 본다. ‘뒤나메이’ 의 원형 ‘뒤나미스(δύναμις)’ 는 하나님의 신적 권능을 지칭하며(고전2:5, 고후6:7), 마16:28의 ”왕권을 가지고“ 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즉 주님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성령을 보내시며 그의 제자들에게 그 성령의 능력을 주어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써 왕으로서의 권능과 통치권을 행사하셨다. 그러므로 ‘권능으로 임한 하나님 나라’를 제자들이 죽기 전에 본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 장림 및 그로 인한 복음의 역동적 확산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다.
당시 제자들은 자신들이 죽기 전에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며(마28:17, 막16:14, 눅24 :36), 또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심을 보았다(행1:10). 그러므로 본절의 전체적 의미는 제자들 중에는 장차 여러 가지 모습으로 오실 영광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본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의 고난을 강조하신 직후에 하신 말씀이므로 고난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영광스런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롬 8: 18) 을 강조해 준다. 이러한 말씀은 31-38의 말씀으로 인하여 의기가 꺾여 있던 제자들에게 힘과 소망을 심어 주었을 것이며 당시 로마의 박해에 시달리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용기와 소망을 북돋아 주었을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점을 정리해 보자.
1.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할 것이고, 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땅에서 장애가 되고 있는 모든 조직, 사상을 붕괴시킴으로써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 땅이 무섭게 타락한 상태에 있다 해도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루어지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나라는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저지하려는 모든 방해들을 멸하고 그 일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권능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뒤나미스((δύναμις)는 ‘신적 권능’이다. 마16:28에는 “왕권을 가지고”라고 표현했다. 주님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성령을 보내시고, 제자들에게 그 성령을 주어 복음을 전하게 하고, 악의 세력을 물리침으로 왕으로 통치권을 행사하신다.
3. 그리스도의 나라는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 볼 수 있도록 임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1절)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땅에 살고 있으면서 미리 체험해야 한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가 내 것이 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복음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전 생애, 전 인격, 나의 존재를 사로잡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복음으로,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내가 이 땅에서 맛보고, 체험해야 한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