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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구사론 제19권
1)
여기서 ‘근본’은 번뇌의 득(得)을 말한다. 즉 번뇌가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번뇌의 득이 더욱더 견고해져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2)
여기서 ‘자구’는 번뇌 자신의 자량이 되는 비리작의(非理作意) 즉 참답지 못한 사유를 말한다.
3)
식의 흐름에는 다음 생을 받을 때 부모에 대한 애념(愛念)을 일으키는 속생(續生)의 식과, 소연의 경계에 대해 촉(觸)을 일으키는 촉연(觸緣)의 식이 있다. 곧 번뇌는 후유의 소연에 대해 능히 속생의 식을 일으키며 소연에 대해 능히 염오식을 낳기 때문에 ‘식의 흐름을 인도한다’고 말한 것이다.
4)
이를테면 『잡아함경』 권제18 제490경(대정장2, p.127상)과, 『증일아함경』 권제34 「칠일품(七日品)」 제3경(동p.738하), 『장아함경』 권제10 『십상경(十上經)』 (대정장1, p.54중) 등에서는 각기 7사(使, ‘사’는 수면의 구역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5)
이하 욕탐수면의 본질[體]을 둘러싸고 유부ㆍ대중부ㆍ경부의 대론이 펼쳐지고 있다. 욕탐수면을 ‘욕탐이 바로 수면’이라는 지업석(持業釋, 동격복합어)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욕탐의 수면’이라는 의주석(依主釋, 한정복합어)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인가? 만약 전자라면 욕탐은 현행하는 것이므로 수면 역시 현실의 번뇌로서 번뇌의 다른 이름일 뿐이지만, 후자라면 수면은 욕탐을 일으키는 것으로서 심ㆍ심소와는 별도의 실체여야 한다. 유부의 경우 욕탐의 본질은 탐ㆍ진과 마찬가지로 수면이고, 그것은 바로 현행의 번뇌인 전(纏, paryavsthāna) 즉 심상응법의 하나로 해석하고 있지만, 대중부의 경우 현행의 번뇌인 욕탐을 야기하는 불상응행법으로 간주하였다. 이에 대해 경부에서는 수면을 번뇌종자의 뜻으로 해석하여, 번뇌가 잠자고 있는 상태를 수면, 깨어 활동하고 있는 상태를 ‘전’이라고 하였다. 곧 ‘번뇌종자인 수면은 심상응도 아니고 불상응행도 아닌 마음 자체의 차별공능이다’고 논의함으로서 유부와 대중부를 동시에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논주 세친에 의해 선설(善說)로 평취되고 있다.
6)
출처불명. 즉 이 경에서는 욕탐전 이외 수면을 따로이 언급하고 있으므로 욕탐과 수면은 개별적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7)
여기서 본론은 『발지론』 권제6(한글대장경176, p.130), ‘7수면 중의 욕탐수면 등은 고근(苦根)을 제외한 네 가지 근과 상응한다.’ 그럴 경우 욕탐수면은 상응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8)
제 주석에 따르면 이는 바로 수면을 불상응행법으로 이해한 대중부(大衆部)의 난문이다. 즉 그들에게 있어 “수면은 심(心)도 아니고 심소도 아니며, 따라서 그것은 어떤 대상(所緣)도 갖지 않는다. 즉 수면과 전(纏)은 서로 다른 존재로서, ‘전’이 심과 상응하는 것이라면 수면은 상응하지 않는 것이다.”(『이부종륜론』, 대정장49, p.15하-16상) 즉 ‘전’이 현재 작용하고 있는 제 번뇌로서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라면(그럴 경우 그것은 마음과 동일한 구체적 대상을 갖는다;所緣平等), 수면은 바로 그것을 낳게 하는 잠세적인 힘이다. 따라서 그것은 마음도 아니고, 마음과 상응하는 심소도 아니며, 구체적이고도 특정의 대상을 갖지 않는 추상적 원리로서의 불상응행법인 것이다.
9)
즉 앞의 경문에서 ‘(욕탐전을 능히 제거하고) 아울러 수면을 끊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은, 다만 욕탐 자체만을 끊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그 같은 탐과 상응하는 법과 소연의 수박도 역시 끊게 되기 때문에 그같이 말한 것이지 수면이 욕탐과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는 뜻. 여기서 ‘수박(anubandhnanti)’이란 다른 번뇌에 수순하여 생겨나는 것으로, 경에서 욕탐에 속한 이러한 수박을 수면이라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곧 ‘가행도로써 그것이 생겨나지 않게 하더라도, 혹은 애써 노력하여 그 생기를 막더라도 자주 현기하기 때문에 수박이다’(본론 권제20, p.940 참조)
10)
불은 괴로움의 원인이기 때문에 ‘불은 괴로움이다’고 하는 것처럼 ‘탐 등의 수면의 득’을 잠시 수면이라 하고, 그 득을 끊는 것을 ‘아울러 수면을 끊게 된다’고 하였다는 뜻.
11)
수면을 상응법이라고 해야 하는 이 같은 세 가지 이유는 법승(法勝)의 설이다.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 권제2(대정장28, p.817하), “ 以諸隨眠 染惱心故, 覆障心故, 能違善故, 非不相應.” 즉 수면이 만약 불상응법이라면 이같이 마음과 관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12)
대중부처럼 수면이 불상응행법이라고 주장할 경우, 마음을 오염시키고 어지럽히는 등의 작용은 수면의 작용이 아니라 현행하는 번뇌의 작용이라 주장할 것이기 때문에, 이는 그들의 힐난에 대한 올바른 논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13)
즉 수면을 번뇌를 낳게 하는 불상응의 개별적 실체로 이해할 경우, 현행의 생각 역시 그것을 낳게 하는 ‘생각의 종자[念種]’라는 개별적 실체에 의해 낳아졌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경량부에 있어 번뇌의 종자나 생각의 종자는 다 같이 개별적인 실체가 아니라 다만 전찰나의 법에 내재하는 공능(功能, śakti) 즉 힘일 뿐이다.
14)
『육육계경』에서 육육이란 6근(根)ㆍ6경(境)ㆍ6식(識)ㆍ6수(受)ㆍ6상(想)ㆍ6사(思, 혹은 愛)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잡아함경』 권제13 제304경, 제305경(대정장2, p.68하-69하)에서 설해지고 있지만, 인용한 경문은 같은 경 권제17 제468경(동 p.119중)에 나온다. “낙수를 관하는 것은 낙수에 대한 탐사(貪使, 탐수면의 구역)를 끊기 위해서이다.” 즉 경에서 낙수의 상태에서 탐수면이 현행하는 것을 설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곧 탐수면이 낙수와 상응하여 일어난 상응법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15)
즉 낙수의 상태에 탐수면이 존재한다고 함은 종자(이를테면 가능태)로서 존재한다는 말이지 수면이 이미 생겨나 현행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는 뜻.
16)
즉 낙수가 가능태로서 탐의 종자를 훈습하고 있을 때(즉 잠자고 있을 때), 그 때를 ‘탐수면이 존재한다’고 말한 것이며, 그것이 현실태가 되면(다시 말해 잠에서 깨어나면) 그것은 수면이 아닌 현행의 번뇌 즉 전(纏)이 된다.
17)
결과인 탐번뇌에 그 원인(종자)인 수면이라는 명칭을 일시 설정한 것이라는 뜻. 즉 경에서는 ‘탐번뇌가 존재한다’고 해야 하지만, 그 원인에 근거하여 탐수면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18)
즉 어떤 이들은 색계와 무색계에서의 존재[有]를 해탈한 존재라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을 설정한 것으로, 이생 외도는 무상천(無想天)의 5백 대겁 동안의 무상을 진실의 해탈로 간주한다. 본론 권제5 (p.217) ‘무상정’ 참조
19)
‘유(有)’란 내외의 일체의 존재를 포함하는 말이지만, 상 2계의 소연을 의미할 경우 정려심과 그 소의지(所依止)인 신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즉 상계의 유정은 이미 욕탐을 떠났기 때문에 외적 경계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며, 오로지 선정과 자신에 대해서만 미착(味著)하기 때문이다.
20)
즉 욕탐수면은 대개 외적 대상 즉 5욕경(欲境)을 소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외문전(外門轉)이다.
21)
10수면의 교설이 독자적으로 논설되는 곳은 보이지 않으며, 다만 욕계 견도소단(見道所斷)의 10수면으로 논의되고 있다. 『발지론』 권제5(한글대장경176, p.118)에는 욕계의 성자가 수증하는 수면으로 열 가지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98수면 중 욕계 수소단의 10수면을 말하는 것이다.
22)
여기서 ‘견(dṛṣṭi)’이란 먼저 숙고[審慮]한 다음 확인 판단[決度]하는 것을 말한다.(審慮爲先 決度名見) 본론 권제2(p.86) 참조. 5견에 대해서는 본권 후술.
23)
『발지론』 권제4(앞의 책, p.98);동론 권제5(같은 책, p.119).
24)
98수면이란 탐(貪)ㆍ진(瞋)ㆍ만(慢)ㆍ무명ㆍ의(疑)ㆍ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ㆍ견취ㆍ계금취의 10수면이 작용하는 세계 즉 3계와, 끊어지는 유형 즉 4제(諦) 각각에 대한 네 가지 관찰[見道]과 선정을 통한 수습[修道]의 다섯 가지 유형[五部]에 따라 분류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번뇌에는 이지적 측면의 번뇌[迷理惑]와 정의적 측면의 번뇌[迷事惑]가 있는데, 전자는 사설(邪說)ㆍ사교(邪敎)에 의해 일어나는[分別起] 후천적 번뇌이기 때문에 올바른 관찰에 의해 즉각적으로 제거될 수 있는 반면, 후자는 선천적으로 갖는[俱生起] 본능적 번뇌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친 반복된 수습이 필요하다. 유부에서는 전자를 견혹(見惑) 즉 4제의 진리성의 관찰에 의해 끊어지는 이른바 견소단(見所斷, 여기에는 見苦ㆍ見集ㆍ見滅ㆍ見道 所斷의 4부가 있다)이라 하고, 후자를 수혹(修惑) 즉 수습에 의해 끊어지는 수소단(修所斷)의 번뇌라고 하는데, 5견과 ‘의’가 오로지 견소단이라면 나머지 탐ㆍ진ㆍ만ㆍ무명은 양자에 공통된 번뇌이다. 98수면이란 이처럼 10수면을 3계ㆍ5부와 관련시켜 분류한 것이다. (후술)
25)
일체의 모든 수면은 모두 고제(苦諦) 즉 무상ㆍ고ㆍ무아ㆍ공에 위배되기 때문이다.(후술)
26)
탐ㆍ진ㆍ만ㆍ무명 중 앞의 세 가지는 수혹이기는 하지만 5견과 의(疑)를 연(緣)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며(예컨대 5견에 탐착하므로 그것을 정견이라 주장하고 그러한 견해에 오만해 하고, 나아가 타인을 증오 무시한다), 무명의 경우 그 자체로서 생기하는 독두무명(獨頭無明)이나 5견과 서로 관계하여 생기하는 상응무명은 견소단이지만 탐ㆍ진ㆍ만과 상응 구기하는 무명은 수소단이자 견소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법의 인과관계상에서 일시 설정된 5취온을 실유의 자아로 집착하는 유신견은 인과관계상 현행의 결과(이것은 고ㆍ비상ㆍ비아ㆍ공으로 관찰됨)를 대상으로 하는 염오혜(染汚慧)이기 때문에, 변집견 역시 인과관계상의 현행의 결과에 대한 영속ㆍ단멸 등의 염오혜이기 때문에 오로지 견고소단이며, 계금취는 자재천 등이 세간의 참된 원인이 아님에도 그것을 상주하는 원인이라고 간주하는 염오혜이자 그릇된 금계를 청정도라고 판단하는 염오혜이기 때문에 견고소단이고 견도소단이다. 그리고 단멸의 입장에서 행위와 행위의 상속을 부정하는 사견은 인(집ㆍ도)과 과(고ㆍ멸)의 구조를 띤 사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취는 유신ㆍ변집ㆍ사견 등의 저열한 지식을 뛰어난 이치, 즉 사제로 견집(堅執)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는 4제에 대한 의심이기 때문에 견4제소단이다.
27)
즉 5견과 의(疑)는 지적 번뇌이기 때문에 당연히 견혹이지만, 앞서 언급한 나머지 네 가지 수면 즉 탐ㆍ진ㆍ무명ㆍ만이 견소단과 수소단 모두와 통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경우의 탐이 견혹이고 어떠한 경우의 탐이 수혹인가 하는 물음.
28)
5견이나 의(疑)와 같은 지적 번뇌를 소연으로 삼아 일어나는 탐 등은 견소단이며, 지적 번뇌없이 다만 습관적으로 일어난 탐 등은 수소단이다.
29)
그곳에는 진(瞋)수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진’은 전5식이 감수하는 고수(苦受)에서 수증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고수가 없기 때문에 ‘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의 상속은 삼매[定]에 의해 윤택해지기 때문이며, 그곳에는 ‘진’의 이숙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진’은 그 속성상 불선의 악으로 분류되나 상계의 수면번뇌는 악이 아닌 유부무기, 다시 말해 올바른 지혜의 생기를 방해하는 그릇된 의식일 뿐이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25, 앞의 책, p.138 참조)
30)
이상의 98수면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욕 계색 계무색계
견고소단 탐ㆍ진ㆍ만ㆍ무명ㆍ의ㆍ유신견ㆍ변집견ㆍ계금취ㆍ사견ㆍ견취 진을 제외한 9가지 좌동 28가지
견집소단 탐ㆍ진ㆍ만ㆍ무명ㆍ의ㆍ사견ㆍ견취
진을 제외한 6가지 좌동 19가지
견멸소단 탐ㆍ진ㆍ만ㆍ무명ㆍ의ㆍ사견ㆍ견취 진을 제외한 6가지 좌동 19가지
견도소단 탐ㆍ진ㆍ만ㆍ무명ㆍ의ㆍ계금취ㆍ사견ㆍ견취 진을 제외한 7가지 좌동 22가지
수소단 탐ㆍ진ㆍ만ㆍ무명 진을 제외한 3가지 좌동 10가지
36가지 31가지 31가지 98가지
31)
인(忍)과 지(智)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3 참조. 이를테면 욕계에서의 4제의 관찰을 법지(法智)라 하고, 대상[境]과 지식[智]이 법지와 유사한 색계ㆍ무색계에서의 4제의 관찰은 유지(類智)라고 하며, 이 같은 ‘지’를 ‘지’로서 인가하는 것을 ‘인’이라 하는데, 후자에 의해 번뇌가 끊어지며, 전자에 의해 이계(離繫)가 확증된다. 즉 ‘인’이 무간도라면 ‘지’는 해탈도이다.
32)
즉 욕계의 수면은 법지인(法智忍)에 의해, 유정(有頂)을 제외한 상 2계의 수면은 유지인(類智忍)에 의해 끊어진다.
33)
구역에서는 『대분별업경』. 『중아함경』 권제44 『분별대업경』 (대정장21,p.707중)을 말한다. 즉 이 경에서 ‘욕탐을 떠났다’는 것은 수혹을 복단(伏斷)하였음을 의미하지만, ‘사견이 현행한다’고 함은 견혹을 끊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즉 여기서 유여사는 외도 이생은 수혹은 끊을 수 있지만, 아직 정지(正智)를 획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견혹은 능히 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34)
여기서 『범망경』은 『장아함경』 권제14 『범동경(梵動經)』 (대정장1, p.88), 혹은 『범망육십이견경(梵網六十二見經)』. 즉 그들이 비록 욕탐을 떠났다할지라도 상주론자이기에 상 2계의 제법뿐만 아니라 욕계의 제법을 대상으로 하여 상견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욕계의 견혹이 남아 있는 것이다. 참고로 전제(과거)에 대해 분별하는 견해에는 네 가지 변상론(遍常論)과 네 가지 일분 상론(常論)과 두 가지 무인생론(無因生論)과 네 가지 유변(有邊) 등의 논과 네 가지 불사교란론(不死憍亂論) 등 모두 18견이 있다.(『대비바사론』 권제199, 한글대장경125, p.557 이하 참조)
35)
이생도 역시 하(下) 8지의 견혹과 수혹을 다 같이 끊을 수 있지만, 욕계의 혹을 떠났음에도 욕계의 오온을 소연으로 하여 사견을 일으키는 것은 그것을 아직 끊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잠시 욕계로 퇴타(退墮)하였기 때문이라는 뜻. 예컨대 제바달다는 4근본정을 획득하고서 신통력으로 어린이로 변화하여 아사세[未生怨]왕의 무릎에 앉아 온갖 재롱을 부리다가 문득 이욕(利欲)을 탐하여 왕이 입 속에 넣어준 침을 삼켰다가 부처의 꾸짖음을 듣고 정려를 획득하였다고 한다.(『대비바사론』 권제85, 한글대장경121, p.233)
36)
보광이나 법보 모두 이를 경부사의 해석으로 평석하고 있다. 즉 경량부에서는 살가야를 동격한정복합어(持業釋)로 해석하여 무상의 오취온이라 하였다. 따라서 살가야견은 비실재인 허위의 5취온에 대한 지식이다.(이 경우 壞身見ㆍ虛僞身見으로 번역됨), 이 때 견의 소연은 실재하지 않으며 단일하지 않다. 그리고 이 같은 견해 『대비바사론』 (권제8, 대정장27, p.36상;한글대장경118, p.167) 상에서 비유자(譬喩者)의 주장으로 전해진다. “살가야견은 실재적인 대상[實所緣]을 갖지 않는다. 곧 살가야는 실재적인 아(我)와 아소(我所)에 대한 주장이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 아와 아소는 실재하지 않는다. 마치 새끼줄을 뱀으로 보고, 나무 그루터기를 사람 등으로 착각하듯이 이것 역시 실재적 대상을 갖지 않는 인식[見]인 것이다.” 이에 반해 유부에 의하는 한 살가야견은 실재하는 오취온(즉 有身)에 대해 그것을 ‘아’ 등의 단일한 실재로 파악하는 그릇된 지식이란 뜻이며, 그래서 보통 유신견(有身見)으로 번역하는 것이다.(후술)
37)
『잡아함경』 권제2 제45경(대정장2, p.11중), “만약 사문과 바라문이 자아가 존재한다고 본다면 그것은 모두 바로 이러한 5음(陰)에서 자아를 보는 것이다.” 즉 아와 아소에 대한 주장을 일으키는 것은 뭔가 특별한 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오온상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는 뜻.
38)
소(蘇)는 자소(紫蘇, 차조기로 이름되는 꿀풀과에 속하는 일년초). 집악은 전타라(旃陀羅, candala, 인도의 천민). 즉 냄새나는 자소 중에서도 더 심하게 냄새나는 것을 ‘취소’라 하고, 천민 중에서도 악인을 ‘악집악’이라고 함. 4제의 진리성을 부정하는 것은 이처럼 사견 중의 더욱 사견이기 때문에, 그것만을 ‘사견’이라 일컬었다는 뜻이다.
39)
즉 이 같은 사견은 실유의 4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손의 견해이지만, 변집견 중의 상견과 그 밖의 3견은 무상하고 저열하고 실재가 아니고 청정도가 아닌 것을 상주하고 뛰어나고 실재하고 청정도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긍정하려는 증익의 주장이다.
40)
불이나 불에 뛰어든다고 함은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 몸을 불로 지지거나 갠지즈 등의 강에서 목욕하는 것을 말하며, 계금을 수지하는 것은 해탈하기 위해 개처럼 살고[狗戒禁] 재나 소똥을 온몸에 바르는 식으로 고행하는 것을 말한다. ‘수’와 ‘상응’은 샹캬(Saṃkhya)와 요가(Yoga)의 의역어로서, 이 학파에서 추구하는 지혜란 그들의 형이상학적 실재인 프라크리트(물질적 질료)와 푸루샤(순수자아)에 대한 식별지를 말한다. 『현종론』 (권제25)에서는 앞의 생천의 참된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으로 헤아리는 것을 증상생도(增上生道)이고, 뒤의 해탈의 참된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헤아리는 것을 결정승도(決定勝道)라고 하였다.
41)
자재천 등 세간의 참된 원인이 아닌 것을 참된 원인이라고 계탁하는 계금취견은, 자재신 등을 상주하는 것이고 진정한 자아라고 하는 주장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오온취집의 고과(苦果) 즉 현실에 미혹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고제(苦諦)를 현관하면 즉각 제거되는 견고소단의 번뇌이다.(『대비바사론』 권제119, 한글대장경125, p.544)
42)
비인계인(非因計因)의 계금취견은 상집(常執)과 아집(我執)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견고소단이라면 비도계도(非道計道)의 계금취견은 해탈에 대한 그릇된 방법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도제에 미혹한 것이기 때문에 견도소단이어야 한다는 논주 세친은 힐난. 그러나 유부에 의하면 도제를 비방하고 사견 등을 청정도라고 여기는 것은 견도소단이지만, 유루계를 해탈계로 여기는 것은 견고소단이다.
43)
『발지론』 권제20(한글대장경176, p.501-502). 이하 갠지즈 강물에 목욕하는 것, 범행을 수지하는 따위의 계금취도 견고소단임을 밝히고 있다.
44)
우계 등을 청정도라고 간주하는 것은 우계의 진상을 철저히 관찰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으로, 그것 역시 자재천과 마찬가지로 현재 추과(麤果)인 유루의 5취온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45)
비도계도(非道計道)는 고제에 미혹한 것이기 때문에 견고소단이라 할 경우, 다음의 네 가지 과실을 범하게 된다. 본 논설은 그 첫 번째 과실. 즉 유루를 소연으로 한 혹으로서 고제에 미혹하지 않은 것은 없으며(욕계 견고소단은 10수면 전부이다), 그럴 경우 유루를 소연으로 한 그 같은 혹이 왜 견집소단은 되지 않는가 하는 이유를 논증해야만 한다.
46)
이는 유부의 답으로, 사견 등 여덟 가지 견도소단의 수면을 소연으로 생겨난 계금취가 견도소단이다.
47)
계금취의 소연이 되는 사견 등의 여덟 가지 수면도 유루법으로서 고제 하에 포섭되기 때문에 견고소단이지 견도소단이 아니지 않는가? 만약 정도(正道)를 비방하고 사도(邪道)를 주장하는 것은 도제의 진상(道ㆍ如ㆍ行ㆍ出)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견도소단이라고 한다면, 계금취 등도 역시 업의 원인에 미혹한 것이기 때문에 견집소단이라고 해야 한다는 힐난.
48)
즉 견도소단의 계금취가 견도소단의 사견 등을 소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 때의 사견은 해탈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인데, 그 같은 사실을 주장하는 외도가 어떻게 계금 등을 해탈도로 여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힐난.
49)
만약 도제를 비방하고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견 등을 소연으로 하는 계금취를 견도소단이라고 한다면, 집제나 멸제를 비방하고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견을 청정 해탈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계금취는 어째서 견집소단ㆍ견멸소단이 아닌가 하는 힐난.
50)
중현에 의하면 해탈도가 아닌 것을 해탈도로 집착하면서 도제를 비방하는 것이면 바로 견도소단이다.(『현종론』 권25, 앞의 책147) 즉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간주하는 이른바 비도계도(非道計道)에는 개처럼 사는 유루도를 해탈도라고 집착하고, 도제를 비방하는 사견 등을 청정도로 집착하는(이를 親迷道라고 함) 등의 두 종류가 있는데, 전자는 거칠게 나타나는 과상(麤果相, 이를테면 자재천)에 미혹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견고소단이며, 후자는 성도를 직접 어긴 것이라 하더라도 인과의 상에 대해 별도로 미혹하여 집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견도소단이다.(『대비바사론』 권제199, 대정장27, p.994,상;한글대장경125, p.544 참조).
51)
4전도의 자성을 이처럼 변집견ㆍ견취ㆍ유신견의 일부라고 하는 주장은 오로지 『구사론』상에서만 설해지고 있을 뿐이다. 즉 단ㆍ상의 변견(邊見) 중의 상견, 저열한 것을 수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취 중에서는 낙(樂)과 정(淨)의 두 가지만을, 아견(我見)과 아소견(我所見)의 유신견 중에서 아견만을 취하여 4전도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유부 비바사사(이하 어떤 이의 설)에 따르면 유신견 중의 ‘아’는 아소에 대해 자재력이 있기 때문에 아소견은 아견에 포섭되며, 따라서 4전도는 견취와 유신견 전부와 변집견의 일부를 자성으로 한다.(『현종론』 권제25, p.148 참조)
52)
원문에서는 ‘도전(倒纏)’이나 범본에 따라 『도경(倒經, Viparyāsa-sūtra)』으로 정정 번역한다. 4전도는 『칠처삼관경(七處三觀經)』 (대정장2, p.876하)이나 『대집법문경』 권상(동1, p.229하)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이하의 내용은 설해지고 있지 않다.
53)
즉 아소견(我所見)이란 의복 등의 물건을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견해로서 아견에 포섭된다. 따라서 아견은 ‘아’ 자체와 아소의 두 갈래에서 일어난다는 뜻.
54)
즉 아와 아소는 두 가지 갈래에 의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별도로 설한 것일 뿐 개별적 존재가 아니다. 즉 ‘아(我, I)’는 8전성(轉聲) 가운데 제1 주격이고, ‘아에 속한 것[我所, mine]’은 제6 소유격의 표현일 뿐이다. 그것이 만약 그렇지 않고 개별적 존재라면, 제3 구격(具格)인 ‘아에 의한 것[由我, by me]’과 제4 위격(爲格)인 ‘아를 위한 것[爲我, for me]’에 대한 ‘견’도 역시 각기 다른 개별적 존재여야 한다. 그러나 그 모두는 결국 동일한 ‘아’에 대한 주장일 뿐이다.
55)
온갖 번뇌는 모두 전도되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 모두를 ‘전도’라고 해야 할 것임에도 어찌하여 변집견 등 3견만을 ‘전도’라고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
56)
계금취는 추리하고 헤아려 일어나는 번뇌로서 점점 더 증익하는 것이지만, 그 중에는 유루의 관행으로 염오함을 떠나 적으나마 청정을 획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한결같이 전도된 것만은 아니다.
57)
변집견 중의 단견과, 사견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관찰하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관찰하지는 않기 때문에 감손의 견해일 뿐 증익의 견해가 아니다. 허무의 갈래 즉 무문(無門, 『현종론』에서는 壞事門)이란 세계를 존재한다거나, 영원한 것, 즐거운 것으로 보지 않고 반대로 부정적으로 관찰하여 감손 파괴하는 견해의 갈래를 말한다.
58)
이를테면 5견을 제외한 탐ㆍ진ㆍ만ㆍ의 등은 한결같이 전도된 것이고 증익하는 것이지만, ‘견’을 본질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탁(推度)의 성질이 아니다.
59)
『대집법문경(大集法門經)』권상(대정장1,p.229하):『칠처삼관경(七處三觀經)』(대정장2,p.876하). 즉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에 각기 상(想)ㆍ심(心)ㆍ견(見)의 세 전도가 있어 도합 열두 가지의 전도가 있다고 설하고 있다.
60)
즉 ‘상’과 ‘심’은 추리하고 헤아리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전도가 아니지만, ‘견’과 상응하고 그 행상이 동일하기 때문에, ‘견’의 전도된 힘에 따라 역시 전도라고 하는 명칭을 설정하였을 뿐이다.
61)
즉 도상(倒想)이나 도심(倒心)은 세간에서 잘 쓰이는 말이지만 도수(倒受)라고 하는 등의 말은 잘 사용되지 않는다는 뜻.(『대비바사론』 권제104, 한글대장경122, p.79 참조)
62)
유부에 의하면 제 견(見)과 그 상응법은 견도소단이기 때문에 이미 견도를 획득한 예류과는 이것을 모두 끊은 성자이다.
63)
무상과 무아에 대해 각기 상(常)과 아(我)라고 헤아리는 상(想)ㆍ심(心)ㆍ(見)의 여섯 전도와, 고와 부정에 대해 각기 낙과 정이라고 헤아리는 견의 전도는 견도소단이다.
64)
『대비바사론』 권제104(한글대장경122, p.78)에 의하면 이상은 분별론자(대중부의 일파)의 설. 즉 낙상(樂想)ㆍ낙심(樂心)과 정상(淨想)ㆍ정심(淨心)이 수도단이 아니고 오로지 견소단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견도위의 성자가 욕탐을 일으키는 것인가? 그것은 견도에서는 아직 낙ㆍ정의 심(心)ㆍ상(想)을 끊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5)
즉 유부에 의하면 ‘상’과 ‘심’은 ‘견’과 상응하며, ‘견’과 행상을 같이 하기 때문에 ‘상’과 ‘심’의 전도는 다만 ‘견’의 전도에 따라 설정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그 같은 12전도는 모두 견도소단이다.
66)
돌아가는 불바퀴를 보고 그것을 순간적으로 실재하는 불바퀴[旋火輪]라고 생각하고, 그려진 약차를 보고 순간적으로 실재하는 약차로 생각하여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상’과 ‘심’의 전도가 일어날지라도 그것은 실재하는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뜻.
67)
여기서 경희는 아난다(구역에서는 大德 阿難). 변자재(Vaṅgīsa, 구역에서는 婆耆舍)에 대해서는 『증일아함경』 권제3 「제자품」 제4(대정장2, p.557중)에 나온다. 여기서는 붕기사(鵬耆舍).
68)
변자재는 예류과의 성자. 즉 상(想)의 전도가 있기 때문에 변자재의 마음이 욕탐에 시달리지만 그 후 무학과를 증득하여 ‘상’의 전도를 끊으면 욕탐은 소멸하고 마음은 청정해진다는 뜻. 이는 곧 ‘상’ 등의 전도는 수소단과도 통한다는 경증이다.
69)
여기서 유여사는 보광에 의하면 경부사(經部師)이다. 이는 이를테면 앞의 유여사와 비바사사의 설의 절충으로, 12전도에서 네 가지 ‘견’ 전도는 오로지 4제 이치에 대한 미혹[迷理]이기 때문에 견소단이지만, ‘상’ ‘심’의 8전도는 이치와 정의(情意)에 공통된 미혹[迷理事]이기 때문에 견소단ㆍ수소단으로, 정의적 미혹은 오로지 수소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4제를 여실 지견하면 반드시 견소단 뿐만 아니라 수소단의 혹도 끊을 수 있기 때문에(즉 견도 제16심인 道類智부터는 수도임) 비바사사가 인용한 경설은 전도 영단(永斷)의 방편을 설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70)
『발지론』 권제20(한글대장경176, p.499).
71)
즉 만ㆍ과만ㆍ비만의 세 가지는 아견을 근본으로 하는 것으로, 상대방의 상태와 그것에 대한 자기 자신의 태도[行解]에 의해 9만을 성취하게 된다.
72)
즉 ‘내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바로 ‘과만’의 종류이며, ‘나와 동등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만’의 종류이며, ‘내가 조금 열등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비만’의 종류이다. ‘그는 나보다 조금 뛰어난 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비만’의 종류이며, ‘나와 동등한 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만’의 종류이며, ‘나보다 열등한 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과만’의 종류이다. ‘나보다 뛰어난 점이 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만’의 종류이며, ‘나와 동등한 점이 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과만’의 종류이며, ‘나보다 열등한 점이 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비만’의 종류이다.
73)
예컨대 전다라(栴茶羅, 천민)는, 그가 비록 세상이 다 함께 혐오하는 자임을 스스로 알고 있을지라도 좋은 점을 드러내어 지어야 할 바에 대해 집착할 때에는 자신을 존중하게 되기 때문에, 여기에도 고거심(高擧心)은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74)
『발지론』 권제20(한글대장경176, p.489), ‘모든 만(慢), 그것은 모두 자기 집착[自執]이다.’
75)
『광기』에 의하면 ‘내가 뛰어나다고 하는 만[我勝慢]’ 중에서 열등한 경계를 관하여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바로 ‘만’에 포섭되고, 동등한 경계를 관하여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바로 ‘과만’에 포섭되며, 수승한 경계를 관하여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바로 ‘만과만’에 포섭된다고 하였다. 현존 『품류족론』에서는 7만에 대해서는 논설하고 있어도 9만에 대한 언급은 없다.(권제1, 한글대장경117, p.20-21)
76)
7만 중만과 아만을 제외한 5만은 수소단이기 때문에 욕탐을 떠나지 않은 성자에게 일어나는 일이 있지만, 만과 아만은 아직 끊지 않았을지라도 결정코 일어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77)
3계의 무상이란 3계의 중동분 상의 멸상(滅相)으로, 바로 중동분의 존재를 단멸시키는 이 같은 멸상에 집착하는 것을 무유애(vibhāva-tṛṣṇa)라고 한다. 이에 반해 유애(bhāva-tṛṣṇa)는 미래존재에 대한 탐애로서, 성자는 미래존재 중 일부인 악취 등의 존재를 바라는 일이 없기 때문에 ‘유애의 일부’가 현행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78)
즉 살생 등의 ‘전’은 수소단인 신업을 연으로 하여 일어나며, 허광어 등의 ‘전’은 어업을 연으로 하여 일어나며, 무유애는 수소단인 중동분 상의 멸상(滅相)을 연으로 하여 일어나며, 유애의 일부는 수소단인 당래의 소의신을 연으로 하여 일어난다. 이렇듯 이것들은 모두 수소단만을 연으로 하는 수소단의 법이지만, 성자로서 그것을 아직 끊지 못한 자 일지라도 결코 일어나는 일이 없다.
79)
이하 본권 말(무기에 관한 방론 이전)까지 98수면의 변행ㆍ비변행, 유루ㆍ무루연, 상응ㆍ소연의 수증(隨增), 불선ㆍ무기, 근ㆍ비근 등의 제문(諸門)에 대해 분별한다. 여기서는 먼저 변행과 비변행에 대해 분별하는데, 변행수면이란 자계(自界)ㆍ자지(自地)의 5부의 법을 소연으로 하여 그러한 법을 오염시키는 작용을 갖는 번뇌를 말하고, 비변행수면이란 오로지 자과(自果)ㆍ자부(自部)의 법만을 오염시키는 번뇌를 말한다.
80)
5부의 번뇌 가운데 자계의 모든 부의 번뇌를 두루 연으로 하여 작용하는 것은 그 힘이 가장 강력한 고제ㆍ집제 하에 포섭되는 번뇌 중 지적 사유작용과 관계하는 번뇌이다. 즉 견고소단의 유신견 등의 5견과 의, 견집소단의 사견ㆍ견취와 의, 그리고 견고ㆍ견집소단으로 앞의 온갖 수면과 상응하거나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무명(즉 불공 혹은 獨頭無明)의 열한 가지를 변행수면, 혹은 변행혹(구역에서는 遍使)이라고 한다. 보통 7견ㆍ2의ㆍ2무명으로 일컬어진다.
81)
이것이 이른바 변행(sarvatra-gā)의 세 가지 근거로서, 1) 자계ㆍ자지의 5부의 제법을 두루 소연으로 삼으며, 2) 그같이 소연이 되는 5부의 제법을 두루 오염시키며, 3) 그것에 의해 두루 염법을 낳는다. 바로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변행’으로 일컬어진다.
82)
즉 앞에서 언급한 열한 가지의 변행혹이 5부의 법을 두루 연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단박에 소연이 되는 것인가, 점진적으로 소연이 되는 것인가? 만약 후자가 변행의 뜻이라면 탐 등도 역시 견에 의해 5부의 번뇌를 소연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에 일체의 번뇌가 모두 변행이 되어야 할 것이며, 전자라면 실제적으로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변행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예컨대 일체의 유루법을 단박에 뛰어난 것이라거나 생천의 원인이라고 간주하여 견취나 계금취가 일어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부에서는 ‘변행이란 후자의 뜻이지만, 그렇다고 자계ㆍ자지의 일체의 유루법을 한꺼번에 연으로 삼는 것은 아니고 5부의 일부씩만을 단박에 연으로 삼는다’고 하였다.(후술) 이에 대해 경부사는 다시 그럴 경우 아견이 작용할 때에는 반드시 아애와 아만이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11변행 이외 다시 집제 하의 아애와 아만도 변행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83)
즉 견소단의 애와 만이라면 견의 힘에 의해 각 부의 법을 각각 따로이 소연으로 삼겠지만, 이러한 애와 만은 5부의 경계를 뒤섞어서도 반연하기 때문에 수소단이라는 것이다.
84)
유부 비바사사에 의하는 한 변행이란 5부의 제법과 관계하는 보편적 번뇌[共相惑]를 말하는 것으로, 아애와 아만은 다만 개별적 번뇌[自相惑]인 아견(我見)과 관계하기 때문에 비변행이다.
85)
이를 상연혹(上椽惑)이라 한다.
86)
하계ㆍ하지의 수면을 소연으로 할 경우 마땅히 변지의 계가 허물어지게 된다.(『현종론』 권제25, 앞의 책, p.159) 즉 이미 그러한 염법을 떠난 자만이 상지의 번뇌를 현전시키기 때문에, 상지의 번뇌는 이염(離染)한 하지의 법을 소연으로 삼는 일이 없는 것이다. 참고로 욕계 내지 제4정려는 상계ㆍ상지를 연으로 하여 변행하는 경우가 있지만, 3무색정 중에서는 상계를 연으로 하는 일이 없으며, 유정지(有頂地)에서는 두 가지(즉 상계ㆍ상지) 모두를 연으로 하는 일이 없으니, 무색계의 공무변처 등의 아래 3지는 상지는 있어도 더 이상 상계가 없으며, 유정처 즉 비상비비상처에는 더 이상 상지도 없기 때문이다.
87)
『품류족론』 권제5(대정장26, p.72상;한글대장경117, p.112).
88)
타계ㆍ타지의 오취온을 소연으로 하여 그것을 아ㆍ아소라고 집착하거나, 혹은 단멸하고 상주하는 것이라고는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유신견과 변집견은 제외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계ㆍ지의 유정이 타계ㆍ타지의 온(蘊)을 ‘나’로 집착하는 것은 이치상 있을 수 없으며(그럴 경우 자계와 타계의 두 개의 ‘나’가 존재하게 됨), ‘나’라는 집착이 부재하므로 ‘나의 것’이라고 하는 집착도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89)
즉 현견되는 온에 대해서만 그것을 ‘나’라고 하거나 상주하는 것이라고 집착할 따름이며, 현견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추리[比]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다. 이를테면 욕계에 태어나서 ‘내가 바로 대범천이다’고는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역시 ‘범천은 바로 나의 것이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유신견이 아니며, 유신견이 아니기 때문에 변집견도 역시 아니니, 변집견은 반드시 유신견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견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행상을 짓지 않기 때문에 이는 바로 유신견과 변집견에 의해 인기된 사지일 뿐인 것이다.(『현종론』 권제25, p.161) 『구사론기』 (권제19)에 따르면, 먼저 욕계 중에서 유신견과 변집견을 일으켜 욕계의 오온을 ‘나’이고 상주하는 것이라고 집착하며, 그 다음에 불공무명을 일으켜 대범천을 ‘나’이고 상주하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인데, ‘견’의 행상은 견고하게 집착하는 것임에 반해 이것은 맹매(盲昧)하여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견’이 아니다. 즉 이러한 불공무명과 상응하는 혜의 심소를 바로 ‘사지’라고 하는 것이다.
90)
즉 앞서 언급한 열한 가지 수면과 상응 구유하는 수행법(隨行法, 심ㆍ심소와 生 등의 4相)은 11변행과 불가분의 관계로서 동일한 결과이기 때문에 역시 변행이지만, 그러나 득(得)의 경우 3득 중의 법전득(法前得)과 법후득(法後得)은 소득법(所得法) 즉 변행의 수면과 불가불리의 관계가 아니며, 동일한 결과도 아니기 때문에 변행이 아니다.
91)
제3구는 과거ㆍ현재의 변행수면이며, 제4구는 앞에서 언급한 것을 제외한 그 밖의 법이다.
92)
이를 ‘무루연혹(無漏緣惑)’이라고 한다. 즉 이 같은 여섯 가지 수면은 멸제ㆍ도제를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것(그래서 親迷惑이라고도 함)이지만, 그 밖의 견멸ㆍ도소단의 수면은 이 같은 수면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 밖의 수면을 重迷惑이라고도 함).
93)
즉 3계 9지의 멸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94)
욕계제행의 택멸이란 욕계의 유루법을 끊어 증득하는 무위택멸, 즉 열반을 말한다.
95)
도제를 연으로 하는 욕계계의 사견ㆍ의ㆍ무명수면은 미지정ㆍ중간정ㆍ4근본정이라고 하는 6지의 도법지품(道法智品)을 연으로 한다. 즉 미지정의 도법지는 욕계의 혹(惑)을 대치하고, 중간과 4근본정의 도법지는 상계의 수혹을 대치하는데(멸ㆍ도의 법지품은 수혹도 능히 대치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6지의 도법지는 욕계를 관찰하여 일어난 지식 즉 법지(法智)라는 점에서 동류이기 때문에 모두 욕계에 계속되는 수면의 연이 되는 것이다.
96)
상 2계의 8지(4정려ㆍ4무색정)의 도제를 연으로 하는 세 가지 수면은 미지ㆍ중간ㆍ4근본정과 아래 3무색정이라고 하는 9지의 도류지품(道類智品)를 연으로 한다. 9지의 도류지품은 자지의 혹을 대치하는 것과 상지의 혹을 대치하는 것의 구별이 있지만 다 같이 상 2계를 관찰하여 일어난 지식 즉 유지(類智)라는 점에서 동류이기 때문에 모두 상 2계에 계속되는 8지의 수면의 연이 되는 것이다.
97)
멸제는 제지(諸地) 상호간에 인과가 되지 않지만, 도제는 6지와 9지 서로간에 동류인이 되기 때문이다.
98)
욕계 법지품인 고법지와 집법지는 앞에서 설한 것처럼 색계ㆍ무색계의 4제 중 처음의 것인 고ㆍ집 2제를 능히 대치하지 못하며, 따라서 견ㆍ수소단 중의 처음의 것인 상계의 견소단을 능히 대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법지품은 상2계의 세 수면의 소연이 되지 않는다는 뜻.
99)
멸ㆍ도제 하의 사견ㆍ의ㆍ무명은 무루도에 의해 끊어지는 것이면서 무루를 소연으로 삼는 것임에 반해 멸ㆍ도제 하의 탐ㆍ진ㆍ만ㆍ견취와 도제 하의 계금취는 무루단이지만 무루를 소연으로 삼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밝힌다.
100)
만약 탐번뇌가 무루법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그것은 열반이나 성도를 희구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해탈을 구하는 자는 마땅히 이러한 탐을 버리지 못하게 될 것이며, 또한 그것을 버릴 경우 멸ㆍ도제도 마땅히 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101)
즉 ‘만’이란 거들먹거리고 잘난 체하는 것[高擧]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그 성질이 고요[寂靜]하지 않다. 그러나 모든 무루법은 지극히 고요한 것이기 때문에 잘난 체하는 마음을 낳지 않으니, 이를테면 무루법은 ‘나는 이러한 법을 획득하였다’고 하는 ‘만’을 능히 대치하기 때문이다.
102)
이하 98수면의 제문분별 중 세 번째인 소연ㆍ상응의 두 가지 수증(隨增)에 관한 분별로, 여기서 ‘수증’이라 함은 ‘~을 따라서 증장한다’는 뜻이다. 즉 소연수증이란 소연의 경계와 능히 그것을 연으로 하는 수면이 서로 연이 되어 번뇌의 힘이 증장되는 것이고, 상응수증이란 번뇌와 그것과 상응하는 심ㆍ심소가 서로 연이 되어 번뇌의 힘이 증장되는 것을 말한다.
103)
즉 앞서 언급한 6무루연과 9상연(上緣)의 혹은 모두 소연법을 갖지만 소연법이 그 같은 혹에 따라 염오증장하지 않기 때문에 수증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104)
여기서 ‘섭수’란 어떤 법을 유신견과 아애가 포섭하여 거기에 자기가 있다고 하는 것이며, ‘서로 어긋난다’고 함은 능연의 혹과 소연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말한다.(후술)
105)
즉 변행이나 비변행, 자계를 연으로 하거나 타계를 연으로 하는 일체의 수면은 그것과 상응하는 심ㆍ심소법에 따라 그 힘이 증장된다.
106)
예컨대 초정려의 변행수면이 위의 세 지를 소연으로 삼는 경우 다 같이 색계이기 때문에 상계를 소연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무루법을 소연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9상연혹이 소연수증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은 상지를 경계로 삼기 때문에 상응수증할 뿐이다.
107)
자아의 상주에 집착하는 이는 그 같은 자아의 복락과 생천을 향유하기 위하여 보시와 지계를 닦기 때문이다.
108)
『중아함경』 권제54 「아리타경(阿梨吒經)」(한글대장경 중아함경3, p.273)의 6견처(見處)를 참조할 것.
109)
보광에 의하면 이는 경부(經部)의 선대 궤범사의 설이다. 즉 경량부에서는 살가야견을 현재 신체와 함께 생겨난 허위의 망집(선천적인 俱生身見)과 사유 분별에 의해 생겨난 허위의 망집(후천적인 分別身見)으로 나누어 전자는 새나 짐승 등에 공통하는 현행의 유신견이지만, 후자는 오로지 사유하는 인간에게만 생겨나는 것으로 불선성이기 때문에 견도소단이다. 그러나 유부에 의하면 유신견은 오로지 분별생 내지 견소단일 뿐이며, 구생신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110)
이를테면 탐ㆍ진과 불선의 치는 견ㆍ수의 5부소단과 통하고, 6식과 두루 상응하며, 각기 탐ㆍ진에ㆍ무명수면을 본질로 하며, 일체의 추악한 신ㆍ어업을 낳으며, 선근을 끊는 것이지만, 5견과 의는 5부와 통하지 않고, 만은 6식과 상응하지 않으며(전5식과 상응함), 10전(纏)과 6번뇌구(垢)는 수면성이 아니다.(이는 隨煩惱로서 본론21 참조) 그리고 이 같은 다섯 가지 뜻 중의 뒤의 두 가지가 바로 불선근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자세한 것은 『대비바사론』 권제47(한글대장경119, p.504)과 권제112(동122, p.266이하) 참조.
111)
즉 무기근에는 유부무기의 ‘애’와 유부무기의 무명과 유부ㆍ무부의 ‘혜’ 세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 무기의 애란 상 2계의 5부의 애를 말하며, 무기의 무명(즉 癡)란 욕계의 유신ㆍ변집견과 상응하는 무명과 상 2계의 5부의 무명을, 유부무기의 혜란 욕계의 유신ㆍ변집견과 상 2계의 5부의 염오혜(즉 5견)을, 무부무기의 혜란 위의로ㆍ공교처ㆍ이숙생ㆍ변화심과 구생하는 혜를 말한다. 그리고 온갖 무기 가운데 이 세 가지만을 ‘근’으로 설정한 것은 제법을 낳는 뛰어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즉 애는 바로 번뇌의 뿌리[足]이며, 무명은 온갖 혹과 두루 상응하며, 혜는 능히 간택하여 온갖 번뇌를 이끄는 도수(導首)가 되기 때문이다.(『구사론기』 권제19)
112)
여기서 ‘두 갈래’란 있을까 없을까, 그럴까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망설임을 말한다.
113)
즉 세간일반에서 관찰되는 뿌리[根]는 굳건하게 아래로 뻗어 내리지만, ‘의’는 동요를, ‘만’은 잘난 체하여 위로 지향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근’이 아니라는 것이다.
114)
『대비바사론』 권제156(한글대장경124, p.155)에 의하면 서방사(西方師), 『구사론기』 (권제19) 등에서는 경부(經部).
115)
즉 무기는 비선비악(非善非惡)이기 때문에 ‘중’이다.
116)
『중아함경』 권제60 「전유경(箭喩經)」(대정장1, p.804), 혹은 『잡아함경』 권제32 제905경ㆍ권제34 제965경 등에 이른바 14무기가 설해지고 있다. 즉 세간은 영원[常]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영원하고 영원하지 않은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닌가? 세간은 끝[邊]이 있는가, 없는가, 있고 없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가? 여래의 사후는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신체[身]와 영혼[命]이 동일한가, 다른가?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석존은 침묵하여 언표하지 않았는데, 이를 무기(avyakta) 혹은 사치기(捨置記)라고 한다.(후술)
117)
제온(諸蘊)과 자아(補特伽羅, pudgala)가 동일한가 다른가에 대한 사치기(捨置記)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30 「파아품(破我品)」(p.1366)에서 상론한다.
118)
제2 분별기도 역시 일향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즉 ‘죽은 자는 모두 재생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죽은 자가 모두 재생하는 것은 아니다’고 한결같이 대답해야 한다. 왜냐 하면 죽은 이 중에는 재생하지 않는 자도 있기 때문이다. 칭우에 의하면 여기서 어떤 이는 대덕(bhadaṇta) 라마(羅摩, Rāma)이다.
119)
역시 앞의 대덕 라마의 이설. 즉 12연기에서 ‘식’은 앞의 ‘행’에 대해서는 결과이지만, 뒤의 명색에 대해서는 원인이 되는 것처럼, 사람 또한 상대에 따라 수승하기도 하고 저열하기도 하므로 일향기로 대답하여야 한다는 뜻.
120)
『집이문족론』 권제8(한글대장경115, p.179-181); 『대비바사론』 권제15(한글대장경118, p.341-345) 참조.
121)
여기서 ‘아첨하는 마음’이란 뭔가 상대방의 결점을 찾아내려고 논의를 시도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법을 청문하는 것과 같은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아비달마구사론 제20권
1)
‘사(事,vastu)’에는자체사(自體事)ㆍ소연사(所緣事)ㆍ계사(繫事)ㆍ인사(因事)ㆍ섭수사(攝受事) 등이 있지만(『대비바사론』 권제56, 한글대장경120, p.119:본론 권제6, p.112~113), 여기서의 ‘사’는 두 번째로서 번뇌에 의해 계박되는 소연의 경계로서의 ‘사’[所繫事]이다. 이를테면 안식 상응의 수면이 능히 계박하는 것[能繫事]이라면 계박의 대상이 되는 색경이 바로 소연의 사이다.(이하 ‘사’를 소연의 경계로 번역한다) 그리고 번뇌에 계박되는 심ㆍ심소도 역시 계박의 대상이 되는데, 전자를 소연계(所緣繫)라고 한다면 후자를 상응계(相應繫)라고 한다.(후술)
2)
변행수면에는 삼세의 소연을 모두 계박하는 세(世)변행과 자신과 동시[自世]에 존재하는 경계만을 모두 계박하는 사(事)변행이 있는데, 본 송에서는 이 두 가지와 모두 통하는 것을 ‘변행’이라고 하였다.
3)
자상혹(svalakṣaṇa-kleśa)이란 자상에 미혹한 번뇌라는 뜻으로, ‘탐’은 좋아하는 대상을, ‘진’은 좋아하지 않는 대상을 연으로 하여 일어나듯이 특정한 경계에 대해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공상혹(sāmānyalakṣaṇa-kleśa)은 낙수ㆍ고수에 관계없이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도, 다시 말해 다수의 법을 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4)
이를테면 어떤 유정이 어떤 소연의 경계[事]를 대상으로 하여 수면을 수증할 경우, 이를 ‘소연의 경계를 계박하는 것[繫, saṁprayukta]’이라고 하기 때문에, 수면이 소연의 경계를 능히 계박하기 위해서는 ‘아직 끊어지지 않은[未斷]’이어야 하는 것이다.
5)
정의적인 번뇌인 수소단의 수면 즉 수혹(修惑)은 견소단의 그것처럼 4제의 관지(觀智)와 무간에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관찰에 따라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에서 하하에 이르는 번뇌의 강약(9품)과 선정의 상태(9지)에 따라 81품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욕계(탐ㆍ진ㆍ만ㆍ무명) 상상품의 번뇌가 끊어졌을지라도 그 밖의 품류는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 본론 권제23(p.1070) 참조.
6)
과거세에 이미 생겨나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과 현재 이미 생겨난 탐ㆍ진ㆍ만은 자상혹이기 때문에 삼세에 걸친 소연의 경계를 두루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지 않으며, 다만 자세(自世)의 경계만을 능히 계박할 뿐이다.
7)
아직 생겨나지 않은 미래세의 의식상응의 번뇌는 무변이고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삼세를 계박할 가능성이 있음은 물론 자신의 소연이 되는 일체의 경계를 계박할 가능성도 갖고 있다. 왜냐 하면 이미 일어난 것에는 일정한 제한이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은 모든 것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으로, 따라서 미래세의 의식상응의 번뇌는 세(世)변행인 동시에 사(事)변행이다.
8)
즉 미래의 미단(未斷) 불생(不生)의 5식상응법은 이루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그 같은 탐ㆍ진은 자신의 소연이 되는 일체의 경계를 계박할 수 있어 사변행이며, 또한 능연의 식이 불생이기 때문에 미래ㆍ현재ㆍ과거의 어떠한 것도 이것의 소연이 될 수 있어 세변행이다.
9)
공상혹은 의식상응의 법이기 때문에 삼세의 경계를 연으로 하는 작용이 있어 세변행이며, 현재의 특정한 소연에 제한받지 않고 자신의 경계를 모두 연으로 하기 때문에 사변행이다.
10)
앞에서 삼세에 걸친 수면과 소연의 경계에 대한 계박의 관계를 논설하였는데, 만약 수면이 과거ㆍ현재ㆍ미래의 경계를 계박한다면 그 때 과거ㆍ미래법은 실재하는 것[實]인가, 실재하는 것이 아닌 가설적인 것[假]인가? 만약 실재하는 것이라면 상주설(常住說)에 빠지게 될 것이고, 가설적인 것이라면 어떻게 능히 계박하고 계박되며, 이계(離繫)가 가능할 것인가? 이하 이 같은 문제에서 야기된 삼세법의 실유에 관한 논설이 전개되고 있다. ‘삼세실유설’은 그 명칭이 시사하듯이 설일체유부의 가장 특징적인 교설로서, 과거ㆍ미래의 무체설(無體說)을 주장하는 경량부와의 대론은 이론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 아비달마불교의 최대의 논쟁이라 할 만하다.
11)
유부에 의하는 한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제법은 실재하는 것으로, 이 같은 사실은 또 다른 지식의 근거 없이 그 자체로서 알려진다.(『현종론』 권제26, 한글대장경201, p.184):“‘실유(實有)와 가유(假有)의 상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대상이 되어 지각을 낳게 하는 이것은 모두 ‘유(有)’의 상이니, 색(色)ㆍ수(受) 따위처럼 만약 더 이상 뭔가 의지하는 바[所待]가 없는 것에 대해 지각을 낳으면, 이것이 바로 실유의 상이다. 그러나 항아리나 군대 등과 마찬가지로 만약 뭔가 의지하는 바가 있는 것에 대해 지각을 낳으면, 이것은 바로 가유의 상이다. 따라서 과거ㆍ미래는 오직 가유일 뿐이라고는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니, 가유라고 할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며, 또한 뭔가에 의지하는 바가 없이도 능히 지각을 낳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온이 색ㆍ수ㆍ상 등에 의해 생겨나 알려지는 것처럼, 항아리는 진흙에 의해, 군대는 군인에 의해 생겨나 알려지는 것이므로 그것의 상은 실유가 아닌 가유이다. 반대로 색ㆍ수ㆍ상 등이나 진흙은 그 자체로서 알려지기 때문에 실유이다. 즉 여기서 ‘실유’하는 것이란 더 이상 환원불가능한 지식의 구성요소를 말한다. 그리고 참고로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가 실유한다고 하는 말은 시간 자체가 실유라는 뜻은 아니다. 유부에 있어 시간 자체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생멸 변천하는 유위제법에 근거하여 설정된 것, 다시 말해 시간[世路, adhvan, 세간의 시간(世)은 유위를 근거(路)로 하기 때문에 ‘세로’임]은 유위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본론 권제1, p.11) 바로 제법의 실유를 의미한다.
12)
『잡아함경』 권제3 제79경(대정장2, p.20상).
13)
같은 경 권제8 제214경(동, p.54상).
14)
과거가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거로 낙사(落謝)한 선악업은 이미 소멸해버렸으므로 현재 어떠한 결과도 산출하지 못할 것이며,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행위 역시 어떠한 결과도 산출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마땅히 무인유과(無因有果)ㆍ유인무과(有因無果)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15)
본송은 삼세의 시간적 차별에 대해 논의한 것이다. 즉 과거ㆍ현재ㆍ미래가 실재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삼세의 혼재(混在)로서, 삼세의 시간적 차별은 불가능하다. 이 같은 시간적 차별에 대해서는 고래로 바사(婆沙)의 4대평자(評者)로 일컬어지는 법구(Dharmatrāta)ㆍ묘음(Ghoṣa)ㆍ세우(Vasumitra)ㆍ각천(Buddhadeva)의 학설이 전하고 있는데, 케시미르 유부에서는 이 중 세우의 설을 선설로 평취한다. 『대비바사론』 권제77(한글대장경121, p.32이하) 참조
16)
즉 어떤 한 남자가 어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현재상) 다른 여인에 대한 사랑의 능력(과거ㆍ미래상)을 상실하지 않는 것처럼, 제법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 나타나는 것은 각기 그 양상을 달리하기 때문이지만 과거법은 그것의 미래나 현재의 양상을 여의지 않은 채 과거의 양상을 유지하며, 미래법은 그것의 과거나 현재의 양상을 여의지 않은 채 미래의 양상을 유지하며, 현재법은 그것의 과거나 미래의 양상을 여의지 않은 채 현재의 양상을 유지한다.
17)
이와 마찬가지로 제법이 어떤 시간에 일어날 때 현재ㆍ미래와 관계하여 과거라고 불리고, 과거ㆍ현재와 관계하여 미래라고 불리며, 과거ㆍ미래와 관계하여 현재라고 불릴 뿐, 제법 자체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18)
법구의 설은 득(得)ㆍ사(捨)에 의한 금의 전변을 주장하기 때문에 세계를 물질적 질료인 자성(自性, prakṛti)의 전변으로 이해한 수론(Saṃkhya)학파의 전변설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즉 수론에 의하면 자성의 세 가지 역동적 속성인 사트바(sattva, 純質)ㆍ라자스(rajas, 激質)ㆍ타마스(tamas, 鬱質)의 은현(隱顯)에 따라 다양한 차별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중현은, 법구의 설은 유위법이 그 자체로서 상주하며 삼세에 따라 숨거나 드러난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제법이 어떤 시간에 일어날 때 법 그 자체의 상[體相]은 비록 동일할지라도 현상적인 존재유형[性類]이 다르다고 설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수론의 전변설과는 다르며, 세 번째 존자 세우의 설과 부분적으로 동일하다고 해석하고 있다.(『현종론』 권제26, 앞의 책, p.192)
19)
즉 묘음의 설은 제법이 동일한 시간에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양상과 공존함을 뜻하기 때문에 시간의 혼란을 야기시킨다.
20)
각천의 설은 삼세 각각에 삼세의 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과거세의 전후도 과거ㆍ미래라 할 수 있으며 그 중간을 현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묘음의 설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상[世相]이 서로 잡란되는 과실이 있다.
21)
이하 난문자는 경량부이다. 즉 과거ㆍ미래세가 실유라고 한다면, 다시 말해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항상 현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2)
만약 작용으로써 삼세를 구별한다면 현재 발식취경(發識取境)의 작용을 행하고 있지 않는 피동분의 안근은 현재의 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힐난.
23)
즉 피동분의 안근 역시 다음 순간의 안근을 산출하는[與果] 직접적인 원인(동류인)이 되기 때문에 현재라고 한다면, 현재에 작용하고 있는 동분(同分)의 안근도 결국 과거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 되고 만다. 왜냐 하면 선행된 원인에 의해 산출된 그 같은 결과[取果]의 작용이 현재 순간 수행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는 현재와 같은 의미가 되고 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래에 나타날 결과의 일반적 성격을 규정하는 제법의 힘이 과거에 속한다면 그것은 과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현재 순간에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에 현재라고 한다면 삼세의 기준이 모호해져 결국 시간적 차별의 혼란이 야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24)
즉 중연이 화합할 때 비로소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각각의 인연법 역시 실유로서 화합하지 않은 때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이 작용의 생기를 장애할 수 없다는 힐난.
25)
만약 작용에 의해 삼세가 차별된다면, 그 같은 작용의 시간적 차별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다시 말해 작용은 무엇에 의해 과거ㆍ현재ㆍ미래로 구별되는가? 만약 또 다른 작용에 의해 그것의 삼세가 구별된다면 무한소급[窮致]에 빠질 것이며, 삼세 이외 작용이 있다고 한다면 이 때의 작용은 무위로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후술)
26)
즉 작용과 법체가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법체가 삼세에 실유이듯이 작용 또한 그러하며, 따라서 유부가 주장하듯이 작용의 유무에 의한 삼세의 차별은 설정될 수 없는 것이다.
27)
(許法體恒有 而說性非常 性體復無別 此眞自在作). 이는 제법실유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존재의 본질[法體]과 존재[性, 혹은 用]를 별개의 것으로 분별하는 유부교학을 변덕스러운 자재신(Īśvara)의 짓거리에 빗대어 조롱하는 내용의 게송이다.
28)
이하 앞서 유부의 삼세실유 논거였던 두 가지 경증과 두 가지 이증에 대한 경량부의 비판이 진술된다. 이 논설은 그 첫 번째로, ‘과거색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문의 성제자는 이를 염사(厭捨)코자 수행하며, 미래색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끊으려고 노력한다’는 경문에서 ‘존재한다[有]’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서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과거색은 과거의 존재[曾有]로서의 ‘유’이고, 미래색은 미래존재[當有]로서의 ‘유’이다. 다시 말해 과거는 현재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일찍이 있었던 원인(曾有의 因)이고, 미래는 현재라는 원인에 의해 낳아질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결과(當有의 果)이다. 즉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중심으로 하여 설정된 가설적 언표(prajñapti)로서 증유와 당유로서만 존재할 뿐 현재와 같은 의미의 실유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9)
즉 과거ㆍ미래의 법은 현재법처럼 작용은 갖지 않지만 법 자체로서는 각기 개별적으로 실재한다.
30)
계경에서 말한 ‘과거도 존재하고 미래도 존재한다’고 하는 말은 과거행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부정하는 사명외도(Ājīvika)와 논쟁할 때 사용하였다. 즉 세존께서는 과거의 원인과 미래의 결과 사이에 어떠한 관계설정도 부정하는 그들의 교의를 비판하고, 선행된 원인과 미래 결과 사이의 인과상속을 나타내기 위해 그같이 말하였다는 것이다.
31)
즉 과거의 업이 일찍이 존재하였음은 누구라도 아는 사실로서, 장계외도가 과거에 행하였던 업의 존재를 부정하였기 때문에 그 같은 법문을 설한 것이 아니라 과거업의 현재 실유를 모르기 때문에 설하였다는 뜻.
32)
장계외도에게 ‘업이 존재한다’고 할 때의 업은 삼세에 걸쳐 실제적 효력을 갖는 실체[業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업이 산출한 현재 상속신 상에 과보를 산출하는 힘, 즉 여과(與果) 공능의 종자(種子)가 훈습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은밀하게 ‘존재한다’고 설한 것일 뿐이다. 설사 업이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결과 즉 작용은 현재에 이루어지므로 과거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33)
여기서 『승의공계경』은 『잡아함경』 권제13 제335경(일명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대정장2, p.92하). “云何爲第一義空經? 諸比丘眼生時無有來處, 滅時無有去處. 如是眼不實而生, 生而滅盡…….”
34)
즉 『승의공계경』에서의 ‘본무(本無)’ 혹은 ‘환무(還無)’는 과거ㆍ미래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다만 현재에 나타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면, 불교에 있어 현재(시간)란 법을 떠나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근이 존재하는 때가 바로 현재이며, 안근이 존재하지 않는 때가 과거ㆍ미래인 것이다.
35)
즉 의근과 법경을 연으로 하여 의식이 일어난다고 할 때, 여기서 법은 의근과 같은 인식의 실제적 원인[能生緣]인가, 단지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所緣境]일 뿐인가? 만약 전자라고 한다면 현재로부터 까마득히 먼 미래에 일어날 사실(즉 未來可生法)이나 아예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사실(즉 緣缺不生法)이 어떻게 의식의 실제적 원인임을 알 수 있는 것인가? 다시 말해 현재 우리가 과거의 대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그것이 실유라면,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던 사실을 인식했다고 해서 어떻게 그것을 실유라고 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것이 실유가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인식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모든 작용이 억제 정지된 상태인 무위열반은 어떻게 인식의 실제적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만약 후자라면, 경부에서도 역시 과거ㆍ미래가 인식의 대상이 된다고 설하니, 그것은 다만 실유로서가 아니라 현재 인식되고 있는 과거는 이미 있었던 존재[曾有]로, 미래는 앞으로 있을 존재[當有]로서 인식될 뿐이다.
36)
과거ㆍ미래의 색은 실재하지만 현재에는 극미로 산란되어 나타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한다면, 이는 유부교학의 일관성을 상실한 해명이다. 즉 유부에 의하면 산란된 극미(獨住극미)는 인식대상(소연)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극미가 산란된 과거ㆍ미래의 색은 알려질 수 없으며, 따라서 실재한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ㆍ미래의 색이 알려졌다고 하면, 그것은 어쨌든 산란되지 않은 형태 즉 과거나 미래 시점에서의 소조색(즉 微聚)이기 때문이다
37)
극미의 취집(聚集, 결합)과 산란(散亂, 분리)에 의해 현재와 과거 미래를 구분한다면 극미의 색법 자체는 영원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되고, 이는 바이세시카학파의 극미상주론과 다를 바가 없다.
38)
사명자는 아지비카(Ājīvika)외도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바이세시카와 같은 외도(pṣaṇḍin)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즉 삼세가 다만 극미의 취집과 산란의 차이일 뿐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사실상의 실제적으로 새로이 생겨난 것도 소멸한 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인용한 계경은 앞서 인용하였던 『승의공계경』이다.
39)
일체의 존재[有]는 12처에 포섭된다고 하였는데, 그 같은 비존재가 소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러한 대상을 포섭할 제13의 입처(入處)라는 새로운 범주를 설정해야 한다는 유부의 힐난.
40)
즉 제13처는 거북의 털이나 토끼뿔처럼 실재하지 않는 것인데, 그 같은 사실을 인식하였을 경우 그 때 인식의 대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제13처’라는 명칭[名, 불상응법의 하나]이겠지만, 그럴 경우 이미 제13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므로 그 명칭 역시 실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인식대상이 될 수 있는 것[緣無境識]이다.
41)
어떤 대상이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의심할 경우, 그것은 바로 대상에 유무의 차별이 있음을 나타내며, 따라서 유를 연으로 삼듯이 무를 연으로 삼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는 뜻.
42)
『잡아함경』 권제26 제703경(대정장2, p.189상). 여기서 유상은 위있는 법 즉 저열한 법을 말하고, 무상은 위없는 법, 즉 최상 무이(無二)의 법으로 택멸의 열반을 말한다.
43)
여기서 우중외도는 구역에서는 바사건약(婆沙乾若, Vārśaganya). 250~350년 무렵 활동하였든 수론(Saṃkhya)논사. 즉 상캬학파에서는 모든 결과가 이미 원인 즉 자성(自性, prakriti) 가운데 내재되어 있다고 하는 인중유과론(因中有果論)을 주장하기 때문에 무(無)에서는 어떠한 것도 생겨날 수 없으며, 자아(puruṣa)를 제외한다면 존재하는 것으로서 원인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소멸하지 않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 결코 생겨나는 일도 없다.
44)
즉 선행된 행위가 그러한 결과로 하여금 현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현행의 결과는 이미 원인 가운데 내재되어 있으므로 업에 의하지 않고도 자기 전개할 수 있는 것이다.
45)
『잡아함경』 권제13 제320경(대정장2, p.91중)에서는 일체유(一切有)로서 12처를 설하고 있다. 경량부에서는 ‘처(處) 가립(假立)’을 주장하기 때문에 이것이 결코 경부설은 될 수 없겠으나, 법보와 보광은 다 같이 이를 경부설로 평석하여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경량부에서 주장하기를 ‘유(有)’라고 하는 말에는 가유(假有)ㆍ실유ㆍ증유(曾有)ㆍ당유(當有) 등 여러 뜻이 있어 그것이 존재하는 방식대로 존재한다고 설한 것이니, 이 모두는 현재가 실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의 실유는 아니다. 삼세유라고 해도 과거는 증유이고, 미래는 당유이며, 실유는 오직 현재뿐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현재의 12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엄격히 말한다면] 12처 중 8처는 실유이고 나머지 색ㆍ성ㆍ촉ㆍ법의 4처는 부분적으로 실유이기도 하고 실무(實無)이기도 하다. 즉 색처 중 현색은 실유이나 형색은 실무이다. 촉처 중 4대는 실유이고 나머지 촉은 실무이다. 법처 중 삼매의 경계인 색ㆍ수ㆍ상ㆍ사(思)는 실유이나 여타의 심소법은 ‘사’ 상에 가립된 실무이고, 불상응행법과 3무위법 역시 실무이다.( 『구사론기』 권제20(대정장41, p.314상);『구사론소』 권제20(동p.706중).
46)
과거의 번뇌에 의해 생겨난 수면종자가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에, 또한 미래 번뇌의 원인이 되는 수면종자가 현재 존재하기 때문에 과거ㆍ미래의 능히 계박하는 번뇌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47)
이상은 법성의 심심(甚深)에 대한 용례를 논설한 것으로, 여기서 ‘다른 갈래’란 설하는 방식의 동일하지 않음을 말한다. 즉 동일한 존재[법]상에서 생멸을 설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존재상에서 생멸을 설할 수도 있으며, 존재와 시간[世]의 관계 또한 여러 갈래로 설할 수 있어(이를테면 시간은 바로 생기이다, 혹은 존재는 시간으로부터 생기한다. 즉 찰나적 존재를 설하는 유부에 있어 존재와 찰나는 동의어이다) 법성은 한마디로 말할 수 없으며, 따라서 제법의 실유도 능히 헤아릴 만한 경계라 아니라는 뜻.
48)
본 단에서는, ‘삼세’에 근거하여 수면과 소연의 경계[事] 사이의 계박관계를 밝힌 본권 초두의 논의에 이어 5부소단의 ‘단(斷)’에 근거한 계박관계를 밝히고 있다.
49)
여기서 ‘끊어짐[斷]’이란 번뇌의 ‘득’을 떠남으로서 자신을 계박하는 번뇌로부터 벗어났다는 뜻이고, 계박을 떠나는 것 즉 ‘이계’란 능연인 번뇌가 끊어짐에 따라 번뇌는 물론 계박으로부터도 벗어났다는 뜻이다. 예컨대 남녀관계에 있어 한사람이 완전히 욕정을 끊은 것을 ‘단’이라고 한다면 ‘이’란 그 위에 다시 상대편도 이쪽에 대해 욕정을 끊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단’의 광의이다. 따라서 이계는 필시 이단(已斷)이지만, 이단은 필시 이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50)
이를테면 욕계 9품(상상품 내지 하하품)의 수혹 중 그 상상품을 끊었다고 할지라도 상중품 등이 남아있는 한 그것은 또한 상상품의 경계를 연으로 하기 때문에 참된 이계라고 할 수 없다.
51)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면, 욕계의 견고ㆍ견집ㆍ수소단의 법은 각기 자계의 견고ㆍ견집ㆍ수소단의 식과 색계의 수소단의 식과 무루식의 소연이 되는데, 욕계 견고소단의 법은 욕계 견고소단의 일체의 수면과 상응하는 식과, 견집소단의 변행수면과 상응하는 식과, 수소단의 선과 무부무기의 식의 소연이 되고, 견집소단의 법은 욕계 견고소단의 변행수면과 상응하는 식과, 견집소단의 일체 수면과 상응하는 식과, 수소단의 선과 무부무기의 식의 소연이 되며, 수소단의 법은 욕계 견고ㆍ견집소단과 상응하는 식과, 수소단의 선과 염오와 무부무기의 식의 소연이 된다. 또한 욕계 견고ㆍ견집ㆍ수소단의 법은 다 같이 색계 수소단의 선과 무부무기의 식의 소연이 된다. 또한 욕계 견고소단의 법은 고법지인과 고법지의 무루식, 견집소단의 법은 집법지인과 집법지의 무루식, 수소단의 법은 4법지의 무루식의 소연이 된다.
52)
즉 색계의 견고ㆍ견집ㆍ수소단의 법은 각기 자계와 욕계의 견고ㆍ견집ㆍ수소단의 식과 무색계의 수소단의 식과 무루식의 소연이 되는데, 이 중 견고소단의 법의 법을 예로 들면 그것은 색계 견고소단의 일체의 수면과 상응하는 식과, 견집소단의 변행수면과 상응하는 식과, 수소단의 선과 무부무기의 식과, 욕계 견고소단의 상계를 연으로 하는 식(이는 타계연의 번뇌와 상응하는 식임)과, 견집소단의 상계를 연으로 하는 혹과 상응하는 식과, 수소단의 선한 식(무부무기의 식은 상계를 연으로 하지 않음)의 소연이 되고, 무색계 공무변처의 근분정의 선한 식의 소연이 되며, 고류지인과 고류지의 무루식의 소연이 된다.
53)
즉 욕계 견멸소단의 법은 자계 자부의 유루연의 수면과 상응하는 식의 소연이 된다.
54)
즉 욕계의 낙근은 전5식과 상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견도의 4부와는 통하지 않는다. 또한 초정려의 그것은 안ㆍ이ㆍ신식 상응으로 수소단이지만, 제3정려의 낙근은 제6식 상응이기 때문에 색계에는 수ㆍ견의 5부와 통하는 낙근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루단은 바로 제3정려지 중에 존재하는 무루근 중의 낙근이다.
55)
수면에 의한 마음, 다시 말해 수면과 상응하는 3계 5부의 식(識)을 ‘유수면(sānuśaya)의 마음’이라 한다.
56)
사제소단의 전부와 수소단의 일부인 불선과 유부무기를 유염심(有染心)이라 하고, 수소단 중 선과 무부무기를 무염심(無染心)이라고 한다.
57)
유염의 마음과 상응하거나 그것을 소연으로 하는 수면(즉 상응수증하는 수면인 相應縛과 소연수증하는 수면인 所緣縛)으로서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은 수증하지만, 상응하고 나서 이미 끊어진 것은 수증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 즉 상응수증하는 수면의 경우 이미 끊어져 수증하지 않을지라도 이 때의 마음은 동반의 성질[伴性]이 아직 끊어지지 않아 수면과 항상 상응하고 있기 때문에 ‘유수면’으로 일컬어지며, 소연수증하는 수면의 경우 더 이상 유수면이 아니다. 그래서 유염심은 상응ㆍ소연수증의 수면 모두에 걸쳐 ‘유수면’이며, 무염심의 경우 소연수증의 수면 한 가지에 한정되어 ‘유수면’으로 일컬어지는 것이다.(후술)
58)
즉 이미 끊어져 수증하지 않는 것이라면 ‘유수면’이라 이름하지 않기 때문이다.
59)
즉 견소단인 탐 등은 타상 속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며 오로지 자상 속의 자신을 소연의 경계로 삼는다. 그렇다면 ‘진’을 일으키는 것도 사기(捨棄)되는 자신의 견해에 대해 일으키는 것이라고 해야하지 않는가 하는 이설이다.
60)
『순정리론』 권제53(한글대장경180, p.358-359)에서는 온갖 번뇌를 일으키는 다수의 인연으로서 여기서의 세 가지 인연 이외 동분(同分)ㆍ부와 쾌락ㆍ지역ㆍ사론(邪論)ㆍ과문(寡聞)ㆍ많은 잠ㆍ음식ㆍ습관ㆍ소의신의 경계[身境]ㆍ시간[時分] 등을 설하고 있다. 이를테면 번뇌는 유정의 중동분에 따라 소에게는 소의 번뇌가, 인간에게는 인간의 번뇌가 일어나며, 남방에 태어남으로써 탐욕이, 북방에 태어남으로써 진에가 치성하며, 병서를 익힘으로 진에가, 창가론을 들음으로써 욕탐이, 외도서를 배움으로써 우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61)
고법지인(苦法智忍) 내지 도류지인(道類智忍)의 무간도에 의해 번뇌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고법지 내지 도류지의 해탈도에 의해 아직 택멸 이계의 득이 증득되지 않은 것을 말함. 변지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1(p.977 이하) 참조.
62)
아라한은 이미 수면을 끊고 변지하였기 때문에 아라한과에서 물러나는 이는 잠깐 나타난 경계에 미혹하여, 다시 말해 오로지 경계의 힘에 의해서만 번뇌를 일으킬 뿐이다. 혹은 번뇌의 생기에는 이전의 번뇌로부터 무간에 인기되어 생겨나는 것과 다음 순간 번뇌가 아닌 그 밖의 다른 것에서 생겨나는 것의 두 종류가 있는데, 아라한의 경우 후자에 의한 생기이다. 즉 번뇌의 생기에 이러한 두 종류가 없다고 한다면 선ㆍ무기심과 무간에 번뇌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05)
63)
이를테면 『잡아함경』 권제18 제490경(대정장2, p.127상);『장아함경』 권제8 『중집경(衆集經)』 (대정장1, p.50이하). 여기서 ‘전(纏)’이란 근본수면으로부터 파생된 수번뇌(隨煩惱)를 의미하는 것(『현종론』 권제27에서는 ‘수면과 동반하는 것’이라고 논설하고 있다)으로, 여기에는 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질(嫉)ㆍ간(慳)ㆍ회(悔, 혹은 惡作)ㆍ수면(睡眠)ㆍ도거(掉擧)ㆍ혼침(惛沈)ㆍ분(忿)ㆍ부(覆)의 열 가지가 있다. 본론 권제21(p.953) 참조.
64)
이는 모두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 ‘누’란 6근으로부터 누출되어 유정을 생사에 머물게 하고, 유전시킨다는 뜻이며, ‘폭류’는 홍수가 모든 것을 씻어버리듯이 유정의 선품을 표탈(漂奪)한다는 뜻이며, ‘액’은 소를 멍에에 속박시키듯이 유정을 괴로움의 존재인 6취와 화합ㆍ속박시킨다는 뜻이며, ‘취’는 땔감이 불길을 취하여 끊임없이 타오르듯이 유정은 번뇌를 집취(執取)하여 업의 불길을 끊임없이 타오르게 한다는 뜻이다. (후술)
65)
욕계의 서른두 가지 견소단 중 4제소단의 무명 네 가지를 제외한 스물 여덟 가지와, 무명을 제외한 수소단 세 가지에 10전을 더하여 마흔한 가지가 된다. 무명을 제외한 이유는 무명루를 따로이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문에서는 ‘법’이 ‘물(物)’로 되어 있으나 그것은 유자성의 개별적 실체[別實物]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하 ‘법’으로 번역한다.
66)
상 2계의 견ㆍ수소단의 번뇌에서 각기 5부의 무명을 제외한 스물여섯 가지를 합하여 쉰두 가지가 된다. 여기서 유루(bhāva-āsarva)는 욕루에 대응하는 말로서, 무루에 대응하는 유루(sāsrava)와는 다르다.
67)
여기서 ‘결’이란 9결 중 무명결과, 상계에 존재하지 않는 에(恚)ㆍ질(嫉)ㆍ간(慳)을 제외한 애(愛)ㆍ만(慢)ㆍ의(疑)ㆍ견(見)ㆍ취(取)의 5결을 말하며, ‘박’이란 3박 중 상계에 존재하지 않는 진박(瞋縛)과, 별도로 건립하는 무명박을 제외한 탐박(貪縛) 한 가지를 말하며, ‘수면’은 10수면 중 진과 무명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가지를 말하며, 근본번뇌에 부수하는 ‘수번뇌’란 대번뇌지법의 여섯 가지에서 무명을 제외한 방일ㆍ해태ㆍ불신ㆍ혼침ㆍ도거와 첨(諂)ㆍ광(誑)ㆍ교(憍)의 세 가지 소번뇌지법 등 여덟 가지를 말하며, ‘전’이란 10전 중 상 2계에 존재하는 혼침과 도거 두 가지를 말한다.
68)
색계ㆍ무색계에도 비록 혼침과 도거가 역시 존재하지만, 전(纏)의 경우 계(界)에 의거하여 분별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상계의 전은 그 수가 적을 뿐더러 자력으로 일어나는 것[自在轉]이 아니기 때문으로, 이에 따라 오로지 (근본)번뇌 만을 유루로 설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전’ 역시 계(界)에 의거하여 분별하였다면 유루에는 쉰여섯 가지 번뇌가 있게 된다.
69)
이에 대해 중현은 상계의 수면은 내면[內門]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색(色)ㆍ성(聲)ㆍ촉(觸)을 소연의 경계로 삼아 그 대치가 동일하기 때문에 하나로 설하게 된 것이라고 하면서 본송마저 ‘다 같이 무기이고 대치가 동일하며(同無記對治)’로 개작하고 있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07-208)
70)
“무명의 허물과 환란[過患]이 특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니, 이를테면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 능히 생사의 근본되기 때문으로, ‘무명을 원인으로 하여 탐염(貪染)을 낳는다.……’고 계경에서 설한 바와 같다. 게송에서도 ‘존재하는 모든 악취와/ 이 세간과 저 세간은/ 모두 무명을 근본으로 삼으니/ 탐욕과 동등하게 일어나는 것이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09)
71)
즉 마흔한 가지 욕루 중에서 견고소단의 5견과 견집ㆍ견멸소단의 사견과 견취, 그리고 견도소단의 계금취ㆍ사견ㆍ견취 등 도합 열두 가지의 견을 따로이 떼어내어 견폭류로 삼았기 때문에 욕폭류에는 스물아홉 가지가 있는 것이다.
72)
4취와 4액은 그 본질이 동일하지만 설정하는 방법이 약간 다르다. 즉 욕취는 욕액의 스물여덟 가지에 욕계의 5무명을 합한 서른네 가지, 아어취는 유액의 스물여덟 가지에 색계ㆍ무색계의 열 가지 무명을 합한 서른여덟 가지, 그리고 견액을 견취와 계금취로 나눈 것이 바로 4취이다.
73)
즉 계금취는 상캬학파 등에서 주장하는 프라크리트와 푸루샤의 식별지는 참된 해탈도가 아님에도 해탈도라고 간주하는 것이며, 물이나 불에 뛰어드는 것이 생천의 도가 아님에도 생천의 도로 간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론 권제19(p.869) 참조.
74)
이 경문은 『집이문족론』 권제8(한글대장경115, p.168)에 인용되고 있다. 『광기』 에 의하면 이는 ‘4액은 오로지 탐을 본질로 한다’는 경부사(經部師)의 경증이다. 즉 보광은 이 경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욕액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온갖 5욕의 경계에 대한 ‘욕’에 대해 탐을 일으키고, ‘욕’에 대해 욕을 일으키고, ‘욕’에 대해 친연(親戀)을 일으키고, ‘욕’에 대해 탐애(貪愛)를 일으키고, ‘욕’에 대해 탐락을 일으키고, ‘욕’에 대해 취민(醉悶)을 일으키고, ‘욕’에 대해 탐착(耽著)을 일으키고, ‘욕’에 대해 탐기(貪嗜)를 일으키고, ‘욕’에 대해 희락을 일으키고, ‘욕’에 대해 집장(執藏)을 일으키고, ‘욕’에 대해 수집(隨執)을 일으키고, ‘욕’에 대해 탐착(貪著)을 일으킨다. 즉 탐애 등의 열두 가지는 모두 탐의 다른 이름이며, 욕은 바로 5욕경으로, 욕을 연으로 하여 탐을 일으켜 마음을 묶어 억누르니, 이것은 모두 탐을 해석한 것으로, 이를 욕액이라 이름한다.”
75)
『광기』에 의하면 이 또한 경부사의 경증으로, ‘5욕경을 소연으로 하여 탐을 일으키는 것을 욕취라고 하고, 견을 소연으로 하여 탐을 일으키는 것을 견취라 하고, 계금을 소연으로 하여 탐을 일으키는 것을 계금취라 하고, 삼계의 아어(我語)를 소연으로 하여 탐을 일으키는 것을 아어취라고 한다’ 즉 이 같은 경증에 따라 경량부에서는 앞의 4액과 4취를 모두 ‘탐’을 본질로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76)
수면의 원어 anu-śaya의 anu를 미세[微, aṇu]의 뜻으로 이해하여 해석한 것이다.
77)
‘누’의 원어 ā-srava는 a-sru(유출ㆍ유동하다)라는 동사의 파생어이지만, 여기서는 이와 유사한 √as(앉다)의 사역어 āsayati(머물게 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머물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또한 ‘유전시키는 것’이라는 말은 ā-sru의 사역어 āsravayati(=āsrāvayati)에 근거한 해석이다.
78)
이하 논주 자신의 해석이다.
79)
『잡아함경』 권제18 제493경(대정장2, p.128중하) 참조. 즉 선법을 행하는 것은 크나큰 가행이 필요하다는 비유로서, 수면은 경계라는 강물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허물을 누설하기 때문에 ‘누’라는 것이다
80)
5욕경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욕취이며, ‘견’에 집착하는 것은 견취, 계에 집착하는 것은 계금취, 아어에 집착하는 것은 아어취이다.
아비달마구사론 제21권
1)
이러한 온갖 번뇌는 생에 대해 계박의 공능이 있기 때문에, 혹은 온갖 유정으로 하여금 괴로움과 화합하게 하기 때문에 ‘결’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애결은 3계의 탐(貪)을 말하며, 에결은 욕계의 진, 만결은 3계의 만, 무명결은 3계의 무명, 견결은 3계의 유신ㆍ변집ㆍ사견, 취결은 3계의 견취ㆍ계금취, 의결은 3계의 의, 질결과 간결은 10전 중의 욕계의 질ㆍ간을 말한다.
2)
에ㆍ질ㆍ간결은 오로지 욕계계(欲界繫)이며, 만ㆍ무명ㆍ견ㆍ취ㆍ의결은 3계계이다. 이를테면 무명결은 3계의 무지로서, 이는 소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소의에 근거한 것이다. 즉 무명이 온갖 무루법을 소연으로 삼는 경우, 그 때에는 더 이상 어떠한 계(界)에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3)
즉 5견 중 3견을 ‘견결’로, 2취를 ‘취결’로 따로이 설정한 것은 양자의 수가 같으며, 능취(能取)와 소취(所取)로서 각기 동등하기 때문이다. 즉 견결의 경우, 유신견ㆍ변집견은 오로지 3계의 견고소단이며, 사견은 3계의 견4제소단이기 때문에 열여덟 가지가 있으며, 취결의 경우 계금취는 오로지 3계의 견고ㆍ견도소단이며, 견취는 3계의 견4제소단이기 때문에 역시 열여덟 가지가 있다. 또한 견취와 계금취는 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을 뛰어난 것이라 집착하고 청정도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전자는 능취로서 동등하고 후자는 소취로서 동등하다. 그래서 각각을 취결과 견결로 독립시켜 9결의 하나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4)
전(纏)에는 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질(嫉)ㆍ간(慳)ㆍ회(悔, 혹은 惡作)ㆍ수면(睡眠)ㆍ도거(掉擧)ㆍ혼침(惛沈)의 8전과 여기에 분(忿)ㆍ부(覆)fmf 더한 10전이 있는데, ‘질’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기뻐하지 않게 하는 법을 말하며, ‘간’은 마음으로 하여금 인색하여 집착하게 하는 법을 말한다.
5)
즉 무참(無慚)과 무괴(無愧)는 비록 오로지 불선이지만 자력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회(悔, 즉 악작)는 자력으로 일어나지만 오로지 불선만은 아니며, 그 밖의 ‘전’은 두 가지의 뜻을 모두 갖고 있지 않다.
6)
10전의 경우, 8전에 더해진 분ㆍ부도 오로지 불선이고 자력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같은 뜻이 ‘질’과 ‘간’만을 별도의 ‘결’로 설정하게 된 이유는 될 수 없다는 말이다.
7)
이를테면 욕계 인취와 천취 중에 태어나면 이러한 ‘질’과 ‘간’이 자주 현행하며, 또한 많은 이가 비천하고 빈곤한 극심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는데, ‘질’은 비천함의 원인이 되고, ‘간’은 빈곤함의 원인이 된다.
8)
수번뇌에는 근심과 함께 일어나는 것[戚俱行]과 기쁨과 함께 일어나는 것[歡俱行] 두 가지가 있는데, ‘질’과 ‘간’은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상을 두루 현기하는 것이다.
9)
즉 재가 중(衆)들은 재산과 지위에 있어서, 출가 중들은 교(敎)와 행(行)에 있어서 ‘질’과 ‘간’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어지럽혀지게 된다.
10)
천중(天衆)은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아소락 즉 아수라는 여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천중은 맛있는 것에 인색[慳]하고 여색에 대해 질투[嫉]하며, 아수라는 여색에 인색하고 맛있는 것에 대해 질투한다.
11)
세존께서 교시가(憍尸迦)에게 “질결과 간결에 의해 인ㆍ천은 어지럽혀진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다.(『현종론』 권제27 한글대장경201, p.217)
12)
이를테면 ‘질’로 말미암아 다른 이를 어지럽히고, 안으로 ‘간’을 품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어지럽히게 된다.
13)
『중아함경』 권제56 『오하분결경(五下分結經)』(대정장1, p.77상);『장아함경』 권제8 『중집경』(동 p.51하).
14)
욕탐과 진에는 마치 감옥을 지키는 옥졸과도 같으니, 그들의 단속으로 말미암아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신견 등의 세 가지는 순라꾼과 같으니, 설사 어떤 방편으로 욕계의 감옥을 벗어났다 하더라도 그 같은 세 순라꾼에게 붙잡혀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15)
이 유여사설은 이설(異說)이지만 중현의 『현종론』 권제27(한글대장경201, p.218)에서는 유부 정설로 논설되고 있다. 즉 그는 하분(下分)을 욕계와 욕계의 유정으로 해석하여 욕탐 등은 전자를, 유신견 등은 후자를 능히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분결’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16)
예류과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견혹인 5견과 의(疑)의 여섯 가지 근본번뇌를 끊지 않으면 안 되는데, 예컨대 『잡아함경』 권제29 제797경(대정장2, p.205하)에서는 유신ㆍ계금취ㆍ의의 3결을 끊음으로써 예류과가 될 수 있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17)
여섯 가지 근본번뇌 중에서 유신견과 변집견은 오로지 견고소단이고, 계금취는 견고ㆍ견도소단이며, 의와 견취ㆍ사견은 견4제소단이기 때문에 오로지 유신ㆍ계금ㆍ의의 3결을 설하게 되면 앞의 세 갈래[門]의 모든 번뇌를 포섭하게 된다는 뜻.
18)
즉 변집견은 유신견에, 견취는 계금취에, 사견은 의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생기의 근본이 되는 능생의 3결만 끊으면 소생의 세 가지도 끊어지게 된다는 뜻.
19)
이를테면 첫 번째는 이곳과 다른 지방의 공덕(좋은 점)과 과실(나쁜 점)을 알았기 때문에 마음을 거두어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두 번째는 비록 다른 지방으로 출발하고자 하였을지라도 잘못된 길[邪道]로 들어 그곳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말하며, 세 번째는 두 길에 사람이 모두 다니는 것을 보고 이 길이 그곳으로 나아가는 바른 길인지, 바른 길이 아닌지 도무지 알지 못해 마음에 의혹을 품는 것을 말한다.
20)
집아(執我)의 유신견으로 인해 열반을 단멸로 여겨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곳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 것이다. 즉 집아를 공덕이라 여기고, 그것의 단멸을 과실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21)
『장아함경』 권제8 「중집경」(대정장1, p.51중).
22)
5순상분결은 오로지 수소단의 번뇌로서 유정을 색계ㆍ무색계에 계박시켜 해탈하지 못하게 하는 색탐ㆍ무색탐ㆍ도거ㆍ만ㆍ무명결을 말한다. 도거ㆍ만ㆍ무명도 상 2계의 결이므로 사실상 순상분결은 여덟 가지이다. 그럼에도 탐만을 계(界)에 따라 둘로 나눈 것은 그것의 과실이 특히 크기 때문이다.
23)
능히 계박(繫縛)하는 것이기 때문에 ‘박’이라고 하는 명칭을 설정한 것으로, 이는 바로 이염(離染)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는 뜻이다. 즉 ‘결’과 ‘박’은 사실상 어떠한 차별도 없지만 본모(本母)에 의거하여 애(愛)ㆍ에(恚)ㆍ만(慢)의 3결을 탐ㆍ진ㆍ치의 3박으로 분별하였으며, 그 밖에 5견과 의결은 치의 품류와 동일하며, 만결과 간결의 두 가지는 탐의 품류와 동일하며, 질결은 진의 품류와 동일하기 때문에 9결은 모두 3박에 포섭된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22)
24)
이를테면 ‘치’는 맹리(猛利)하지 않으므로, 대개는 맹리하지 않는 사수에 따라 증익하는 것이다.
25)
경우에 따라서는 자상속의 다른 수에서도, 타상속의 3수에서도 ‘박’이 소연수증하는 일이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자상속의 낙ㆍ고ㆍ사수에서 탐ㆍ진ㆍ치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 세 가지를 ‘박’으로 설한 것이라는 뜻.
26)
이는 5종 번뇌 중 세 번째 수면에 관한 본송으로, 이에 대해서는 이미 본품 제1송에서 5송(본론 권제19 p.853~864)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설명한 것을 논의의 체재상 다시 설한 것인데, 현장 역본 이외의 전승에서는 본송으로 전하지 않고, 장행(長行)으로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27)
즉 앞에서 밝힌 근본번뇌인 6수면도 역시 수번뇌라고 이름할 수 있다는 뜻. 그러나 이 경우는 마음에 따라 뇌란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번뇌’이며, 그 밖의 다른 번뇌는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수번뇌’이다. 여기서의 수번뇌는 후자를 말한다. 곧 “능히 유정을 뇌란시키는 것을 번뇌라고 하기 때문에(能爲惱亂故名煩惱)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 등도 모두 번뇌이며, 근본번뇌(즉 수면)를 결ㆍ박 따위로 일컫기도 한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27)
28)
『법온족론』 권제9 「잡사품」(한글대장경115, p.597). 여기서는 진(瞋)ㆍ치(癡)ㆍ분(忿) ㆍ한(恨)ㆍ부(覆)ㆍ뇌(惱)ㆍ질(嫉)ㆍ간(慳)ㆍ광(誑)ㆍ첨(諂)ㆍ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만(慢)ㆍ과만(過慢)ㆍ만과만(慢過慢)ㆍ아만(我慢)ㆍ증상만(增上慢)ㆍ비만(卑慢)ㆍ사만(慢邪)ㆍ교(憍)ㆍ방일(放逸)ㆍ오(傲)ㆍ분발(憤發)ㆍ교망(矯妄)ㆍ궤사(詭詐)ㆍ현상 (現相)ㆍ격마(激磨)ㆍ이리구리 (以利求利)ㆍ악욕(惡欲)ㆍ대욕(大欲)ㆍ현욕(顯欲)ㆍ불희족(不喜足)ㆍ불공경ㆍ기악언(起惡言)ㆍ낙악우(樂惡友)ㆍ불인(不忍)ㆍ탐기(耽嗜)ㆍ변탐기(遍耽嗜)ㆍ염탐(染貪)ㆍ비법탐(非法貪)ㆍ착탐(著貪)ㆍ악탐(惡貪)ㆍ유신견ㆍ유견 (有見)ㆍ무유견(無有見)ㆍ탐욕ㆍ진에ㆍ혼침ㆍ수면(睡眠)ㆍ도거(掉擧)ㆍ악작(惡作) ㆍ의(疑)ㆍ몽궤(瞢憒)ㆍ불락(不樂)ㆍ빈신(頻申)ㆍ흠거(欠㰦)ㆍ식부조성(食不調性)ㆍ심매열성(心昧劣性)ㆍ종종상(種種想)ㆍ부작의(不作意)ㆍ추중(麤重)ㆍ저돌(觝突)ㆍ도철 (饕餮, 음식을 탐하는 것)ㆍ불화연성(不和輭性)ㆍ불조유성(不調柔性)ㆍ불순동류(不順同類)ㆍ욕심(欲尋)ㆍ에심(恚尋)ㆍ해심 (害尋)ㆍ친리심(親里尋)ㆍ국토심(國土尋)ㆍ생사심(生死尋)ㆍ능멸심(凌蔑尋)ㆍ가족심(假族尋)ㆍ수(愁)ㆍ탄(歎)ㆍ고(苦)ㆍ우(憂)ㆍ요 (擾)ㆍ뇌(惱)를 언급하고 있다. 즉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영원히 끊게 되면 불환을 획득한다는 경설로서 인용하고 있다.
29)
이 같은 열 가지는 유정을 계박하여 생사의 감옥에 가두기 때문에 이름하여 ‘전’이라고 하였다. 혹은 이러한 열 가지가 원인이 되어 온갖 악행을 일으키며, 악취로 잡아 가두기 때문에 이름하여 ‘전’이라고 하였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25)
30)
『잡아함경』 권제35 제977경(대정장2, p.253상), ‘시바여, 다섯 가지 인(因)과 다섯 가지 연(緣)으로 인해 심법에 우고(憂苦)가 생기니, 이를테면 욕탐전을 인으로 하고 욕탐전을 연으로 하여 심법에 우고가 생기며…….’
31)
『품류족론』 권제1(한글대장경117, p.23). 『대비바사론』 권제47(한글대장경119, p.508);권제50(동 p.579).
32)
무참과 무괴는 대불선지법으로 본론 권제4(p.172, 180)에서 논설하였다. 아울러 ‘질’과 ‘간’은 소번뇌지법의 하나이며, ‘회’는 후회로서 악작이라는 명칭으로, 도거ㆍ혼침은 대번뇌지법의 하나로서 같은 권에서 상술되고 있다. 다만 ‘질’과 ‘간’의 경우에는 그곳에서도 역시 수번뇌를 논설하면서 해석할 것이라고 하여 뒤로 미루고 있다.
33)
입정에 들 때도 마음이 흐리멍덩[昧略]하게 되지만, 그 때에는 능히 몸을 집지할 수 있으므로 이것이 바로 입정과 수면(睡眠)의 차이점이다.
34)
‘회’는 선악 2성과 통하고 수면은 3성과 통하지만, 그것이 ‘전’에 포섭되는 한 오로지 염오(악)일 뿐이다.
35)
불선근의 진(瞋)이 유정을 미워하여 해치려고 하는 것이고, 번뇌구인 해(害)가 핍박하고 응징하려는 것이라면, ‘분’은 이 같은 두 가지 이외의 분발심(憤發心) 즉 격분하는 것을 말한다.
36)
무참과 간과 도거는 탐을 직접적인 원인[近因]으로 하여야 비로소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탐의 등류이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무명과 지극히 밀접하기 때문에 무명의 등류이며, ‘질’과 ‘분’은 그 상이 ‘진’과 동일하기 때문에 진의 등류이며, ‘회’는 유예(猶豫) 즉 망설임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의’의 등류이다.
37)
지식이 있는 자는 애(愛) 즉 탐에 의해 그것을 낳기 때문이며, 무지한 자는 치(癡) 즉 무명에 의해 그것을 낳기 때문이다. 즉 학자나 관리와 같이 지식이 있는 자는 명리의 탐욕 때문에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하며, 무지한 자는 참회할 줄 몰라서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 것이다.
38)
자신의 마음을 방편으로 숨기고 교활한 모략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유혹하여 실제의 앎과는 어긋나게 하는 것을 ‘첨’이라 이름한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27)
39)
수번뇌는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끊어지는 것도 근본번뇌에 준하여 끊어진다. 즉 근본번뇌가 견소단이면 그것과 상응하여 일어난 수번뇌도 견소단이다.
40)
여기서 타력에 의해 일어나는 무명이란 ‘질’ 등에 의해 인기되는 상응무명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질’ 등에 의해 인기된 무명은 타력기(他力起)이기 때문에, 그러한 무명을 인기한 ‘질’ 등은 비록 무명과 상응할지라도 ‘자재기’인 것이다.
41)
이 에피소드에 관해서는 본론 권제4(p.179)를 보라.
42)
『현종론』(권제27, 앞의 책, p.231)에 의하면, 여기서 ‘간략히 설한다’고 함은 모든 수번뇌에 대해 설한 것이 아니라 일단 거칠게 나타나는 것에 근거하여 설한다는 뜻이다.
43)
이러한 번뇌는 모두 외계와의 교섭 없이 내적인 의식작용으로서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외연(外緣)에 근거하는 5식신에 의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44)
이러한 온갖 번뇌는 제6 의식의 작용일 뿐만 아니라 전5식과도 연관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6식신에 의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45)
탐수면은 기쁨[歡]을 특징으로 할 뿐더러 심신 모두에 걸친 것이기 때문에 신수(身受)인 낙수와도 통하며 심수(心受)인 희수와도 통하는 것이다.
46)
먼저 죄업을 짓고 난 후 사견을 일으켜 인과의 존재를 부정할 때에는 죄업을 지었어도 고과(苦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때의 사견은 기쁨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또한 먼저 복업을 짓고 난 후 사견을 일으켜 인과의 존재를 부정할 때에는 애써 노력하여도 복과(福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때의 사견은 근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47)
즉 번뇌의 상속이 구경(究竟)에 이를 때에는 그 세력이 약해지고 마침내 그 상속이 종식되는데, 그 때의 번뇌는 다만 사수와 상응할 뿐이다. 또는 사수는 무명에 의해 수증하기 때문에 무명과 상응하는 모든 번뇌는 사수와도 역시 상응하는 것이다.(『현종론』 앞의 책, p.232)
48)
이는 이를테면 색계 초정려지로서, 거기에는 단식성(段食性)의 향ㆍ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식ㆍ설식을 제외한 안식ㆍ이식ㆍ신식ㆍ의식만이 존재한다. 이 경우 안식에 의해 일어난 번뇌는 안식과 상응하는 낙수ㆍ사수와 상응하며, 내지는 의식에 의해 일어난 번뇌는 의식과 상응하는 희수ㆍ사수와 상응한다.
49)
온갖 지(地) 중의 식(識)의 다소(多少)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에서, 수(受)의 다소에 대해서는 권제3에서 논설하였다. 즉 초정려에는 4식이 존재하며, 그 밖의 지에는 의식 한 가지만이 존재한다. 또한 수(受)의 경우 초정려, 제2ㆍ제3ㆍ제4정려 등에는 순서대로 희수ㆍ낙수ㆍ사수와, 희수ㆍ사수와, 낙수ㆍ사수와, 오로지 사수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온갖 지 중에 존재하는 번뇌는 그 지의 식과 구기하는 수(受)와 상응하게 되는 것이다.
50)
『잡아함경』 권제26 제704-707경(대정장2, p.195);『중아함경』 권제24 「염처경(念處經)」(대정장1, p.582중).
51)
『잡아함경』 권제27 제725경(대정장2, p.195중), ‘說不善積聚者, 所謂五蓋. 是爲正說. 所以者何? 純一不善聚者, 謂五蓋故.’
52)
혼침ㆍ도거ㆍ의(疑) 자체는 모두 비록 욕계와 색계ㆍ무색계에 통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다만 욕계의 그것만이 ‘개’라고 한다. 따라서 혼침과 도거는 오로지 욕계에 계속되는 번뇌인 수면(睡眠)과 회(悔)와 화합시켜야 ‘개’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수면과 회의 경우, 오로지 염오(즉 불선)의 그것만을 ‘개’라고 하였기 때문에 오로지 염오성의 번뇌인 혼침ㆍ도거의 두 종류와 화합시켜야 ‘개’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현종론』 권제28, 앞의 책, p.236)
53)
밝은 생각을 일으켜 마음이 분명하게 되면 혼면의 먹이(다섯 가지)가 능히 퇴치되기 때문에 비식(非食)이라 일컬은 것이다. 광명상(光明想)은 명조사유(明造思惟)라고도 한다.
54)
참고로 욕탐개의 먹이는 좋아할 만한 것의 상[可愛相]이며, 대치(비식)는 그것이 부정하다고 하는 생각[不淨想]이다. 진에개의 먹이는 증오할 만한 것의 상이며, 대치는 자(慈)의 선근이다. 의개의 먹이는 3세이며(『잡아함경』 권제27에서 “과거세에서 이와 같은 의개가 낳아진다”고 설하였기 때문이다), 대치는 능히 연성(緣性)과 연기(緣起)를 참답게 관찰하는 것이다.(『현종론』 권제28, 앞의 책, p.237)
55)
즉 번뇌는 수번뇌를 등기(等起)시키며, 어떤 것도 무루성도를 은폐 장애[覆蓋]하여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56)
여기서 5온은 후술하듯이 무루오온으로,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을 말한다. 해탈온은 무루의 승해(勝解)의 심소를, 해탈지견온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를 말한다.
57)
욕탐개는 이욕(離欲)을, 진에개는 이악(離惡)을 멀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온을 장애하며, 혼침과 수면은 사마타를 멀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혜온을 장애하며, 도거와 악작은 비발사나(毘鉢舍那, vipaśyanā, 삼매에 의한 正觀)를 멀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온을 장애한다.
58)
여기서 유여사는 『광기』에 의하면 경부사. 즉 경부사는 유부와는 반대로 욕탐과 진에가 계온을 장애한 후 혼면이 정온을, 도회가 혜온을 장애한다고 설하는 것이 법상의 이치상 올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즉 장애되는 무루온의 생기순서가 계ㆍ정ㆍ혜이므로 그것을 장애하는 개의 순서도 당연히 욕탐과 진에, 도회, 혼면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59)
즉 타계(他界)의 변행과 3계 중의 견멸ㆍ견도소단인 유루연의 혹은 마땅히 끊어질 리가 없어야 할 것이니, 고제ㆍ집제를 연으로 하는 법지(法智)와 법지인(法智忍)이 생겨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욕계의 고제ㆍ집제만을 연으로 하기 때문이며, 멸제ㆍ도제를 연으로 하는 온갖 법지와 법지인이 생겨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무루를 연으로 하여 경계로 삼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28, 앞의 책, p.240) 여기서 타계의 변행혹이란 9상연혹(上緣惑)을 말하며, 견멸ㆍ견도소단인 유루연혹이란 멸제ㆍ도제 하의 번뇌인 탐ㆍ진ㆍ만ㆍ견취ㆍ계금취를 말하는데, 고제ㆍ집제를 연으로 하는 고법지ㆍ집법지와 그 인(忍)의 상태에서 9상연혹을 끊을지라도 그 때에는 9상연혹의 대상인 상계의 고제ㆍ집제를 알지 못하며, 멸제ㆍ도제를 연으로 하는 법ㆍ유지와 그 인의 상태에서 견멸ㆍ견도소단의 유루연혹을 끊을지라도 그 때에는 그 같은 혹의 대상이 되는 멸ㆍ도제 하의 사견ㆍ의와 이와 상응하는 무명(무루연혹)을 알지 못한다.
60)
욕계에 계속되는 견고ㆍ견집소단의 자계연(自界緣)의 혹과, 색ㆍ무색계의 견고제ㆍ견집소단의 혹과, 3계의 견멸ㆍ견도소단의 무루연혹은 모두 소연인 고제ㆍ집제와 멸제ㆍ도제를 변지함으로써 끊어진다.
61)
욕계에 계속되는 견고ㆍ견집소단인 자계연의 혹은 타계연의 변행혹(즉 9上緣惑)의 능연(能緣)이 되므로, 타계연의 변행혹은 그 능연이 되는 자계연의 혹을 끊음으로써 끊어진다.
62)
견멸ㆍ견도소단의 유루연의 혹(탐ㆍ진ㆍ만ㆍ견취ㆍ계금취)은 그것의 소연이 되는 무루연 혹을 끊음으로써 끊어진다.
63)
견소단의 혹도 역시 대치도가 일어날 때 끊어지지만 수소단의 혹만을 대치도가 일어남에 따라 끊어지는 것이라고 설한 까닭은, 3계의 수소단의 혹은 모두 9품(品)의 도에 의해 끊어진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단대치(斷對治)의 9품의 도는 결정적이기 때문이다.(견소단의 혹 중에서는 오로지 有頂惑의 대치도만이 결정적이다.) 혹은 견소단의 혹이 끊어지는 데에는 세 가지 방편이 있지만 수소단의 혹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 가지로 설하게 된 것이다.(『현종론』 권제28, 앞의 책, p.243)
64)
인위(忍位)의 무간도와 지위(智位)의 해탈도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3(p.1062)을 참조하라.
65)
단대치란 바로 번뇌의 득(得)을 끊는 무간도(無間道)를 말하며, 지대치란 번뇌 단(斷, 즉 택멸)의 득을 확실하게 임지하는 해탈도(解脫道)를 말하며, 원분대치란 이미 끊어진 번뇌의 득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승진도(勝進道)를 말하며, 염환대치란 어떤 계(界)와 지(地)에 대해 염환을 낳게 하는 가행도(加行道)를 말한다.
66)
이는 논주 세친의 설로서, 이치상으로 볼 때 고제ㆍ집제에 대한 가행도를 먼저 일으키고 나서 4제 전체를 연으로 하여 무간ㆍ해탈ㆍ승진의 도를 일으키기 때문에 4종의 대치도가 선설(善說)이 되기 위해서는 염환ㆍ단ㆍ지ㆍ원분의 순서로 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현은, 무간ㆍ해탈ㆍ승진도 중의 고제ㆍ집제를 연으로 하는 것도 역시 염환대치가 될 수 있으며, 가행도는 무간도 앞에, 혹은 승진도 뒤에 일어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혹은 어떤 보특가라는 하나의 가행, 혹은 두 가지, 혹은 다수의 가행에 의해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혹은 무간도 등은 뒤의 도에 대해 역시 능히 가행이 되기 때문에 그 순서가 결정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염환대치의 가행도가 반드시 제일 앞에 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논의하고 있다.(『현종론』 권28, 앞의 책, p.244, 『순정리론』 권제55, 한글대장경180, p.424)
67)
혹(惑)을 소연의 경계로부터 원리(遠離)하여 그 소연에서 다시는 능연의 혹이 생겨나지 않게 되는 것을 ‘혹의 영원한 끊어짐[永斷]’이라고 한다. 즉 제법은 3세에 실유하기 때문에 혹이 영원히 끊어졌다 할지라도 혹 자체가 절멸하는 것은 아니며, 혹이 존재하는 한 심ㆍ심소와 상응 동반하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상응법으로부터 혹을 원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본론 권제20, p.931을 참조 바람)
68)
바로 앞의 본송에서 언급하였듯이 유부에 의하는 한 번뇌는 소연에 대해 두루 아는 힘[遍知力]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끊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혹(斷惑)의 한 근거[因]에 불과하다.
69)
이상은 단혹(斷惑)의 대상에 대한 논주 세친의 주장으로, 전자를 자성단(自性斷)이라 하고, 후자를 연박단(緣縛斷)이라 한다.
70)
‘무간에 이미 멸한 때[已滅時]’란 어떤 법이 과거로 멸하였으나 현재 찰나와의 중간에 일법의 장애함도 없는 상태를 말하며, ‘바로 생겨나는 때[正生時]’란 어떤 미래법의 생상(生相)이 일어나는 때를 말한다.
71)
이에 대해 중현은 “무위는 시간에 제약되지 않는 것으로, 허공은 일체처에 두루하며 어떠한 장애도 갖지 않기 때문에, 비택멸은 일체의 처소와 시간에 두루 획득될 수 있으며, 택멸은 단혹할 때 획득될 수 있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논설하고 있다.(앞의 논, p.247)
72)
과거법은 법후득(法後得)을, 미래법은 법전득(法前得)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러한 득은 무위법과 마찬가지로 모두 현재세에 존재하므로 역시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힐난.
73)
허공무위에는 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같이 말한 것이다.
74)
이상은 논주 세친의 비판과 주장으로, 이는 바로 경부의 과미무체(過未無體)설에 근거하여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장행 첫머리에서 유부의 4종의 원성(遠性)을 ‘전설(傳說)’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75)
혹(惑)은 네 가지 대치도 중 무간도를 획득할 때 단박에 끊어지며, 그러한 도에서 물러나는 때를 제외하고는 다시 끊어지는 일이 없으니, 끊고 나서 다시 끊는다고 하면 그것은 중설의 허물[唐捐]이 되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28, 앞의 책 p.248)
76)
이계, 즉 택멸은 상주의 무위법이기 때문에 무간도에 의해 획득된 것보다 승진도에 의해 획득된 것이 보다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한 택멸의 득(得)은 승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열한 득을 버리고 보다 뛰어난 득[勝得], 즉 택멸을 보다 확실하게 획득하게 하는 득을 획득하는 경우가 있다.
77)
앞서 논설하였듯이 무간도는 바로 혹의 득을 끊는 대치도이며, 해탈도는 단혹(이계택멸)의 득을 지니는 대치도이다. 따라서 해탈도가 현전하면 이계택멸의 득을 획득하는 동시에 그것을 확고하게 임지하는 득을 획득하기 때문에 택멸의 뛰어난 득을 거듭하여 획득한다고 말할 수 있다.
78)
『현종론』(앞의 책, p.249)에서는 ‘근기를 증진(增進)시키는 때[轉展]’라고 정의한다. 이는 곧 둔근(鈍根)의 아라한이 근을 단련시켜 이근(利根)으로 바꿀 때를 말한다.
79)
욕계의 견소단의 혹을 끊을 때에는 법지 즉 해탈도가 생겨나 무위의 득을 획득하게 되고, 초과에서 시작하여 4과를 획득할 때마다 각각의 과에 포섭되는 무위의 득을 거듭 획득하며, 다시 전근(轉根)할 때에도 거듭 획득하기 때문에 여섯 때에 모두 획득된다. 마찬가지로 상 2계의 견도소단을 제외한 견3제소단의 혹을 끊을 때의 이계의 득도 역시 그러하다. 여기서 상계의 견도소단을 제외하는 이유는 도류지 즉 해탈도가 생겨날 때에는 바로 예류과를 획득하므로, 대치도가 일어날 때와 초과의 과위를 획득하는 때가 동일하기 때문이다.(후술)
80)
즉 욕계 수혹의 9품 중 앞의 5품을 끊는 것까지가 예류과이다. 그래서 그 같은 5품의 이계를 획득할 때에도 ‘과위를 획득하는 때’를 제외한 것으로, 예류과는 견도 제16심(즉 도류지)에서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래과는 욕계 수혹 중 제6 중하품을 끊는 순간 성취되며, 불환과는 제9품이 끊어져 더 이상 욕계로 되돌아오지 않는 성자이며, 무색계의 유정천 제9품에 이르기까지의 일체의 번뇌가 끊어진 것이 아라한과이며, 그 도정에 있는 자가 아라한향(向)이다.(본론 권제23, 24 참조) 그래서 제7ㆍ제8품의 이계의 득은 네 때에, 제9품에서 무색계의 유정천 제8품까지의 이계의 득은 세 때에, 유정천의 제9품의 이계의 득은 두 때에 획득되는 것이다.(후술)
81)
즉 이상은 둔근자(鈍根者)에 근거하여 일반적인 사실을 논설한 것이다.
82)
이미 이근인 자에게는 근기의 단련이 필요 없기 때문에, 예컨대 아라한향의 경우 대치가 일어나는 때와 제4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때와 근기를 단련하는 때 중에서 세 번째가 제외된 두 때에 이계의 뛰어난 득이 거듭하여 획득된다.
83)
초월증(超越證)을 말한다. 즉 4과를 순서대로 증득하지 않고 한 과나 두 과를 건너뛰어 증득하는 성자로서, 차제증(次第證)의 반대. 이를테면 3계 9지 중의 하 8지의 수혹은 무루도뿐만 아니라 이생위의 유루 세속도(6行觀)에 의해서도 끊어지기 때문에(본론권제23, p.1066;권제24, p.1112 참조) 초월증이 설정되는 것이다.
84)
변지(遍知, parijñā, 구역에서는 永斷)란 무루지(無漏智)를 말한다. 혹은 무루지의 결과인 택멸이계를 의미하는데, 전자를 지변지(知遍知)라 하고, 후자를 단변지(斷遍知)라고 한다.(후술)
85)
번뇌의 끊어짐은 바로 지변지의 결과이기 때문에 거기에 ‘변지’라고 하는 명칭을 부여하게 된 것이라는 뜻.
86)
각각의 이계를 각기 하나의 변지로 설정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체의 이계를 전체적으로 하나의 변지로 설정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
87)
오로지 아홉 가지만을 설정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본 권 뒤에서 분별한다.
88)
여기서 ‘따위’란 번뇌와 상응하는 심ㆍ심소와, 그것과 구유(俱有)하는 ‘득’과 생(生) 등의 4상을 말한다.
89)
정리하면 3계의 견제소단에는, (1)욕계계의 견고ㆍ견집소단의 혹을 끊는 변지, (2)견멸소단의 혹을 끊는 변지, (3)견도소단의 혹을 끊는 변지, (4)색ㆍ무색계의 견고ㆍ견집소단의 혹을 끊는 두 가지 변지, (5)견멸소단의 혹을 끊는 변지, (6)견도소단의 혹을 끊는 변지 등 6종의 변지가 있다.
90)
이 같은 변지는 바로 욕계 수혹(修惑)의 택멸과 앞서 증득한 견혹(見惑)의 택멸을 함께 취하여 이름한 것이기 때문에 ‘5순하분결진(順下分結盡)변지’이다.
91)
상 2계의 견혹은 동일한 대치도인 유지(類智)에 의해 끊어지지만, 수혹은 색계와 무색계에 따라 그 대치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상 2계의 수혹은 더 이상 끊어지는 유형[惑數, 3계 98수면]으로 분류되지 않고, 다만 선정의 상태와 번뇌의 강약[品數, 3계 9지 9품, 즉 81품]에 따라 분류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욕계 미지정의 상상품의 번뇌로부터 시작하여 하하품의 번뇌로, 다시 색계 초선의 상상의 번뇌에서 하하의 번뇌로. 그리하여 마침내 무색계 비상비비상처정의 하하품의 번뇌가 끊어지는 것이다.
92)
다시 말해 3계 견혹의 6변지는 고법지인ㆍ고류지인 내지 도법지인ㆍ도류지인 등의 8인(忍)의 과보이며, 수혹의 세 가지 변지는 고법지 내지 도류지 등의 8지(智)의 과보이다. 8인ㆍ8지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3(p.1055 이하) 참조.
93)
인(忍)은 지(智)가 아니지만 ‘지’의 권속이기 때문에, ‘인’과 ‘지’는 동일한 이계를 획득하기 때문에 ‘인’의 과보도 변지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즉 무간도인 ‘인’과 해탈도인 ‘지’는 서로를 도와 동일한 택멸을 획득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지’의 결과인 택멸은 ‘인’의 결과도 되기 때문에 그것을 변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94)
비바사사는 욕계에 계속되는 번뇌는 미지정에서 끊어지기 때문에, 근본정에서는 상 2계의 견소단의 끊어짐인 세 가지 변지와, 상 2계의 수소단의 끊어짐인 색애와 일체결의 두 가지 변지가 결과로서 획득된다고 주장한다.
95)
즉 묘음(妙音)은, 근본정려에 의해서도 욕계의 번뇌가 끊어지기 때문에, 오로지 미지정의 결과인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만을 제외한 8변지가 모두 근본정려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96)
유루의 세속도로써는 견혹을 개별적으로 끊을 수 없기 때문에, 또한 유정(有頂)의 혹을 끊을 수 없기 때문에(본론 권제24, p.1107 참조), 욕계의 견혹의 끊어짐인 6변지와 ‘일체의 결이 영원히 다하는 변지’를 획득할 수 없다.
97)
수도에 포섭되는 법지는 3계의 수혹을 끊기 때문에(본론 권제26 「변지품」 제9송 참조) 그 결과에는 5순하분결과 색애와 일체결이 다하는 세 가지 변지가 있으며, 수도에 포섭되는 유지는 상 2계의 수혹을 끊기 때문에 그 결과에는 색애와 일체결이 다하는 두 가지 변지가 있는 것이다.
98)
법지품(法智品)이란 법지와 법지인을 합한 것으로, 법지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3계 수혹을 끊기 때문에 뒤의 세 변지를 획득하며, 법지인은 욕계 견혹을 끊기 때문에 견고ㆍ견집, 견멸, 견도소단변지를 획득한다. 유지품의 경우도 이에 준하여 알 것.
99)
유부에 의하는 한 택멸의 수는 유루법의 수만큼 존재하기 때문에 이치상으로 볼 때 변지 또한 무수히 많아야 하지만, 다만 견도소단의 경우 세 가지 조건을, 수도소단의 경우 네 가지 조건을 갖춘 택멸만을 변지로 설정하였다.
100)
‘유정(有頂)을 결여하였다’고 하는 것은 3계 9지의 최후인 유정지의 5부 번뇌를 완전히 끊었다는 말이고, ‘두 가지의 원인을 소멸하였다’는 것은 자부ㆍ자품의 동류인과 타부ㆍ타품의 변행인을 소멸하였다는 말이다.
101)
즉 집법지(즉 제6찰나)에서의 끊어짐은 욕계의 2부(견고ㆍ견집소단)의 번뇌가 끊어져 세 가지 연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변지’라는 명칭을 획득하며(見苦集斷遍知. 즉 이 때 집법지인과 집법지에 의해 욕계 변행혹과 자부 자지의 동류인을 소멸한다), 이후 집류지(제8찰나)로부터 도류지인에 이르기까지 다섯 변지를 획득한다.(후술)
102)
즉 욕계9품의 혹을 전부 떠났을 때는 욕계를 초월하고, 색계 제4정려의 9품의 혹을 전부 떠났을 때는 색계를 초월하며, 무색계 유정천의 9품의 혹을 전부 떠났을 때는 무색계를 초월한다는 뜻으로,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는 욕계를, 색애가 다하는 변지는 색계를, 일체의 결이 영원히 다하는 변지는 무색계를 초월함으로써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103)
여기서 어떤 이는 대법(對法) 논사. 혹은 잡심(雜心) 논사라는 설도 있지만, 이 같은 변지의 5연설(혹은 4연설)은 바사의 정설이다.(『대비바사론』 권제62, 한글대장경120, p.274) ‘이구계’란 자부ㆍ자품의 계박과 타부ㆍ타품의 계박을 모두 떠나는 것으로, 비바사사에 의하면, 예컨대 욕계 고제하의 번뇌를 끊었을지라도 집제하의 타부의 변행혹이 계박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고제하의 택멸을 획득하였을지라도 이를 변지로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104)
논주 세친의 비판. 즉 동류ㆍ변행의 두 가지 원인을 멸할 때에는 요컨대 견혹의 구계(俱繫)를 떠나고, 계를 초월할 때에는 수혹의 9품을 끊음으로써 수혹의 구계를 떠나기 때문에 작용상으로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는 것이다.
105)
이는, 유루도로써 색계와 무색계의 아래 3지의 번뇌를 끊어 두 가지 원인을 소멸하였을지라도, 그 때는 아직 계를 초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변지로 설정하지는 않는다는 예증이다.
106)
이는 바로 수도의 첫 찰나인 견도 제16심, 즉 도류지로부터 시작하여 욕계 수혹의 제6품 즉 중하품을 끊기 전까지의 단계에 있는 자와 일단 중하품의 번뇌를 끊었다가 물러난 자이다.
107)
이는 욕계의 제9품의 혹을 떠나는 해탈도에서 시작하여 색계의 혹을 떠나는 무간도에 이르기까지의 단계에 있는 자를 말한다.
108)
이는 바로 욕계 9품의 번뇌를 완전히 끊고 다시 색계 혹의 일부를 끊은 차제증의 유정과, 이생위에서 욕계의 번뇌를 완전히 떠난 후에 견도에 들어 색계의 번뇌를 완전히 떠나지 않은 초월증의 유정이다.
109)
이는 바로 제4정려의 제9해탈도로서 색애를 영원히 끊은 때로부터 무색애를 완전히 끊지 않은 차제증의 유정과, 이생위에서 승과도(勝果道)를 일으켜 색애를 영원히 끊었지만 아직 무색애는 완전히 끊지 않은 초월증의 유정이다.
110)
어떠한 이유에서 불환과의 경우 3계의 모든 견혹과 욕계 수혹 중 제9 하하품의 택멸을 획득하였음에도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 한 가지로만 설정하였고, 아라한과의 경우 3계의 모든 견혹과 욕계 수혹의 택멸과 상 2계 수혹의 택멸을 획득하였음에도 ‘일체의 결이 다하는 변지’ 한 가지로만 설정한 것인가 하는 물음.
111)
불환과는 욕계를 초월하는 동시에 과위를 획득한 자이며, 아라한과는 무색계(3계)를 초월하는 동시에 과위를 획득한 자이다.
112)
3계 중의 어떠한 계의 혹을 일으켜 아라한과에서 물러날 때는 ‘일체결이 영원히 다하는 변지’를 버리고, 색계의 혹을 일으켜 색애의 다한 상태에서 물러날 때는 ‘색애가 다하는 변지’를 버리고, 욕계의 혹을 일으켜 전리욕(全離欲)에서 물러날 때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를 버리게 된다.
113)
즉 각기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와 ‘색애가 다하는 변지’를 버리게 된다.
114)
일찍이 욕계를 떠난 초월증의 성자가 견도에 들어 도류지를 일으킬 때에는 제6 변지(색ㆍ무색 견도단변지)를 획득하지 않고 바로 5순하불결이 다하는 변지를 획득하기 때문에 견제위(見諦位)의 앞의 다섯 변지를 버리게 되는 것이다.
115)
이는 바로 도류지에서 견혹의 6변지를 성취한 차제증의 성자가 다시 욕계 수혹의 제9품을 단진할 때, 다시 말해 불환과를 획득할 때로서, 이 때는 견혹의 6변지를 버리고 5순하분결이 다하는 한 가지 변지를 획득하게 된다.
116)
아직 획득하지 못한 9변지 각각을 획득할 때에는 각기 획득되는 하나의 변지를 획득하고, 아라한이 색애를 일으킬 때에는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를 획득한다.
117)
이 때에는 일체의 결이 영원히 다하는 변지를 버리고, 색애가 다하는 변지와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를 획득한다.
118)
차제증의 성자가 욕계 수혹을 일으켜 불환과로부터 물러날 때에는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를 버리고, 3계 견제단의 6변지를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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