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운경 제3권
[신통이 자재하다]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신통이 자재하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태어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동자가 되어 갖가지로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출가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고행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보리수로 향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악마의 수고와 원망을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고요한 곳에 즐거이 머무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법륜을 굴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열반에 드시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도솔타천(兜率陀天)에서 목숨을 버리는 모습부터 열반에 이르는 모습까지를 나타내십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도솔타천에서는 오욕에 물들고 집착하므로 항상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보살은 모든 중생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해 오욕에 물들지 않으므로, 몸이 마침내 죽음으로써 항상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중생의 병을 고친다.
그리하여 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마음이 방일하지 않도록 한다.
도솔타천에서는 방일함이 많아 공경하는 마음과 믿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애욕에 물들고 집착해 정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기쁘게 놀며 마음껏 재미있게 놀기만 한다.
그래서 보살은 그들의 방일한 마음을 없애고자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이때 중생들은 보살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보고 모두 방일함을 버리고 싫어해 벗어나려는 마음을 내며,
방일함을 버린 까닭에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다.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있으면서 많은 신기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중생이 그 변화를 믿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머니의 태 속에 있으면서도 중생을 위해 설법하여 모두 아비발치를 얻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향하게 한다.
만약 보살이 어린아이일 때 모습을 보고 선근이 성숙하는 중생이라면, 보살은 이 중생의 선근을 성숙시키기 위해 어린아이 시절 모습을 나타낸다.
만약 보살이 출가하는 모습을 보고 선근이 늘어나는 중생이라면, 보살은 곧 이들을 위해 집을 버리고 출가한다.
만약 추하고 더러운 것에 뜻을 두어 집착하는 중생이라면, 보살은 고행하는 모습을 나타내어 그들을 성숙시킨다.
고행하는 모습을 보아야 성숙할 천ㆍ용과 야차와 건달바라면 곧 그들을 위해 그런 모습을 나타내어 성숙시키고, 또 모든 외도 등을 조복시킨다.
한량없는 중생들이 오래도록 발원하기를
‘보살이 보리수에 속히 나아가면 나도 당연히 따라서 쫓아가리라’고 하면,
이때 보살은 곧 보리수 아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때 그 중생들은 아비발치를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에 이른다.
또 교만하고 높은 체하며 스스로 자기의 세력을 믿는 중생이 있으면,
보살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기 위해 도량에 앉아 악마의 원한을 꺾어 굴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내어 그들로 하여금 믿고 복종하게 만든다.
보살은 적정을 좋아하는 중생들의 선근을 증장시키려고 도량에 앉은 모습을 나타낸다.
보살은 도량에 앉을 때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소리를 모두 다 사라지게 해 삼천대천세계를 일시에 적정하게 하여 적정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게 하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적정을 얻게 한다.
또 어떤 중생은 스스로를 대사(大師)라 일컬으며 일체지를 가졌다는 생각을 하지만 생사를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벗어나는 법을 알지 못하며,
또한 현생 이후의 과보를 알지 못한다.
이런 중생을 꺾어 굴복시키기 위하여,
또 법기를 감당할 만큼 성숙한 중생을 보면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무상삼보리도(無上三菩提道)를 이루어 바라내(波羅㮈)로 나아가 4제(諦)의 법륜을 굴리는 모습을 나타낸다.
또 열반을 나타내 성숙시킬 수 있는 중생이 있으면, 그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열반에 드는 모습을 나타낸다.
보살은 이와 같은 인연과 이와 같은 뜻으로 도량에 앉는 모습에서부터 열반에 드는 모습까지를 나타낸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신통이 자재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