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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장엄경론 제12권
22. 공덕품[2]
[바른 행]
이미 보살의 네 가지 공하지 않은 과를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여섯 가지의 바른 행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구함을 벗어나고 후유(後有)를 벗어나며
여러 가지의 공덕을 두루 일으킨다.
선정을 닦으면서 무색(無色)을 버리니
지혜가 방편의 행과 합친다.
[釋] ‘구함을 벗어난다’고 함은 보시를 바르게 행하고도 갚음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후유를 벗어난다’고 함은 지계와 인욕을 바르게 행하여 후유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의 공덕을 두루 일으킨다’고 함은 정진을 바르게 행하는 것이다.
‘선정을 닦으면서 무색을 버린다’고 함은 선정을 바르게 행하는 것이다.
‘지혜가 방편의 행과 합한다’고 함은 지혜를 바르게 행하는 것이다.
3륜(輪)이 청정한 것이 지혜가 되고, 보리로 회향하는 것이 방편이 된다.
보적경(寶積經)에 말씀하시기를
“보시를 하면서 갚음을 구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이와 같이 자세히 말씀하셨다.
[6바라밀에 나아가고 물러감]
이미 보살의 여섯 가지의 바른 행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여섯 가지의 바라밀에 나아가고 물러감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재물에 집착하고 금계를 헐고
아래에 거만하고 장차 착함에서 떨어지며
먹음에 맛들이고 또한 분별하는
이러한 물러섬을 뒤집으면 나아감이 된다.
[釋] 여섯 가지의 바라밀에 대치하는 것은 물러서는 분(分)의 인이다. 그런데 그 대치하는 것을 뒤집으면 곧 능히 대치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곧 나아가는 분의 인이다.
[6바라밀의 참과 비슷한 공덕]
이미 보살의 여섯 가지 바라밀의 나아가고 물러서는 분의 인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참과 비슷한 공덕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거짓으로 허락함과 속이는 모양과
속여서 기뻐함과 또한 거짓으로 정근함과
몸이 고요하고 입으로 잘 말하는
이렇게 같은 것을 뒤집으면 곧 참이 된다.
[釋] ‘거짓으로 허락한다’고 함은 이른바 구하는 자에게 말하여 있는 것을 마음대로 취해 가지라 말하고서 그가 오면 곧 아끼는 것과 비슷한 보시이다.
‘속이는 모양’이라고 함은 이른바 여러 악한 것은 덮어 감추고 속여서 위의를 잘 갖추는 것과 비슷한 지계이다.
‘속여서 기뻐한다’고 함은 이른바 달콤한 말과 헛된 기쁨으로 해침을 구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과 비슷한 인욕이다.
‘거짓 정근’이라 함은 이른바 헛된 말로 내가 부처님의 과를 구한다고 하면서 실제의 마음은 세간의 과보를 바라는 것과 비슷한 정진이다.
‘몸이 고요하다’고 함은 이른바 몸과 입은 단정하고 묵묵하면서도 그러나 악한 감각이 마음을 흔드는 것과 비슷한 선정이다.
‘입으로 잘 말한다’고 함은 이른바 남을 위해서는 교묘하게 말하면서 자기의 몸으로는 행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지혜이다.
이 여섯 가지는 참답지 못한 행이다. 이 참답지 못한 행을 뒤집으면 곧 참다운 행이 된다.
[중생을 위하여 폐단을 제거함]
이미 보살의 참과 비슷한 공덕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여섯 가지의 폐단을 제거함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여섯 가지 바라밀의 행을 주어
여섯 가지의 장애를 제거한다.
보살이 중생을 교화할 때에
지(地)마다 다 이와 같이 한다.
[釋] 중생들에게 여섯 가지 폐단이 있어서 능히 여섯 가지 바라밀을 장애하니,
이른바 간탐과 파계와 성냄과 게으름과 어지러운 마음과 우치(愚癡)이다.
보살은 그 순서대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서 보시를 행하게 하고, 또한 지혜를 행하게 한다. 그래서 중생들로 하여금 여섯 가지의 장애를 제거하게 한다.
이것이 곧 보시를 주는 것이요, 또한 지혜를 주는 것이다.
[수기]
이미 보살이 중생들의 여섯 가지 폐단을 제거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모든 부처님께서 보살에게 수기(授記)를 주시는 것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수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사람마다 다르고 시기가 다른 것이다.
전기(轉記)와 대기(大記),
이것이 다시 두 가지가 된다.
[釋] 수기에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사람으로 구별하고,
또 하나는 시기로 구별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구별하는 수기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발심하지 못한 이에게 수기하는 것이니 이른바 성품의 위치에서이고,
둘째는 이미 발심한 이에게 수기하는 것이며,
셋째는 현전에서 수기하는 것이고,
넷째는 현전이 아닌 데서 수기하는 것이다.
시기로 구별하는 수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유수(有數)의 수기요,
또 하나는 무수(無數)의 수기이다.
다시 두 종류의 수기가 있으니,
하나는 전수기(轉授記)요,
또 하나는 대수기(大授記)이다.
전수기라 함은, 이른바 보살에게 수기하기를 뒤에 이와 같은 여래에게 이와 같은 시절에 마땅히 수기를 얻을 것이라 이른 것이다.
[문] 무엇을 일러 대수기라고 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8지의 보살은 무생인(無生忍)을 얻어서
아만을 끊고 공용을 끊는다.
모든 부처님과 불자(佛子)는
일체(一體)여서 한가지로 같다.
[釋] 대수기(大授記)라 함은, 이른바 제8지 가운데서 무생인을 얻을 때에 자기가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부처를 이루겠다는 아만을 끊었으며, 일체의 분별하는 모양의 공용을 끊었다. 그러기에 일체의 부처님과 보살이 동일(同一)의 체임을 얻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문] 무엇을 일러 동일의 체라고 합니까?
[답]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이 자기의 몸과 더불어 차별이 있음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동일하여 같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찰토(刹土)와 명호(名號)와
시절과 더불어 겁(劫)의 이름과
권속과 아울러 법주(法住)이니,
수기에는 이 여섯 가지가 있다.
[釋] 다시 이 여섯 가지의 수기가 있으니
첫째는 이와 같은 찰토에서이고,
둘째는 이와 같은 명호가 있는 것이고,
셋째는 이와 같은 시절을 지나는 것이고,
넷째는 이와 같은 겁의 이름이 있는 것이고,
다섯째는 이와 같은 권속이 있는 것이고,
여섯째는 이와 같은 시절에 바른 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이다.
[결정]
이미 여러 부처님의 수기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여섯 가지 결정(決定)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재물이 이루어지고 태어나는 데가 뛰어나고
물러서지 아니하고 닦아 익히고
정업(定業)과 공용이 없음의
여섯 가지 일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진다.
[釋] 보살이 여섯 가지 바라밀의 증상으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의 결정을 얻게 되니,
첫째는 재물이 이루어지는 결정이니 보시로 말미암아 항상 큰 재물이 성취됨을 얻기 때문이다.
둘째는 태어나는 데가 뛰어남의 결정이니 계로 말미암아 항상 뜻을 따라 생을 받음을 얻기 때문이다.
셋째는 물러서지 아니함의 결정이니 모든 고통을 참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닦아 익힘이 결정된 것이니, 정진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착함을 익혀 쉴 사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정업(定業)이 결정된 것이니, 선정으로 말미암아 중생의 업을 성취하여 길이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공용 없는 것이 결정된 것이니, 지혜로 말미암아 무생인(無生忍)을 얻었기에 분별이 없는 지혜에 저절로 머물기 때문이다.
[반드시 지어야 함]
이미 보살의 여섯 가지의 결정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여섯 가지 반드시 지어야 함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공양함과 계를 배움과
자비를 닦음과 또한 착함을 권함과
시끄러움을 벗어남과 깊이 법을 즐기는 것,
여섯 가지의 일을 반드시 지어야 한다.
[釋] 여러 보살은 여섯 가지의 바라밀을 성취하기 위하여 여러 지(地) 가운데서 결정코 마땅히 여섯 가지 일을 지어야 한다.
첫째는 반드시 공양을 올려야 하니, 이는 보시바라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오랫동안 공양을 올리지 않으면 보시바라밀이 원만함을 얻지 못한다. 공양의 뜻은 「공양품」에서 말한 것과 같다.
둘째는 반드시 계를 배워야 한다. 이는 지계바라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오랫동안 계를 배우지 않으면 지계바라밀이 원만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셋째는 반드시 자비를 닦아야 한다. 이는 인욕바라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오랫동안 모든 요익하지 못한 일을 참지 못하면 인욕바라밀이 원만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넷째는 반드시 착함에 부지런해야 한다. 이는 정진바라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마음이 방일(放逸)하여 여러 착한 것을 닦지 않으면 정진바라밀이 원만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섯째는 반드시 시끄러움을 벗어나야 한다. 이는 선정바라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마을에 있어서 다투고 시끄러운 마음이 많으면 선정바라밀이 원만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여섯째는 반드시 법을 즐겨야 한다. 이것은 지혜바라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 부처님을 편력(遍歷)하면서 법을 들어 싫음이 없게 하기를 마치 바다가 온갖 흐름을 받아들여서 때 없이 차고 넘치듯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바라밀이 원만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반드시 항상 지어야 함]
이미 보살의 여섯 가지의 반드시 지어야 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반드시 항상 지어야 함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티끌세상을 싫어하고 스스로 살피고
괴로움을 참고 선법을 닦으며
맛들이지 아니하고 분별하지 않는
여섯 가지의 행을 반드시 항상 일으켜야 한다.
[釋] 여러 보살이 여섯 가지의 바라밀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항상 여섯 가지의 일을 지어야 한다.
첫째는 티끌세상을 싫어함이니 이른바 다섯 가지 욕락(欲樂)의 허물과 실수를 아는 것이다. 비유하면 분예(糞穢)는 아무리 적어도 또한 냄새가 나고, 보시의 과보는 아무리 많아도 또한 괴롭다. 그러나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세 가지의 보시를 행한다. 이 일을 항상 닦으면 보시바라밀이 원만하여진다.
둘째는 자기를 살핌이니, 이른바 낮과 밤 여섯 때에 항상 스스로 성찰하여 지어진 세 가지의 업에서 허물을 알면 곧 고쳐진다. 이 일을 항상 닦으면 지계바라밀이 원만하여진다.
셋째는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만일 남이 와서 나에게 요익하지 못한 온갖 일과 스스로 법을 구하여 온갖 추위와 더위 등의 괴로움을 참는 등 이러한 일을 항상 닦으면 인욕바라밀이 원만하여진다.
넷째는 착함을 닦는 것이니, 착함이란 이른바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어서 여러 지(地) 가운데서 이 일을 항상 닦으면 정진바라밀이 원만하여진다.
다섯째는 맛들이지 않는 것이니, 이른바 선정 가운데의 뛰어난 즐거움을 맛들이지 아니하고 항상 욕계에 와서 태어나는 것이다. 이 일을 항상 닦으면 선정 바라밀이 원만하여진다.
여섯째는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른바 3륜(輪)의 다른 모양에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이 일을 항상 닦으면 지혜 바라밀이 원만하여진다.
[6바라밀의 뛰어난 종류]
이미 보살이 여섯 가지의 반드시 항상 지어야 함에 대하여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뛰어난 종류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법의 보시와 성스러운 계와
무생법인과 대승을 일으킴과
선정과 자비와 여실한 지혜,
이 여섯 가지의 행이 뛰어나다.
[釋] 보시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법의 보시가 가장 위가 되며,
계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성인(聖人)이 가장 사랑하는 무류계(無流戒)로써 가장 위를 삼으며,
인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8지의 무생법인으로써 가장 위를 삼으며,
정진이 여러 가지이지만 대승을 일으켜서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는 것으로써 가장 위를 삼으며,
선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간을 뛰어넘은 제4의 선(禪)과 큰 자비를 합친 것으로써 가장 위를 삼으며,
지혜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실한 지혜로써 모든 법을 통달하는 지혜가 가장 위가 된다.
[거짓으로 건립됨]
이미 보살의 여섯 가지 바라밀의 뛰어난 종류를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네 가지의 거짓으로 건립됨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법을 세움과 제(諦)를 세움과
도리(道理)를 세움과 또한 승을 세움에
다섯 가지와 일곱 가지와 네 가지와 세 가지가 있으니,
이로써 거짓으로 차별을 건립한다.
[釋] 네 가지 거짓으로 건립됨이라 함은,
첫째는 법을 거짓으로 건립하는 것이요,
둘째는 제(諦)를 거짓으로 건립하는 것이요,
셋째는 도리를 거짓으로 건립하는 것이요,
넷째는 승(乘)을 거짓으로 건립하는 것이다.
[문] 네 가지의 거짓으로 건립됨에 각각 몇 가지의 차별이 있습니까?
[답] 법을 거짓으로 건립함에 다섯 가지의 차별이 있고,
제를 거짓으로 건립함에 일곱 가지의 차별이 있으며,
도리를 거짓으로 건립함에 네 가지의 차별이 있고,
승을 거짓으로 건립함에 세 가지의 차별이 있다.
법을 거짓으로 건립함에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함은
게송으로 말한다.
이른바 다섯 가지 명(明)의 곳이니
이것이 다 대승의 종류로서
수다라(修多羅)와 기야(祇夜) 등
종류에 차별이 있다.
[釋] 법을 거짓으로 건립함에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함은, 곧 다섯 가지의 명론(明論)이다.
이 다섯 가지는 다 대승의 수다라와 기야 등의 종류의 차별이 있다.
다섯 가지 명(明)의 처소에 대한 설명은 각분품(覺分品)에서 말한 것과 같다.
제의 거짓된 건립인 일곱 가지는
게송으로 말한다.
윤전(輪轉)과 공(空)의 모양과
유식(唯識)과 의지와
삿된 행과 또한 청정과
바른 행의 여(如)는 일곱 가지이다.
[釋] 일곱 가지의 차별이라 함은 곧 일곱 가지의 여(如)이다.
첫째는 윤전의 여이고, 둘째는 공한 모양의 여이고, 셋째는 유식의 여이고, 넷째는 의지의 여이고, 다섯째는 삿된 행의 여이고, 여섯째는 청정한 여이고, 일곱째는 바른 행의 여이다.
‘윤전의 여’라 함은 이른바 생사이니,
곧 삼계(三界)의 마음과 마음의 법이 분별로부터 일어나고 이 분별이 다시 인연으로부터 일어났으며,
자재(自在) 등의 인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고 또는 무인(無因)에서 난 것도 아니다.
분별의 경계가 공하였기 때문에 일체의 때에 다만 분별과 의타(依他)의 두 성품이 윤전할 뿐이다.
‘공한 모양의 여’라 함은 이른바 법이 무아(無我)이어서 모든 법이 동일한 공의 여로써 모양으로 삼기 때문이다.
‘유식의 여’라 함은 이른바 분별이 없는 지혜이다.
‘의지의 여’라 함은 이른바 고제(苦諦)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기세간(器世間)이요, 또 하나는 중생세간(衆生世間)이다.
‘삿된 행의 여’라 함은 이른바 집제(集諦)이다. 이는 곧 애욕이다.
‘청정한 여’라 함은 이른바 멸제(滅諦)이다.
여기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번뇌장(煩惱障)이 청정해진 것이요,
또 하나는 지장(智障)이 청정해진 것이다.
‘바른 행의 여’라 함은 이른바 도제(道諦)이다.
이와 같이 일곱 가지의 여를 제(諦)를 거짓으로 건립함이라고 이른다.
이 가운데서 마땅히 알 것은 세 가지의 여는 곧 분별과 의타의 두 성품이니 이른바 윤전의 여와 의지의 여와 삿된 행의 여이다.
네 가지의 여는 이것이 진실의 성품이니, 이른바 공한 모양의 여와 유식의 여와 청정한 여와 바른 행의 여이다.
분별과 의타의 두 성품에 섭수된 것은 이것이 곧 세제(世諦)이고, 진실의 성품에 섭수된 것은 이것이 곧 진제(眞諦)이다.
도리를 거짓으로 건립함에 네 가지가 있다고 함은
게송으로 말한다.
바른 생각과 바르게 봄과 과(果)와
법을 가리는 현(現) 등의 양(量)과
또한 사의(思議)할 수 없다고 함이니,
도리에 네 가지가 있다.
[釋] 도리를 거짓으로 건립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서로 대하는 도리요 둘째는 인과의 도리요, 셋째는 성취하는 도리요, 넷째는 법이 그러한 도리이다.
서로 대하는 도리라고 함은 이른바 바른 사유이니, 대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생각하기에 출세간의 바른 견해가 바야흐로 일어남을 얻는다. 이 바른 사유를 떠나서 다시 다른 방편이 없기 때문이다.
인과의 도리라 함은 이른바 바르게 봄과 과이다.
성취하는 도리라 함은 이른바 현재 등의 양(量)으로써 모든 법을 간택(簡擇)하는 것이다.
법이 그러한 도리라 함은 이른바 가히 사의할 수 없는 곳에 이 법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어찌하여 그러냐고 물으면 바른 생각이 능히 바른 견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니, 이것이 이미 성취되었으니 마땅히 다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바른 견해가 능히 번뇌를 끊고 멸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미 성취되었으니 가히 다시 생각할 것이 없다.
모든 여(如)의 이러한 뜻은 다 법이 그러한 도리의 여이다.
이 네 가지를 도리를 거짓으로 건립함이라고 이른다.
승(乘)을 거짓으로 건립함에 세 가지가 있다고 함은
게송으로 말한다.
마음과 말함과 행과 모임과 과,
다섯 가지에 각각 하와 중과 상이니
이 세 가지의 품이 다름을 의지하여
건립한 것에 3승(乘)이 있다.
[釋] 다섯 가지 뜻의 세 가지 품에 의지하여 3승을 건립한 것이다.
다섯 가지의 뜻이라 함은
첫째는 마음이요, 둘째는 말함이요, 셋째는 행함이요, 넷째는 모임이요, 다섯째는 과이다.
세 가지의 품이라고 함은
이른바 하와 중과 상이다.
성문은 다섯 가지의 일이 모두 하이다.
마음의 하라고 함은 자기의 해탈만 구함이요,
말함의 하라고 함은 자기에게 이로운 법만을 말함이요,
행의 하라고 함은 자기에게 이로운 행만을 행함이요,
모임의 하라고 함은 복과 지혜가 좁고 작아서 다만 3생(生)뿐인 것이요,
과의 하라고 함은 성문의 과를 얻을 뿐이다.
연각의 승은 이 다섯 가지의 일이 모두 중이다.
보살의 승은 이 다섯 가지의 일이 모두 상이다.
‘마음의 상’이라 함은 이른바 네 가지 은혜의 마음이니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말함의 상’이라 함은 그의 은혜의 마음과 같아서 이와 같은 설법을 짓는 것이다.
‘행의 상’이라 함은 그의 설법과 같아서 이와 같은 행을 짓는 것이다.
‘모임의 상’이라 함은 그의 행함과 같아서 행이 이와 같은 모임이 가득함을 얻는 것이다.
‘과의 상’이라 함은 그의 취가 가득 참과 같이 위없는 보리를 얻는 것이다.
또는 성문의 승은 남에게서 법을 듣고 안으로 스스로 사유하여 분별의 지혜로써 과를 얻는다.
연각의 승은 남에게서 법을 듣지 아니하고 안으로 스스로 사유하여 또한 분별의 지혜로써 과를 얻는다.
보살의 승은 남에게서 듣지 아니하고 분별이 없는 지혜로써 과를 얻는다. 이 세 가지를 승을 거짓으로 건립함이라고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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