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Evénement): 철학일반에서(Philosophie générale)
P. Kahn, Les Notions philosophique, Dictionnaire, PUF, 1992, p.906-907(P.3299)
- 칸(Pierre Kahn, 1949-) 프랑스 철학박사, 교육학 전공, 노르망디 캉 대학 명예교수.
[개요]
일상 언어에서, 사건(un événement)은 통상적 삶의 씨줄[맥락]을 중단하는 것을, 그리고 주의를 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가들과 기자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이 항목(용어)을 이용한다. 그들은 예를 들어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한 만남이 실재상으로는 비(非)-사건인데, 사람들은 그 만남에 대해 말을 많이 하고 또한 그 만남 주위에서 사람들은 많은 소문(le bruit, 소란)을 피운다. 따라서 그들은 다음을 말하고자 원하는데, 역사적 사건이란, 즉 연대기와 역사학이 보유하고 있을 것을 의무로 하는 것이란, 새롭고 중요한 어떤 것에 기여해야만 한다. 이 중요한 어떤 것은 사회적 집단을 위하여 참조로 사용할 것이다. 만일 이 두 특성들[새롭고, 중요한]이 분명하지 않다면, 또는 만일 사람들이 이것들의 현존을 신뢰한 후에 이것들이 착각이라고 확인된다면, 그러면 소위 말하는 사건은 무의미하고, 사건에 대한 성질을 부여할 만한 가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본문]
철학자들은 일어난[도래한] 모든 것에 이 용어(항목)를 적용하기 위하여 동일한 용어를 다시 다룬다. 이런 이유에서 일어난 것은 사물들의 과정에서 또는 생성(le devenir)에서 항상 어떤 중요한 것이다(참조, 생성 항목). 이 후자(생성)는,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또는 약간 달리 생산되었더라면, 다를[차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중요성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클레파트라의 코‥…), 하나의 사건은 결과들을 예견할 수 없는 어떤 새로움의 부분을 항상 허용한다.이런 의미에서 사건은 과학적 사실과 구별된다. 과학적 사실은, 그 사실이 실험적 방법으로 유래한다면, 원리상으로 반복할 수 있다. 현대의 철학은, 이 철학이 구체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한에서, 사건에 관심을 갖는다.
특별히 용어의 구체적 토대 위에 추상적인 용어 전체를 기초하고자 원하는 사유에서는, 시간이 그 자체로 현존하지 않는다: 즉 그것은 생성의 질서[순서]와 척도일 뿐이다(참조, 시간 항목). 생성 그 자체는 사건들의 연쇄들과 교직들(entrecroisements, 교차직조)로 구성된다. 계속과 동시성이라는 사건들의 순서 속에 줄서 있는 사건들의 계열들로부터, 사실상 사람들은 시간 개념을 구성할 수 있고, 시간 개념은 사건들 사이에서 계속과 동시성의 관계들 일체로서 생각된다.
의식적 경험 위에 토대로 세워진 현상학적 전통에서, 시간은 현재 사건들의 계속으로부터 생각되어 진다(참조 현재항목). 왜냐하면 생성은 현재 속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고, 현재는 관찰자에게서만 현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동일한 시간으로”라는 표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동시성의 관계를 선가정해야만 한다. 이것이 첫째 난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또한 자문할 수 있다. 즉 시간을 구성하기 위하여 관찰되고 체험된 사건들에 위에서만 기초를 세운다는 것은 제한적이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좁은 의미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포기할 때, 사건이란 용어를 관찰자에 의해서 또는 사회적 집단에 의해서 체험된 것에 국한시킬 이유가 없다. 머나먼 별에서 일어난것은 물리학적 사건이고, 그것은 그것대로 고려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인간의 출현 이전에 지구상에서 일어났던것도 동일하게 사건이라 일컬을 수 있다. 게다가 몇몇 물리학적 사건들은 예를 들어 빙하들의 해빙(녹음) 또는 화산들의 폭발과 같은 사건들은, “사건”이란 용어의 첫째[초기] 역사적 의미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들은 자주 예견할 수 없지만, 여전히 중요한 돌발사고들(des accidents)이다.
사람들인 첫째 의미에서 또는 [둘째] 넓은 의미에서 “사건”을 다룰 때, 사건 전체에 지속을 - 이 지속이 아무리 짧다고 하더라도 - 부여하는 것이 편하다.모든 지속에는 앞선 한계[페라스]만큼이나 차후의 한계가 부여되어 있다(참조, 순간항목).이런 이중 조건에서 사건들로부터 시간의 논리-수학적 구축이 가능하다. (H. Barreau)
사건의 용어는 역사적 학문들 속에서 중요한 방법론적 논의의 중심에 있다. 오로지 역사의 사건적 특성에서 객관성이라는 역사의 의지를 실현하는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역사에 반대하여, 역사적 탐구는, 1929년에 학회지 아날(Les Annales: Histoire, Sciences sociales)을 창간한페브르(Lucien Febvre, 1878-1956)와 블로흐(Marc Bloch, 1886-1944)에 이어서, 사회적이고 인류학적 역사로 방향을 잡았다. 그 역사[탐구]는 사건들 “아래서”(sous)구조들과 연속성을 밝히고자 한다.
이때에 사건은, 짧은 시간에 살아있고, 성급하고, 드라마같은 대역사(Histoire)의 거품처럼 나타난다. [이 짧은 거품 같은] 역사는 역사적 실재성의 “깊은 흐름들”의 “긴 지속”으로부터 구별된다(블로델Braudel의 역사에 관한 글들(Écrits sur l'Histoire, 1969))
이때에 시간적으로 구별된 계열들 사이의 연관들의 문제가 제기되고(푸꼬Foucault의 지식의 고고학(L'Archéologie du savoir, 1969)), 말하자면 사건들의 계열과 사회적 실재성의 차이나는 다른 수준들사이에 있는(현존하는) 원인성의 전형의 문제가 제기된다.
사건은 매우 자주 표면의 효과처럼또는 미시우주(microcosme)처럼 생각되었으며, 사건은상호작용하는 원인성을 – 이 원인성은 사건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역사에 연결하는데 - 또한 부각하여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서부의 심성들의 역사 속에서 “올빼미당(chouannerie)”사건의 역할이 그러하다. (Pierre Kahn)
(3:09, 55SMI)
***
전69 클레오파트라(Cléopâtre VII Philopator Κλεοπάτρα Θεὰ Φιλοπάτωρ, (« Qui aime son père »): Théa Néôtera Philopatris Θεὰ Νεωτέρα Φιλοπάτριϛ(« Déesse nouvelle qui aime sa patrie ») 전69-전30)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왕, 여신. 케사르(Jules César, 전100-전44)의 연인이자 한 때 부인이었다. 케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사이의 아들을 유언장에서 인정하지 않았다. - 아마도 케사르는 자기 본부인이 불임이 아니라, 자신이 불임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O
1757 슈앙(Jean Chouan, 본명 Jean Cottereau, 1757-1794), 1792-1794년 브르통지방에서 왕당파와 카톨릭으로 구성된 올빼미당(la Chouannerie)의 결성, 반혁명 세력.
[1798 미슐레(Jules Michelet, 1798-1874) 프랑스 역사학자. 프랑스사(Histoire de France, 17권, 1833-1867), 프랑스 혁명사(Histoir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7권, 1847-1853), 마녀/여마법사(La Sorcière 1862).- 잔다크를 민중화하면서 정치적 종교적 회복을 시도했다. 동시대 역사가로는 기조(François Guizot (1787-1874)(미슐레 스승),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 키네(Edgar Quinet, 1803-1875). 스위스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 미슐레의 영향을 입었다. 부르크하르트는 니체와 친했다.] - [실증사학: 텐(Hippolyte Taine, 1828-1893), 르낭(Ernest Renan, 1823-1892)]
1878 페브르(Lucien Febvre, 1878-1956) 프랑스 역사가,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 블로흐(1886-1944)와 함께 1920년에 “아날학파(L'École des Annales)”를 창설하였다. 스트라스 부르 대학에서 1929년 역사학회지 아날(Les Annales: Histoire, Sciences sociales)을 창간하였다. [영국의 사학자로서 헨리 토머스 버클(Henry Thomas Buckle, 1821-1862), 프랑스 사학자로서 누마 드니 퓌스텔 드 쿨랑주(Numa Denis Fustel de Coulanges, 1830-1889)와 샤를 세뇨보스(Charles Seignobos, 1854-1942), 독일의 사학자로서 레오폴드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 등의 사료 중심의 실증사학(결정론)을 비판하고, 페브르는 인간의 문제를 학제 간 연구의 필요를 강조했다.]
1886 블로흐(Marc Bloch, 1886-1944) 알사스 유대계, 프랑스 역사가. 1920년 아날학파 창시자 중의 한사람. 꼴레쥬 드 프랑스에 교수 신청에 두 번 좌초하였는데, 그 후에 소르본대학에 교수가 되었다는 것은 두 번의 낙마가 안티세미즘 때문은 아닌 것 같다.
1902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 프랑스 역사가. 1927년 르페브르와 편지 교환 시작했으나 1937년 처음 직접 만남. 이후 아날학파의 대변인 역할을 하였다. 아날학파에서 인기 있는 자가 되었다. 역사에 관한 글들(Écrits sur l'Histoire, 1969) [아날학파 2세대 에르네스트 라브루스(1895-1988)와 브로델] - [아날학파 3세대: 필리프 아리에스(1914-1984), 조르주 뒤비(Georges Duby, 1919-1996), 자크 르 고프(1924-2014), 여기에 외 소불이 빠졌을까? 소불에 대해 소르본 내에서 이의 제기자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 [알베르 소불(Albert Marius Soboul, 1914-1982) 프랑스의 역사학자, 혁명사 전공, 생쥐스트(Saint-Just: ses idées politiques et sociales, 1937)(173 p.) 르페브르의 지도로 「혁명력 2년의 파리 상퀼로트(Les sans-culottes parisiens en l'an II, 1958)」, 프랑스 대혁명사(Précis d'histoir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1962)]
1926 미셸(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 철학자. ENS 1945년 입학 좌절, 1946년 4등 입학, 교수자격 시험 논술에서 29등으로 낙방(가설이 주제인데 파르메니데스에 관해서만 쓰고, 끌로드 베르나르와 과학에 대해 쓰지 않았다). 1951년에 이등으로 자격통과. 임상의 탄생(Naissance de la clinique. Une archéologie du regard médical, 1963), 말들과 사물들(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1966), 지식의 고고학(L'Archéologie du savoir, 1969),
1929 바로(Hervé Barreau, 1929-2014) 스트라스부르 대학 교수, L'Espace et le temps dans la Physique d'Aristote, 1976), 「시간 개념의 구축(La construction de la notion de temps」(1982 파리 10대학 박사학위)
1949 칸(Pierre Kahn, 1949-) 프랑스 철학박사, 교육학 전공, 캉 대학 명예교수. 이론과 경험(Théorie et expérience 1988), A에서Z까지 철학 실행(Pratique de la philosophie de A à Z, 1994)(Elisabeth Clément, Chantal Demonque, Laurent Hansen-Løve, Pierre Kahn... [et al.] / Hatier, 1994) - [동명이인: 칸(Pierre Kahn, 1939-2006) 프랑스 정신분석가. 지적도 위에 삼류 도면가(Le gribouilleur sur le cadastre, 1987)]
* 물리학에서 사건: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를 다룬다.
(4:11, 55SMI) (4:27, 55TKI)